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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언어입니다

《언어의 줄다리기》 펴낸 신지영 교수

고려대학교 국문과 신지영 교수가 한국인의 언어 사용 실태를 바탕으로 책을 냈다. 4년 6개월간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쓴 《언어의 줄다리기》. 신 교수는 “마음속 말을 조리 있게 잘 표현하는 것이 행복지수를 높이는 방법의 하나”라는, 국어학자의 사명감에서 이 책을 출간했다. 그는 호기롭게 제안한다. 인터넷 ‘언어의 운동장’에서 ‘언어의 줄다리기’를 겨뤄보자고, 함께 고민하고 함께 바꿔나가자고.

글 | 이근미 객원기자   사진 | 서경리 기자 2019-01-14 10:16

말을 하기 전 마음속에서 분주한 줄다리기가 시작된다. 무슨 말부터 시작할까, 지금 치고 들어갈까, 여기서 멈춰야 하나. 끌려가기도 하고 끌어당기기도 하면서 우리는 타인과 대화를 나눈다.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신지영 교수는 자신의 저서 《언어의 줄다리기》에서 말하기 전 복잡한 생각을 하는 이유를 “언어가 사회를 반영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제까지 괜찮았던 표현을 오늘부터는 동의하지 않을 수 있고, 습관적으로 사용한 언어의 속뜻을 뒤늦게 알아 사용을 머뭇거리기도 하죠. 기존의 가치와 질서에 도전장을 던질 때, 익숙하게 사용해온 언어의 문제를 지적하는 일이 흔합니다.”

《언어의 줄다리기》에서는 이렇듯 사회적 맥락을 두고 경기를 벌이는 언어들을 집어낸다. ‘대통령 각하와 대통령님, 미혼과 비혼, 미망인과 유가족, 여교사와 여성교사, 청년과 젊은이, 요즘 애들과 요즘 어른들, 자장면과 짜장면, 용천과 룡천’ 등이 그 예다.

“줄다리기를 벌이는 언어가 무수히 많습니다. 그중 사람들이 흔히 접한 언어, 다가가기 쉬운 언어, 논란의 여지가 있어서 그동안 거론돼 온 언어 등을 위주로 선정했어요. ‘쓰지 말자’까지만 했지 ‘왜 쓰면 안 될까?’를 깊이 다루지 않은 언어가 대상입니다. 더 깊이 논하고 적절하지 않다면 대안 표현으로 뭐가 좋을까를 연구했습니다.”

‘대통령’이라는 글자는 클 대(大), 거느릴 통(統), 거느릴 령(領)으로 구성되어 있다. ‘령’은 ‘다스린다’도 포함하고 있으니 대통령은 ‘거느리고 다스리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한마디로 민주주의에 어울리지 않는 호칭인 것이다. 신 교수는 대안으로 ‘대표’와 같은 중립적인 표현을 쓰되 대외적으로는 ‘대한민국 대표’로 부르면 어떻겠냐고 제안한다. 그런가 하면 남편이 죽고 홀로 남은 여자를 이르는 미망인(未亡人)은 아예 사용하지 말자고 한다.

“‘미망인’이라는 단어를 쓰지 말자는 얘기는 1978년 기사에도 나와요. 그런데 지금도 쓰고 있어요. 미망인은 ‘아직 죽지 못한 사람’이라는 뜻이어서 사실 대안 표현이 필요 없어요. 왜 그 집단에만 이름을 붙이려고 했을까요. 사용하지 않는 게 최선이죠.”


청년을 따라다니는 단어, 실업

그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만큼 ‘청년’이라는 단어에 특별히 관심이 많다.

“한 지인이 청년실업 얘기를 하는데 ‘왜 여학생은 배제했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청년 페르소나를 그려보라고 하자 다 남자만 얘기하고, 구글에서 청년을 검색해 봐도 배경이 남자더군요. ‘청년’이라는 말은 1910년대에 만들어졌고 애초에 남성만 지칭했어요. 최근에 여성까지 포괄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요. 그래서 청년의 대안 표현은 뭘까, 고민하다가 ‘젊은이’라는 표현을 제안했어요. 뭔가 고민해보자는 거죠.”

신 교수는 자료를 조사할 때 ‘청년’이라는 단어를 따라다니는 단어가 ‘실업’임을 확인하고 안타까움을 느꼈다고 말한다.

