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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룩이 익는 곳, 프리미엄 막걸리 기행 술이 예술

글 | 하재봉 시인·문학평론가

설날 직전, 아버지 심부름으로 노란 주전자를 들고 해 질 녘 길을 나선 때가 아마 일곱 살이었을 것이다. 처음으로 양조장을 찾아갔다. 양조장 근처 100m쯤 가까이 갔을 때부터 이상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누룩이 발효된 그 강렬한 냄새는 어린 나에게는 지금까지 알지 못한 전혀 새로운 세계로 가는 문을 열어주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소주, 맥주, 와인, 위스키 등 온갖 종류의 술을 섭렵하기는 했으나 내가 직접 양조장에 찾아가본 적은 없었다.
   
   우리 양조장에 대한 호기심이 일었던 것은 2010년 죽력고를 마시면서부터였다. 육당 최남선이 조선 3대 명주라고 칭하면서 회자되었던 술이 죽력고, 이강주, 감홍로다. 대나무를 불에 구워서 느리게 한 방울씩 떨어지는 진액을 받아 생지황, 계심 등의 가루에 꿀을 넣고 찹쌀 누룩 등으로 술을 만드는데, 녹두장군 전봉준이 관군에게 잡혀 모진 고문을 받고 쓰러졌다가 죽력고 3잔을 마신 뒤 생기를 찾고 서울로 압송될 때 수레에서 꼿꼿하게 앉아 있었다는 전설이 있다. 명약에 가까워서 술 이름에 주(酒) 자가 아니라 고(膏)를 붙였다. 연한 노란빛을 띠는 35도의 이 술은 약한 풀 냄새와 대나무 향기가 은은하게 어우러지면서 깊은 맛을 안겨준다. 몇 잔을 마시다가 병을 닫았다. 도저히 혼자 마실 술이 아니었다. 이렇게 좋은 술은 좋은 사람들과 함께 마셔야 제맛이 날 것 같았다. 도대체 누가 이 술을 만들었을까 궁금증이 일었다.
   
   며칠 뒤 나는 맥이 끊겼던 죽력고를 다시 재현해낸 무형문화재 송명섭 명인을 찾아 전라북도 태인에 있는 ‘태인양조장’을 찾아갔다. 태인읍 버스정류장에서 동네 골목으로 조금 들어가니 담도 없는 아담한 기와집이 나왔다. 소나무 한 그루가 예쁘게 서 있는 그 집은 살림집이고 그 옆에 양조장이 있었다. 양조장에서는 ‘송명섭막걸리’와 ‘죽력고’를 생산한다. 생산량이 한정되어 있어서 ‘송명섭막걸리’는 택배로 전국으로 우송되고, 동네 마트에도 몇 상자가 납품된다. 마트에 가서 물으니, 술이 화요일 오후 6시쯤 나오는데, 주민들이 ‘송명섭막걸리’를 사려고 미리 줄 서 있다가 몇 분 만에 다 나간다는 것이다. 나는 양조장에서 ‘죽력고’를 두 병 샀지만, 막걸리는 사지 못했다. 양조장에도 없고, 마트에도 없었다. 그런데 서울 인사동 술집에서 마실 수 있었다.
   
   
   ‘찾아가는 양조장’ 프로그램 운영
   
   양조장은 이제 단순히 술만 만드는 공장이 아니다. 농림축산식품부에서 2013년부터 ‘찾아가는 양조장’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는데, 전통주 생산에서 관광·체험까지 연계된 복합공간으로 양조장을 탈바꿈해서 관광 활성화와 농산물 사용확대 등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데 목적이 있다. 선정된 양조장에는 8000만원에서 1억원 가까운 정부 예산이 지원되어 환경을 개선하고 품질관리, 스토리텔링 등을 제공하여 지역 명소가 될 수 있게 지원하고 있다. 강원도 홍천의 예술양조장, 경기도 포천의 배상면주가, 충북 단양의 대강양조장, 충남 논산의 신평양조장, 충남 서천의 한산소곡주, 전남 해남의 해창양조장, 전남 진도의 대대로(진도홍주), 전북 정읍의 태인합동양조장(송명섭), 경기 용인의 술샘, 경북 문경의 문경주조, 경북 울진의 울진술도가 등 매년 지금까지 총 30곳이 찾아가는 양조장으로 선정되었다. 행사 시작 첫해인 2013년에는 많은 일본인 관광객이 찾아왔고 이어서 기업, 각 동호회 등에서 ‘찾아가는 양조장’ 프로그램에 신청하기 시작해 지금은 가장 성공적인 프로젝트로 자리를 잡았다.
   
