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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인간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일까?

글 | 박미정 여성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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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DB

모든 인간에겐 이야기가 필요하다
 
15만 년 전에 출현한 호모 사피엔스가 다른 영장류들을 제치고 지금의 세상을 정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인간에게만 있는 고유의 능력, 바로 이야기(서사)를 만들어내는 능력 덕분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이야기’란 대상을 추상화하고 개념화하며 의미를 부여하는 ‘세상에 대한 모든 해석 행위’를 일컫는다.
 
인류가 출현했던 시기를 떠올려보자. 인류는 애초 거대한 자연에 속수무책으로 던져진 존재에 불과했다. 무방비 상태로 던져진 세계 속에서 인간은 살아남기 위한 모든 것을 터득해나갈 것이다. 사물에 이름을 붙이고 먹어야 할 것과 먹지 말아야 할 것을 가려내면서 세상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가면서 말이다. 그러나 점차 무리지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수가 늘면서 보다 고도의 기술이 필요해졌다. 정보를 수집하는 차원을 넘어, 알고 있는 정보들을 범주화하고 개념화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개념화란 종과 속으로 대상을 분류하고 인간의 생각이나 의도를 추상화함으로써 세계에 나름의 규칙과 질서를 부여하는 작업이다. 이는 눈에 보이는 사자나 호랑이처럼 사물에 대한 지식이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일이다.

유발 하라리도 자신의 저서 『사피엔스』에서 “허구를 말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사피엔스가 사용하는 언어의 가장 독특한 측면”이라고 하면서 ‘이야기를 지어내는 능력’ 덕분에 수억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모여 유연하게 협력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 “서로 모르는 수많은 사람이 공통의 신화를 믿으면 성공적 협력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신화’는 최초의 인류가 무지한 세상을 나름의 방식으로 해석해놓은 서사다. 이는 사람들의 집단적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무엇이지 실재하는 세계가 아니다. 하지만 이는 인간의 네트워크 내에서 막강한 힘을 갖고 인간에게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신화가 인간 세상에서 맹위를 떨치던 시기를 지나 인간은 점차 세상에 대한 많은 지식을 쌓게 되면서 자연을 연구 대상으로 삼기에 이른다. 숲의 정령들, 신들의 제전 등과 같은 증명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믿음은 사라지고 ‘과학이 밝혀낸 객관적인 지식’이 새로운 시대의 서사로 떠오른다. 사실 ‘신화’나 ‘과학’이나 인간이 바라본 자연이라는 측면에서는 다르지 않다. “신화는 이미 계몽이며 계몽은 신화로 회귀한다”는 아도르노의 말처럼, 인간이 자신을 벗어나 자연을 서술할 수 없다는 측면에서 과학은 또 하나의 신화이며, 세계를 설명하려는 기능을 갖고 있다는 측면에서 신화는 과학과 유사하다.
어쨌거나 여기서 중요한 건 인간이라는 영장류는 ‘이야기’를 지어낼 숙명을 타고났으며 ‘이야기의 틀’ 속에서 살아가도록 운명지워진 존재라는 사실이다.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왜 인간은 끊임없이 세상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 즉 서사를 만들어내는 것일까.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인간은 자신의 생존과 보존을 위해 세상에 이런저런 해석을 내놓지 않으면 못 견디는 동물이다. 불확실성이야말로 인간을 가장 공포에 떨게 하는 것이 아닐까. 태곳적에 밤하늘은 인간에게 공포의 대상 그 자체였다. 하늘의 진노로 언제 우레가 떨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신의 분노를 잠재우고자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일이었을 것이다. 별자리 신화는 이런 가운데 탄생했다.
인류가 세계에 서사를 부여해 다 같이 협력하여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냈듯이 개인의 삶에도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가 필요하다. 인간은 먹고 자고 입는 문제만 해결되면 그만인 존재가 아니다. 아무런 목적 없이 태어났지만 삶의 의미를 만들어내야 인간은 비로소 안도하며 행복감을 느낀다. 이유 없이 와서 이유를 찾아야만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은 한껏 부조리해 보이지만, 그것이 인간이다.
 
인간은 살아야 할 이유를 어디서 찾는가? 관계 속에서, 자신을 둘러싼 관계 속에서다. 우리는 이러한 관계맺음을 사회 혹은 세계라 부르며 자신을 그 속에 놓으며 비로소 마음을 놓고 불안에서 벗어난다. 최초의 총체적 이야기인 신화가 그러하듯이 말이다. 다시 말해 의미란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나의 이야기가 너의 이야기와 교차하며 더 큰 이야기의 강물로 흘러들 때 비로소 의미는 생겨난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텍스트를 들춰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강력한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서로 이어져 있음을 발견하고 나라는 개인을 넘어 ‘확장된 자아’로 나아간다. 자아의 확장은 감정이입을 통해 이루어진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입장을 거울에 비추듯 상상해보는 것, 이야기의 힘은 여기에서 비롯한다.
 
