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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마뉘엘 카레르의 소설 <적>...자신의 일가족 살해한 어느 살인자의 실화

글 | 박미정 여성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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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마뉘엘 카레르의 <적>
임마뉘엘 카레르의 『적』
 
한 집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도착했을 때는 소방대원들이 시체들을 끌어내고 있었다. 회색 비닐봉지에 담긴 아이들의 시체는 참혹해서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다. 가족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남자가 있다. 바로 소설의 주인공, 장클로드 로망이다. 그는 의식불명인 채로 구급차에 실렸다.
 
장클로드와 절친인 뤼크는 그가 깨어나지 않기를 기도했다. 장클로드에게 아내와 아이들은 세상의 전부였다. 그가 의식에서 깨어난 후 맞닥뜨릴 현실을 그가 모르길 바랐다.
 
이튿날 뤼크는 경찰관으로부터 믿을 수 없는 말을 전해 듣는다. 부검 결과 가족들은 화재가 나기 전에 죽어 있었다는 것이다. 아내는 머리를 둔기로 얻어맞은 상처가 있고 두 아이는 총에 맞았다. 그게 다가 아니다. 수마일 떨어진 곳에서 두 구의 시체를 더 발견한다. 바로 장클로드의 어머니와 아버지였다. 그들 역시 총에 맞아 죽었다.
 
살해. 로망 일가는 살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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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클로드 로망

그만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80km의 거리를 두고 벌어진 한 가족의 몰살! 원한에 의한 복수극이 아니고서야 설명이 어렵다. 뤼크는 고래를 흔들었다. 로망 일가의 원수라고? 모두들 그 가족을 좋아했다. 만일 누군가 그들을 살해했다면 그건 분명 그들을 잘 모르는 사람의 짓이다. 경찰이 로망의 직업을 묻자 뤼크는 제네바에 있는 세계보건기구의 연구원이라고 설명했다. 경찰 한 명이 전화를 걸어 확인했지만 이상하다. 아무리 서류를 뒤져봐도 로망이라는 의사는 없다.
 
세계 보건 기구에서는 아무도 그를 모르고 있었다. 의사 협회에도 그는 등록되어 있지 않았다. 뤼크와 함께 공부했다는 의과대학 명부에도 그의 이름은 없었다. 의대 공부를 시작한 건 맞지만 2학년 말 진급시험을 통과하지 않았고 그 이후의 일은 모두 가짜였다. 그리고 이 살인사건에서 유일하게 그만 살아남았다.
 
자신의 일가족을 살해한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임마누엘 카레르의 <적>은 17년을 가짜 의사로 살며 가족과 주변 지인들을 철저히 속이다 자신의 실체가 밝혀질 위기에 내몰리자 아내와 두 아이, 그리고 자신의 부모를 무참히 살해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설은 로망이란 주인공의 어린 시절을 소급해 올라간다. 우울증으로 걱정과 근심이 많은 엄마 밑에서 자란 내성적인 로망은 엄마에게 근심을 끼치지 않고자 어릴 때부터 자기 내면을 철저히 속여 왔으며 거짓말로 엄마를 안심시켜왔다. 그 거짓말이 이후 눈덩이처럼 불어나 더 이상 자신이 감당할 수 없게 되자 더 이상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블랙홀처럼 모든 삼켜버린 괴물이 되었다는 섬뜩한 이야기다.
 