   나는 전국의 양조장 지도에 표시를 해놓고 양조장 투어를 하기 시작했다. 지역으로 구분해서 양조장 투어를 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기는 하나, 막걸리·증류주·와인 등으로 주종을 나눠 투어를 해도 좋다. 대부분의 양조장에서는 막걸리를 생산하는 것이 기본이다. 가라앉은 지게미 위의 맑은 부분을 걷어 청주를 만들고 그것을 다시 증류시켜 증류주를 만들기 때문에 하나의 양조장에서 막걸리·청주·증류주, 이렇게 3종류를 만드는 게 일반적이기는 하나 막걸리만 혹은 증류주만 만드는 곳도 있다.
   
   술의 기본은 물이기 때문에 물 좋은 곳에서 좋은 술이 생산된다. 지명에 물과 관련된 천(川), 정(井) 등의 글자가 들어 있으면 예외 없이 양조장 여러 곳이 모여 있다. 강원도 홍천, 경기도 포천, 부산 금정산, 충남 아산(도고온천) 등이 그렇다. 강원도 홍천에 있는 ‘예술양조장’은 규모 면에서는, 기업형으로 대량생산하고 있는 국순당·배상면주가·배혜정도가 등을 제외하면 가장 큰 시설을 자랑하고 있다.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따라 가면 홍천의 깊은 산속, 산세 좋은 지역으로 들어가게 된다. 백암산 비탈에 주차장이 별도로 넓게 마련된 것만 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지 알 수 있다. 주차장 있는 곳에 ‘누룩체험관’이라는 입간판이 서 있는데 그 벽에는 ‘우리 술은 맛있드래요’라고 흰색 페인트의 정감 어린 붓글씨가 쓰여 있다. 둥근 원형의 커다란 2층 건물 계단에서 개량한복을 입고 내려오는 사람이 보였다.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헌법교수로 재직했던 변호사 출신의 정회철 대표다.
   
   양조장에 직접 찾아가면 가장 좋은 것 중 하나가 유럽이나 미주 대륙의 와이너리 투어처럼, 시음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차장 바로 위쪽에 있는 작은 건물에선 예술의 대표 브랜드인 막걸리 ‘만강에 비친 달’ ‘홍천강 탁주’ 그리고 청주인 ‘동몽’과 증류주인 ‘무작53’, 작은 플라스틱 용기 10개가 들어 있는 ‘이화주’와 막걸리 찌꺼기로 만든 비누, 술잔 등을 같이 판매하고 있었다. 그런데 시음이 가능한 술은 ‘무작53’뿐이라는 것이다. 건물 바로 옆 그늘에 파라솔이 여러 개 펴져 있는 테이블에 앉아 나는 안주도 없이 무작을 한 잔 마셨다. 53도의 강렬하고 짜릿한 알코올이 뜨겁게 목구멍을 넘어갔다. 무작의 술균은 직접 자연접종한 천연누룩을 사용하여 빚는다. ‘주찬’ ‘김승지댁 주방문’ 등 고문헌에 실려 있는 적선소주를 원류로 만들어졌다. 교육장이며 체험장인 1층에는 사람 키보다 더 큰 동고리가 2개 설치되어 있었다. 포르투갈에서 수입해온 동고리는 장인이 직접 망치로 내려쳐 수작업으로 둥글게 만든 증류용 구리 항아리다. ‘무작53’은 상압식의 증류방식을 이용하여 두 차례의 증류 과정을 거친 뒤 다시 영하 20도의 냉동여과를 통해 만들어져서 목을 넘어갈 때 매우 부드럽다.
   
