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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가 부르는 아름다운 풍경의 선율에 몸을 맡기다

막강 장딴지 부부의 스페인-모로코 자전거 여행기 中

글·사진 | 이남석 서울성동공고 교사

에르리프산맥 넘어 아틀라스산맥까지 이어진 베르베르인들의 삶
 
모로코는 파란색 진주가 바닷물에 녹아 땅속으로 스며드는 듯 서늘하면서도 이상한 느낌이었다. 우리 부부는 스페인에서 배를 타고 지중해를 건너 모로코로 왔다. 몸과 마음이 낯설면서도 모로코는 따뜻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적응기간은 하루면 충분했다. 부드러운 흰색 톤의 구름과, 젖은 손을 천천히 말려버릴 것 같은 건조하고 부드러운 바람, 수심이 깊은 바다를 닮은 하늘은 붉은색 흙과 잘 어울렸다.

모로코의 베르베르인들은 고대 이집트인들의 사촌 정도, 아니면 페니키아인들의 일파라고도 한다. 기원전부터 모로코에 정착한 그들은 아틀라스산맥을 중심으로 유목과 농경으로 살아왔으며 활달한 성격과 자유로운 기질을 품은 민족이다. “자유롭게 살거나 아니면 고통스럽게 죽거나!”라는 말은 바로 베르베르인들의 성품과 기질을 나타내는 말인데 그만큼 그들은 다른 민족의 지배에 구속되어 살아가는 것을 거부하는 민족이었다.

아틀라스산맥은 남북의 길이만 해도 2,000km에 달하는 긴 산줄기다. 하지만 지중해를 건넌다고 해서 바로 아틀라스산맥에 진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먼저 지중해를 따라 동서로 뻗어나간 에르리프산맥Er Rif Mountains을 넘어야 아틀라스의 초입이라고 할 수 있는 미들아틀라스Middle Atlas 입구에 도달할 수 있다. 에르리프산맥은 경사는 완만하지만 시작부터 끈질기게 올라가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모로코의 텐지에르를 출발해 거의 6일을 달려서야 미들아틀라스 입구인 페즈Fez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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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의 가장 흥했던 왕조시대에 건설된 도시 페즈의 오래된 거리 메디나. 골목으로 한번 들어가면 길을 잃을 정도로 미로다. 베르베르인들의 풍습과 예술품을 구경할 수 있다.

모로코 여인들은 이슬람 율법에 따라 히잡을 쓰고 있지만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하거나 일을 하고, 남자들 역시 이슬람 전통 복장보다는 간편복이나 청바지 차림 등 일반 유럽청년들과 다를 게 없었다. 간혹 남자들 중 가톨릭 사제처럼 긴 로브Robe를 걸치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모로코의 원주민인 베르베르인들의 전통 의상인 젤라바였다.

모로코는 다산국가로 한 가정에 평균 네 명 이상의 자녀를 두고 있어 어디를 가나 아이들이 많았는데 시골로 갈수록 심했다. 조그만 도시나 마을을 지나갈 때면 여지없이 아이들이 길을 막아섰다. 수줍은 듯 멀찍이서 팔랑거리는 머리채를 흔들며 다가온 여자아이들부터 숨 가쁘게 달려온 남자아이들까지 우리는 언제나 그들의 호기심 대상이었다.

첫날부터 산맥을 오를 때 맞바람이 얼마나 세게 부는지 장딴지 근육에 불이 날 지경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겨울에 충분히 자전거를 타지 않은 아내는 오르막에서 짐을 가득 실은 자전거를 무리하게 운전하다 보니 조금씩 근육에 이상이 오기 시작했다. 발목과 종아리가 아프다는 둥 이런저런 불편을 호소했지만 나는 염려하지 않았다. 늦어도 4~5일 지나면 익숙해질 거란 걸 알고 있었기에 대꾸도 하지 않았다.

야영은 주로 마을과 가까운 곳에서 했다. 어떤 날은 마을사람들의 허락을 얻고 모스크(이슬람 사원)에서 야영을 하기도 했는데 신의 가호는 늘 인간에게 공평하고 자비로웠다. 그날 이후 우리는 야영지를 결정할 때 모스크부터 찾았다. 전통적으로 아틀라스고원에 사는 베르베르인들은 유목민으로 양을 몰며 초원을 옮겨 다니는데 대부분 시간을 보낸다. 지금도 그 전통은 변하지 않았는데 이것은 그들의 DNA에 기록된 유목민 기질 때문일 것이다.

경이로운 아틀라스의 풍경 속으로

아틀라스고원의 경작지는 우리네 옛적 비탈밭처럼 조각조각 나뉘어 기계 대신 말과 쟁기와 사람 손을 이용해 경작한다. 농기계를 이용할 만큼 여유롭지도 않고 소유한 농토도 넓지 않은 데다 농촌 인구는 많으니 대부분 곡괭이나 가축의 힘을 빌린다. 말하자면 농업의 근대화가 아직 덜된 셈인데 그만큼 농부들은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야 한다.

