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메뉴

FUN | 여행
  1.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기사목록 
  2. 글자 작게 하기글자 크게 하기

제왕산 봄마중, ‘겨울 배웅’을 위한 산속의 하루

글 | 윤제학 동화작가·월간山 기획위원

‘얼음’은 물의 ‘주검’이 아니다. 그러므로 나는, 다가올 어느 아침이 진달래의 꽃술 위에서 보석처럼 반짝인다 해도 화들짝 놀라며 반색하지는 않을 것이다. ‘봄은 소생의 계절’이라는 따위의 게으른 수사에도 동의하지 않을 것이고, 세상의 귀를 흥건히 적실 ‘신록 예찬’의 대열에서도 한 걸음 물러설 생각이다. 겨울은 죽음의 계절이 아니므로.

“잠은 인생의 사치입니다. 저는 하루 네 시간만 자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에디슨이 이런 말을 남겼다는 건, 어떤 침대 회사의 텔레비전 광고를 보고 알았다. 역시 머리 좋은 그는 무턱대고 이런 주장을 하지 않았다. “물론 숙면을 취할 때 말이죠”라는 매끄러운 단서를 달았다. 하지만 에디슨은 틀렸다. 누구에게나 잠은—사치가 아니라—보약이고, 어떤 사람들은 돈 안 드는 그 보약조차 마음대로 삼키지 못한다.

에디슨이 코카인 중독자였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와인에 코카인을 섞어 만든 ‘뱅 마리아나’라는 음료를 애용했다. 그가 하루 스무 시간 동안 깨어 있을 수 있었던 건 코카인의 각성 효과 덕분이었다. ‘숙면’을 강조하려는 의도는 알겠는데, 그것을 위해 에디슨을 끌어들인 건 침대 회사의 실수로 보인다(높은 주목도로 광고의 목적은 달성했으니 ‘실수’라고 생각했어도 개의치 않았겠지만). 하루 네 시간의 잠으로는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다(요즘 의학계에서 권장하는 수면 시간은 하루 여덟 시간이다).

대지가 깨어나는 시간이다. 이제 곧 봄이 올 것이고, 풀과 나무는 꽃과 움을 틔울 것이다. 기적이라 경탄할 만한 일이다. 그런데 이것이 정녕 봄의 일일까. 겨울잠 없이도 가능할까. 물론 그렇다. 겨울이 없는 나라에서도 꽃은 피고 진다. 하지만 꽃피는 새봄의 경이가 우리와 같지는 않을 것이다. 새봄의 경이는 겨울잠에서 잉태했음이 분명하다. 죽은 듯했던 나무에서 꽃을 피우는 기적의 주재자에게 경의를 표해야 한다면, 겨울을 향한 몫이 (최소한) 절반이어야 한다. 내가 서 있는 지금 이 시간은 겨울과 봄 사이. 겨울 배웅 혹은 봄 마중의 시간이다. 내 마음은 확 표시가 나게 ‘겨울 배웅’으로 기운다.

본문이미지
대관령에서 제왕산으로 향하는 백두대간 능선.

 
마음자락 한 귀퉁이에 산빛을 채워 본다

겨울의 한 끄트머리를 좇아 선 곳 대관령. 몸집 좋은 바람이 얼굴을 얼얼하게 한다. 이곳이 해발고도 823m로 (구)영동고속도로가 지나던 백두대간의 고갯마루임을 알리는 것이다. 이 고개 이름 앞에 붙은 ‘대(大)’자는 허세가 아니다. 강릉의 한 상징이자 영동과 영서 지역을 잇는 관문이지만 동해와 (내륙이 아니라) 대륙의 큰바람이 내왕하는 길목이기도 하다. (남쪽에서부터) 평해, 울진, 삼척, 동해, 강릉을 지나는 조선시대의 관동대로가 이 고개에 걸렸으니, 사회·문화·역사에 두루 영향을 미친 큰 고개였다. 영동, 관동이라는 지역 이름도 이 고개에서 비롯됐으니, ‘대’관령이라는 이름은 온당하다.