   2층 건물 옆에는 기와집으로 된 양조장이 있다. 내부가 진흙으로 빚어진 숙성실 안으로 들어가면 서늘한 기온이 느껴진다. 수많은 항아리에서는 술들이 익어가고 있었다. 산 위쪽으로는 온돌방과 침대방으로 구분된 게스트하우스 2동이 있다. 예술에서는 당일코스, 1박2일 코스, 3박4일 코스 등으로 전통주 빚기나 막걸리비누 만들기 체험, 누룩 체험 등의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게스트하우스까지 설치되어 있다.
   
   강원도 홍천까지 갔다면 또 한 군데 찾아가야 할 곳이 ‘미담양조장’이다. 내비게이션이 알려준 길을 따라가면, 정말 이곳에 양조장이 있나 의심이 들 정도로 비좁은 산길을 지나야 한다. 작은 집 두 채가 나타났다. 하나는 살림집이고 다른 하나가 양조장이다. 미담의 조미담 대표는, 좋은 물을 찾아 홍천읍 태학리까지 왔다고 했다. 양조장 안에는 술 빚는 장비가 설치되어 있는데, 조미담 대표 혼자뿐이었다. 술을 만들 때는 제자들이 찾아와 함께 만든다는 것이다. 미담주는 4종류가 출시되는데 석탄주·연엽주·송화주·생강주가 각각 탁주(12도)와 청주(16도)로 만들어진다.
   
   
▲ 전라북도 태인의 ‘태인양조장’ 풍경. 막걸리의 재료인 누룩이다.(위) 강원도 홍천의 ‘예술양조장’. 기업형 양조장을 제외하면 가장 규모가 큰 양조장이다.

   혀끝에서 살아 움직이는 ‘송화주’
   
   미담주는 전통방식에 따라 모든 공정을 수작업으로 한다. 재래누룩으로 술을 빚을 때 인공발효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술을 거른 후 필터링을 하는 게 아니라 두 달 동안 자연 침전시킨다. 그래서 미담의 술은 가라앉은 부분의 탁주보다는 위에 떠 있는 것을 걸러낸 청주가 훨씬 더 좋았다. 다만 송화주 탁주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강렬한 소나무 향이 배어 있는 밀도 있는 송화주를 마시면 송화 입자가 알알이 혀끝에서 살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세련되지 않고 조금 거칠지만 단맛, 쓴맛, 구수한 맛, 떫은 맛, 신맛의 오미가 풍부하게 느껴지면서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또한 정갈하면서도 깊은 풍미가 있는 석탄주는 미담주의 기본으로서 술을 마시는 동안 술이 사라지는 것을 한탄하게 될 정도로 맛있다고 해서 지어진 옛 이름이다, 연분홍 빛깔의 연엽주는 고종황제가 즐기던 술로 연잎의 은은한 향을 느낄 수 있다. 송화주는 냉장고 속에 넣어 두고두고 아끼면서 마시고 싶은 술이었다.
   
   홍천처럼 지명에 천(川) 자가 붙은 곳이 경기도에도 있다. 막걸리로 유명한 포천이다. 포천시 화현면에 있는 배상면주가에서 운영하는 ‘산사원’은 ‘찾아가는 양조장’의 대표적인 공간이다. 커다란 건물의 양조장 건너편에 현대식으로 지어진 산사원은 전통술 박물관이자 정원이다. 산사원은 2000원의 입장료를 받지만 내부에 전국의 중요 양조장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한국 전통주를 비롯해서 세계 각국의 술들이 자세한 설명과 함께 전시되어 있는 박물관이 있고, 배상면주가에서 만드는 20여종류의 다양한 술을 시음할 수 있는 데다가 마신 술잔은 가져갈 수도 있다.
   
   산사원의 진짜 아름다움은 정원을 걸어 봐야 알 수 있다. 200년 이상 되는 산사나무 고목 20그루가 있는 산사정원은 1만3200여㎡(4000여평)의 대지 위에 세월랑, 부안당, 취선각, 우곡루 등 다섯 채의 한옥과 500개가 넘는 술독 항아리들이 아름답게 배치되어 있다. 산사춘의 원료가 되는 장미과의 산사나무 자생목들은 강원도 다른 지역에서 자생하는 것을 옮겨 조성한 것이다. 곧게 직선으로 뻗은 긴 주랑 양쪽에는 어른 허리 위까지 오는 커다란 술독 항아리들이 줄지어 서 있다. 그 길을 따라 걸으면 술 익는 냄새로 취할 것만 같다.
   
