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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3대 암릉 당일산행‘...봄꽃, 신록, 바람의 바윗길’서 봄의 왈츠 추다

글 | 한필석 월간산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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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벽리지, 원효리지, 만경대리지 당일 연속 등반
 
숨은벽리지, 원효리지, 만경대리지는 북한산 3대 암릉으로 일컬어진다. 원효리지는 원효봉에서 염초봉을 거쳐 북한산 최고봉 백운대로 이어지는 북한산 최장 암릉길이고, 숨은벽리지는 효자리계곡과 밤골을 가르며 인수봉 남서쪽 무명봉으로 이어지는 매끈한 암릉이다. 또한 만경대리지는 용암문~용암봉~만경대를 거쳐 위문으로 이어지면서 원효리지와 함께 북한산성의 한 축을 이룬다.

연둣빛 신록과 어우러진 진달래꽃, 산벚꽃에 수채화처럼 은은하게 빛나던 게 엊그제 같은데 북한산은 어느 샌가 짙은 녹음으로 빛깔을 바꾸고 있었다. 이른 시각 우이동에서 만난 일행 다섯은 땀을 뚝뚝 흘리며 백운산장에 올라 침낭과 취사장비, 먹을거리, 식수를 맡겨놓고 호랑이굴 안부 너머 밤골로 접어들어 숨은벽리지 들머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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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록의 숲은 연둣빛으로 반짝이고 알바위 바위봉은 햇살에 반짝였다. 노적봉을 등진 채 염초봉 들머리로 접어들고 있다.

이른 탓인지 골짜기는 적요하다. 연분홍 진달래와 철쭉꽃, 산벚꽃이 그늘진 숲을 수놓지 않는다면 오랜 세월 인적 끊긴 원시의 골짜기나 다름없다.

숨은벽을 지나 오른쪽 능선 위로 올라서자 도봉산릉이 수묵화인양 아름답고 신비롭게 바라보인다. 숨은벽능선과 인수리지 사이, 아직 햇살이 스며들지 못한 골짜기는 신록빛 그대로다. 진달래, 철쭉, 산벚이 분홍빛, 흰빛 꽃을 곳곳에 피워놓아 화사하기 그지없다.

그 고요한 수채화 같은 풍광이 한순간 깨진다. 인수리지에서 여러 명이 시끌벅적 악다구니 써가며 등반하고 있다. 그래, 등반철이다.

시작이다. 매끈한 슬랩이다. 암벽화는 쩍쩍 달라붙어 기분 좋게 해준다. 40여 m 길이 첫 피치를 끝내자 발목이 뻐근해 오면서 몸이 풀린다. 눈이 맑아진다. 오늘 해지기 전에 북한산 3대 암릉을 다 돌려면 시간이 없다. 쉬운 구간은 연등이다. 사진기자 양수열, 친구 양효용, 후배 변희석이 순서대로 올라오고, 유동진 선배가 맨 뒤에서 올라오며 모든 것을 정리해 준다.
 

신록빛 숲 사랑스럽고 아늑해 뛰어들고파

평범한 암릉을 지나 디에드르 크랙을 선등으로 올라서자 뒷사람들은 주마링 자기 확보로 등반한다. 한 명 한 명 힘차다. 순식간에 올려친다. 인수리지에서 또 괴성이 들려온다. 여성이다. 티롤리안브리지 등반 도중 겁을 먹고 매달린 채 소리를 질러댄다. 동료들 역시 앞에서, 뒤에서 겁먹지 말고 로프를 잡아당기라 소리친다. 그 소리를 들었는지 골짜기 깊숙이 핀 진달래꽃이 빙긋 웃는다.

