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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N |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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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박정민의 '오사카에서 보낸 하루'

글 | 박정민 배우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오사카는 한 집 건너 한 집이 맛집이기 때문에 굳이 맛있는 곳을 찾아다닐 필요도 없고, 오히려 맛있다고 소문난 곳은 사람이 많아서 시간만 버리기 일쑤다. 그래서 보통 한적한 골목에 있는 식당에 들어가서 밥을 먹곤 한다. 어느 날은 한 조그만 식당에 들어갔더니 여직원분이 나를 보며 씨익 웃는다. 내가 일본에서 약간 먹히는 스타일이라고 얘기는 들었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웃어줄 줄이야. 그래, 좋다, 기분이다. 오코노미야키 하나와 닭꼬치 세 개와 생맥주 한 잔을 호탕하게 주문했다. 그와 동시에 손님이 또 한 명 들어오는데 그녀가 그를 보고 씨익 웃는다. 그다음 손님에게도 씨익 웃는다. 아… 원래 ‘웃상’인 모양이다. 나는 일본에서 약간 호구 잡히는 스타일이었나 보다. 하나 남은 닭꼬치를 들고 나오는 내 뒷모습에 대고 그녀는 또 오라는 말을 건넸다. 안 올 거다. 옆집 갈 거다.


해가 지고 난 뒤의 도톤보리 강가는 낮보다 반짝인다. 바람이 선선해서도 아니고, 맥주가 맛있어서도 아니다. 운이 좋으면 강변에서 열리는(그다지 유명하진 않지만 귀엽기는 한) 아이돌들의 미니콘서트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정말 반짝이는 도톤보리라고 할 수 있겠다. 슬며시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강 반대편에서 귀여운 아이돌이 춤을 추고 이쪽에선 학생부터 50대 아저씨까지 약 백여 명의 남자들이 한마음으로 야광봉을 흔들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또래로 보이는 양복을 입은 청년 옆으로 가 섰다. 이내 말을 걸어온다.


“하이.”

“하이.”

“너도 우리 *** 팬인가 보다?”(라고 하는 것 같았다.)

“누군진 모르겠지만 귀여워서 와봤어.”

“뭐라고?”

“(야광봉을 가리키며) 야광봉 하나 줘볼래?”


그리고 우리는 그들의 공연이 끝날 때까지 야광봉을 힘껏 돌렸다. 말은 안 통해도 야광봉으로 마음이 통했고, 하얗게 불태운 후 같이 스티커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마음에만 담아두었다. 그리고 스티커 사진은 혼자 찍었다. 그 위에 형광색으로 적어 놓은 ‘신난다’라는 문장이 무릇 외롭게 느껴졌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바에 놀러 갔다. 오사카에 가면 꼭 한 번씩 들르는 술집인데 갈 때마다 직원이 바뀌고 그날도 역시나 처음 보는 직원이 있었다. 재일동포인데 근처 클럽에서 디제잉을 한다고 했다. 나는 한국에서 배우를 하고 있는데 아마 잘 모를 거라고 했더니, 정말 잘 모른다고 했다. 어쨌든 자기가 일하는 클럽에 놀러오면 잘 챙겨주겠다고, 재미있을 거라고 했다. 그래서 다음 날 바로 놀러 갔다. 들어가자마자 ‘뭐지, 이 한국 사람처럼 생긴 한국 사람은?’ 하는 눈들이 날 쳐다봤지만 어제 사귄 친구가 잘 챙겨준다고 했으니 굳게 믿고 있었다. 그 친구가 나타났다. 정말 디제이였다. ‘푸처핸접’과 ‘파리피플’을 연거푸 외치더니 사방에서 스모그를 뿌려댔다. 친구가 스테이지에서 내려오고 나는 그를 쫓아가 “정말 멋지던데?” 하고 말을 걸었다. 그 친구는 “고마워요” 하고 제 갈 길을 갔다. 마치 모르는 사람 대하듯 하길래 “나 어제 그 바에서”라고 구차하게 재차 말을 걸었다. 그제야 기억난 듯한 친구는 “어, 어, 잠깐만” 하고 다시 제 갈 길을 갔다. 그래 진짜 올 줄은 몰랐겠지. 여기 오겠다고 이만 원이나 쓴 내가 잘못이다. 그래도 나, 니가 ‘푸처핸접’ 하라고 했을 때 열심히 손 들었어.


터덜터덜 클럽을 빠져나왔다. 밤공기가 찼다. 싼 숙소를 잡으려니 중심가에서 좀 벗어난 곳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외투를 꽉 감싸고 숙소를 향해 걸었다. 쿵짝쿵짝 거리는 스피커 소리가 점점 멀어지고 내 앞으로 걸어가는 젊은 여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국말이었다. 외국에서 들리는 한국말은 여간 반가운 게 아니다.

“한국 분이신가 봐요.”

하고 말을 걸었다. 그 여인 셋은 놀라서 나를 쳐다봤다. 그러더니 그중 한 여자가 다리를 절더니 일본말로 내게 뭐라고 한다.

‘너네 분명히 한국말 하고 있었잖아.’

‘나 나쁜 뜻은 없었어. 그냥 반가워서 그랬어.’

‘다리까지 절 필요는 없잖아.’

‘그리고 너네도 내 스타일 아니야.’


온갖 생각이 스치며 말없이 그녀들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녀들은 일본어로 대화를 이어갔다. 그래 말을 건 내가 잘못이다. 내가 일본에서 약간 먹히는 스타일도 아닌데. 그렇게 셋은 제 갈 길을 갔고, 그들의 갈 길이 숙소 가는 길 방향이라서 나는 그 자리에 서서 셋이 사라지고 나서야 움직일 수 있었다.


비교적 자주 찾아서일까, 혼자서도 외롭지 않은 도시가 됐다. 물론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일본이고 오사카이기에 조금 신경이 쓰이기도 하지만, 결국 내 여행의 절반은 이곳이었으니까, 할 말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이전처럼은 아니지만 또 찾게 될 것이다. 그때는 또 어떤 외로움과 설렘이 기다리고 있을지 궁금하다. 그때는 나만의 야광봉을 챙겨 가야겠다.

박정민은 영화 〈동주〉 〈순정〉 〈오피스〉 〈신촌좀비만화〉 〈들개〉 〈전설의 주먹〉 〈파수꾼〉,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 〈G코드의 탈출〉 〈키사라기 미키짱〉, 드라마 〈안투라지〉 〈응답하라 1988〉 〈너희들은 포위됐다〉 〈사춘기 메들리〉 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했다. ‘언희(言喜)’는 말로 기쁘게 한다는 뜻의 필명이다.
등록일 : 2017-03-09 16:10   |  수정일 : 2017-03-10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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