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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계속 걷기로 했다’ 저자 고영분

GHT(그레이트 히말라야 트레일) 2165㎞ 매일 나를 설득했다

글 | 최준석 주간조선 선임기자

▲ 무구 지역의 닝마 갼젠 라를 넘는 고영분씨. photo 고영분
내 이름은 고영분(40). 고등학교 졸업하고 삼성생명에 들어갔다. 사무직이었다. 급여를 많이 줘서 좋았다. 본봉 그리고 여러 가지 이름의 보너스들. 하지만 행복하지 않았다. 일이 맞지 않았다. 금요일이면 등산 배낭을 메고 출근했다. 일이 끝나면 지리산으로 달려갔다. 20대 중반 매주 지리산 구석구석을 배낭을 둘러메고 다녔다. 20살 때 PC통신 유니텔산악회 가입하면서 산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지리산을 다니던 즈음, 미국인 셰릴 스트레이드가 2012년 펴낸 책 ‘와일드’를 읽었다. 상처받은 여성이 미국 태평양 해안을 따라 가는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 4284㎞를 혼자 걸은 기록이자, 자아 치유 이야기다. 책을 읽고 백두대간 종주를 결심했다. 백두대간은 한반도의 북에서 남으로 이어지는 등뼈를 밟는, 700㎞가 더 되는 코스다. 길게는 10박11일, 짧을 땐 2박3일씩 야영을 했다. 종주에 5개월 반 걸렸다.
   
   다른 사람과 같이 산에 가는 것도 좋다. 하지만 혼자 많이 갔다. 아무 말 하지 않고 김치찌개 끓여 소주 마시는 게 좋았다. 산에 왜 가느냐고? 묻지 말라. 답하기 어렵다. 그냥 좋다. 이유 없이 좋은 게 가장 좋은 거다. 산행기를 인터넷 블로그에 올렸다. 네이버 블로그에서 ‘길을 찾는 즐거움’을 입력하면 내 블로그가 나온다. 꼼꼼히 적었다. 트레킹 하는 사람들 사이에 블로그가 소문났고, 파워블로그로 선정되기도 했다. ‘거칠부’가 내 닉네임이다. 거칠부는 신라 정치인 이름. ‘삼국사기’ 열전에 세 번째로 등장하는 인물이다.
   
   월급으로 받은 돈, 쓸 일이 없었다. 명품백 산 적 없고, 화장품에 돈 쓰지 않았다. 등산용품만 샀다. 급여의 80%를 저축했다. 집도 마련했다. 부모는 등산에 매달리는 딸을 말렸다. 세 남매 중 장녀인 나의 뜻을 꺾지 못했다. 부모의 바람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그때까지 학교와 회사가 시키는 대로 살았다. 이제는 내 길을 가야 할 때다.
   
   직장생활 17년이 되었을 때 휴직을 했다. 휴직제도가 없다가 ‘창업준비 휴직’이 생겼다. ‘취미생활’을 위해 참고 다녔던 회사다. 헤어질 준비를 했다. 20년은 다니려 했는데, 일단 2년 휴직했다. 2013년 12월이었다. 첫 해외 산행을 하러 일본 알프스로 갔다. 그 이후 유럽 산에도 올랐고, 아프리카 킬로만자로, 남미 배낭여행도 했다.
   
   산에 가지 않을 때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경북 상주 시래기공장에서 시래기를 삶고, 하동에서 매실을 땄으며, 제주도에서 감귤을 땄다. 일이 좋았다. 매실 따기를 하다가 ‘무스탕’ 사진을 보았다. 무스탕은 ‘은둔의 왕국’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네팔 히말라야 중부 안나푸르나 북쪽에 있다. ‘삘’이 꽂혔다. 네팔에 가기로 했다. 이게 네팔 히말라야와 인연의 시작이다. 중국 티베트령 카일라스 성산(聖山)과, 무스탕을 가는 트레킹에 참가 신청을 했다. 2014년, 9명이 카일라스에 갔다. 카일라스는 힌두교와 불교의 성지다. 힌두교 신자는 카일라스에 시바신이 산다고 믿는다. 카일라스를 한 바퀴 도는 ‘코라’를 했다. 이어 차에 몸을 싣고 중국령 티베트에서 네팔령 무스탕으로 떠났다. 아, 무스탕. 더 멋진 곳은 없을 것이다. 다른 행성에 온 듯했다. 감전된 느낌이었다.
   
