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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모스크바 골든링 8개 도시 3박4일 자동차 여행기

글 | 우태영 조선뉴스프레스 인터넷뉴스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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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든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꼽히는 로스토프 크렘린. 종탑에 올라 바라본 전경.
러시아 모스크바 골든링(Golden Ring)은 모스크바 북동부에 위치한 일련의 도시들을 일컫는다. 1000년 전에 건설된 이 도시들은 중세 러시아 역사의 중심지였다. 도시마다 크렘린, 성당, 수도원들과 성화(聖畵)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대부분 유네스코가 지정한 유적들이다. 여름은 골든링을 돌아보기에 좋은 계절이다. 낮이 길어 활동을 오래할 수 있고, 기온이 낮아 더위를 피하기 좋다. 지난 8월 5일부터 8일까지 골든링에 위치한 도시들을 직접 찾아보았다.
   
   서울에서 온라인으로 예약한 렌터카를 8월 5일 오전 10시 모스크바 셰르메티에보공항에서 받았다. 경로탐색은 구글맵으로 했다. 온라인으로 유심칩을 미리 구입하였기 때문에 싼값에 데이터를 무한정 사용할 수 있었다.
   
   첫 목적지인 블라디미르까지는 180㎞쯤 된다. 공항에서 모스크바 외곽순환자동차전용도로(MKAD)에 합류하여 달리다가 우측으로 빠져나가 M7 도로를 타고 가면 된다. MKAD 도로는 자동차들로 가득 찼다. ‘가다서다를 반복’하기 직전의 수준이었다. M7 도로도 차들이 가다서다를 반복했다.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미르까지 가는 구간의 M7 도로는 상당 부분이 공사판이었다. 게다가 주말이어서 교외로 빠져나가는 모스크바 시민들도 많은 것 같았다.
   
   가다서다를 반복하며 두 시간쯤 가니 배도 고프고 오줌도 마려웠다. 도로변에 있는 휴게소에 들어가 차를 세웠다. 햄버거를 파는 가게였다. 맥도날드나 버거킹 같은 브랜드는 아닌데 메뉴는 비슷했다. 햄버거와 콜라를 주문했다. 매장이나 함께 있는 편의점, 주유소 등의 모습이 꼭 미국의 어느 마을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게 할 정도였다.
   
   다시 차를 몰고 나와 M7 도로를 타고 한참을 달리다 블라디미르에 도착하였다. 블라디미르는 1000여년 전에 세워진 도시. 러시아가 키예프 중심에서 모스크바 중심으로 재편되기 전까지 사실상 수도 역할을 하였다. 창건자 블라디미르는 러시아인들의 통합을 시도한 위대한 인물로 모스크바의 크렘린 근처에도 커다란 동상이 세워져 있다. 골든게이트는 고대 러시아 도시의 관문. 골든게이트 앞에서는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들과 푸른색 양복을 차려입은 신랑들이 함박웃음을 흘리며 사진촬영에 몰두하고 있었다. 나는 차를 골목에 세워놓고 구경하러 나섰다.
   
   
   골든링의 첫 도시 블라디미르
   
   골든게이트 주변의 야트막한 언덕에 오르자 이곳에도 신랑신부들과 여름날의 화창한 햇볕을 즐기려 잘 차려입고 나온 시민들로 가득하다. 이들의 밝은 얼굴과 여유를 느끼게 하는 발걸음과 몸짓, 그리고 놀라울 정도로 깨끗한 주변 환경들이 러시아에 대한 기존관념을 뒤흔들었다.
   
   골든링을 이루는 고대도시들은 주로 강변에 위치한다. 고대 러시아인은 바이킹의 후손이다. 동쪽으로 진출한 바이킹들은 볼가강이나 그 지류에 정착하여 교역에 종사하며 살았다. 이들이 건설한 요새가 크렘린이다. 크렘린 안에는 성당과 행정기관들이 들어섰다. 모스크바의 크렘린도 모스크바 강변에 위치해 있다.
   