달리다 지치면 수십 년 묵었을 법한 올리브나무 밑에서 숨을 골랐다. 길 좌우로 아틀라스를 따라 전설이 있을 것 같은 언덕과, 잔잔하게 흘러가는 구릉, 무희의 허리를 끼고 춤을 추듯 유연하게 내빼는 산줄기가 펼쳐졌다. 잠시 몸과 마음을 내려놓고 쉬고 있노라면 아틀라스의 부드러운 바람과 따뜻한 빛이 언덕을 오르느라 숨을 헐떡이는 두 여행자를 다독였다. 나는 아내의 손을 잡고 속으로 ‘벌써 당신은 자전거여행 전문가가 다 되었네. 내가 10년이나 걸려서 이룬 경지를 1년도 안 되어 해내다니’하고 감격하며 말했다.

올리브나 밀 같은 농산물과, 천연 염료를 이용해 염색한 갖가지 빛깔의 도기나 천들이 모로코를 대표하는 것들이다. 마을 어귀나 도로가에는 이런 특산물을 진열해 놓고 파는 상인들이 많았다. 시골에는 차량에 생필품을 싣고 이 마을 저 마을을 옮겨 다니면서 장사하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국토는 넓고 도로망이 충분하지 못하니 우리가 보기에는 사소한 것들도 여기서는 귀했다.

에르리프산맥을 내려와 페즈로 접어들자 길이 예상과 달랐다. 산맥만 내려가면 평지가 계속되거나 아니면 완만한 오르막이 시작될 줄 알았는데,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지루한 길이었다. 페즈 도착 직전, 날이 저물어 어느 마을 인근의 지평선이 가물거리는 곳에 야영지를 정했다. 농가 뒤 거름더미가 있고 건초가 쌓여 있는 농가 옆에 텐트를 치니 일류 호텔이 부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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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넓은 밀밭이 펼쳐진 농가 옆에서의 야영. 아틀라스의 동부는 밀농사를 주로 지으며 밀은 모로코인들의 주식이다. 2 모로코에서 가장 역사적인 도시 페즈로 가는 길. 지대가 높아지면서 밀밭이 없어지고 점점 황량해진다.

미들아틀라스고원은 삼베를 걸어놓은 듯 주황과 노란색이 번갈아 나타나는 메마른 구릉과 절벽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낮은 봉우리들이 연속적으로 나타났다. 창공을 떠받친 넓은 벌판과 빨랫줄처럼 뻗어나간 산줄기, 깨진 얼음처럼 쏟아지는 빛은 쉬지 않고 우리에게 경이로움을 선물했다.

종달새는 짧은 날개를 펴 높이 날아오르고, 빛에 데워져 가벼워진 바람은 얇은 홑이불처럼 창공에서 펄럭거렸다. 만약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른다면 자전거를 멈추고 앉아 하루 온종일 그와 무슨 얘기라도 나누고 싶은 분위기였다. 모로코는 이방인을 향해 뭔가 이유 없이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려는 듯 끊임없이 새로운 광경을 펼쳐보였다. 만약 시인이 이런 고원의 노래를 들었다면 고저와 강약에 맞추어 무슨 노래라도 화답했을 것이다.

오전에 오래된 도시 페즈에 도착했다. 도시 입구에서 잠깐 길을 헤맨 우리는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마침내 모로코에서 가장 오랜 전통을 품고 있는 메디나에 도착했다. 페즈는 서쪽으로부터 흘러오는 강을 따라서 건설된 도시로 모로코의 다른 어떤 도시보다도 유서 깊다. 특히 메디나Medina라고 불리는 구도심Old Town을 중심으로 금은세공이나 염색공예, 가죽공예 등 수공업과 상업이 잘 발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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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모로코 아틀라스에서는 1월에서 3월까지가 중요한 작물의 파종기이다. 따라서 농부들은 이 시기에 쟁기를 이용해서 밭을 갈고 씨를 뿌린다. 2 베르베르인들의 의상과 가옥의 빛깔. 아틀라스 고원지대의 주거환경에 사용되는 색은 고원의 흙 색깔과 매우 흡사하다. 밝고 활기 있고 온화하다.

성벽은 왕조의 흥망을 품었으며 문설주는 고풍의 기운을 드러내니 나그네는 잠시 고성의 흙벽에 기대어 과거와 현재의 그림자를 헤아려보는 것으로 여행의 감흥을 고조시켰다. 메디나는 옛날 궁전이 있던 자리와는 달리 일반 백성들이 살던 말 그대로 오래된 마을이다. 처음에는 고만고만한 규모였던 마을이 점점 커지게 되자 골목도 그만큼 복잡해진 것이다.