고통스러운 기억의 해독제, 치유로서의 이야기
 
세상엔 자아를 확장시키고 상처를 치유하는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우리를 무너뜨리고 잘못을 정당화하고 차별을 절대적인 것으로 바라보게 하는 이야기도 있다. 일본의 비평가인 우치다 타츠루는 이런 이야기의 사악함을 바로 ‘고착화’에서 찾는다. ‘고착화’란 존재하지 않는 진리를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거기에 붙들려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타츠루는 이런 고착화로 인한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려면 ‘강력한 서사의 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해변의 카프카』로 예루살렘상을 수상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람들은 말을 마치 돌멩이처럼 다루며 상대에게 던져댄다. 이것은 매우 슬프기도 하거니와 위험천만한 일이다. 이야기는 그런 단편적인 사고에 대항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다시 한 번 말을 소생시켜야 한다. 말을 따듯한 것, 살아 있는 것으로 다루어야 한다. 이야기는 몸속에서 자연히 흘러나오는, 넘쳐나는 것이다. 이는 이성이나 선악의 개념마저 초월하기도 한다. 동시에 시간과 공간, 언어나 문학의 차이를 넘어 사람들의 마음을 물리적으로 움직이는 ‘선량한 힘’을 지닌 것이다.”
 
트라우마를 해제하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선량한 힘을 지닌 이야기란 뭘까.
타츠루에 따르면 인간의 정신건강은 과거의 사건을 확실하게 기억해내는 능력이 아니라 그때마다 끊임없이 과거를 바꾸어 쓸 수 있는 능력이 담보해준다. 서사 속에서 자기 자신의 기억과 같은 단편을 발견해내면 우리는 자신이 그 서사에 숙명적으로 결부되어 있다고 느낀다. 강력한 서사에 의해 기억을 바꾸어 쓰게 되면서 트라우마로부터 해방된다.
 
트라우마 연구의 권위자 베셀 반 데어 콜크에 따르면 “트라우마 기억은 요약되지 않는다. 일반적인 기억은 조정이 가능해서 유연한 이야기로 전달되고 상황에 따라 바뀌기도 하지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실제 일어난 사건, 즉 기억의 원천인 그 사건을 떨쳐버리지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해리 현상으로 인해 트라우마가 기억에 통합되지 못하면 새로운 경험을 흡수하는 능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이어서 베셀 반 데어 콜크는 이야기가 가진 치유의 힘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파편화되고 분리된 기억들을 하나의 통합된 서사로 묶어내는 일이다. 상처를 침묵으로 덮어버리고 슬픔과 공포로 스스로 제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름을 부여해야 또 다른 통제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 내적 현실을 표현할 말을 찾는 일은 매우 고통스러운 과정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존재하지 않았던 말을 찾게 되면 그 말을 통해 가장 깊은 상처와 가장 깊은 감정도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있다. 이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심오한 경험이다.”
 
정리해보자. 인간은 ‘이야기’를 통해 생존과 번식에 관련된 자신의 동선을 예행연습하고 아울러 무질서 속의 질서를 구축함으로써 세상에 의미를 부여한다. 또한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거리를 확보하고 자신의 서사를 통합적으로 바라보게 되면서 자신의 삶을 통제할 힘을 얻는다. 인간의 행복의 조건은 바로 어지러운 세상에 강력한 이야기를 통해 부분적인 질서를 창출할 때 얻어진다.
 
거리 두고 바라보기, 통합적인 시각, 타인과 유대, 감정이입을 통한 자아의 확장, 트라우마의 치유, 이 모든 것이 이야기를 통해 이루어진다.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우리가 누구인지 묻고 앞으로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지를 알고 싶다면 지금 바로 너와 나의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서론이 길었다. 이야기의 기원과 본질, 그리고 그것이 지닌 힘에 대한 설을 푼 건 앞으로 나의 이야기에 독자들이 적극적으로 동참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다음 이야기는 인간의 보편적 욕망이나 감정, 본질에 관해 번뜩이는 통찰을 보여준 책들을 소개하며 인간이란 무엇이고 무엇이 될 수 있는 존재인지를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등록일 : 2018-02-09 09:33   |  수정일 : 2018-02-09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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