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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N |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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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와 명풍경 | 무등산]
눈꽃 서리꽃 무등의 아침은 꽃피고 거암의 돌기둥은 하늘 받치고 있네

글·사진 | 이종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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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아래 숨탄것 가운데 사람만이 뛰어나다. 뛰어나서 무등(無等)이다. 사람과 사람이 같다. 같아서 등(等)이다. 억압도 없고 차별도 없다. 없어서 모두가 하나다. 일등이다. 일등이라 평등하다. 평등하여 존귀하다. 네가 높으면 나도 높다. 내가 낮으면 너도 낮다. 높다고 높은 것이 아니다. 낮다고 낮은 것이 아니다. 하늘이 부여한 소명에 따라 우리가 그렇게 보일 뿐이다. 보이는 것들이 다가 아니다. 보이는 것들이 그렇게 말했다. 높고 낮은 산들이 처음부터 그리 말해 왔다.

겨울 산에 들며 어질병이 나도록 화려했던 지난가을의 나무들을 생각한다. 다 벗어버리고 혹한을 이긴 끝에서 꽃피운 설화다. 산은 어느 나무에게나 공정하다. 공정으로 꽃핀 무등의 세계다. 내 일은 내가, 네 일은 네가 해서 함께 만들어가는 공평한 세상이 무등의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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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기를 내뿜는 광석대 규봉암에 신이로운 아침햇살이 법어로 내린다.
 
 
산 하나 가진 규봉암의 스님과 광석대

꼭두새벽 한걸음에 달려온 그대는 누구인가.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와 주니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흰 눈 머리에 이고 원효계곡 입구를 지키는 저 소나무가 안다. 말하지 않아도 이 산이 그 맘을 안다.

아직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다. 숲의 모든 것들이 흰 눈을 이고 있다. 손수 등에 져보는 하늘의 무게에 칼날 같은 겨울나무들의 고독이 반짝인다. 편백나무 숲에 닿는다. 빽빽하지만 품은 넓다. 스스로 솎아 낸 숲의 편안함이다. 간벌하지 않으면 숲은 들어갈 수조차 없다. 살면서 무엇이 두려운가. 줄어드는 것인가. 잃어버리는 것들인가. 덜어내거나 버리지 못하여 쌓이는 것들을 언제 무서워할 줄 알게 될까.

꼬막재를 지나 신선대 억새평전에 닿는다. 신선대 방향으로 소나무 한 그루 서있는 공터까지 진행한다. 무등산 본산과 북산 경계쯤이다. 올려다본 숭고한 봉우리에 설화가 만발했다. 반대쪽 신선대의 상고대는 때 아닌 봄꽃으로 야단법석이다. 멀리 지리산 주능선이 조망된다. 시무지기갈림길을 지나 규봉암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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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눈 맞아 더욱 붉어진 명감나무 열매가 신부의 루비 보석 반지 같다.
암자는 단출하다. 거대한 바위기둥들이 병풍을 둘러쳐 암자를 품었다. 산과 암자가 함께 어우러진 수승한 절경은 신이하고 경이로워 탄복할 만하다. 정교하게 깎고 다듬은 옥 같은 바위들은 사람이 흉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툇마루에 앉는다. 지붕의 눈 녹은 물이 처마에서 떨어진다. 연신 떨어져 얼음을 쫀다. 물이 언제 저렇게 부리를 벼렸던가. 날카로운 부리 끝에서 아침햇살이 튄다.

“방으로 듭시다.”

어느 인연에서 튀어 오른 말일까. 스님을 따라 안으로 든다. 밤새 내린 흰 눈 맞은 명감나무 열매처럼 미소가 희붉다. 손수 따라주는 차의 향기가 방안에 퍼진다. 차향보다 깊은 무등 스님의 향훈이 이 맘에서 저 맘으로 오간다. 맑아서 보이고, 깊어서 깊은 곳에 스민다. 무등은 어떤 세상인지요? 상중무불 불중무상(相中無佛 佛中無相), …….

이제, 공양시간이다. 우리 고유의 전통과 손맛이 밴 청국장이 일품이다. 스님께서 직접 담근 것이라 한다. 행자 시절 3년 넘게 장불재에서 모든 것을 직접 지고 나른 어느 날 은사 스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더란다.

“산 하나 가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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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일으키며 설원을 달리는 백마능선의 준마는 어디로 질주하는가.
 
 
무등의 언덕 장불재와 거암의 입석대

암자를 나와 장불재로 향한다. 자기가 직접 닦은 터 위에 삶은 지어져야 한다. 그것이 마땅하다. 평등한 세상이다. 그 평등한 무등의 세상을 보러 가자.

지공너덜을 지난다. 아무렇게나 부려져 있는 것 같은 각양각색의 돌들이 산재해 있다. 서로 맞대고, 이어지고, 받치고, 교묘히 맞물려 덜컥거리지 않는다. 우리 사는 세상이 이래야 하지 않겠는가. 사회적 관계 속에서 이해타산이 없을 리 없다. 어떡하랴. 조금씩 양보하며 나누고 공유할 때 덜 삐걱거리거나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서로 다치는 일이 적을 것이다.

장불재에 도착한다. 완만한 언덕, 길과 길이 교차되는 곳이다. 사람과 사람이 해후하는 곳이다. 산과 세상을 보는 곳이다. 눈을 들어 멀리 본다. 흑과 백의 세계다. 두 색이 어울려 이보다 더 극적인 명장면을 연출하는 풍광을 본 적이 없다. 흰색과 검은색을 섞으면 회색이 된다. 이론의 빛깔이 그렇다고 괴테가 말했던가.