   블라디미르는 클랴지마강변에 위치해 있다. 콜든링에 위치한 러시아정교회 성당들은 대개가 500~1000년 정도 된 오래된 건물들이며, 외벽이 모두 흰색이다. 블라디미르에서 반드시 찾아가야 될 곳은 클랴지마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세워진 우스펜스키성당. 우리말로 성모승천성당쯤 된다. 러시아인들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상이 조국을 수호한다고 믿는다. 어느 도시에나 우스펜스키성당은 가장 크고 화려하다. 블라디미르의 우스펜스키성당은 13세기에 건설되었다. 성당 본건물은 중심에 커다란 돔천장이 있으며 주위에는 4개의 작은 돔천장들이 붙어 있다. 가까이에는 높은 종탑이 있다. 이러한 구조의 블라디미르 우스펜스키성당은 러시아 전역에 건설되는 성당의 모태가 되었다. 내부에는 이콘(성화)이 가득 차 있다. 러시아인들이 지금도 예배당으로 사용하는 곳들은 내부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 페레슬라블-잘레스키의 우스펜스키 성당.

   고대도시 수즈달
   
   블라디미르에서 북쪽으로 40㎞ 가면 수즈달(Suzdal)이 나온다. 수즈달의 숙소는 시골의 작은 집. 식당이 딸린 2층집이다. 카운터를 보는 러시아 중년 여성에게서 아기 주먹만 한 열쇠를 받아 트렁크를 들고 계단을 올라 2층으로 향했다. 방은 좁지만 깨끗했다. 방안에 TV가 놓여 있다. 대우전자TV였다. 수즈달은 오래된 성당 건물들과 주변을 흐르는 카멘카강과 목가적인 풍경이 어우러진 고대도시이다. 골든링에서는 수즈달이 최고라고 말하는 러시아인도 많다.
   
   성모마리아성당을 지나쳐서는 안 된다. 파란 지붕의 성당 안에 들어가서 벽면과 천장을 가득 채운 이콘을 한동안 감상했다. 제단에는 성모상과 예수상을 중심으로 12사도와 천사들의 모습이 담긴 성화가 층층이 그려져 있다. 이 모든 그림들은 성경 속의 내용이 모두 진실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성당 입구에 위치한 거대한 철대문에 새겨진 그림도 볼 만하다. 나자로의 귀환 등 성경 속의 주요 내용들이 담겨 있다. 로마가톨릭과 러시아정교회가 다른 점이 있다면 러시아정교회가 상대적으로 신비주의적이라는 특징을 갖는다고 한다. 예배도 서서 드린다. 기도할 때에도 눈을 감지 않고 성상을 똑바로 바라본다. 끝나면 이콘에 입을 맞춘다.
   
   레닌대로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 폴란드에 저항한 러시아의 영웅 포자르스키 동상 주변 언덕에서 강 건너에 있는 수도원 건물들을 바라보았다. 해질녘의 석양을 받은 흰색 건물들이 밝게 빛났다. 날이 어둑어둑해지면서 남쪽으로 걸어 내려왔다. 배가 출출해져서 케밥을 파는 조그만 매점으로 다가가자 안에서 흰옷을 입은 젊은 남성이 ‘니 하오’ 하며 반가워했다. 중국 관광객들이 자주 오는 모양이었다. 내가 ‘코리아’라고 말하자 그는 “한국말로 니 하오는 무엇인가”하고 물었다. “안녕”이라고 답해주자, 그는 여러 번 ‘안녕’을 발음해 보고 맞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체첸에서 왔다고 말했다. 120루블(2400원)짜리 케밥 2개를 주문했다. 아내와 함께 거리의 벤치에 앉아 밤하늘을 가득 메운 까마귀떼가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것을 바라보면서 체첸 청년이 만든 따뜻한 케밥을 하나씩 먹었다.
   
   
▲ 코스트로마 시내에 위치한 시장.

