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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첫 매화, '소학정 매화'를 아시나요!

지리산 시인 이원규의 山房閑談

글·사진 | 이원규 시인

지난해 이사를 하고 겨우내 40년 된 집을 수리했다. 지리산에 깃들어 여기저기 떠돌며 19년 동안 살다가 마침내 섬진강 건너 백운산 자락의 광양시 다압면 외압마을에 둥지를 틀게 됐다. 그 유명한 매화마을이 가깝지만 비교적 한적한 마을의 외딴집이다. 주소지는 전남 광양시지만 생활권은 여전히 섬진강 건너 경남 하동군이다. 소장수가 살던 집인데 대문 입구에는 토종매화 세 그루가 서 있고, 집 뒤에는 대봉감나무가 일곱 그루 정도 둘러싸고 있다.

섬진강이 바로 내려다보이는 곳에 살다가 섬진강과 눈높이가 비슷한 곳에 자리를 잡고 보니 마음은 오히려 차분해졌다. 처음에는 어색하기도 했지만 마당 바로 앞의 너른 매화나무 밭과 더불어 안정적인 구도의 새 집에 잘 적응한 셈이다. 멀지도 않고 너무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 지리산과 섬진강이 있으니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사실 풍경 좋은 곳은 거친 바람을 피할 수 없는 법, 전망 좋은 집은 꼭 그만큼의 태풍과 북풍한설을 받아들여야 한다.

겨우내 집수리를 했다. 날씨 좋은 여름과 가을에는 베짱이처럼 놀다가 한겨울이 돼서야 여전히 어색한 ‘텃새’의 둥지를 고쳤다. 모처럼 노가다를 하려니 온몸이 삐걱거렸다. 사실 20대 중반의 혈기왕성할 때는 ‘대중 속으로!’를 외치며 지하 700m 막장에서 탄을 캐던 후산부였다. 그 시절을 생각하면 ‘심심풀이 땅콩’ 수준이지만 문제는 그때보다 체력이 현저히 떨어졌다는 것이다.

대문 입구의 외양간을 개조해 사랑방으로 만들고, 두 칸 창고의 벽을 머물고 이름하여 섬진강 미니갤러리 겸 큰 사랑방으로 8평 정도의 ‘예술곳간 몽유(夢遊)’를 만들었다. 본체를 제외한 창고의 슬레이트지붕을 걷어내고 패널 지붕으로 바꿨다. 늘 그렇듯이 집수리 공사는 예상보다 더 오래 걸리고 더 많은 돈이 들어갔다. 선후배들이 많이 도와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두고두고 갚아야 할 것들이 더 많아진 셈이다.

지난해 성탄절 오후에는 집수리 노가다를 잠시 멈추고 연극을 보러갔다. 지리산의 자랑인 구례군민극단 마을(대표 이상직)의 ‘여인숙 사람들’이었다. 우리네 삶이 늘 그렇듯이 삼류인생들의 슬프면서도 웃기는 ‘희비극의 교착지’, 후진 여인숙의 일상을 그린 작품이다. 대학로에서 극단을 운영하다 구례로 귀촌한 안치선씨가 직접 쓰고 연출했다. 6년 전에 귀농한 극단 마을의 대표 이상직씨 또한 백상예술대상 남자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한 실력파다. 2013년 섬진강변 구 유곡초등학교 운동장에서 그의 결혼식 사진을 찍은 적이 있는데 이제야 그 사진을 인화해 선물했다.

그런데 극단 마을의 ‘여인숙 사람들’, 이 작품의 주연배우인 고상철씨가 바로 우리 집 수리의 ‘노가다 팀장’이다. 낮에는 노가다를 하며 생계를 꾸리고, 밤에는 연극 연습을 하는 ‘노동예술가’인 것이다. 구례 출신인 그가 화개면으로 귀촌한 후배와 더불어 한 달째 창고 두 채의 지붕을 새로 덮는 등 낮은 일당만 받으며 헌신적으로 도와주었다. 일 자체를 즐기며 꼼꼼하게 일을 하는 스타일이다. 한 달 넘게 공사했지만 큰소리 한 번 내지 않고 조곤조곤 일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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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예술가’ 화가 몽피(夢彼) 김경학씨. 우리 집의 섬진강 미니갤러리 ‘예술곳간 몽유’를 만들어 주었다.

