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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 사표> 영주 작가 며느리직에서 사퇴하다

20년 다니던 회사도 사표 한 장이면 당장 그만둘 수 있다. 하물며 며느리 역할은 왜 그만둘 수 없나. 이혼하거나 둘 중 누가 죽어야 끝나는 건가. 그냥 ‘며느리’라는 옷만 벗고 싶은데…. 그래서 썼다, 사표.

글 | 박지현 여성조선 기자   사진 | 신승희

여릿한 몸 하나로는 버티기 힘들었다. 그야말로 혹독했다. 시집살이로 응급실까지 실려 갔으니 말 다했다. 작가 영주(53) 씨 남편은 대가족 장손이다. 시아버지는 9남매 장남이었고, 남편은 3남매 장남이다. 1989년 당시 결혼 얘기가 오가자 시부모님은 며느리가 당연히 시댁에서 함께 사는 거라고 했다. 직장도 당연히 그만두어야 했다. 시댁 바로 옆엔 시조부모 댁이 있었다. 그렇게 사실상 3대가 사는 집안의 맏며느리가 됐다.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그 동네는 조선시대 숙종 때부터 형성된 집성촌이었다. 집 밖을 나가면 촌수도 알 수 없는 친척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결혼 후 맞이한 첫 행사는 시할머니 생신이었다.

“이날 사달이 났어요. 새벽부터 손님이 몰려들어 상차림은 늦은 밤까지 이어졌죠. 정작 ‘내 밥’ 먹을 시간은 없었고요.”

“내가 있는데 뭐가 문제냐”고 하던 남편은 코빼기도 안 보였다. 어느 순간 눈을 떠보니 응급실이었다. ‘대략 그런’ 생활이 8년간 이어졌다. 우여곡절 끝에 분가에 성공했다. 그마저도 매주 금, 토, 일은 시댁에서 보내겠다는 조건을 달고서였다. 두 아이와 매주 빠짐없이 시댁을 찾는 동안, 남편은 주말 조기축구회에 나갔다. 불행했다. 내 이름은 어느새 지워지고 없었다. 아주 가끔 남편에게 “내가 왜?”라고 하면, “며느리니까”라고 했다. 영주 씨는 그저 ‘며느리’였다.
 

사표를 쓰다

서로 열렬히 사랑해서 결혼했다. 2년여 연애기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만났다. “그런데 왜 불행하지?” 영주 씨는 남을 탓하지 않았다. 대신 그 답을 스스로에게서 찾았다. 그는 “결혼해서도 여전히 아이처럼 의존적이고 무지해서 부당함이 뭔지 몰랐고, 삶의 문제들을 어떻게 부딪쳐 해결해나가야 하는지 몰랐다”고 했다.

스스로의 의존적인 모습과 무지에서 비롯된 순환 고리를 끊고 싶었다. 사표를 쓰기로 했다. 결혼 23년째 되던 해인 2012년 추석을 이틀 앞둔 날, 시부모님께 봉투를 내밀었다. ‘며느리 사표’라고 크게 적어서.

“버럭 화를 내실 거라 예상했는데, 의외로 덤덤하셨어요. 그러고는 ‘그래, 앞으로는 아무 때든 네가 편히 오고 싶을 때 오라’고 하셨죠. 죽을 각오로 내민 건데, 약간 허탈한 기분이 들더라고요.”

어쨌든 23년 만에 처음이었다, 명절에 시댁을 안 간 게. 그때부터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상상도 못한 삶이 펼쳐지더라고요. 이렇게 살 수 있는데, 왜 그전엔 몰랐을까. 새로 태어난 느낌이었어요. 맞다, 내 삶엔 내가 주인공이지… 하는 생각이 들었고요.”

내가 나를 존중하니, 사람들도 나를 존중했다. 기적 같았다.
 

