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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로미테 D15 등반...독수리를 타고, 학을 타고 검무를 추다

후원·K2, K2어썸도어, BD코리아

글 | 임덕용 재 이탈리아 산악인

독수리의 환골탈태를 넘어 학이 된 권영혜의 D15 등반
 
천년 맺힌 시름을
출렁이는 물살도 없이
고운 강물이 흐르듯
학이 날은다
천 년을 보던 눈이
천 년을 파닥거리던 날개가
또 한 번 천애(天涯)에 맞부딪노나
산 덩어리 같아야 할 분노가
초목(草木)도 울려야 할 설움이
저리도 조용히 흐르는구나
~~~~~~~~~~~~~~~~~~~~~~~
춤이야 어느 술 참 땐들 골라 못 추랴
긴 머리 자진머리 일렁이는 구름 속을
저, 울음으로도 춤으로도 참음으로도 다하지 못한 것이
어루만지듯 어루만지듯
저승 곁을 날은다.
 
시인 서정주님의 시 ‘학(鶴)’이다. 시인의 사상을 여기서 논하고 싶지 않고, 이 시의 깊은 의미를 논하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조류 중 가장 우아하고 아름다운 새인 학에 대한 예찬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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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12에서 가볍게 몸을 풀며 독수리 날개를 학의 날개로 변신시킬 준비를 한다.

한 클라이머의 등반에서 우아하고 단아한 학의 아름다운 선과 독수리의 날카롭고 용맹스러우며 힘찬 모습을 같이 볼 수 있을까? 학과 독수리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거리가 멀고 서로 전혀 다른 조류의 상징이지만 이 두 마리가 서로 어울려 새로 태어난다면 어떤 새가 만들어질까?
 
공룡시대의 새가 될까 아니면 컴퓨터 게임에 나오는 로보트 식의 새가 될까? 그렇지 않다. 필자가 본 새는 돌로미테의 겨울 하늘과 벽을 차고 오르며 박쥐처럼 천장에 매달려 학처럼 춤을 추기도 하고, 때로는 독수리처럼 날쌔고 힘차게 날카로운 부리와 발톱으로 천장의 미세한 틈을 파고들며 번쩍이는 쌍검 춤을 추고 있었다.
 
동물학적으로 정확하지는 않지만 하늘을 지배하는 독수리는 야생조류 중 가장 오래 사는 새로 70년을 살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오래 살기 위해서는 40년이 되었을 때 매우 고통스럽고 중요한 결심과 결정을 해야 한다. 독수리는 40년이 되면 발톱이 뭉툭해져 날카롭지 못하고, 부리는 길게 자라 구부러져 자신의 몸으로 파고 들어갈 정도가 된다. 부리가 구부러져 더 이상 사냥을 할 수 없다. 깃털도 두껍게 자라 날개가 무거워지며 하늘로 높게 날아오르기가 힘들어진다. 이때 독수리는 그냥 늙어 죽기를 기다리든지 아니면 환골탈태해서 새롭게 태어나든지 선택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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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15는 180도의 천장을 약 50m를 날아야만 등반을 마칠 수 있다.

새롭게 태어나기를 원하는 독수리는 먼저 산의 정상으로 자리를 옮겨 새로운 삶을 위해 목숨을 걸고 변신을 시작한다. 30년을 더 살기 위해서 150일 동안 높은 산꼭대기의 벼랑 끝에 둥지를 틀고, 날지 않고 먹지도 않으면서 둥지 안에서 환골탈태의 과정을 극복해야만 한다. 구부러진 부리로 바위를 쪼아 부리가 깨져 빠지게 만든다. 그리고 새로운 부리가 돋아나면 자신의 발톱과 날개의 깃털을 하나하나씩 뽑아낸다. 새로운 부리가 날카롭게 곧 바르게 나면, 먼저 새롭게 난 부리로 발 안으로 구부러져 파고 들어가는 발톱을 하나씩 하나씩 뽑아내야 한다. 