입산 20년 만에 마련한 텃새의 둥지 수리

그런데다 멀리 전남 나주에 터를 잡은 한국화가 몽피(夢彼) 김경학씨가 제자들을 데리고 와 ‘예술곳간 몽유’를 디자인하는 등 막일을 마다하지 않고 도와주었다. 김경학씨는 화가이자 설치미술가, 건축가인 멀티 플레이어다. 그 유명한 ‘섬진강 조망 1번지’인 구례 오산의 사성암의 가파른 절벽 건축을 설계 시공한 것도 바로 그다. 언제나 그는 제자들을 ‘노예’라고 부른다. 처음 들을 때는 오해의 소지도 있지만 ‘노예’라는 말이 ‘노동예술가’의 준말이라는 것을 알고 나면 금방 이해가 된다. 화가 몽피와 어설픈 시인이자 사진가인 몽유야인이 만난 셈이다.

노동과 예술의 경계를 무너뜨린 ‘노예들’, 연극배우 고상철씨와 화가 김경학씨의 노고로 40년 된 누옥이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사진은 조금 더 마무리한 뒤에 보여 줄 것이다. 지리산 입산 20년 만에 처음으로 겨우, 어쩔 수 없이 텃새의 둥지 하나 마련하는 데 참으로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고 있다. 이 집에 얼마나 오래 살지는 모르지만 갚고 갚아야 할 빚이 너무나 많아졌다. 일단 매화꽃이 절정으로 피어날 때 조촐한 잔치 한마당 벌여 술 한 잔이라도 내놓을 생각이다.

집수리를 하다 보니 한 해가 어떻게 가고 어떻게 왔는지 경황이 없었다. 마당 수돗물이 얼고 페인트 물통과 시멘트 미장 칼에도 얼음이 겹겹 날을 세웠다. 모처럼 안방 아궁이에 군불을 지폈다. 마른 매화나무 가지가 불꽃 향을 피우며 타오르니 한 사흘쯤 봄을 앞당기는 듯했다. 그동안 사진을 찍을 새도 없었다. 행여 카메라에 곰팡이라도 필까봐 해가 지기 직전에 집수리 노가다를 잠시 멈추고 모터사이클을 타고 바닷가로 내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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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예술가’ 연극인 고상철씨가 주연으로 출연한 구례 마을극단의 연극 ‘여인숙 사람들’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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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 1일 새해 일출을 하동군 중평항에서 새 아침으로 맞았다.


경남 사천시문화예술회관, ‘시담시담(詩談時談) 총결산 콘서트’에도 가야 했다. 삼천포 실안해변을 지나는데 막 노을이 지고 있었다. 모터사이클을 멈추고 막바지 노을의 용광로 속에 내 몸을 밀어 넣었다. 지난 한 해의 사연들이 후끈 달아올랐다. 일일이 거명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 고맙고 고맙다는 말밖에 더 이상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지난해 연말에 열린 촛불문화제는 탄핵정국답게 ‘송박영신(送朴迎新)’이라는 유행어를 남겼다. 나는 전남 구례에서 열리는 촛불문화제에 다녀왔다. 시낭송을 해달라는 주최 측의 부탁을 받고 참으로 오랜만에 행사 낭송시 ‘몰라요, 정말 모릅니다’라는 꽤 긴 시를 썼다. 구례경찰서 로터리에서 시를 낭송하다 보니 격세지감이라는 말이 실감났다. 반가운 친구들과 가볍게 술 한 잔 하고, 이른 새벽에 일어나 남해안으로 일출을 보러 달려갔다.