일단 메디나에 들어가면 골목이 얼마나 길고 복잡한지 자칫 잘못하면 길을 잃기 쉽다. 골목을 지나며 풍경을 둘러보는 동안 나도 흥분했지만 집사람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마치 땅을 파다가 유전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크게 소리만 지르지 않았을 뿐 감정은 이미 최고 온도까지 올라간 상태였다.

페즈를 출발해 미들아틀라스의 조그만 도시 이프란Ifran과 아조로우Azorou를 지나자 나무 한 그루 없는 고원의 평원지대로 들어섰다. 고원의 평원 여기저기에는 베르베르 유목민들이 마치 광야의 예수처럼 날카로운 빛 아래에서 양떼를 몰고 있었다. 거칠고 고독하며 오직 하늘과 바람과 빛과의 대화만 가능한 고원에서 적응해 살아온 베르베르인들이 대단해 보였다. 이것이 오늘날 유럽 각국에서 튼튼하게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이유라고 생각했다. 베르베르인들은 아틀라스산맥의 용감한 전사이자 평화로운 유목민이며 친절하고 다감한 농부이기도 했다.

아틀라스의 자연이 여행자를 교화시켜

해발 2,000m를 넘나드는 비교적 높은 고도와 계속되는 지루한 평원이었다. 가도 가도 민가는 뵈지 않고 오직 하늘과 땅만 나타났다. 해가 떨어지기 시작하자 아내는 어디서 야영을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해 두려운 빛이 가득했다. 이런 아내를 안심시키기 위해 나는 달리면서도 유목민의 흔적을 찾으려 노력했다.

마침내 나는 길에서 꽤 멀리 떨어진 곳의 유목민 가옥을 발견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와 어머니와 삼촌이 사는 단출한 가정이었다. 워낙 고지의 평원에서 외롭게 살다 보니 이방인 여행객을 보고 반가워는 했지만, 처음에는 경계의 눈빛을 보였다. 그날 저녁 우리 부부는 유목민 가족과 긴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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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들아틀라스의 중앙 고원을 달린다. 아무리 따뜻한 아프리카라고 해도 고지대이기 때문에 밤에는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며 쌓인 눈도 흔히 볼 수 있다.

우리는 점점 고원의 매력에 빠져 들었다. 얕은 능선에서 달려온 바람은 늘 다정했으며, 혹 사납게 불 때도 있었지만 그것은 우리가 고원에 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기 위한 신호였다. 나는 아내에게 특별한 말은 하지 않았지만 서로가 어떤 감정인지는 알고 있었다. 두 바퀴에 의지해 달리는 자전거만이 우리 부부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경쾌하게 노래했다. 조금이라도 여행이 지루해지면 고원의 빛과 그림자, 가슴을 다독거리는 다정함이 번갈아가며 두 여행자를 끌어안았다.

아틀라스고원은 어둡고 우울하며 황막한 자갈밭과 산줄기의 연속이다가도, 어느덧 밝고 눈부신 초원이 나타났다. 여행자에게 고귀한 언어나 점잖은 행동은 여기서는 어울리지 않았다. 마음에서 만들어내는 말과 행동을 그대로 드러내도 이치에 어긋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아틀라스의 자연이 그렇게 여행자를 가르치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런 감정의 변화가 신께서 주신 성품이라 할지라도 자연 앞에서 다시 교화되고 다듬어지는 것을 느꼈다.

에르리치Er-Richi에 도착해서는 한 청년의 도움으로 그의 집에서 하루를 묵었다. 다음날 우리는 그 청년이 알려준 에르리치에서 투드라Todura까지 가는 새로운 도로를 따라 달렸다. 이번 여행에서 하이아틀라스의 풍경과 베르베르인들의 생활 방식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길이었다.

특히 아술Assel에 도착해서는 아틀라스를 배경으로 살아가는 베르베르인들의 정서와 사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마을 중심부에는 광장이 있고 주변으로 회랑과 가게가 있었으며 가운데 모스크가 있는 이슬람 도시의 전통적인 형식이었다. 크고 다소 위압적인 모스크를 보는 것도 좋지만 아술과 같이 조그만 도시에 있는 아담한 광장과 모스크를 구경하는 것도 감동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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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아틀라스는 물이 흐르는 계곡이 한정되어 있어 대부분은 메마르고 건조했다. 우물에 도착하면 목젖까지 식을 정도로 차가운 물 한 모금을 마신 후 자전거에 올랐다. 바람과 비에 깎여나간 절벽을 배경으로 우리는 아틀라스 고원을 달리는 자전거 여행자였다.

늙은 풍뎅이의 날개소리가 가까이 왔다가 멀어지고, 고원 가장자리로 길게 누운 아틀라스산맥의 봉우리들이 경주라도 하듯 우리가 달리는 방향으로 길게 늘어서 있었다. 도대체 저 푸른 아틀라스의 하늘 안에 과연 별이 있기는 할까 의심했을 만큼 창공은 투명하고 맑았다.<계속>
출처 | 월간산 574호
등록일 : 2017-08-30 09:34   |  수정일 : 2017-08-30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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