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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살모사의 눈부심>, 죽음의 공포 속에서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글 | 박미정 여성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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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 제국의 술탄 즉위식

“누군가 소년을 흔들어 깨웠다. 그는 커다란 손아귀에 잡혀 큰 방으로 끌려갔다. 그곳에서는 숨 막히는 장면이 펼쳐졌다. 그의 형제들이 하나씩 올가미에 목 졸려서 죽어가고 있었다. 곧 소년의 목에도 올가미가 씌워졌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 놓여 있을 때 힘 있는 그의 어머니가 나타나 기적처럼 그를 구해주었다.”
 
형제들이 곁에서 죽어가는 걸 목격하고 자신도 죽음 직전에 겨우 살아난 소년, 그는 후에 세계의 4분의 1의 영토를 지배하는 오스만 제국의 술탄이 된다. 하지만 그 삶은 순탄치 않았다. 그날 소년의 눈에 각인된 공포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그를 괴롭혔다. 언제든 사형집행인이 자신을 덮칠지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 살아간다는 어떤 것일까. 소년의 영혼은 점차 나락으로 잠식해 들어간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얼굴은 더욱 창백해졌다. 그야말로 공포에 가득한 눈을 가진 살아 있는 주검이었다. 사람들은 한 번 죽음을 경험한다. 하지만 이 가련한 왕자는 수천 번 죽었다 다시 살아났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의 방으로 사람들이 들이닥친다.
소년은 드디어 죽음의 순간이 왔음을 직감한다. 하지만 이들이 들려준 이야기는 달랐다. 자신의 목숨을 쥐락펴락했던 형이 죽었다는 소식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를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단칼에 커다란 양을 두 동강 낼 만큼 포악하고 잔인한 형이 어떻게 죽을 수 있단 말인가. 새빨간 거짓말이다!” 소년은 귀를 틀어막고 고함을 질러댔다. 결국 형의 주검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야 이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의 눈에 분명 “형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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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살모사의 눈부심>
자, 누구부터 죽일까?
 
형의 뒤를 이어 술탄의 자리에 앉게 된 그는 전혀 딴판인 사람이 되었다. 그동안 억눌렸던 감정을 보상받기라도 하려는 듯 광기와 성욕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것이다.
 
“그는 가슴속 뿌리 깊은 어둡고 독성이 강한 앙금들을 날려버렸다. 그러곤 한 사람 한 사람을 살피면서 차가운 한마디를 던졌다. 자, 누구부터 죽일까?”
 
술탄은 마치 죽음의 비밀을 단계별로 음미하려는 듯 사람을 죽이기 시작했다. “죽어가는 사람이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을 포착하고 이를 어린아이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죽어가는 사람이 살아 있는 것보다 더 멋지고 신성한 일을 한다고 믿었다. 물론 목숨이 완전히 끊어지면 관심을 거두었다. 하지만 죽음의 순간만큼은 왕성한 식욕처럼 집착했다.”
삶은 어디서 끝나고 죽음은 어디서 비롯되는가. 몇 년 동안 죽음 앞에 서 있던 술탄의 가장 큰 관심사는 이것이었다. 한때 그는 창살 안에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미칠 지경이었다. 그러던 아이가 한순간 수백만의 목숨을 좌지우지할 수 있게 되자 사람을 죽이면서 희열을 느끼는 괴물이 되었다. 
 
동시에 전에는 죽음의 공포에 쫓겨 여자는 거들떠도 보지 않던 그가 술탄이 되고부터 발정 난 황소처럼 돌변했다. 궁녀가 수백 명이었지만 술탄은 만족하지 못했다. 어느 날은 제국에서 가장 뚱뚱한 여인을 찾아오라고 트집을 부렸다. 여기저기서 뚱뚱한 여자들이 몰려왔다.
 
하지만 술탄을 만족시키지는 못했다. 그러다 그가 찾던 여인이 이스탄불에서 발견되었다. 세상에! 그렇게 뚱뚱한 사람은 생전 처음이었다. 그 가련한 여자는 걸을 수가 없어서 들것으로 옮겨졌다. 술탄은 그 가공할 광경에 넋이 나갔다. 그날 이후 아름답고 가녀린 여자들은 더 이상 술탄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술탄은 죽음처럼 고요하고 제국을 채울 만큼 넓고 깊은 자궁 속으로 숨어들어갔다. 이제 그녀는 술탄이 유일하게 사랑하는 여자가 되었다.