   2015년 네팔에 또 갔다. 에베레스트가 있는 쿰부, 그리고 랑탕 지역에 갔다. 동행자는 통상 네팔 히말라야 트레킹 카페에서 찾는데, 이때는 지인들과 갔다. 2년 휴직이 끝나갈 때 회사에 주저 없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다시 네팔로 갔다. 2016년에는 90일간 돌포, 다울라기리, 나네시 히말, 마나슬루, 안나푸르나를 돌았다. 이때 티베트 사원인 라첸 곰파에서 머리를 밀었다. 스님은 머리를 밀고 물을 데워주셨다. 머리칼이 한 올도 남지 않은 머리통은 사포처럼 까끌까끌했다. 충동적으로 뱉은 ‘머리를 밀자’였는데 순식간에 일이 벌어졌다. 삶의 짐이 더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차장

▲ ‘나는 계속 걷기로 했다’ 책 표지.
이때 새로운 목표를 발견했다. GHT. 그레이트 히말라야 트레일이라고 불리는, 부탄-인도-네팔-인도-중국령 티베트-파키스탄으로 이어지는 히말라야 산중에 난 4500㎞의 길이다. 이 중 네팔 구간만 1700㎞. 동쪽부터 칸첸중가, 마칼루, 쿰부, 롤왈링, 랑탕, 가네시히말, 마나슬루, 안나푸르나, 돌포, 무구, 훔라 지역을 잇는다. 한국인이 많이 찾는 곳은 안나푸르나와, 에베레스트가 있는 쿰부, 랑탕이다. 네팔 정부는 다른 지역에도 트레커가 많이 찾아,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되게 하고자 GHT 프로그램을 적극 홍보한다. 돌아보니 2016년까지 GHT 네팔 구간의 중간 길을 이미 걸었다. 동부의 칸첸중가에서 시작하는 구간과, 서쪽 끝의 돌포, 무구, 훔라 지역을 걸으면 GHT를 완주한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막대한 비용과 시간, 체력, 고산 적응, 정신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혼자 감당해야 했다. 단순한 트레킹이 아닌, 내 인생에 대한 투자였다. 내가 그 일을 해낼 수 있을까.
   
   2017년 4월 6일 나는 네팔 히말라야 동쪽 끝의 마칼루 코스를 걷고 있었다. GHT를 시작하는 칸첸중가에서 출발해 걷고 걸어 6180m 고개인 이스트콜을 앞두고 있었다. 내가 넘어야 할, 두 번째로 높은 고개였다. 단순한 트레킹이 아니라 등반 기술이 필요한 코스다. 때문에 많은 장비와 사람을 고용했다. 10명의 스태프를 거느렸다. 나 혼자 이 대군을 거느리는 비용을 부담했다. 스폰서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길에서 만난 서양 트레커들은 내가 혼자 GHT를 뛰고 있다는 말에 놀라고, 스폰서가 없다는 말에 다시 놀랐다. 11명의 스태프는 가이드1(메인), 가이드2(보조), 요리사, 요리사 보조, 짐꾼 6명이었다. 가이드는 전체 일정을 잡고, 가이드 보조가 등반을 안내한다. 먼저 가서 길을 뚫고, 필요하면 로프를 설치한다. 그래서 먼저 출발한다. 요리사 보조는 설거지 전문이다. 짐도 진다. 가이드 두 명과 요리사는 짐을 지지 않는다. 포터가 6명이나 되는 이유는 이렇다. 한 명은 내가 들고 간 카고백 한 개를, 한 명은 천막을, 한 명은 포터들 짐을, 그리고 나머지는 등반장비, 식량, 로프를 진다.
   