‘(강릉대도호부) 서쪽 45리에 있는데, 이 주(州)의 진산(鎭山)이다. 여진 지역인 장백산(백두산)에서 (산맥이) 구불구불 비틀비틀 남쪽으로 뻗어내리면서 동햇가를 차지한 것이 몇 곳인지 모르나, 이 영이 가장 높다. 산허리에 뻗은 길이 아흔아홉 굽이인데, 서쪽으로 서울과 통하는 큰길이 있다. 부치(府治)에서 50리 거리이고 대령(大嶺)이라 부르기도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대관령에 관한 설명이다. ‘가장 높다’는 것 말고는 거의 사실에 부합하는데, ‘강릉의 진산’, ‘아흔아홉 굽이’라는 표현에 눈길이 간다. 대관령은 산인가? ‘아흔아홉 굽이’는 사실인가, 상징적 표현인가?(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얘기하는 것이 좋겠다)

본문이미지
1 제왕산 능선에서 본 능경봉. 2 제왕산 정상 서쪽 암릉의 소나무. 3 제왕산 북쪽 기슭에서 대관령 옛길로 향하는 기슭의 금강송. 4 대관령 옛길에 재현한 주막.

대관령에서 제왕산으로 가는 겨울 배웅. 영마루에서 백두대간의 등성마루를 타고 동해로 다가선다. 평원 같은 참나무숲에는 아직 눈이 수북하다. 햇살이 넉넉한 눈길은 밝고 넓다. 능경봉에서 대관령, 선자령, 황병산으로 이어지는, 고위 평탄한 이 일대의 지형적 특성을 잘 보여 주는 길이다.

능경봉 갈림길에서 잠깐 임도를 따라가다가 산허리에 붙은 계단을 올라서면 제왕산(840m)으로 향하는 산마루다. 백두대간에서 솔가한 이 산줄기는 줄곧 동쪽으로 흘러 오봉산(539m)을 맺고는 발길을 멈춘다. 오봉산의 동남쪽은 오봉저수지, 동쪽은 성산면이다. 오봉저수지의 물은 성산면의 서쪽 초입에서 보광천을 만나 남대천으로 흘러들어 강릉 고을을 적신다.

제왕산(帝王山)은 이름으로 연상할 수 있듯이 왕과 관련한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고려 32대 우왕(禑王, 1365~1389)이 이성계에 의해 폐위된 후 이곳에 성을 쌓아 근거지로 삼았다는 이야기다. 산성의 흔적이 약간의 신빙성을 더하지만 진위는 알 길이 없다. 하나 산성으로서의 입지는 탁월하다. 능경봉에서부터 대관령, 선자령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등성마루는 물론 동쪽으로 강릉 시가지와 동해가 한눈에 들어온다.

대관령과 제왕산은 높이 차이가 거의 없다(제왕산이 17m 높다). 산줄기의 기복도 심하지 않아서 날 좋은 바다의 파도처럼 순하게 흐른다. 그래도 산마루 곳곳에 바위가 옹골차서, 전체적으로는 육산이지만 골산의 기운도 강하게 느낄 수 있다. 바위 곁에는, 늘어뜨린 가지의 품격이 드높은 장송이 제왕처럼 섰다. 지금 이 산의 제왕은 소나무다.
느긋한 걸음으로 한 시간 반이 조금 지나자 정상이다. 동해와 가까운 대기는 한결 부드러워졌다. 대관령 동쪽 기슭 산주름은 잔설과 빈숲의 선명한 대조를 보인다. 참나무 우듬지에는 햇살이 쟁쟁거리고, 양지바른 기슭의 낙엽 위로는 새봄이 수줍게 얼굴을 드러내는데, 눈 덮인 기슭의 산빛은 서늘하게 밝다. 유쾌하게 돌아서는 겨울의 뒷모습이다. 우리의 얼룩진 지난 삶도 이 계절의 햇살에 잘 씻어 말린다면, 저 산빛을 닮을 수 있을 것인가. 계절의 변화는 지극히 단순하지만, 그 단순함 가운데서 세계는 천변만화한다. 나의 뻔한 오늘 내일 사이에는 어떤 비밀이 숨어 있을까. 들여다보니 깜깜하다.

눈을 감고, 마음자락 한 귀퉁이에 저 산빛을 채워 본다.