   이파티에프 수도원이 있는 코스트로마
   
   다음 날 아침 9시 호텔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곧바로 코스트로마를 향해 출발했다.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미르를 거쳐 수즈달에 올 때까지 도로에는 많은 차량이 다녔다. 그러나 수즈달을 떠나 코스트로마로 향하는 도로에는 차량이 매우 적었다. 한적한 도로를 달리다보니 주위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줄기가 하얗게 빛나는 자작나무들이 가득한 숲이 도로 양 옆으로 한없이 이어졌다. 하늘 높이 초록색 이파리를 가득 펼치고 있는 하얀색 자작나무 숲이 끝없이 이어지는 광경을 보니 황홀할 지경이었다. 눈 덮인 하얀 대지 위에 이파리를 모두 잃은 자작나무들이 몸통에서 하얀색 빛을 발하는 것이 시베리아의 전형적인 풍경이다. 한없이 넓은 설원에 무수한 자작나무들이 가지마다 두껍게 눈을 인 채 서 있는 광경은 누구나 한번쯤은 바라보고 감상에 빠지고 싶은 광경이다. 가지 위의 눈이 햇볕에 녹은 뒤 다시 얼어붙으면 자작나무 가지들은 보석처럼 빛난다. 그러나 러시아에 짧게 찾아오는 생명과 환희의 계절인 여름에, 초록을 가득 얹은 흰색 자작나무들이 한없이 늘어선 이 광경도 평생 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 같았다.
   
   러시아 평원에 이어붙은 듯한 여름 하늘도 새로웠다. 나는 하늘이 얼마나 넓은지를 처음 느꼈다. 서울에 살 때는 고개를 들어야만 하늘을 볼 수 있었다. 고속도로를 타고 갈 때도 앞뒤좌우에 병풍처럼 둘러싼 높은 산들 때문에 하늘을 보려면 고개를 들어야만 했다. 그러나 지금 이곳에서는 시선을 높이지 않고 그냥 앞이나 옆을 바라보기만 해도 땅끝까지 하늘이 닿아 있었다. 그 넓디넓은 푸른 하늘에는 갖가지 형상의 구름들이 이리저리 피어나고 떠다닌다. 추상인 듯 구상인 듯 속뜻을 알 수 없는 구름의 형상이 한여름 러시아 대지의 신비감을 더해준다. 자동차는 저 멀리 하늘과 땅이 만나는 소실점을 향해 질주했다.
   
   골든링 중에서 모스크바에서 가장 먼 거리에 위치한 코스트로마를 찾은 이유는 바로 로마노프 왕조가 러시아의 차르로 등극한 이파티에프 수도원을 찾아보기 위해서였다. 코스트로마는 볼가강변에 자리하고 있다. 러시아가 몽골과 폴란드 등의 침입에 대응을 하지 못하고 혼란을 겪자 귀족들과 정교회 지도자들은 미하일 로마노프를 차르에 추대하였다. 대관식은 1612년 이곳 이파티에프 수도원에서 열렸다. 대관식이 열렸던 성당은 하얀색 벽 위에 황금색 돔이 얹힌 전형적인 러시아의 성당. 로마노프 황실에서는 표트르 대제, 알렉산드르 1세 등 위대한 황제들을 배출하여, 러시아는 강대국으로 발돋움하였다. 로마노프 황실의 마지막 황제인 니콜라이 2세는 가족들과 함께 소련 볼셰비키혁명 직후 공산당에 의해 학살당했다. 이들은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정교회의 성인으로 추존되었다. 러시아의 옐친, 메드베데프, 푸틴 대통령도 재임 중에 이곳을 방문하여 로마노프 황실에 대한 경의를 표했다.
   