양옆이 벼랑을 이룬 암릉을 타고 넘는 사이 발아래 밤골이 유혹의 눈빛을 보낸다. 연둣빛 신록으로 빛나는 숲은 너무 사랑스럽고 아늑해 뛰어들고픈 마음을 들게 한다. 그 유혹을 뿌리치고 바위골로 내려섰다가 수직 크랙을 올려친 다음 숲 우거진 바윗길 따라 다음 한 발 한 발. 까까머리 바위봉을 올려쳐 드디어 숨은벽 리지의 종착점에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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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숨은벽 상단부 리지. 왼쪽 골이 밤골이다. 2 숨은벽리지. 뒤쪽 능선은 도보산행객들에게 인기 있는 능선 길이다. 3 선과 면이 빚어낸 아름다움이 절정을 이루는 숨은벽리지.

일단 장비 정리. 원효리지 등반 기점인 상운사까지 가려면 위문을 넘어 등산로 따라 한참 내려가야 한다. 가장 빠른 접근법이다. 하지만 상운사 갈림목을 10분쯤 남겨놓고 요령을 피웠다. 질러가는 길이다 싶어 접어들었다. 그게 화근. 원효리지 암릉 남사면은 복더위 속 바윗길처럼 푹푹 찌고, 예측 못 한 거친 바위가 앞을 가로막아 진을 뺀다.

허기 진 배를 달래려고 간식을 먹는 사이 고글이 슬그머니 흘러내리더니 절벽 아래로 데굴데굴 떨어져 버린다. 에베레스트 원정에 두 번이나 함께 해온 고글인데…. 양수열은 막내라는 죄 아닌 죄 때문에 보이지도 않는 지점까지 내려가 안경 찾기에 나선다. 그래도 다행이다. 다시 올라온 양수열의 손에 안경이 들려 있었다.

오후 1시 40분, 이렇게 어렵게 원효리지 들머리에 진입하고, 업-다운이 반복되는 염초봉 연봉을 넘어서고 산성길 따라 백운대 북서릉으로 접어들어 크랙 구간을 하나하나 넘어선다. 한데 말바위 위쪽 수직크랙을 바라보는 순간 백운대 암릉 초입의 크랙에 끼워 넣은 프렌드를 회수하지 않은 게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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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릇한 소나무와 연분홍 진달래 꽃밭에서 확보 중인 유동진씨.
유동진 선배께서 ‘가난한 후배’한테 잠시 사용하라고 맡겨놓은 건데…. 양수열은 또다시 ‘죄인 아닌 죄인’이 되어 ‘진범’ 변희석과 함께 분실 현장으로 내려가 장비를 회수해 온다.

등 뒤에서 큰소리가 들려온다. 파랑새리지 등반객들이다. 로프가 눈에 띄지 않는다. 초보자가 초보자를 데리고 올라오는가보다. 방심, 실수, 추락-, 이후…. 예나 지금이나 변치 않는 사고 공식이다.

햇살이 제법 따갑다. 벌써 여름이 오려나보다. 더위 먹은 듯 동작이 점점 뜨다가 어느 순간 정신이 번쩍 난다. 강풍이다. 하지만 신록이 바람을 즐긴다. 춤춘다. 반면 우리는 행여 바람에 날려 벼랑 밑으로 떨어지지 않으려 더욱 조심조심 오른다.

말바위 크랙을 올려치고, 개구멍바위 대신 자일 하강으로 바위골로 내려서고, 애매모호한 바위골을 겅중 건너뛴 다음 나무 우거진 바윗길 따라 태극기 휘날리는 백운대 정상에 올라선다.

백운대는 역시 명뷰포인트다. 인수봉 알바위, 그 뒤로 오봉에서 선인봉으로 이어지는 도봉산, 그 오른쪽으로 수락산~불암산, 그 뒤쪽 멀리 용문산까지 다 바라보인다. 여기에 하남 검단산에서 강남 청계산과 관악산에 이르기까지 서울이 파노라마로 펼쳐지면서 명산다운 조망을 선사한다. 이 맛이다. 이 조망의 즐거움, 장쾌함을 누리려고 수많은 산객들이 끊임없이 백운대에 오르는 것일 게다.
 