   이스트콜을 넘어가기 위해 분주하던 그날의 기록을 보자. 삼성생명 수첩에 당시 상황이 깨알 같은 글씨로 남겨져 있다.
   
   “5시부터 버너 켜는 소리가 들리긴 했다. 하늘은 깨끗하나 바람은 무척 심했다. 밤부터 텐트 펄럭이는 소리. 이러다 부서지는가 싶을 정도. 6시에 출발한다고 했는데 실제로는 8시가 다 되어. 여전히 바람 세다. 장비 착용… 2시간 만에 세르파니콜(베이스캠프) 아래 도착… 그러나 다시 내려왔다. 바람이 너무 불었다.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심하다. 하늘은 새파란데… 바람은 극에 달했다. 작은 바위 하나를 두고 모두 모여서 바람을 피했지만 역부족이다. 손과 발이 감각을 잃어가는 중이다. 300m 더 올라왔을 뿐인데 이렇게 춥구나, 이러다가 죽을 수도 있구나.… 결국 하산하기로 했다. 올라가지도, 내려갈 수도 없었다.”
   
   결국 실패했다. 로프 하나에 20명이 의지한 채 무조건 아래로 뛰었다. 바람이 옆에서 불어오며 우리를 크게 후려쳤다. 그때마다 멈추고 또 뛰기를 반복했다. 살기 위해선 빨리 내려가는 게 최선이었다. 짐꾼 한 명은 미처 짐을 메지 못하고 끌고 오고 있었다.
   
   GHT 네팔 구간을 한국인 최초로 걷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들였다.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서 가이드와 짐꾼을 구할 때는 “한국 여자가 GHT 한다고 돈을 많이 들고 왔다”는 소문까지 났으나 강행한 일정이었다. 이번에는 포기해야 했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이스트콜을 넘으려고 할 때 잠시 동행했던 프랑스인 2명은 내게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다. 나는 ‘컬처루트’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GHT 네팔 구간에는 높은 산길을 걷는 ‘하이루트’와, 낮은 산간 마을을 지나는 ‘컬처(문화)루트’가 있다. 나는 이 구간 ‘하이루트’ 중 일부를 포기했다. 이스트콜에 바람이 언제 가라앉을지도 모르고 짐꾼들이 동요했기 때문에 다시 시도할 수 없었다. 짐꾼들은 “죽을 뻔했다”며 투덜거리고 있었고, 나 자신도 모래 바람처럼 따가운 눈바람에 오른쪽 볼을 벤 듯 살갗이 온통 벗겨진 상태였다.
   
▲ 고영분씨(맨 왼쪽)와 그가 현지에서 고용한 가이드·요리사·짐꾼들. 고씨 오른쪽 볼이 눈보라로 상했다. 마칼루 지역 세두와에서 기념 촬영. photo 고영분

   결국 나는 살파 라를 넘어가는 컬처루트로 마칼루 구간을 통과했다. 이후 4일을 쉬었다가 네팔 히말라야 서쪽 끝 구간으로 가서 40일간 계속 걸었다. 여행은 2017년 7월에 끝났다. 모두 해서 2165㎞, 338만 걸음이었다.
   
   산길을 걷는 것보다는 사람이 힘들었다. 비용을 아끼기 위해 구한 동행자가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았다. 예컨대 처음에 돌포를 같이 걷던 60대 초반 한국 남자는 쉴 때마다 술을 마시더니 체력이 금방 방전됐고 가이드와 돈 문제로 싸웠다. 나의 일정에 영향을 주었다. 물론 나쁜 사람은 없다. 나와 잘 맞느냐 안 맞느냐뿐이다.
   
   내가 돈을 주고 고용한 가이드와 짐꾼도 다루기 힘들었다. 처음에는 잘 하는 듯했으나 일정이 길어지면 풀어져 밤새 술을 마시는 경우가 많았다. 다음 날은 일정을 제대로 소화할 수 없었다. 트레킹하면서 빨래하고 널고 개는 일은 꽤나 즐거웠다. 잘 말라가는 빨래를 보면서 상당한 위안을 받았다. 단 하루라도 휴식은 정말 중요했다. 적절한 휴식이 있어야 멀리 갈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살면서 휴식에 참 인색했다.
   