“IMF 관리체제 이전에는 ‘청년’과 ‘실업’이 함께 나타나지 않았어요. IMF 이후 청년 실업률이 높아지면서 이 둘이 연관 검색어로 뜨게 된 거죠. 2013년은 고용률이 최하면서 실업률이 최고였어요. 2014년에 헬조선이라는 말이 나왔고 이어서 수저계급론이 등장했어요. 그때쯤 학교에서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들리더군요. 학생들이 ‘우리는 잉여야’라고 했을 때 정말 가슴 아팠어요.”

말이 사회를 반영한다는 걸 청년이라는 단어가 증명한 셈이다. 신지영 교수는 여러모로 피곤한 청년들을 ‘요즘 애들’로 몰아가는 ‘요즘 어른들’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고 했다.

“요즘 어른들도 다 요즘 애들을 거쳐 왔잖아요. 어른은 성장이 다 된 사람이라는 뜻이에요. 10대 말, 20대 초에 성장이 끝나잖아요. 일정 연령이 되면 다 어른이에요. 높임말을 듣는 사람이 ‘내가 더 어른이구나, 더 어른다워야겠다’ 이렇게 생각하면 세대 간에 갈등할 이유가 없어져요. ‘꼰대’가 되어 지적하고 누리려 할 게 아니라 ‘더 어른’의 자세로 요즘 애들을 배려하면 좋지 않을까요.”

그는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수료를 앞두고 영국 런던대학에 가서 음성학으로 언어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음성공학과 언어병리학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국어학자로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게 뭘까’ 생각하다가 사람들이 자기표현을 잘 하도록 돕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마음속에 있는 말을 조리 있게 잘 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행복지수를 높여주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책도 그 일환으로 냈습니다.”


‘꼰대’ 대신 ‘더 어른’


그는 말을 잘하기 위해서는 어릴 때부터 훈련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 일환으로 2015년부터 중학생을 대상으로 ‘KU 다다다 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말하다 듣다 즐기다’를 모토로 내세운 다다다 대회에서 중학생들은 3분간 자신의 얘기를 자연스럽게 들려준다. 2018년 4회 대회 본선에는 90명의 중학생이 올라왔는데, 이들을 가르친 멘토는 고려대학교 학생들이다. 전문가들에게 교육을 받은 대학생 멘토단이 매주 토요일 2시간씩 4주간 중학생들을 훈련해 대회를 개최했다.

“멘토 대학생들도 말하기 대회를 해서 선발해요. 멘토의 할 일은 기다리는 거예요. 아이들이 자율적으로 원고를 쓰고 말을 잘할 수 있도록 지켜보는 거죠. 틀에 맞추지 않고 ‘이런 식은 어떨까’ 하고 이끌어주는 방식이에요. 대회 때마다 중학생들의 생각과 말솜씨에 깜짝 깜짝 놀라요.”

신 교수는 한글이야말로 음성학을 바탕으로 만든 훌륭한 문자라고 강조한다.

“한글은 탄탄한 이론과 체계를 가진 문자예요. 소리와 글자가 매칭이 잘 되어서 외국인들도 금방 배우죠. 그렇다고 ‘한국어가 훌륭하다’로 연결할 수는 없어요. 우리의 토론 문화가 발달하려면 ‘말하는 게 안전하다’는 인식이 우선돼야 해요. 잘못 말하면 찍히니까 말하기를 꺼리는 거죠. 말하기 달인이 되려면 말을 많이 해봐야 해요. 소통은 내가 아닌 상대방이 잘 알아듣게 말하는 겁니다. 상대방이 불편하다면 왜 불편한지 알아보고 고쳐야죠.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소통의 기본입니다.”

《언어의 줄다리기》에는 오래된 신문 기사, 논문, 각종 통계표까지 방대한 자료가 녹아 있다. 이를 바탕으로 이론을 세우고 조사 연구를 통해 책을 내기까지 4년 6개월이 걸렸다. 그는 이제 ‘인터넷 운동장’을 개설해 많은 사람과 언어의 줄다리기 운동회를 할 계획이라고 했다.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표현은 뭐가 있을까, 더 나은 표현으로 어떤 게 좋을까 다 같이 얘기를 해보자는 거죠. 유행어가 나타내는 사회의 모습, 언어의 변천 과정 같은 주제로도 연구해볼 생각입니다.”
톱클래스 2019년 1월호
등록일 : 2019-01-14 10:16   |  수정일 : 2019-01-14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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