권력의 덫에 빠진 인간이 만들어낸 비극
 
술탄이 애첩의 말에 좌지우지되면서 어머니를 무시하고 그녀를 유배시키려고까지 하자 황태후는 분노한다. 오스만 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인이자 대단한 야심가, 그녀는 술탄의 어머니다. 그녀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다른 사람과 권력을 나눠 갖는 것! 그녀는 애첩의 손에 놀아나는 아들을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애초 아들을 여자로부터 격리시키고 제국의 가장 교태 있는 미소년들을 침실로 보내 동침시키면서 여자들을 혐오하게 만들었던 그녀다. 동성애자였던 큰아들이 죽고, 뒤를 이은 작은 아들이 갑작스레 돌변하자 그녀로서는 뜻밖의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그녀는 아들을 하렘의 밀폐된 공간에 가두고 끝내 어린 손자를 술탄의 자리에 앉힌다.
술탄의 충직한 환관 슐레이만은 도저히 이 상황을 보고도 믿을 수가 없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세상의 4분의 1을 차지한 제국의 황제로 300여 명의 아름다운 후궁을 휘하에 두고 세상을 호령하던 황제가 하루아침에 몰락하다니….
하지만 상황은 황태후에게 녹록지 않게 흘러갔다. 손자의 어머니인 왕후가 자신의 경쟁자로 떠오른 것이다. 자신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뭐가 됐든 거침없이 제거해 자신의 권력을 지켜왔던 황태후는 어린 손자마저 죽일 음모를 꾀한다. 하지만 이 사실이 탄로 나면서 음모는 실패로 돌아가고 황태후는 끔찍한 최후를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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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행이 되었던 술탄의 형제 살해

“내 아들의 털끝 하나도 건드리지 마”
 
환관 슐레이만은 다시 자신의 전 주인을 술탄의 자리로 되돌릴 묘책을 생각해낸다. 바로 어린 아들을 죽임으로써 다시 예전의 영광을 되찾는 것이다. 지금 오스만 왕가엔 술탄의 아들들 이외에 다른 남자는 남아 있지 않다. 술탄의 형제들은 이미 오래전에 살해되었다. 이제 아이들을 제거하기만 하면 가문에 황제가 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렇게 되면 율법상, 감옥에 있는 술탄을 꺼내 다시 왕위에 올릴 수밖에 없게 된다. 이것이 슐레이만이 제시하는 술탄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밀폐된 공간에 갇혀 지난날 자신의 행적을 회고하게 된 술탄은 이제 예전의 술탄이 아니다. 그는 전혀 다른 길을 가기로 마음먹는다.
 
“목 졸려 죽는 아이를 본 적이 있나? 목에 감긴 비단끈이 조여지는데 자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른 채 죽어가는 아이들…. 순진한 갈색 눈이 어떻게 돌아가고 목구멍에서 흘러나오는 꺽꺽거리는 신음소리가 어떻게 숨넘어가는 소리로 변하는지, 허공을 향한 발이 어떻게 발버둥치는지 본 적 있어?”
 
“선조들이 아이들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 건 사실이야. 그러나 그 누구도 어린아이를, 죄 없는 자식을 죽이는 것이 어떤 건지 몰랐던 거야. 나는 내 친자식들에게 그런 짓을 할 수 없어. 내 목숨을 걸고 아이들의 생명을 구할 거야. 많이 생각했네. 손톱에 피가 나도록 밤새 벽을 긁어댔어. 쉬운 일인지 아나, 왕좌와 무덤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일이? 그렇지만 지금은 편해. 나는 결정을 내렸어. 절대 내 자식들의 털끝 하나도 건드리지 마. 이것이 나의 마지막 말일세.”
 
권력에 관한 알레고리, 『살모사의 눈부심』
 
터키 작가 줄퓨 리바넬리의 『살모사의 눈부심』은 17세기 오스만 제국의 왕궁과 하렘이라는 역사적인 무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권력다툼, 음모, 성적인 집착과 애욕을 파헤친 소설이다.

궁정이라는 권력이 응집된 장소에서 벌어지는 음모와 암투를 통해 세월을 거듭해 형태가 바뀔 뿐 계속해서 반복되는 권력의 본질을 섬뜩하리만치 현실감 있게 그리고 있다. 권력의 빛을 발견하고 불나방같이 그 주위를 맴도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본 축으로 권력이 인간을 어떻게 바꾸어놓고 그 권력의 힘이란 게 얼마나 가공할 만한 것인지를 한편의 훌륭한 서사로 보여준다.
 