   걷다 보면 이런저런 생각이 요동칠 때가 있다. 20년도 지난 일이 슬그머니 기어나왔다. 어쩌라는 건지. 기억이란 무서웠다. 작은 머리통 안에서 일어나는 무수한 생각이 때로는 끔찍했다. 생각이 넘치다가도 고요해질 때가 있다. 한 차례 폭풍우가 지나가면 걷고, 먹고, 싸고, 자는 일에만 집중하게 됐다. 사람의 고민이란 다 거기서 거기라고 본다. 정말 위대한 고민을 하는 사람, 많지 않다. 내 고민이 더 커 보이지만, 다른 이들의 고민과 별다를 게 없다는 걸 알았을 때 고민은 하찮아진다. 나는 나 자신과 싸우기보다 설득하고 싶다. 내가 왜 이런 길을 걷고 이런 수고를 하는지에 대해 나를 설득하면 나도 알아듣는다. 내 안의 나는 나일 것 같지만 때로 내가 아니어서 가끔은 설득이 필요하다.
   
   7월에 모두 134일 일정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방송사가 찾아와 취재해 갔고 방송이 나갔다. 이후 출판사 몇 곳이 연락해왔다. 지인 소개로 궁리출판사와 계약을 맺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지난해 GHT를 뛰어야겠다고 해서 네팔에 간 게 2월 말일이니, 1년이 안 되어 책이 나왔다. 40세까지 책을 쓰는 게 내 버킷리스트에 있었다. 꿈을 이뤘다.
   
   2016~2017년 2년간 4500만원을 네팔 히말라야 GHT 횡단을 위해 썼다. 돈을 지나치게 쓰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나는 욜로족이 아니다. 또 여행책은 감성팔이라고 비판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감성을 팔지 않았다. 그런 말을 하는 이에게 묻고 싶다. 그 길을 걸어봤느냐? 그런 생각을 해봤느냐?
   
   내 인생에 히말라야가 있을 줄은 몰랐다. 국내 산행이 전부였고, 히말라야는 언제나 먼 나라 이야기였다. 그러던 내가 네팔 히말라야를 횡단했으니 모를 일이다. 헉헉대며 걷다가 뒤돌아보면 꿈 같은 설산과 빙하 호수, 계곡이 펼쳐져 있고, 그때마다 마음은 날개를 달았다. 30㎝쯤 되는 보폭이 하나둘 쌓여 몇십, 몇백, 몇천㎞까지 갈 수 있다는 사실은 놀랍다.
   
   앞으로도 10년은 트레킹을 더 다니려 한다. 이제 백수 5년 차다. 다음주 금요일(3월 23일)에 또 네팔로 간다. 85일 일정이다. GHT 구간 중 일부 못 간 곳이 있다. ‘하이루트’ 일부다. 이어 6월 27일부터 60일 예정으로 파키스탄에 간다. 이후 가을에 네팔 트레킹 65일이 예정되어 있다. 올해 트레킹에 3000만원을 쓴다. 동행자가 늘면서 비용이 좀 줄었다. 이제는 서양 사람처럼 요리사 동반하지 않고 간편식으로 음식을 해결한다. 고용하는 인원을 줄일 수 있다. 책 홍보를 위해 만난 주간조선 기자가 60대가 되어도 무스탕에 갈 수 있느냐고 묻는다. 60대 초반도 많이 다닌다. 천천히 이동하면 된다. 한국인은 트레킹 시작 초반부터 하루 20㎞ 이상 걸으려 한다. 서양인은 그렇게 많이 걷지 않는다. 그들은 오후 3시쯤 하루 일정을 마친다. 고산에 적응되면 괜찮으나 처음에 그래서는 안 된다. 사고 난다. 고산병으로 죽는 이유가 그렇다. 산악회장들이 자존심 내세워 무리하다 사고당한 것도 봤다. 자세한 이야기는 내 책을 읽어 보시길 권한다.
등록일 : 2018-03-23 14:35   |  수정일 : 2018-03-23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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