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메뉴

FUN | 여행
  1.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기사목록 
  2. 글자 작게 하기글자 크게 하기

단풍하면 떠올리는 내장산...그 이름의 유래

글·사진 | 박정원 월간산 부장대우
필자의 다른 기사

한국에서 단풍이라 하면 내장산內藏山(763m)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설악산은 남한에서 단풍이 가장 먼저 드는 산으로 알려져 있지만 아름답기로는 내장산을 더 꼽는다. 단풍은 중부의 설악산, 남부의 내장산으로 대별할 수 있겠다.

이 시기 내장산 탐방객은 다른 산에 비해 압도적이다. 내장산은 연간 탐방객이 2016년 기준 164만여 명으로 전체 국립공원의 중간 정도에 불과하지만 11월 탐방객만큼은 58만3,000여 명으로 단연 1위다. 10월에 96만여 명을 기록했던 설악산도 11월에는 53만6,000여 명으로 내장산에 뒤진다. 북한산이 47만1,000여 명으로 그 뒤를 잇는다. 한국의 5대 단풍명소로 꼽히는 피아골이 있는 지리산도 11월에는 24만여 명에 불과하다. 그만큼 내장산 단풍은 한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다.

그런데 내장산이란 지명의 역사는 그리 오래돼 보이지 않는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내장산이란 지명이 등장하지 않는다. <고려사>에도 없다. 조선시대 발행된 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처음 등장한다. 조선 성종 때 문인인 성임成任(1421-1484)이 내장산을 방문하고 내장사 앞 정자에 남긴 ‘정혜루기’가 첫 기록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나오는 내용도 이를 포함한다.

‘성임의 정혜루기에 호남에 이름난 산이 많은데, 남원 지리산, 영암 월출산, 장흥 천관산, 부안 능가산(변산)이 있다. 정읍 내장산도 그중의 하나다.’

여기에서 호남 5대 명산이 유래했다. 그런데 한국 8경 또는 조선 8경 중의 하나라고 흔히 말한다. 출처는 불분명하다. 성암은 15세기에 생존했던 인물이니 그 즈음에는 내장산으로 불렸던 사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이전의 기록은 정확한 출처가 없어 알 수 없다.

내장사 연혁에 ‘636년 영은 조사가 대웅전 등 50여 동의 대가람을 영은사란 이름으로 창건했고, 1098년 행안 선사께서 전각당우를 중창했다는 기록만 있을 뿐 자세한 연혁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영은 조사가 창건한 영은사의 이름을 따서 영은산(靈銀山)이라 부르다 후세에 많은 사람들이 계곡 속으로 들어가도 양의 구절양장 속에 들어간 것처럼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내장산으로 부르게 됐다고 한다. 산속에 무궁무진한 보물이 숨겨져 있어 내장산이라 했다는 설도 있다.

임진왜란 때 태조 영정과 사적을 내장산 은적암에 일시적으로 봉안하기도 했다고 전한다.  
출처 | 월간산 577호
등록일 : 2017-11-15 09:36   |  수정일 : 2017-11-15 10:03
  1. 프린트하기 
  2. 기사목록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독자 리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맨위로

하단메뉴

개인정보 취급방침독자센터취재제보광고문의조선뉴스프레스인스타그램페이스북트위터카카오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