“그땐 아무것도 숨길 게 없었는데도 저는 슬픔과 괴로움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부모님은 제 말을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을 거고 플로랑스도 그랬을 겁니다. 하지만 전 말을 할 줄 몰랐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톱니바퀴에 빠져들자 한 번의 거짓말이 다른 거짓말을 낳고 그렇게 해서 일평생 거짓말의 악순환에 빠져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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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클로드로망과 그의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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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버린 집

희대의 살인자와 노련한 작가, 실제 만남의 기록
 
『적』은 1993년 1월, 프랑스 전역을 충격에 휩싸이게 했던 장클로드 로망의 실제 사건을 다루고 있다. 작가는 언론에 대서특필된 그의 기사를 보고 뭔가에 사로잡힌 사람처럼 그에 관한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작가는 범죄자에게 편지를 쓰고 재판에도 참석하여 범인의 행적을 그대로 추척해간다. 작가가 보기에 이 사건은 평범한 범죄가 아니었다. 작가는 그것을 자신을 넘어서는 어떤 힘에 의해 마지막 지점까지 내몰린 사람의 행위로 바라보았고, 그 끔찍한 힘이 뭔지를 드러내고자 책을 쓰게 됐다고 밝힌다.
 
법정에서 그의 오래된 친구, 뤼크의 말을 들어보자. “이렇게 말하면 바보 같겠지만, 그 친구는 아주 착한 놈이었어요. 그렇다고 해서 로망이 저지른 일이 아무것도 달라지진 않을 테고, 오히려 일을 더 끔찍하게 만들겠지만, 그 친구는 착했어요.”
 
장클로드 로망 자신도 이렇게 털어놓는다. 사회적인 측면은 거짓이었지만 감정적인 면은 진실이었다고, 자신이 가짜 의사이긴 했지만 진짜 남편이고 아빠였으며 마음 깊이 아내와 아이들을 사랑했고 그들 역사 자신을 사랑했노라고.
 
그렇다면 무엇이 그를 이토록 잔인한 괴물로 만들었던 걸까.
 
마음만 먹었다면 일이 이 지경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한 번도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지도 그러려고 시도하지도 않았다. 의사라는 자신의 가면을 벗어버린다는 것은 알몸보다도 더하게, 껍질이 벗겨진 채로 살아야 함을 뜻했기 때문일까. 결국 그는 마지막까지 자신을 지키고자 가장 사랑하는 가족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그는 감옥에 가서야 이렇게 고백한다.
 
“난 한 번도 이렇게 자유로운 적이 없었고, 삶이 이렇게 아름다운 적이 없었다. 나는 살인자고, 사회 안에 존재하는 가장 비천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하지만 지난 20년간의 거짓된 삶보다는 이게 더 견디기 쉽다”
 
자기애적인 서사는 감옥에서도 계속되고 있었고, 이는 주인공이 한평생 숨바꼭질해왔던 묵직한 우울증을 다시 한 번 피할 수 있게 해주었다.
 
임마뉘엘 카레르의 책을 통해 ‘과연 사람이란 무엇이고 이들의 삶을 떠받치는 토대는 무엇일지’ 생각해보았다. 우리가 굳건하다 생각한 삶의 토대가 얼마나 빈약한 것인지, 삶의 부조리 앞에 논리가 굴복하는 일이 우리 삶에서 얼마나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는지, 작품은 인간의 심연을 다시 한 번 깊게 바라볼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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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임마뉘엘 카레르
임마누엘 카레르Emmanuel Carrere
 
현재 프랑스에서 비평가들로부터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작가 중의 한 명인 엠마뉘엘 카레르는 1958년 파리에서 태어났다. 1986년 28살의 나이에 발표한 소설 『콧수염』으로 존 업다이크로부터 ‘멋지고, 번득이며, 냉혹한 작품’, 「르 몽드」로부터 ‘문학의 천재’라는 찬사를 받았으며, 몽상과 현실을 교묘하게 교차시키는 특이한 작가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겨울 아이>로 1995년 페미나상을 받으면서 전 세계 독자들에게 알려졌으며, 이후 클로드 밀러 감독의 동명 영화로 제작되어 칸 영화제 심사 위원상을 받기도 했다. 2000년에는 일가족을 살해한 실존 인물 장 클로드 로망의 심리를 파헤친 문제작 <적>(2000)으로 화제를 모았다.
등록일 : 2018-03-20 08:42   |  수정일 : 2018-03-20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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