그러나 여기서는 회색이 아니다. 색이 아니라 순정한 무등의 빛이기 때문이다. 빛은 진실이기 때문이다. 진실은 회색이 아니다. 눈부신 상아와 흑단으로 만든 피아노 건반으로 ‘겨울 나그네’와 같은 클래식이 연주되는 분위기다. 또한 다시 보면 거석의 돌기둥은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웅장한 모습이다.

“좀더 멀리 봐주십시오. 역사란 것은 정확하게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멀리 보면 보입니다. 눈앞의 이익을 좇는 사람과 대의를 좇는 사람이 있습니다. 대의만 따르면 어리석어 보이고 눈앞의 이익을 따르면 영리해 보이지만, 멀리 보면 대의가 이익이고 가까이 보면 눈앞의 이익이 이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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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떠받친 입석대 거석의 돌기둥마다 우담바라 눈꽃이 피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곳 무등산에 올라 했던 산상연설 일부분이 소개되어 있다. 아, 다시 읽어도 좋다. 저 입석대처럼 보고 또 봐도 참 좋다.

장불재에서 입석대를 향해 오른다. 길 초입의 구상나무 숲을 지난다. 서양에서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 때 쓰는 나무다. 하지만 지구온난화로 인해 위기에 몰리고 있는 처지가 안타깝다.

해발 1,017m의 입석대에 닿는다. 7,000~8,000만 년 전 중생대 백악기에 화산재가 굳어 형성된 석영안산암질응회암이 냉각수축과정에서 만들어졌다는 주상절리대다. 천연기념물 제465호다. 이러한 이론적 설명은 입석대의 아름다움을 이해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명작은 늘 이론과 해석 너머에 있다.
 

겨울 백미의 승경 눈꽃 핀 서석대와 중봉

입석대를 지나 서석대로 향한다. 내려다보는 드넓은 산자락이 산호 숲이다. 건너편 낙타봉에서 안양산으로 이어진 백마능선의 상고대는 백마의 갈기 그 자체다. 어디를 보아도 세계는 무결하고 눈이 부시다.

승천암을 지나 서석대에 올라선다. 해발 1,100m다. 우리가 오를 수 있는 실제적인 정상부이다. 정상은 천왕봉(1,187m)이다. 그러나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 군사기지다. 일 년에 몇 번 개방하는 날에만 오를 수 있다. 정상은 천왕봉, 지왕봉, 인왕봉 세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옛 사진과 비교해 보면 그 모습이 많이 다르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주상절리들이 상당부분 훼손되었다는 뜻이다. 아, 생채기가 많은 우리 산하여! 그래도 세세년년 무궁하고 창성하여라.

서석대에 서면 광주시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빛고을 광주, 그 이름 또한 이 무등산이 뿜는 숭고한 빛으로 더욱 길이 빛날 것이다. 다시는 그 무엇도 우리를 억압하지 못할 것이다. 빛은 어떤 어둠에도 굴복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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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람은 길을 만들고 길은 사람을 만드는’ 중봉으로 가는 길 같이 걷자. 2 무등산 중봉에 서면 차별도 억압도 없는 환한 무등의 세상이 보인다. 3 가보면 안다며 눈 덮어쓰고 꿋꿋이 방향 알리는 이정표, 신념이 길이다.

천왕봉 정상에서 좌측으로 흘러내린 산의 사면을 따라 형성된 광활한 눈꽃 세계가 압권이다. 설국이요 동화와 요정의 나라다. 비쳐드는 오후의 햇살에 이야기는 반짝이고, 우리 모두의 마음은 동심으로 돌아간다. 이러한 심정적 세계는 계절과 관계없이 미당의 시 ‘무등을 보며’로 이어진다.

‘목숨이 가다 가다 농울쳐 휘어드는/ 오후의 때가 오거든/ 내외들이여 그대들도/ 더러는 앉고/ 더러는 차라리 그 곁에 누워라’

시간적으로 지금이 그때다. ‘어느 가시덤불 쑥구렁이에 놓일지라도 우리는 늘 옥돌같이 호젓이 묻혔다 생각할’ 일이다. 허나 이곳 무등산의 옥돌 주상절리들은 묻히지 않는다. 더욱 돌올하고 올연하여 빛날 뿐이다.

서석대 전망대에 당도한다. 저것을 무엇이라 표현해야 할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깎아 맞춘 거대한 옥들의 경연장이다. 드맑은 청기를 내뿜는 흑수정병풍이다. 이 땅에 맡겨놓은 하늘의 옥쇄다. 그러고 보면 차례로 둘러본 광석대, 입석대, 서석대는 그 어떤 극찬의 말도 찬사가 아니다. 상대적으로 서석대는 가장 높은 위치에 있고, 햇빛의 영향을 덜 받아 눈꽃이 늦게까지 유지되고 있는 것도 큰 매력이 아닐 수 없다.

중봉을 향해 내려간다. 깨끗한 발자국들, 눈은 우리의 무게를 받아내며 길을 명확히 드러낸다. 억새와 상고대가 어우러진 중봉으로 이어지는 길이 참으로 아름답다. 그래, 아름다워서 왔다. 내가 네게 가고, 네가 내게 왔듯이 이 산에 왔다. 우리가 이 땅에 온 이유가 분명해지는 무등의 긴긴 산길.
출처 | 월간산 568호
등록일 : 2017-03-09 14:07   |  수정일 : 2017-03-09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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