 
독수리의 발톱을 뽑는다는 것은 거의 죽음에 가까운 고통이고 아픔이다. 물론 자기 발톱을 자기 부리로 뽑아낼 때 피가 나고 갈라져도 마지막 발톱을 다 뽑을 때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한다. 발톱을 다 뽑아낸 후에는, 새로운 발톱이 다 자라날 때까지 둥지 안에서 머물며 기다려야 한다. 마지막으로 독수리는 새롭게 난 부리와 발톱으로 낡고 무거운 깃털을 하나하나 모조리 뽑아내야 한다. 깃털을 다 뽑아낸 후에 다시 가볍고 힘찬 새로운 깃털이 날 때까지 둥지에서 꼼짝 않고 기다린다. 
 
절벽에서 외롭게 자신과의 사투를 벌이며 극복한 고통과 인내의 5개월이 지나면, 따뜻한 기류가 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동안 너무 오랫동안 날지 않아서 약해진 날개 근육이 초기 힘을 받고 절벽 아래로 떨어지지 않고 하늘로 따뜻한 기류를 따라 서서히 치솟으며 날개 근육에 힘을 키우고 나서야, 이렇게 환골탈태된 독수리는 천하를 자신의 날개 아래에 세상을 품고 태양을 향해 고공 질주를 하는 새로운 비행이 시작되며, 생명을 더 30년 연장할 수 있게 된다.
 
새로운 세상을 위해 뼈를 깎는 아픔과 굶주림 속에서 독수리는 꿋꿋하게 고통을 참고 이겨낸다. 반년의 고통이 지난 후 새 깃털이 돋아난 독수리는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며 다시 하늘을 차고 올라 새로운 30년의 수명을 자랑스럽게 누리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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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15 등반은 스타트와는 반대편 기둥 벽이 만나는 지점에서 끝난다.

따뜻한 사랑이라는 줄로 연결된 등반
 
높은 경지에 이룬 고수가 많은 내공과 깨달음을 얻으면 그 깨달음과 내공을 소화하기 위해 몸 자체가 좀더 무공을 익히기 적합한 육체로 변하는데, 이 과정을 바로 환골탈태라고 칭한다. 당연히 환골탈태한 고수와 그렇지 않은 고수는 가히 권법과 검을 쓰는 무림인과 그렇지 못한 무림인의 차이보다 격차가 크기에 진정한 고수의 조건이라 할 수 있다. 환골탈태하면 나이가 몇 살이라도 가장 활동하기 적절한 젊은 육체로 돌아가고, 그밖에 수명이 매우 길어지거나 몸 자제가 단단해져 근육이 무술을 펼치기 적합하도록 변한다.
 
대한민국 남자로 하고 싶은 것을 다한 사람이 있다면 그중 분명 한 사람은 권영혜이다. 언제 어디에서 보아도 다부진 몸매와 날카로운 눈 속에 해병대 중사로 9년을 복무한 군기가 넘친다. 젊은 나이에 조국에 대한 애국심과 유격대 대장으로 사명감에 차서 즐겁게 장기 복무를 했단다.
 
태권도 4단으로 문무태권도장을 운영하다가 클라이밍에 빠지며 태권도 지도자에서 스스로 벽의 중력을 무시하며 극복하고 해탈의 경지를 맛보고 있는 자신을 느꼈다. 태권도는 어릴 때부터 하던 운동이고 제대 후 자기가 잘하는 게 태권도라서 도장을 차리게 되었는데 그만 클라이밍이라는 병에 걸린 것이다. 태권도장을 생계 목적으로 운영했다면 클라이밍은 그 자체가 좋았고, 스스로 오름짓의 주인공이라 등반하는 순간순간 행복감을 느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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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째 볼트 지점에서 숨을 고르고 있다.
