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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N |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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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의 꽃향기 아침노을로 번지고 원융무애의 사랑 단풍으로 빛나네

글 | 이종성 시인

만물은 그 본유의 성질을 좌우하는 요소가 있다. 철은 탄소의 함유량에 따라 종류와 용도가 달라진다. 단풍은 빛과 기온에 의해 결정된다. 사람으로 치면 인성과 기질을 형성하는 핵심 요소다. 그런 것처럼 우리의 한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그런 요소는 무얼까.

이 가을, 나도 그 무언가로 곱게 물들고 싶다. 황홀하게 물든 저 단풍은 무엇의 결과물인가. 사랑이다. 그 깊고 신비한 우주율, 우리의 영혼을 곱게 물들이는 것이 그것 말고 더 있는가. 사랑도 단풍이다. 서로에게 물드는 영혼의 아가페며 창조적 에로스다.

색은 섞을수록 어두워지고, 빛은 겹칠수록 밝아진다. 단풍은 색이지만 그 색은 빛으로 발현된다. 단풍이 눈부신 이유다. 단풍을 엽록소 하나로만 관련지어 생각하면 우리의 감성은 딱딱한 과학에 갇히고 만다. 사실 단풍은 월동준비이며, 물이 들기보다는 물이 빠지는 현상이다. 가을이 되면서 일조량과 기온의 변화에 엽록소가 먼저 줄어들기 때문이다.

빠질 것은 빠져야 하고, 떨어져나갈 것은 떨어져나가야 한다. 그래야 물들고, 가을바람에 나무의 본체가 드러난다. 거기에 우리의 마음이 투영되어 단풍은 마음의 빛으로 남는다. 즉, 마음의 작용이 없다면 그저 색色일 뿐이다. 그 사랑이라는 마음의 작용으로 우리의 영혼이 물들 수 있다. 서로를 물들이고, 이 세상을 물들인다. 그것이 단풍현상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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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뚱이가 가을바람에 드러나느니라” 운문선사의 말을 나무들은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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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재암 국화향기 아침에는 아침노을 저녁에는 저녁노을로 번진다.

단풍나무 터널로 접어든다. 단풍나무 일색이지만 색깔은 가지각색이다. 어떻게 저 다양한 빛깔들이 만들어지는 것일까. 단풍나무를 다시 본다. 빨강, 녹색, 파랑으로 관찰된다. 이름하여 빛의 삼원색이다. 중첩된 빛의 삼원색에는 색의 삼원색이, 겹쳐진 색의 삼원색에는 빛의 삼원색이 나타난다고 한다.

알고 보면 단풍나무만큼 셈을 잘하는 나무도 없다. 빨강과 파랑을 중첩시키면 자홍색, 빨강과 초록을 겹치면 노랑이 된다. 자홍과 초록, 노랑과 파랑은 보색관계다. 태양빛은 가시광선 영역대를 모두 포함하고 있는 백색광이다. 주광晝光이라 불리는 백색광은 순도가 1인 빛이다. 색깔이 없어 보이지만 여러 색깔의 빛이 포함되어 있다. 삼원색을 이용하면 어떠한 색깔도 만들어낼 수 있다. 사랑이 그와 같다. 순도 100의 빛을 만드는 사랑, 그것이 단풍에 대한 나의 해석이다.

요석공원搖石公園과 의상교를 지난다. 특이한 모양의 나무 열매가 눈에 띈다. 비틀린 긴 꼬투리열매들이 달려 있다. 유년 시절 ‘주엄나무’ 혹은 ‘쥐엄나무’라고 불렀다. 끈끈한 잼 같은 열매가 달콤하여 먹곤 했다. 콩과의 민주엽나무로 우리나라 특산종이다. 어려서 처음 알게 된 글씨가 마냥 신기해 연필로 삐뚤빼뚤 썼던 그 모양이다. 획이 굵어 마치 붓으로 쓴 산스크리트어 같다.