내 삶 대물림하기 싫어

<며느리 사표>는 영주 씨의 ‘진짜’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다. 단순히 자전적인 내용만 담은 게 아니다. 심리학 이론까지 곁들여 나 자신 그리고 관계를 돌아보게 한다. 신선한 접근 방식에 출판 보름 만에 2쇄 6000부를 찍었다.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다. “속 시원하다. 큰 위안이 됐다”부터 “모든 여자들이 그렇게 순응하며 사는데 너만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려 하느냐”까지.

“제가 책을 통해 말하고 싶은 건 ‘며느리들이여, 사표를 쓰라’가 아니에요. 이런 삶도 있다, 이렇게 할 수도 있다, 정도의 위로예요. 제가 죽을 만큼 힘들 때 이 책이 있었다면 큰 위안을 받았을 것 같아요.”

사표를 쓴 이유는 또 있다. 엄마 삶이 자식에게 대물림될까 봐서다. 그에겐 20대 아들과 딸이 있다. 50대가 겪은 며느리의 삶을 지금 20대인 딸이 물려받을까 하는 걱정, 기우 아닐까.

“며느리 역할의 되풀이보다는 한 여성의 삶이라는 차원에서요. 저도 친정엄마를 보면서 ‘난 엄마처럼 안 살 거야’라고 했단 말예요. 20년이 지나보니까 엄마보다 더 희생하고 살았더라고요. 지금 제 딸을 보면 그래요. 사고방식이나 이런 게 저보다 훨씬 앞서 있죠. 그런데 몸은 사고하는 대로 살아지지 않더라고요. 아들과 딸이 지금 다 독립했는데, 같이 살 때는 부모님한테 손을 내미는 ‘생각’은 미안한데, 습관(몸)은 당연하게 의존하는 거예요. 자연히 엄마를 따라갈 수밖에 없겠다 싶었죠.”
 
사표라는 게 그렇다. 지금의 ‘불만’에서 쓰는 거지만, 황야에 던져지는 듯한 ‘불안’은 감수해야 한다.

“잃은 건 ‘좋은 며느리’라는 타이틀이죠. 그땐 모든 걸 부여잡고 있었어요. 며느리 역할, 엄마 역할, 아내 역할 모두 잘하고 싶었으니까요. 역설적이게도, 다 가지려니 모두가 결핍이었어요. 모두 버리고 나를 챙기자니 다 얻게 됐고요.”

영주 씨는 “보통 밀착을 친밀로 알고, 거리 두기를 소외로 안다”면서 “하지만 거리 두기가 오히려 사람을 더 가깝게 하고, 밀착할수록 멀어질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는 가족 모두가 온전히 1인분의 삶을 살길 바라요. 지나치게 밀착해서 서로 갉아먹은 몫 없이, 온전한 1인분의 존재들이 모인다고 생각해봐요. 관계가 더욱더 풍성하고 건강해지지 않겠어요?”

돌이켜보면 그렇다. 굳이 사표까지 안 내도 됐었다. 필사즉생의 심정으로, 일을 치르고 난 자만이 깨달을 수 있는 비훈이었다.

“좀 더 일찍 작은 문제들이 있었을 때, 그때그때 얘기했으면 충분히 받아들여졌겠는걸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좀 더 일찍 바꿀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해 23년간 견딘 건데 폭탄이 된 거죠.(웃음)”

영주 씨는 계획을 세우지 않고 산다고 했다. 계획대로 살아지지 않는다는 걸 잘 알아서다. 순종적인 맏며느리였던 그가 사표를 낸다는 건, 자신도 모르는 일이었다. 다만 앞으로도 1인분의 삶을 온전히 살아가려 한다. 참고로 시부모님은 아직 이 책을 못 보셨단다.
등록일 : 2018-04-23 10:40   |  수정일 : 2018-04-23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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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 2018-04-29 )  답글보이기 찬성 : 5 반대 : 2
앞서서 끌고가는 쇠스랑 자국에 뒤따라가는 아이들이 걸려서 넘어질 수 있음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함부로...
  ( 2018-04-24 )  답글보이기 찬성 : 5 반대 : 3
깨라. 때론 불행이 행복의 탈을 뒤집어쓰고 평안한 삷의 잔뿌리부터 갈가먹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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