   경기 남양주시 진전읍에 있는 ‘봇뜰양조장’은 한두 명이 술을 빚을 정도의 시설이고 초라할 정도로 규모도 작지만 여기서 만드는 술은 매우 인상적이다. 봇뜰에서는 직접 누룩을 디딘다. 그리고 첨가물을 일절 쓰지 않고 오직 물과 쌀과 누룩만으로 술을 만든다. 최소 100일 이상 항아리에서 발효 숙성시켜 출시하고 있다. 너무 구석진 곳에 위치해 있어서 주차하기도 힘들었다. 봇뜰의 대표에게 왜 이곳에 양조장을 만들었느냐고 물었는데, 대답을 듣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원래 이쪽 태생이 아닌데 좋은 물을 찾아 여기까지 오게 됐다는 것이다. 그렇다. 한국 전통주를 빚는 기본 세 가지, 누룩과 쌀(찹쌀·멥쌀), 물 중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물이다. 그런데 대부분 수돗물을 사용한다. 식약처에서는 안전과 위생을 위해 수돗물을 권하기 때문이다. 별도의 물을 재료로 쓰면 비용을 내고 반복적으로 수질검사를 받아야 한다.
   
   봇뜰에는 별도로 시음할 공간도 없고 앉을 자리도 마땅하지 않을 정도로 좁다. 나는 권옥련 대표가 꺼내오는 몇 종류의 술을 마시다가 눈이 번쩍 뜨이는 술을 발견했다. ‘백수환동주’다. 마시면 흰머리가 검어지며 젊음을 되찾는다는 술인데, 깊고 진한 향과 맛에 반했다. 찹쌀과 녹두를 넣어 만드는 백수환동주는 그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향과 맛을 안겨주었다. 원래 봇뜰의 대표 브랜드는 ‘십칠주’다. 17시간 동안 항아리에서 저온 숙성을 거쳐 빚은 17도의 막걸리인데 약간 시큼하지만 가양주 고유의 맛과 풍미를 느낄 수 있다. ‘십칠주’의 맛은 그대로 유지하되 알코올 도수를 10도로 낮춰 만든 ‘봇뜰막걸리’가 있다. 발효가 끝난 후 맑은 술만 채주해서 증류한 증류식 소주인 봇뜰소주와 홍주도 있는데, 최근에는 조 대표의 딸이 대학과 각 기관에서 오랫동안 전통주를 공부하고 어머니의 뒤를 이어 술을 빚고 있다.
   
   
   ‘호랑이배꼽’ 막걸리
   
   남도 길을 따라 내려가면 경기도 평택에도 여러 양조장이 자리 잡고 있다. 나는 그중에서 ‘호랑이배꼽’을 찾아갔다. 경기도 평택이 한반도의 배꼽 부분에 해당한다고 해서 작명된 ‘호랑이배꼽’ 막걸리가 유명한 양조장이다. 문외한이 봐도 풍수 좋은 언덕배기 밑에 자리한 호랑이배꼽 양조장(대표 이계송)은 현대식으로 지은 단아한 1층 카페를 중심으로 좌측에 양조장 시설이 들어있는 건물과 그 아래쪽에 낡은 한옥이 서 있다. 고려시대부터 700년 가까이 평택시 포승읍에 자리를 잡고 살아온 이계송 화백의 그림이 가득 걸려 있는 갤러리 주막에서는, 탁주와 궁합이 잘 맞는 음식을 함께 맛볼 수 있다. 전국 양조장 투어 중에서 카페와 숙박시설까지 갖춘 강원도 홍천의 예술양조장과 함께, 술과 음식의 조화가 가장 잘된 곳이다. 양조장의 중앙 건물인 카페는 갤러리로도 이용되고 있는데 아름다운 그림들을 바라보며 술과 가장 잘 어울리는 음식을 함께 할 수 있어서 양조장 투어로 최적의 장소 중 하나였다. 이곳에서는 100일 동안 숙성해 강한 배맛과 단맛이 조화를 이룬 막걸리 ‘호랑이배꼽’과 ‘배와인’ ‘하우스약주’, 증류주인 ‘웃는 호랑이’ 등을 출하하고 있다. 이계송 화백의 생가 중앙에는 우물이 있는데, 이 우물 맛이 아주 좋다는 것이다. 수돗물로 술을 빚을 때와 우물물로 술을 빚을 때가 확연히 차이가 난다고 했다. 식약처의 권고대로 위생검사가 끝난 수돗물을 쓰고는 있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매우 아쉬운 부분이다.
   