정상에서 오봉산을 향하는 내리막은 소나무 숲길이다. 등성마루의 소나무와 달리 수관이 좁고 줄기가 곧은 금강송이다. 오봉산으로 이어지는 산마루에서 벗어나 대관령 옛길을 향하여 골짜기로 접어든다. 계류는 얼음장 밑으로 소리 없이 흐르다가, 살여울을 만나는 곳에서 얼음을 핥아먹고 있다. 햇살이 물살을 간질인다.

본문이미지
(위)대관령 서쪽 암릉 조망처. 하늘과 맞닿은 동해가 천지미분의 풍광을 펼쳐 보인다. (아래)마루로 오르는 대관령 옛길.

대관령은 하나의 산이자 고개

제왕교라는 이름이 붙은 나무다리를 건너자 ‘대관령 옛길’ 위의 주막 터다. 귀틀 위에 짚으로 지붕을 이은 초가로 옛 주막을 재현해 놓았다. 툇마루에 주모 대신 햇살이 졸고 있다. 주막에서 계곡을 따라 내려가면 대관령 고갯길의 시작이자 끝인 ‘어흘리’고, 반대로 거슬러 오르면 대관령 마루로 향하는 옛길이다. 나는 고갯마루를 향한다.

대관령 옛길은 조선 초까지만 해도 오솔길이었다고 한다. 그런 길을 조선 중종 6년(1511)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한 고형산(1453~1528)이 백성을 동원하지 않고 관청의 힘만으로 우마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의 길로 넓혔다고 한다.

가파른 길을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리려면, 갈 지(之) 자 모양으로 접고 또 접어 길을 열어가는 수밖에 없다. 이렇게 산 주름을 돌고 또 돌다 보니 아흔아홉 굽이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경사가 급해 ‘대굴대굴 굴렀다’ 해서 ‘대굴령’. 이것이 변하여 대관령이 되었다는 또 다른 이름 유래는 아흔아홉 굽이의 진실을 밝히는 데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본문이미지
제왕산 서쪽 능선에서 본 대관령 일대의 백두대간 능선. 능경봉(화면 왼쪽)에서 대관령, 선자령이 고원을 이루며 흐른다.

진실은 경사를 낮추기 위해 산주름을 돌고 또 돈 것에 있다. 실제로 걸어 보면 안다. 잠시 한눈을 팔아도 앞사람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돌고 돌아 오르는 길이 대관령 고갯길이다. 세어 보지는 않았지만 아흔아홉 굽이가 맞을 것 같다. 그런데 왜 아흔아홉을 상징적 의미로 이해하려 할까. (옛)영동고속도로가 지나는 그 길의 굽이를 염두에 둔 때문이 아닌가 싶다(대관령휴게소가 있는 고갯마루는 진짜 대관령이 아니다).

대관령 고갯길 굽이는 아흔아홉이 틀림없다고 생각하며 마지막 아흔아홉 굽이를 돌아 오른다. 백두대간 등성마루다. 여기 서 보면 왜 대관령을 강릉의 ‘진산’이라 여겼고, 대관산이라고도 했는지 알게 된다(이곳의 높이는 해발 930m 정도다). 강릉에서 보면 산 같은 산은 이곳밖에 없다. 여기서 흘러내리는 골짜기의 물은 남대천으로 들어가 사람들을 살린다. 강릉의 진산인 것이다. 강릉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능경봉에서 선자령 사이의 등성마루 전체가 자신들을 지켜 주는 산이었을 것이다. 대관령은 하나의 산이자 고개다.

저녁 어스름 속에서 대관령 국사 성황당으로 내려선다. 큰바람 한 줄기가 등을 떠민다. 잘 갈 테니, 너도 네가 가야 할 길을 잃지 말라는 겨울의 인사로 여긴다.
출처 | 월간산 569호
등록일 : 2017-03-16 09:54   |  수정일 : 2017-03-16 09:57
  1. 프린트하기 
  2. 기사목록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독자 리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맨위로

하단메뉴

개인정보 취급방침독자센터취재제보광고문의조선뉴스프레스인스타그램페이스북트위터카카오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