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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시고쿠 나루토의 오츠카 미술관... 세계명화 도판(陶板) 1000점 원화 크기 전시

세계의 명화 1000점이 원화(原畵) 크기대로 전시되어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그림책이다.

글 | 조갑제(趙甲濟) 조갑제닷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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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일본 시고쿠(四國)를 여행하던 중 세계에서 유례(類例)가 없는 미술관과 만났기에 소개한다. ‘최후의 만찬’에서 ‘게르니카’까지 세계의 명화(名畵) 1000점이 한 곳에 모여 있다. 다 구경하는 데는 4km의 산책이 필요하다. 전시(展示)공간은 약2만4000평으로 일본에서 가장 크다. 세계에서 가장 큰 그림책인 셈이다.
 
물론 이들 그림은 가짜이다. ‘가짜’라고 하면 너무 가혹하고 재현(再現)한 것이다. 어디에? 이게 중요하다. 도기(陶器)를 만드는 도판(陶板)에 재현한 그림들이다. 종이도 아니고 벽면도 아닌 도판에 명화의 그 까다로운 색채와 광선과 모습을 정확하게 살려서 그려 넣을 수 있을까? 더구나 그림 하나가 건물만한 것도 있는데….
 
이 의문을 해결한 것이 기술이다. 이 미술관의 구상은 예술적 열정이나 봉사정신에서 시작된 게 아니다. 이 미술관, 즉 오츠카 국제미술관은 ‘세계 최초의 도판(陶板) 명화 미술관’으로 불리는데 시고쿠의 북동쪽 나루토(도쿠시마 현)에 있다. 나루토는 한자로 명문(鳴門)이다. 시고쿠와 혼슈의 이와지시마 사이 해협에 바닷물이 소용돌이 치면서 흐르는 곳이 있다. 바다가 우는 소리가 들린다고 해서 붙인 지명이다.
 
오츠카 미술관의 발상(發想)은 ‘한 줌의 모래’에서 시작되었다. 오츠카(大塚) 제약 회사의 사장이던 오츠카 마사히토(故人)의 회고에 따르면 1971년에 막내동생과 기술과장이 찾아오더니 책상 위에 한 줌의 모래를 올려 놓은 것이 이 거대한 사업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사장님, 부탁이 있습니다.”
“그 모래는 뭐야?.”
“이게 나루토 해협의 모래입니다.” 
두 사람은 이 모래로 타일을 만들어 보겠다고 했다.
“지금은 콘크리트 원료로 채취하여 파는데 우리는 타일로 만들어 팔면 많이 남을 것 같습니다. 도쿠시마 현에도 도움이 되는 일이니 지사(知事)께 잘 말씀 드려서 허가를 받아주십시오.” 
 
오츠카는 제약회사로 출발하였다. 마사히토 사장은 나루토 공장에 화로(火爐)를 만들어 타일 제작을 시작하였다. 타일 제작에 재미를 붙이자 이들은 기술을 발전시키면서 점점 큰 타일을 만들어가기 시작하였다. 일그러지거나 금이 가지 않는 유리판처럼 균일하면서도 큰 타일을 만드는 기술을 터득하다가 새로운 사업이 떠올랐다. 이 멋진 타일, 즉 도판(陶板)에 그림을 그려넣어 파는 사업이었다. 사방 몇 m짜리 도판도 만들 수 있게 되니 명화(名畵)도 재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술의 뒷받침이 있으니 자신이 생긴 것이다.  
 
당시는 제1차 석유파동으로 건설 및 건축 경기가 죽고 있었다. 자연히 건축용 타일 판매도 부진하여 새로운 활로(活路)를 찾아야만 하였다. 완성도가 높은 명화를 재현하기 위하여 오츠카에선 2만 가지에 가까운 색을 개발하였다. 굽고, 만들고, 부수고 하면서 더욱 정교한 재현 기술을 발전시켜나갔다.  
 
1975년 오츠카 마사히토는 모스크바를 방문한 길에 교외 묘지에 묻혀 있는 흐루시초프 전 서기장의 무덤을 찾았다. 사진이 비닐로 싸여 전시된 것에 마음이 아팠다. 저 사진을 도판에 새겼더라면 영원히 변하지 않을텐데 하는 아쉬움이었다. 그는 생각하였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하는데, 실제로 이름을 남기는 일은 많지 않다. 그러나 사진도판으로 자신의 모습을 영원히 남길 수는 있다.> 
 
일본의 도자기(陶瓷器)를 싣고 유럽으로 가던 네덜란드 상선(商船)이 인도양에서 침몰한 적이 있다. 300여 년이 지나 건져 올렸더니 도자기는 옛날 그대로의 색과 모습이었다. 당시의 도자기는 1000도에서 굽고 있었지만 오츠카는 1300도의 특수기술로 굽고 있어 수천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효도(孝道) 차원에서 부모나 선조의 모습을 도판 사진으로 담아 영구 보존하는 사업을 하면 어떨까,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일본인들은 물건을 만들 때 혼을 불어넣는다고 한다. 오츠가 그룹도 부모나 선조를 기린다는 도덕적 차원에서 장사를 하니 더욱 정교하고 예술적인 완성도를 높여가게 되었던 것이다.  
 
<후세에 남길 만한 것, 우리들만의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것을 만들자>는 쪽으로 야망도 커졌다. 인류 문명의 한 축인 미술, 그 가운데서도 세계의 명화를 도판에 새겨 한 곳에 모으자! 오츠카 마사히토는 이 모든 사업의 시작인 ‘한 줌의 모래’를 생각하였다. 나루토 해변의 모래, 그것이 있는 곳에 미술관을 세우자고 결심하였다.  
 
그리하여 서양 미술의 정화(精華)인 명화들을 찾아나섰다. 그림을 소장한 미술관의 허락을 받고 현장 조사를 통하여 입체적으로 그림을 분석, 촬영하고, 이를 색상분리, 전사지(電寫紙)에 인쇄, 도판에서 전사 인쇄, 굽기, 수정, 또 굽기, 점검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드디어 1998년 3월 오츠카 미술관이 문을 열었다.  
등록일 : 2017-05-18 09:58   |  수정일 : 2017-05-18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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