꽃이 피고 지듯이 날마다 해는 떠오르고 또 진다. 2017년 새해 첫날, 그래도 남다른 날이니 해발 0m 가까이 바닷가에 나가 일출을 보았다. 하동군 중평항에도 새해 일출은 장엄하게 떠올랐다. 세상은 여전히 아수라지옥이지만, 여여(如如)하고 여여했다. 언제나 아닌 것은 아니고, 맞는 것은 맞는 것이다. 때로 변수가 있겠지만 뭔가 복잡할수록 사기에 가까운 법, 탄핵의 새 태양이 떠오르는 것은 순리다. 너무 오랜 역천(逆天)의 날들을 지나 이제 겨우 상식과 순천(順天)의 날들이 다가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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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첫 매화, 소학정 매화가 1월 초부터 꽃을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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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사천 실안해안의 해 뜨기 직전의 바닷가 풍경.

 
섬진강 매화 어김없이 1월 초 꽃망울 터트려

옛말 한철골박비향(寒徹骨 撲鼻香)을 되새기는 날들이다. ‘뼈를 깎는 추위를 견디고 나서야 코를 찌르는 향기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한겨울 추위 속에서도 산과 들에는 언 땅을 뚫고 복수초(福壽草)가 피어나고 매화 꽃망울이 부풀어 오른다. 하지만 올 겨울에는 섬진강에 눈다운 눈이 내리지 않았다. 봄맞이 집단장이 자꾸 늦어지는 바람에 올해는 그 산 그 숲속의 얼음새꽃에게 눈인사도 못 했다. 지난 몇 년 동안 애를 쓰다가 운 좋게 찍은 설중(雪中) 복수초 사진들을 들여다보았다. 다시 그날처럼 심장이 뛰었다. 복수초의 우리 이름인 얼음새꽃, 눈새기꽃도 좋지만 나는 ‘눈 속에 피는 연꽃’ 설연화(雪蓮花)라는 별칭이 더 좋다.

사실 언제부턴가 야생화를 찾아다니는 일들이 시들해졌다. 6년 넘게 미친 듯이 전국의 산하를 헤매며 온갖 야생화들을 만나고 또 만났다. 야생화를 만나면서 ‘10년 3만 리 도보순례’의 후유증, 무너진 건강을 온전히 회복했다. 꽃도 보고, 건강도 되찾고, 사진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런데 가면 갈수록 야생화를 찾아다니는 일이 자꾸 죄를 짓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위기감에 직면했다. 귀하디귀한 멸종위기 야생화일수록 더 그러했다. 야생화 사진을 찍으러 온 이들이 함부로 짓밟고, 꺾고, 캐어가는 일들을 자주 목격한 것이다. 꽃에게 위로 받기는 고사하고 상처 받는 일이 잦아졌다.

나 또한 알게 모르게 많은 상처를 주었을 것이다. 사진 인구가 늘어가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지만, 널리 알려진 풍경사진 장소도 마찬가지다. 천박한 자본주의식 욕망의 무한경쟁이 아름다운 야생화와 자연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었다. 그래도 스스로 야생화가 되려는 사람들이 있듯이 국민이 국민으로서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당당하게 촛불을 드는 이들이 있으니 이 얼마나 다행인가. 귀하고 돋보이는 한 송이 꽃을 모시고 숭배하기보다 좀 못나고 흔하더라도 스스로 한 송이 야생화로 피는 것이 더없이 중요한 일이 아닌가. ‘내가 먼저 꽃일 때 비로소 너도 꽃이 된다’는 것을 절감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섬진강 첫 매화는 피었다. 지난해에도 1월 1일 전후부터 꽃을 피우더니 올해도 섬진강변 소학정(消鶴亭) 매화가 1월 초부터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우리 집에서 3km쯤, 섬진강을 거슬러 올라 매화마을을 지나면 소학정마을이 있다.

‘학이 노니는 정자’ 소학정의 매화가 피면 비로소 남해 바다에서 황어가 몸을 풀며 섬진강을 거슬러 오를 준비를 하고, 주변의 매화나무들도 슬슬 기지개를 켜다가 한 달 뒤쯤이면 가지마다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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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속에서도 꽃은 피어난다. 설중 복수초, 설연화(雪蓮花)라고도 부른다.