   이파티에프 수도원을 나와 시내에 있는 수사닌 광장에 차를 세웠다. 수사닌은 황제를 쫓던 폴란드군을 숲속으로 유인하여 길을 잃게 만들어, 황제를 구한 나무꾼이다. 수사닌 광장에는 시장이나 관청 등이 들어서 있고 오래된 소방탑도 볼 수 있다. 점심을 먹으려 식당을 찾다가 맛있는 튀김 냄새를 따라가 보았다. 작은 만두가게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나도 줄을 서서 어른 손바닥만 한 고기가 들어간 빈대떡같은 튀김만두 4개와 아줌마가 바가지로 따라주는 따뜻하고 달콤한 밀크커피 2잔을 샀다. 값도 싸고 맛도 있었다. 러시아에서 먹은 음식 가운데 가성비는 단연 갑이었다.
   
   
▲ 도로 양옆에 늘어선 자작나무숲.

   골든링의 최대도시 야로슬라블
   
   맛있는 점심을 먹고 기분 좋게 다음 목적지인 야로슬라블을 향해 차를 몰았다. 볼가강 위에 세워진 다리를 건너기 위해 우회전하는 순간, 경찰이 차를 세웠다. 낭패였다. 제복경찰과 가죽코트 차림의 사복경찰이 다가왔다. 둘 다 새파랗게 젊었다. 나는 차 창문을 열고 렌터카 회사에서 내준 임시면허증을 내주었다. 여권도 보여주었다. 나는 국내 운전면허증과 국제면허증도 내주었다. “모스크바 골든링을 여행 중인 부부”라고 말했다. 사복경찰은 스마트폰으로 한국 면허증 사진을 찾아 제복경찰에 보여주었다. 그들은 재미있다는 듯한 표정으로 깔깔 웃는다. 그들은 국제면허증을 매우 흥미있게 들여다보았다. 나도 나중에 처음 들여다보았는데, 영어·중국어·일본어·프랑스어·스페인어·독일어·아랍어로 된 문서는 있는데, 러시아어로 된 문서는 없었다. 그들이 다소 실망하지 않았을까 한다. 그들은 서류를 다 돌려주고 물러났다. 나는 얼른 차를 몰고 떠났다. 생각해 보니 붉은 선이 그어진 오른쪽 1차선이 버스 전용차선이어서 2차선에서 우회전했는데, 그것이 잘못인 것 같았다.
   
   러시아에서는 우회전도 신호를 받아야 했다. 대개는 좌회전, 직진, 우회전이 동시신호다. 그리고 도시 안에는 경찰이 많았다.
   
   코스트로마에서 야로슬라블까지는 약 80㎞. 이번에는 길가에 야생화가 그득하게 피어 있는 광경이 두 눈에 들어찼다. 여름이 짧기 때문인지 이곳의 야생화들은 대개가 작아서 멀리서 보면 전부 안개꽃처럼 보였다. 넓고 푸른 초장(草場)을 뒤덮고 있었다. 넓은 풀밭 위에 안개처럼 피어 있는 노랑, 하양, 자주, 보라색의 야생화들이 마치 푸른 캔버스에 파스텔을 문질러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야생화를 한 움큼씩 뜯어갖고 걸어가는 여성들도 만날 수 있었다. 푸른 초장과 그 위에 펼쳐진 원색의 안개꽃 같은 야생화, 그 뒤에 펼쳐진 자작나무숲, 그리고 그 뒤의 하늘과 구름…. 이러한 것들이 합해져서 사람의 마음을 시원하고 여유 있게 만드는 것이 러시아의 여름 전원 풍경이었다.
   
   볼가강변에 위치한 야로슬라블은 골든링에서 가장 큰 도시이다. 1000년 전에 야로슬라프 대공이 건설했다. 유럽과 아시아를 오가는 볼가강의 교역요충에 자리하여 부(富)를 쌓았다. 1918년에는 시민들이 공산혁명에 반대하는 무장투쟁을 벌이다 적군의 공격을 받아 600명이 사망하였다. 소련 시절에도 교통과 산업의 중심지로 발전하였다. 지금도 시 외곽에서 어마어마한 규모의 중화학 및 기계공장들을 볼 수 있었다.
   