이제 보니 저 나무가 내게는 언어의 나무인 셈이다. 우연일까? 산스크리트어를 기원으로 하는 인도 타밀어와 우리말 엄마는 ‘amma’, 아빠는 ‘appa’와 마찬가지로 그 음과 뜻이 같다고 한다. 그 외에 우리말과 같은 단어가 1,000개가 넘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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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촛불을 켠 간절한 마음들, 그 바람 모두 다 이루어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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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산 입구 알밤을 문 다람쥐 형상물 두 눈망울이 튼실한 도토리다.

화쟁과 무애의 길을 따라 가는 자재암

일주문에 닿는다. ‘소요산자재암’ 현판이 보인다. 후면에 ‘경기소금강’이라는 편액이 하나 더 걸려 있다. 원효폭포에 들른다. 흰 물줄기가 쏟아지고 있다. 폭포 바로 옆에는 ‘원효굴’이 있다. 물과 암굴은 원효의 시작과 끝이라 할 수 있다. 원효가 수행했던 곳에는 반드시 물이 있었다. 팔공산 서당굴, 부안 원효방, 설악산 금강굴과 이곳 자재암의 원효샘 등이 그것이다. 또한 신라의 고선사에 있던 원효가 당나라 성선사聖善寺의 불을 끈 신통력에도 응당 물이 이용되고 있다. 이와 같이 원효와 물은 불가분의 관계다.

心生故種種法生 심생고종종법생
心滅故龕墳不二 심멸고감분불이
三界唯心萬法唯識 삼계유심만법유식
心外無法胡用別求 외무법호용별구

“마음이 일면 갖가지 법이 생겨나고 마음이 사라지니 무덤과 토감이 둘이 아니다. 삼계가 오직 한마음이요, 만법이 오직 식識이다. 마음 밖에 법이 없으니 어찌 따로 구하겠는가.”

곧바로 입당구법入唐求法의 길을 버리고, 해동에 불일佛日의 첫새벽을 환하게 밝혔던 것도 물과 무관하지 않다. 원효에 대한 소요산 물 이야기는 조선 중기의 허목許穆이 쓴 <소요산기>에 ‘원효샘’이 언급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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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체하면 물든다며 곧장 쏟아져 내리는 원효폭포 물줄기 흰 빛줄기다.

자재암自在庵으로 향한다. 백팔계단을 오르면 둥근 아치 형태의 해탈문이다. 걸음 수마다 연꽃이 그려져 있다. ‘깨어 있어야 한다’는 주문일까. 깨어 있다는 것은 무엇일까. 지금 이 현재를 생생히 살아서 내가 나 자신에게 현존하는 상태는 아닐까. 해탈문에 종이 매달려 있다. 종소리는 누군가에게 가 닿기 전 당사자에게 먼저 전해지고, 자신의 가슴을 먼저 울려야 한다.

해탈문 바로 가까이 ‘원효대’가 있다. 맞은편 관음봉을 마주하고 있다. 수도하다가 ‘체념하여 절벽으로 뛰어내리려고 하는 순간 문득 도를 깨우쳤다’는 안내판이 있다. 깨치기 전의 그도 고뇌에 흔들리는 인간이었던가. 흔들리고 흔들리는 범부들이여 괜찮다. 용기를 내자.

극락교를 건너 암자에 들어선다. 마당에 가득한 국화로 암자의 분위기가 한층 더 고아하다. 나한전 우측의 옥류폭포 청음이 시원하다. 폭포를 바라보는 대웅전 부처님의 미소는 개화하는 수천수만 송이 꽃빛이요 어느 색상표에도 나와 있지 않은 무한의 단풍빛이다.

툇마루에 앉는다. 무심하게도 꽃향기에 물들고 독경소리에 물들고 단풍에 물드는 시간이 깊어간다. 조금 전 마신 1,300여 년의 시간을 관통하고 샘솟는 원효샘 석간수가 내안 천리만리를 절하며 흘러간다. 이 한 모금의 명수名水를 얻기 위해 ‘신라 고려 때는 물론 조선 중기까지도 시인 묵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는 안내문을 뒤로하고 암자를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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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뚤빼뚤 썼던 어릴 적 글씨 같이 산스크리트어 닮은 민주엽나무 열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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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산 단풍나무 터널 아래를 걷는 사람들. 물들지 않은 이 없다.