   충청남도 논산에는 ‘양촌양조장’이 있다. 이곳은 설립된 지 100년이 넘고, 현재 전국에서 영업하고 있는 양조장 중에서 가장 오래된 양조장 건물을 갖고 있다.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막걸리를 빚었고, 1931년 한옥식 2층 목조로 건축된 양촌양조장에서는 지금도 막걸리가 생산되고 있다. 2016년에 ‘찾아가는 양조장’으로 선정되어 관람객을 맞을 준비를 끝냈는데, 양조장 안으로 들어가면 1층에서는 거대한 통에서 막걸리가 발효되고 있고, 관람객들이 출입할 수 있는 2층으로 가면 목조 바닥 중간중간에 설치된 유리를 통해 아래층에서 발효되는 막걸리를 실제로 목격할 수 있다. 양촌양조장의 대표 브랜드는 ‘우렁이쌀’이다. 약간 달콤해서 여성과 일반인에게 인기가 있는 레드와, 담백한 맛의 블랙 두 가지 막걸리로 출시되고 있다. 또 생막걸리 ‘양촌’과 동동주 ‘양촌’, 청주 ‘우렁이쌀’이 있다. 막걸리는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 있어 비교적 저렴하지만 맛은 탁월하다.
   
   
   ‘이건희 만찬주’로 불린 ‘자희향’
   
   전주를 거쳐 전남 함평으로 향했다. 양조장 ‘자희자양’(대표 노영희)에 도착했다. 한국의 프리미엄 막걸리를 선도하는 양조장이다. 인기척이 없어서 이곳저곳을 둘러보는데, 장화를 신은 20대의 청년이 나왔다. 술을 사러 왔다고 하자 당황하면서 지금 남아 있는 술이 얼마 없고 다음 주 월요일 출시된다고 한다. 탁주는 없고 청주만 있어서 청주 ‘자희향’을 두 병 샀다. 단언컨대 ‘자희향’을 마시지 않고 한국 막걸리의 맛과 실체를 논하지 마라. 전통 문헌에 등장하는 석탄주를 기반으로 한 달콤하면서도 국화 향기가 아련하게 감도는 세련된 도회적인 맛의 술이 ‘자희향’(탁주 12도, 청주 15도)이다. ‘자희향’ 탁주와 청주는 누룩 향의 부정적인 냄새를 누르고 기품과 우아함을 갖춘 최고의 술 중 하나이다. 상당수의 후발 주자들이 ‘자희향’을 롤모델로 ‘자희향’의 맛을 넘어서는 막걸리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삼성 이건희 회장이 쓰러지던 해 생일주로 와인 대신 ‘자희향’이 올라가 일명 ‘이건희 만찬주’로 불리기도 한다. 최근 맛이 균질해지면서 초기에 비해 복잡미묘한 향과 맛이 약간 떨어졌다. 대중화의 길을 걷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걸 이해하지만, 초기의 미묘한 떨림과 복합적인 섬세한 맛을 잊지 못하는 나 같은 매니아들은 최근의 변화가 조금 아쉽다. ‘자희자양’도 관람객들을 위한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었다.
   
   강원도부터 제주까지 전국 곳곳에 위치한 ‘찾아가는 양조장’은 이제 단순히 술만 빚는 곳이 아니라 체험 문화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오랜 인내를 요구하는 제조과정, 더구나 수익구조도 안 좋고 유통과정도 힘들어서 전통 술을 빚는 것은 장인정신이 없으면 쉽지 않다. 플라스틱 값싼 용기가 아니라 병에 넣어 깊은 맛과 향기를 오래도록 보관하는 좋은 우리 술이 많은 장인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다.
등록일 : 2017-10-05 오전 8:14:00   |  수정일 : 2017-09-28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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