권영혜가 행복감을 느낀 등반은 5.13d 이상 완등 루트로 선운산 투구바위 ‘겨울 람보’(5.13d, 2003년 12월), 부안 장군바위 ‘자유2000’(5.14a, 2004년 9월), 태국 프라낭 ‘제이덤’(5.13d, 2005년 1월), 모락산 미래암 ‘엄마와 베트맨’(5.13d, 2005년 11월 24일), 태국 프라낭 ‘카라 캉그레소’(5.13d, (2006년 12월), 마이산 오페라하우스 ‘Excellent’(5.13d, 2008년 9월 27일), 마이산 오페라하우스 ‘쓰나미’(5.14a, 2009년 1월 2일), 마이산 오페라하우스 ‘무한도전’(5.13d, 2009년 4월 5일), 마이산 오페라하우스 ‘꿈과 희망’(5.14a, 2009년 5월 2일), 조비산 ‘운요선경’(5.14a) 초등 등이다.
 
2001년부터 15년간 원정 등반으로 두 번에 걸친 미국 등반투어(첫 번째: 요세미티·조수아트리·캘리포니아 일원. 두 번째 : 라이플, 비숍, 요세미티), 3회의 태국 프라낭, 2회의 중국 쿤밍과 양수오 등반, 캐나다-미국 믹스클라이밍 원정, 2회의 유럽 빙벽 월드컵대회에서 5위를 두 번 했고, 믹스 클라이밍 원정을 했다.
 
그의 등반에 있어 절정에 가까운 등반은 믹스 등반이었다. 세계 최고 난이도의 믹스 등반루트를 섭렵하며 무림을 평정했다. 대한민국 ‘Black Eagle’(D15-, 2013년 12월 1일), 캐나다 ‘Steel Koan(M13+, 2013년 12월), 미국 ‘Mustang’(M14-, 2014년 12월 16일, 2회 시도), 스위스 ‘IronMan’(M14+, 2015년 1월 21일, 3회 시도), 이탈리아 ‘Kamasutra’(D13+, 2015년 2월 3일, 2회 시도), 프랑스 ‘Dichette’(D14, 2015년 2월 8일, 2일 시도)에 끝냈다.
 
그리고 이번에 등반 경기 사상 세계 최초로 사랑하는 아내 김정민과 빙벽 월드컵대회 동반 출전과 동반 준결승 진출을 이루었다. 스위스 사스페 대회에서 아내가 준결승에 진출했고, 사스페와 이탈리아 라벤스테인 대회에서 8위에 올랐다.
 
같은 종목의 스포츠라 해도 선수와 전문가는 분야가 조금은 다르다. 권영혜가 태권도 지도자로 도장을 운영했지만 태권도 선수와는 조금 차이가 있다. 등반도 마찬가지다. 선수는 경기를 감각적으로 해야 하고 응원이나 관중을 의식하며 같이 즐길 줄 알아야 하며 그들을 리드해야 하는 스타 정신도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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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등을 하고 너무 조용해서 소리라도 질러달라고 하니 한 손을 겨우 쳐든다. 연기자는 절대로 못 되는 무림의 고수 중 고수이다.

그러나 등반의 고수는 항상 외롭다. 바위와 직접 소통을 해야 하고, 등반은 자연과 인간의 소통이라는 또 다른 눈에 보이지 않는 벽을 넘어야 한다. 이번 D15 등반은 현존하는 지구상 가장 어려운 드라이툴링 등반이었지만 그는 외롭지 않게 아내의 응원과 아내가 잡아 주는 따뜻한 사랑이라는 줄로 연결된 등반이었다.
 
1월 23일 D15에서 무브를 풀어보았다. 그리고 다음날 하루 휴식을 취한 뒤 25일 D12를 스트레칭 운동을 하듯 부드럽게 몸을 푼 후 약 1시간을 쉬었다. 아내 김정민이 D9을 등반했다. 그리고 믹스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매트리스에 누워 명상에 잠겼다. 아내가 서울에 있는 딸 가은과 화상통화를 했다. 맑고 밝은 가은의 목소리가 거대한 천장의 동굴 안을 은은히 울리고 있었다. 권영혜는 분명 눈에 보이지 않는 종이학을 가슴으로 만들고 있었다.