책의 감금된 술탄은 후대 역사가들에 의해 서술되는 광인 술탄 이브라힘(재위 1640∼1648)을 실제 모델로 하고 있다. 당시 오스만 제국엔 술탄이 즉위하고 경쟁자인 형제를 살해하는 관습이 있었다. 형제 살해를 공식화한 메흐메드 2세의 뒤를 이어 메흐메드 3세는 술탄이 된 뒤 19명이나 되는 동생들을 같은 날 모두 처형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궁전에는 비명과 울부짖는 소리로 가득했으며 어린아이들마저 죽이는 처참한 광경에 모두들 경악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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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14세
‘문명화’의 정점, ‘궁정’을 통해 바라본 ‘인간의 양면성’
 
혈육을 살해하고 권력을 쟁취한 사례는 역사 속에서 무수히 등장한다. 어느 시대를 봐도 권력을 쟁탈하기 위해 죽고 죽이는 역사를 되풀이했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당시 궁정 귀족들과 왕족들은 소위 야만인과 구분되는 문명인 중의 문명인이었다.
 
노베르트 엘리아스에 따르면 “문명화는 매너의 세련화 과정인 동시에 본능적 충동의 억압과정이다. 인간의 본능적, 야만적 삶에 대한 혐오로부터 시작된 매너의 역사는 자기감정을 자제하고 혐오의 대상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어 왔다.” 우리가 흔히 야만이라고 부르는 것들의 총체가 사회에서 사라지고 그 자리를 문명화의 산물인 ‘매너’가 차지해온 것이다.
 
흔히 공손함, 순종, 세련된 예절과 감각의 섬세화 등의 행동양식으로서의 매너는 모두 궁정화의 산물이다. 궁정은 소위 매너의 집결지이다. 특히 루이 14세의 베르사유 궁은 문명화의 온상이자 매너의 학교인 동시에 매너의 모델이기도 했다. 권력의 맨 꼭대기 상층부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은 언어와 옷, 그리고 음식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위계와 신분에 알맞은 매너들을 익혔고 이를 과시했다.
 
동시에 궁정은 사회의 응집된 권력투쟁의 장으로서 권력을 쥐기 위해 자신의 친인척을 무참히 죽이는 참극이 초래된 장소이기도 하다. 조선 태종의 왕자의 난과 광해군의 영창대군 모살은 유명한 일화 중 하나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장본인인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나이 60에 얻은 적자를 쇼군으로 앉히기 위해 자신의 후궁과 그의 자식들을 모조리 죽이는 참사를 벌였다.
 
그런가 하면 잉글랜드의 엘리자베스는 이복언니인 메리 여왕의 눈을 피해 한시도 죽음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엘리자베스가 여왕으로 즉위하고 나서도 잉글랜드 왕위 계승권을 손에 쥐고 있었던 스코틀랜드의 메리 스튜어트 여왕을 견제하기 위해 엘리자베스는 오촌지간이었던 메리를 처형한다.
 
궁정은 고상한 취향과 세련된 매너가 살아 숨 쉬는 역사적 공간이면서 동시에 인륜과 천륜을 버리고 자행되는 잔인한 살육의 장이기도 했다. 『살모사의 눈부심』은 바로 이러한 역사적 아이러니를 가장 첨예하게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살모사의 눈부심』작가 줄퓨 리바넬리
 
터키의 작가이자 영화감독, 음악가, 문화예술가다. 1997년에 소설 『살모사의 눈부심』(원제:살모사의 눈에 비친 현란함, Engere in G z ndeki Kama ma)으로 ‘발칸문학상’을 수상, 터키 문학계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 책은 전 세계 30개국에서 번역 출간되었으며 스페인과 그리스, 독일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어 국제적인 찬사를 받았다. 2001년에는 장편소설 『행복』으로 터키의 최고 문학상인'유누스나디문학상'을 수상했다. 이외에도 ‘서독비평가상’과 ‘스페인국제가톨릭영화협회상', 터키의'올해의 음악가상', '올해의 영화감독상'등 다양한 분야에서 30회 이상의 수상경력이 있다. 현재 유네스코 친선대사로 있다.
등록일 : 2018-02-21 11:20   |  수정일 : 2018-02-21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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