봄 매화는 2월 말 3월 초가 절정

다사마을과 하동공원의 홍매도 피고, 악양 최참판댁 인근의 몇몇 나무도 꽃을 피웠지만 ‘섬진강 첫 매화’의 명예는 언제나 소학정 큰 매화나무가 아닐 수 없다. 섬진강 첫 매화를 보면서 매일생한불매향(梅一生寒不賣香)이라 ‘매화는 일평생 춥게 지내도 그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말을 깊이 되새겼다.

이제 우리 집 대문 앞의 토종매화 두 그루도 조만간 뒤를 이어 팝콘처럼 피어날 것이다. 마음이 바빠졌다. 두 그루 토종 매화꽃이 피기 전에 집수리를 마무리해야겠다는 계획 때문이다. 하지만 매화가 피었다고 벌써부터 발 동동 구르며 마음 졸일 필요는 없다. 아직은 겨울, 이제 시작이기 때문이다. 소학정 매화가 먼저 피었다가 얼고 얼다가 다시 피는 선발대 역할을 자처하고 있으니 이제부터라도 봄맞이 준비를 슬슬 시작하면 된다. 사실 제철의 봄 매화는 2월 하순부터 3월 중순까지가 절정이기 때문이다.

겨울이 한발 더 물러가는 뜻으로 모처럼의 큰 한파가 지나갔다. 이른 아침, 카메라를 들고 섬진강 첫 매화의 안부를 물으러갔다. 봄의 길목에서 첨병의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 소학정 매화가 얼고 얼어 조금씩 빛이 바래고 있었다. 일찍 핀 꽃송이 송이들이 물러나고 한 닷새 정도 지나면 다시 뒤를 이어 다른 꽃망울들이 환하게 피어날 것이다.

매화를 찾아오는 새들을 찍어보려고 무덤가 바위에 몸을 숨기고 세 시간 동안 잠복했다. 딱새 부부도 찾아오고, 참새들도 들락거리고, 이따금씩 직박구리도 날아들었다. 하지만 카메라만 들면 귀신같이 날아가 버리는 바람에 아예 땅바닥에 주저앉아 호시침침 기회를 노렸다. 조류 사진가도 아니고 참 어정쩡한 포즈였다. 지나가던 동네 할머니가 다가와 “거그서 뭐하요?” 하고 말을 걸었다. 우물쭈물 카메라를 보여 주며 민망한 웃음을 건네는데 바로 그때 직박구리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후다닥 ‘석양의 건맨’처럼 잽싸게 셔터를 눌렀지만, 뭐라고 뭐라고, 두어 번 울고는 날아올랐다. 초점이 맞은 사진은 단 두 컷뿐이었다. 그때서야 할머니는 ‘별 미친 놈 다 보겠다는 듯이’ 허허 웃으며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직박구리는 다시 오지 않았다. 이따금 딱새 부부가 날아왔지만 아직 매화가 피어나지 않은 가지에서만 놀았다. 집에 돌아와 사진을 확인해 보니 직박구리가 입을 크게 벌린 채 울고 있었다. 실은 우는 게 아니라 누군가를 애타게 부르거나 “오지 마라, 여기 사람이 있다”고 소리치고 있었을 것이다. 새들에게는 여전히 미안한 일, 많이 아쉽지만 그래도 ‘매조도(梅鳥圖)’ 한 장을 저장했다.

돌이켜보니 새들도 제 할 말 다 하고 사는데 할 말 제대로 못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시절이다. 언제나 국민들은 갑이 아니라 을과 을들의 세상! 그런데 갑을 자처하던 무리들이 갑자기 입을 닫고 도대체 아무 것도 모른다고 한다. ‘아몰랑’과 ‘모르쇠’들이 한 나라를 주물러놓고 여전히 닭발, 오리발만 내밀고 있다. 하지만 매화나무를 찾아온 직박구리도 이미 다 알 것이다. 이제 매화꽃들이 본격적으로 피어날 때가 됐다.
출처 | 월간산 568호
등록일 : 2017-03-09 09:56   |  수정일 : 2017-03-09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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