금빛 물이 넘치는 선녀탕과 전망 높은 의상대

계단을 올라 갈림길에 선다. 하백운대로 가는 길을 버리고 선녀탕 쪽으로 방향을 튼다. 길은 돌투성이다. 협곡을 돌아난다. 산그늘 바깥 저쪽이 눈이 시릴 만큼 환한 빛의 세계요 투명한 관음의 세계다. 선녀탕은 바위 협곡 사이에 은밀히 숨어 있다. 한둘이 들어갈 정도다. 묘한 형상, 묘한 기운, 묘한 심처 삼묘三妙가 있다.

다시 가파른 계단과 돌길을 오른다. 앞으로 전망이 툭 터진다. 가을 산의 단풍이 장엄한 다비식이다. 깎아지른 발아래로 상백운대에서 발원한 물이 선녀탕으로 흘러내리고 있다. 신비함, 은밀함, 청정함, 고요함, 황홀함의 오함五含이 있다. 느티나무, 단풍나무, 쪽동백, 물오리나무, 헛개나무 등 천목천색의 나무들이 색을 뿌리고, 빛을 던지며 그 삼묘 오함의 신비한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숨이 찰수록 단풍이 붉다. 상백운대를 거쳐 칼바위로 향한다. 바위들이 날선 칼이요 절벽마다 노송이다. ‘왕방산 9.6km’ 이정표를 지난다. 긴 오름길 나무 계단이 새로 놓여 있다. 나한대에 선다. 선녀탕도 하·중·상백운대와 공주봉도 한눈에 조망된다. 나한대의 산봉우리 그림자가 제 모습 그대로 앞산 상백운대 발치까지 드리워져 있다. 그림자를 통해 실체를 보는 곳이 나한대가 아닐까. 해탈의 경지에 이른 수행자가 좌선해야 할 이곳에 상처 욱신거리는 미망의 존재가 앉아 있다. 색색의 나무들이 군집하여 이룬 단풍의 만다라, 절창이다. 방향을 돌려 의상대를 건너다본다. 단풍에 물든 흰 암벽이 붉다.

소요산의 주봉인 의상대(587m)에 오른다. 사방팔방 막힘이 없다. 감악산, 왕방산, 불곡산, 도봉산, 북한산 등 주변의 산들이 조망된다. ‘자재암을 창건한 원효의 수행 도반인 의상을 기려 최고봉을 의상대라 하였다’는 안내문이 있다. 공주봉을 바라본다. 참으로 곱다. 아름답다. 저 공주봉이 아니었다면 소요산은 원효를 얻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나한대와 의상대에 와서 보니 소요산이 왜 소금강인지를 비로소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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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소요산의 가을 단풍. 그 빛이 선녀탕 골짜기에 자글거린다.

금강金剛이란 어떤 것일까. 불가에서는 대일여래大日如來의 지덕智德을 표현한 말이다. 어떤 것도 깨뜨릴 수 있고, 어떤 것에도 깨지지 않는 것이다. 광물적인 면에서는 순수한 탄소의 결정물이다. 정팔면체로 무색투명하고, 때로 빛깔을 띠며 가장 굳고 아름다운 보석이다. 이것을 인간학적으로 풀면 곧 사람이다. 사람의 마음이다. 내 마음의 금강을 찾아가는 곳, 소금강 소요산이다.

다시 원효사상을 인용하면, ‘쳐부술 것도 없고 부수지 않을 것도 없으며, 내세울 것도 없고 내세우지 않을 것도 없나니, 이것이 이치랄 것도 없는 지극한 이치요, 그렇달 것도 없는 큰 그런 것이로다(無理之至理무리지지리 不然之大然불연지대연)’. 우주를 본 원융의 세계가 이러한 무애 자재한 크기 없는 지혜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이제 흠뻑 물이 들었으므로 더 물들 색이 없는 단풍잎들이다. 즐거이 산을 벗어나는 색동 계곡물이다. 보시라, 저기 저 하늘도 땅도 그대처럼 물들지 않았는가. 천지인 모두 곱게 단풍드는 오늘 하루가 금강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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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월간산 577호
등록일 : 2017-11-14 14:10   |  수정일 : 2017-11-14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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