   야로슬라블 크렘린 외곽에는 도시 창건자인 야로슬라프 조각상이 있다. 가장 유명한 건물은 구세주수도원. 이 도시에서는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옆에 있는 종탑 꼭대기에 올라가 구시가 전경을 내려다보았다. 이곳에서 우스펜스키성당까지 코토로슬강을 따라 걸으며 산책하였다. 블라디미르에서도 느꼈지만 야로슬라블에서 보니 러시아인들의 표정이 더욱 밝아지고 있었다. 젊은이들은 남녀가 모두 쌍쌍이 나와 데이트를 즐기고 있었다. 퀵보드와 롤러블레이드가 유행이며, 헬멧을 쓰고 무리를 지어 사이클을 타는 젊은 여성들도 아주 많았다. 밝은 표정에 구김살이 없었다. 살기가 좋아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푸틴 대통령이 80% 수준의 지지를 과시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1200년 역사의 도시 로스토프
   
   다음날 아침 일찍 로스토프로 출발했다. 로스토프는 야로슬라블에서 M8 도로를 타고 가면 나온다. 러시아인들은 로스토프 벨리키라고 한다. 벨리키는 위대하다는 의미. 도시 가까이 다가가면 로스토프라고 이정표가 세워진 곳에서 좌회전해서 시골길로 들어가야 한다. 구글맵의 정확성에 다시 한 번 감탄했다. 1200년 전에 건설된 로스토프는 골든링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이다. 로스토프의 크렘린은 골든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평가를 듣는다. 1883년부터 박물관이었다.
   
   눈에 띄는 건물은 은색 돔 지붕의 성당들. 16세기 중반 건축물이다. 부활성당과 우스펜스키성당 모두 은색 돔들로 덮여 있다. 크렘린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성당들의 돔 지붕은 모두 20개가 넘는다. 은색 돔 지붕은 대지가 눈에 덮인 겨울에 햇빛을 받고 찬란하게 빛난다면 매우 볼 만할 것 같았다. 종탑으로 통하는 비좁은 계단을 지나 옥상으로 올라가니 거대한 종이 4개나 있다. 가장 큰 것은 1688년에 제작된 것으로 무게가 32t이다.
   
   
▲ 세르기예프 포사드의 삼위일체 수도원 전경.

   어린 표트르 대제의 페레슬라블-잘레스키
   
   로스토프 다음에 나오는 페레슬라블-잘레스키는 모스크바 공국을 창건한 유리 돌고루키 대공이 1152년 건설한 도시. 러시아의 전설적인 영웅 알렉산드르 넵스키가 태어난 곳이다. 넵스키는 러시아인들의 통합을 이끌어 폴란드의 침략을 막아낸 군사지도자이기도 하다. 러시아정교회에서 성인으로 추존되었다. 도심 한복판에는 넵스키의 흉상을 앞에 세워놓은 작은 성당이 있었다. 초록색 돔 지붕이 하나만 있지만 기품 있어 보였다.
   
   이 도시에 인접한 플레셰예보 호수는 러시아제국을 강대국으로 일으킨 표트르 대제가 어린 시절 해군 놀이를 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어린 표트르는 플레셰예보 호수에서 어린 친구들과 해군 놀이를 하였다. 전쟁놀이를 하다가 사망자가 나오는 경우도 잦았다고 한다. 표트르 대제는 나중에 수도를 모스크바에서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이전하면서 러시아제국 해군을 창설하였다. 이 때문에 플레셰예보 호수를 러시아제국 해군의 산실(産室)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페레슬라블-잘레스키 도심을 관통하는 도로는 2차선이라서 매우 혼잡하다. 도심에서 높은 자리에 위치한 우스펜스키성당에 들어서면 돌고루키 흉상이 사람들을 맞이한다. 이 성당은 다른 곳의 성당들과는 달리 고색창연하다. 세월의 때가 지워지지 않은 모양이 더 자연스러운지 모른다. 너무 하얗고 반짝거리게 닦아 놓은 유적들은 테마파크 같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담장에 올라서 도시 전체를 조망할 수 있었다. 멀리 어린 표트르 대제가 해군 놀이를 하던 플레셰예보 호수가 푸른 빛을 발하고 있었다. 도시 안에 초록색과 금색 은색 돔의 성당들이 보였다. 이곳 성당에는 초록색 돔 지붕이 매우 많았다. 초록빛은 추위에 떠는 사람들의 여름에 대한 선망이었을까, 아니면 희망과 구원에 대한 소박한 열망이었을까?
   