 
벽 아래에서 툴을 어깨에 걸고 허공을 응시하더니 눈을 오랫동안 감았다. 겨루기에서 먼저 자신을 이기기 위한 시합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쌍칼을 어깨에서 내리더니 한 몸은 독수리를 타고, 한 몸은 학을 타고 검무를 추기 시작했다.
 
천년 맺힌 시름을 출렁이는 물살도 없이 고운 강물이 흐르듯 학이 난다. 천 년을 보던 눈이 천 년을 파닥거리던 날개가 또 한 번 천애(天涯)에 맞부딪노나. 산덩어리 같아야 할 분노가 초목(草木)도 울려야 할 설움이 저리도 조용히 흐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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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한 지 4~5m 높이부터 180도 천장으로 진입한다.
선수라기보다 도인 같은 클라이머
 
단 한 번의 기합 소리도 없이, 단 한 번의 외침도 없이 조용히 너무나 조용히 올랐다. 아내 김정민도 조용했고, 바로 근처에서 믹스 등반 루트를 만들고 있던 폴란드 클라이머들도 너무나 조용했다. 그가 완등하고 출발부터 계속 촬영을 하던 필자도 그가 완등 지점에 도착한 것을 느끼지 못했다. 하강 준비를 하는 것을 보고 소리를 친 것은 바로 필자였다.
 
“등반한 거야?”
“네”
 
“그럼 그렇게 내려오지 말고 두 손이라도 한 번 치켜 들어봐….”
 
아시아인의 D15 초등은 이렇게 싱겁고 조용했다.
 
“한 번 웃어 봐….”
 
그가 겨우 어설픈 미소를 짓는다.
 
그는 선수라기보다 도인 같은 클라이머라는 생각이 든다. 종이학을 1,000마리 접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도 있다. 권영혜·김정민 부부가 수천 마리 종이학을 접으며 그려온 꿈은 무엇일까? 아내이자 등반 파트너인 김정민의 말 속에 어쩜 이미 이루어진 것은 아닌지.
 
“처음으로 국가대표가 되고, 처음으로 월드컵에 참가해서 말로 듣고 영상을 통해서만 보던 선수들과 함께 경기를 하니 그 기쁨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좋았습니다. 한 경기 한 경기 할 때마다 발전되어 가는 모습이 보여 더 좋았고요. 단지 마지막 프랑스 챔피언십에서 좀더 나은 기량으로 마침표를 찍지 못한 게 아쉽습니다. 부부가 함께 태극 마크를 달고 나와 함께 기량을 펼칠 수 있다는 것, 이것만으로도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또 기회가 된다면 다음 시즌에는 부부가 함께 결승에 가는 기적(?)을 만들어보고 싶고 저는 툴링 그레이드를 높여 보고 싶습니다.”
 
권영혜는 딸 가은에게 억지로 클라이밍을 시킬 생각은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가족이 함께할 수 있는 취미로 등반을 가르치고 싶고 그러다가 가은이가 스스로 좋아서 이쪽 길로 나아간다면 그때는 최고의 코치로 도움을 줄 생각이라고 한다.
 
권영혜의 환골탈태는 그의 45세를 기점으로 시작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그는 이미 탈태환골의 경지를 넘어선 것일까? 필자가 본 그는 분명 독수리가 학이 된 새였다. 
 
권영혜 M2climbing, K2코리아, BD코리아 스털링로프, 라스포르티바  코리아 홍보대사
 
D15 등반 정보 http://m.epictv.fr/media/podcast/la-voie-de-dry-la-plus-dure-du-monde-un-pur-toit-de-50m--%7c-relais-vertical-ep34/604653
출처 | 월간산 569호
등록일 : 2017-03-17 08:49   |  수정일 : 2017-03-17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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