노을 무렵 더욱 황홀해진 풍광에 넋 잃어

오후 4시50분, 위문에서 유동진 선배는 하산한다. 생업이 기다리고 있는 탓이다. 만경대 허릿길 따라 걷는 사이 산아래 한강이 눈에 들어온다. 은빛에서 금빛으로 변해가며 더욱 찬란해진다. 그 양옆 일산시가지와 김포시는 황금 도시처럼 환해진다. 강줄기를 따라 이어지는 풍광이 눈을 붙잡고 놓아 주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용암문에서 만경대리지 따라 다시 위문까지 어둡기 전에 가려면 갈길이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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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숨은벽리지 암릉 산행에 즐거워 활짝 웃음 짓는 일행. 숨은벽리지. 2 염초봉 연봉을 지나고 산성길을 거쳐 백운대 암릉을 오르고 있다.

 용암봉 기슭에 도착했을 땐 이미 동쪽 도선사 일원은 그늘졌다. 어둠이 스며들고 있다. 도봉산은 더욱 기운차다. 밝음, 어두움, 신록, 바위가 뒤섞여 한낮보다 더욱 강렬하다. 남쪽 대남문 아래 골짝은 산벚꽃이 신록과 뒤섞여 몽실댄다. 비봉도 멋지고, 의상봉 능선은 기운차서 우리 몸에 힘을 불어넣어 준다.

바람이 더욱 거세졌다. 덧옷을 꺼내 입었는데도 으슬으슬하다. 밤이 오고 있다. 크랙을 타고 내려섰다 다시 오르고 건반 두드리듯 피아노바위를 가로지른 다음 용암봉에 올라선다. 식수는 백운대 오르기 전 진작 떨어졌다. 용암문 직전 등산객에서 얻은 500mml 생수 반통을 넷이 나눠 마신 게 끝이다. 갈증이 심하게 난다. 그래도 어둡기 전 위문까지 가야 한다는 조급함에 갈증에 투덜댈 겨를도 없다.

암봉을 하나 더 올라서자 만경대 허릿길을 가로지르는 산객들이 보인다. 서두르는 모습이다. 또 다시 암봉 하나를 더 넘어섰는데 아직 갈길이 멀다. 그런데 느긋해지는 것 무슨 심사인가. 하늘에 별이 하나 하나 뜨고, 땅에도 별이 하나 하나 뜬다.

도시의 야경은 멀찌감치 거리를 두었을 때 더욱 찬란하고,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니 더욱 아름답다. 일행 네 명은 모두 지치기도 했지만 그 아름다운 풍경을 좀더 누리고 싶은 마음에 널찍한 바위에 누워 한동안 머무른다.

그 사이 밤은 산을 한입에 집어삼킬 듯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놀란 가슴에 더욱 서둘러 바윗길을 나아간다. 만경대 기슭 바위골로 들어섰을 때는 홀드, 스탠스가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워졌다. 헤드랜턴 불빛을 따라 한 발 한 발. 드디어 만경대 아래 전망대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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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몰려오자 마음이 바빠졌다. 하지만 진달래꽃은 ‘뭐가 그리 바쁘냐’는 듯 빙긋 웃었다. 만경대리지.

친구 양효용은 동료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아무리 많은 별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어도 친구와 후배들의 눈길과 목소리만큼 나를 포근하게 해주는 것은 없다”고. 우리는 이렇게 신록을 붙잡으려고, 바람을 타고 날아보려고 서늘하고, 후텁지근하고, 또 위축될 만큼 서늘해진 봄날 하루 내내 북한산 3대 암릉에서 춤을 췄다. 신록에, 봄꽃에 취하고 바람에 흔들리며 춘 ‘봄의 왈츠’였다.

어둠 속, 만경대에서 위문으로 향하는 사이 백운대를 오르는 산객들의 불빛이 이어졌다. 이제 도보산행객들이 우리가 하루 내내 들고 온 바통을 이어받아 또 다른 풍광을 찾아가고 있었다.
출처 | 월간산 572호
등록일 : 2017-06-16 11:29   |  수정일 : 2017-06-16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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