   플레셰예보 호수는 현재 국립공원이다. 젊은이들이 보트를 타거나 패러글라이딩을 즐기고 있었다.
   
   
   러사아정교회의 성지 세르기예프 포사드
   
   페레슬라블-잘레스키를 떠나 골든링 마지막 도시인 세르기예프 포사드로 향했다. M8 고속도로를 타고 갔다. 세르기예프 포사드로 향하는 도로는 아스팔트를 깔아놓은 지가 얼마 안 된 것 같았다. 자동차들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달렸다. 러시아 도로에서 속도제한 표지판은 발견하지 못했다. 그리고 교통경찰이 속도위반을 단속하는 경우도 보지 못했다. 러시아 지방도로를 다니는 자동차들은 아주 빠른 속도로 달렸다. 조금이라도 속도를 늦추면 뒤에 차들이 바짝 달라붙었다. 빨리 가지 않을 거면 옆차선으로 비키라는 의미인 것 같았다. 클랙슨을 울리거나 깜박이를 번쩍거리는 경우는 없었다. 그냥 속도를 올려 추월하였다. 그래서 나는 운전하면서 백미러를 자주 쳐다봤다.
   
   세르기예프 포사드는 세르게이 성인의 정착마을이라는 의미이다. 14세기부터 성 세르게이를 추종하던 사람들이 수도원을 짓고 마을을 형성하였다. 삼위일체 수도원 앞에는 세르게이 성인 동상이 세워져 있다. 수도원 주성당인 우스펜스키성당은 가운데 황금 지붕과 주변에 4개의 푸른 지붕을 갖춘 큰 성당이다. 성당 앞에 16세기에 타타르 출신으로 러시아 차르를 지냈던 보리스 고두노프 가족묘가 위치해 있었다. 러시아인들이 화합정신을 구현하는 하나의 사례이다. 이곳에는 성수(聖水)가 흘러나오는 샘도 있다. 나는 가지고 있던 페트병에 얼마 남지 않은 물을 쏟아버리고 성수를 가득 담았다. 잠시 벤치에 앉아 성수를 마시면서 성당 풍경과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외국인 관광객들은 카메라를 들고 주변 풍경을 담기에 여념이 없었다. 러시아인들은 볼 때마다 매우 독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당 근처에서부터 벽에 그려진 성화만 보고도 성호를 긋고 고개를 숙이고 기도하였다. 이런 독실한 국민을 상대로 공산당이 어떻게 정권을 잡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러시아의 바티칸이라는 이곳 세르기예프 포사드를 볼셰비키는 집권하자마자 폐쇄하였다. 2차대전이 시작되자마자 국민의 적극적인 도움이 필요해 종교의식을 허용하였다. 참으로 간교한 짓거리였다. 소련 몰락 이후 재건 러시아는 러시아정교회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세르기예프 포사드 주변의 유스호스텔급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8월 8일 아침 7시에 식당에서 보리죽, 만두, 커피 등 정갈하게 차려진 아침을 먹고 모스크바를 향해 출발했다. M8 도로에 접어든 다음 모스크바 순환 자동자전용도로(MKAD)를 가다가 79번 출구에서 우회전, 공항에 도착했다. 3박4일간 8개 도시를 찾아보았다. 러시아의 현재와 과거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등록일 : 2017-08-28 09:42   |  수정일 : 2017-08-28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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