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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소로 탄생 200년, 다시 월든호숫가에서

글 | 황효현 경기텍스타일센터 뉴욕사무소 소장

▲ 복원된 소로의 오두막과 그의 동상.
아침 일찍 뉴욕을 떠나 4시간 운전 끝에 다시 찾은 월든호수는 가뭄의 흔적이 완연했다. 5년 전 처음 왔을 때 가장자리까지 가득 차 있던 물은 호수 바닥이 안쪽으로 10여m 이상 드러날 정도였다. 그러나 넉넉하게 바닥을 드러낸 호수는 피서를 즐기려는 주민들에게는 더없이 고마운 공간이 되고 있었다. 바다보다는 내륙의 물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길은 이미 만원이다. 미국의 유원지나 향락지는 입장하는 사람 숫자에 따라 요금을 징수하지 않고 주차비만 받을 뿐이다. 말하자면 주차비가 입장료인 셈이다. 주차장이 가득 차게 되면 자동으로 출입금지다. 물론 차 없이 걸어서 오거나 자전거를 타고 오는 경우에는 무료 출입이 가능하다. 새벽부터 서두른 덕분인지 나는 다행히 주차가 통제되기 전에 공원 주차장에 입장할 수 있었다.
   
   월든호수라고 모양이 빼어나거나 물이 색다르거나 하지 않다. 그저 평범하게 물이 고여 있는 숲속의 호수에 불과하다. 둘레가 2.7㎞라니 조금 규모가 큰 호수라 하겠지만 미국에서 이 정도 되는 호수들이야 셀 수 없이 많다. 많은 사람들이 호숫가에서 수영과 일광욕을 즐기고 있어 제법 떠들썩할 것 같지만 숲속의 산책길을 걸으면 세상의 모든 인연으로부터 멀어지는 느낌이 들 정도로 조용하고 한적하다. 이 산책로는 두 사람이 걷기에도 충분할 만큼 널찍한 곳도 있고, 한 사람이 겨우 걸어다닐 만한 곳도 있다. 산림욕을 겸해 천천히 걸으면 어른 걸음으로 한 시간이면 충분히 호숫가 산책길을 다 걸을 수 있다. 너무 인적이 드물어 들다람쥐의 바스락 하는 소리에도 깜짝 놀라게 되고,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사람을 만나기라도 하면 바짝 긴장할 정도로 숲이 깊다.
   
   월든호수는 보스턴에서 북서쪽으로 차를 타고 30분가량 떨어져 있는 콩코드라는 도시에 있다. 미 동북부 여느 시골 도시와 마찬가지로 이 도시에도 200년이 넘은 역사적 건물들이 즐비하다. 헨리 소로가 태어난 집도 그중 하나다. 콩코드시의 중심지에서 이 호수까지 거리는 공교롭게도 호수 주변 거리와 비슷한 약 2.7㎞라고 한다. 길이 지금보다는 불편했을 소로가 살았던 그 시절에도 이 호수는 거리만 두고 보면 그렇게 외진 곳은 아니었던 셈이다.
   
   소로는 콩코드에서 1817년 7월 12일 연필 제조업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러니까 올해가 그의 탄생 200주년이 되는 해이다. 1817년 미국이 사용하던 성조기에는 별이 15개, 흰색과 붉은색 줄이 15개였다. 영국의 식민지에서 독립한 최초의 13개 주를 상징하는 13개의 별과 13개의 선은 그 이후 새로운 주가 연방에 합류할 때마다 별과 줄을 추가했는데 1817년의 미국은 15개 주로 늘어나 있었다. 후에 줄이 계속 늘어나면서 성조기의 생김새가 이상해지자 줄은 최초의 13개 주를 상징하는 13개로 고정해놓고 새로운 주가 늘어날 때마다 별만 추가하게 되었다.
   
   
▲ 헨리 D. 소로 (Henry D. Thoreau: 1817~1862)

   미국, 200주년 기념우표 발행
   
   1845년 3월 말경 오로지 자신의 노동력에 의존해서 자급자족의 생활을 하기로 작정한 소로는 도끼와 같은 간단한 도구를 빌려 월든호숫가로 떠난다. 매사추세츠의 3월은 봄이라기보다는 겨울에 더 가깝다. 찬바람이 쌩쌩 부는 얼어붙은 길을 따라 한 시간을 걸어가야 하는 거리가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호수가 마치 꼬리를 내린 듯이 깊숙이 들어간 지점으로부터 50여m 정도 떨어진 중턱, 약간 경사진 자리에 터를 잡았다. 콩코드에서 호수 방향으로 걸어오다 보면 비교적 가까운 쪽이다. 그가 오두막을 지었던 자리는 흔적만 남아 있고, 그의 기록을 바탕으로 똑같은 크기로 만든 오두막이 복원되어 공원 입구에 그의 동상과 함께 있다.
   
   소로는 봄부터 홀로 도끼로 나무를 잘라 집을 짓기 시작하여 독립기념일인 7월 4일 무렵에야 겨우 비를 피할 수 있을 정도의 모양새를 갖출 수 있었다. 한겨울의 추위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았기 때문에 겨울이 오기 전에 벽난로를 지필 수 있는 굴뚝을 만들기 위해 서둘러야만 했다. 그러나 의지할 데라고는 오직 자신의 손밖에 없어 진도는 매우 느렸고, 11월 무렵에야 겨우 완공할 수 있었다. 그가 지은 집은 가로 약 3m(10피트), 세로 약 4.5m(15피트)의 직사각형 단칸 방이었다. 출입구와 마주 보는 벽에 벽난로를 만들었다. 입구로 들어가면서 왼쪽에는 그의 침대가 있었고, 오른쪽에는 의자 세 개와 탁자를 두었다. 오두막 뒤쪽에는 그의 겨울 난방을 책임져줄 장작더미가 쌓여 있었다. 장작을 태우면 제법 훈기가 돌았을 것만 같다. 눈 내리는 호숫가 오두막에서 벽난로를 지피며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있는 소로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그의 기록에 따르면 이 집을 짓는 데 들어간 비용은 모두 28달러12센트였다고 한다. 2014년 화폐가치로 환산하면 852달러12센트에 해당한다.
   
   월든호수의 가장 깊은 수심은 102피트, 약 31m로 규모가 크지 않은 호수의 수심으로는 꽤 깊은 편이다. 이 정확한 수심은 오늘날의 정밀한 측량에 의해서 알려진 게 아니다. 소로는 숲속 생활을 하면서 뭔가 의미 있는 소일거리를 찾다가 호수의 수심을 정확히 측량하기로 한다. 물의 표면이 바람에 흔들거리면 배를 타고 측량하는 경우 정확도에 문제가 생겨 그는 호수가 얼어붙기를 기다렸다. 그가 준비한 것은 오늘날 얼음낚시에 사용하는 것과 같은 구멍 뚫는 도구와 긴 줄이었다. 꽁꽁 얼어붙은 호수 위를 걸어다니면서 구멍을 뚫고 줄에다 추를 매달아 바닥까지 늘어뜨려서 깊이를 잰 것이다. 그의 이 조사 결과는 매우 정확해서 오늘날의 정밀 측량과 비교해도 큰 차이가 없다고 한다. 그의 이 측량 경험은 후에 그의 생계를 해결하는 주요 수단이 되었다.
   
▲ 오두막이 있던 터.

   1847년 정확히 2년2개월 2일간의 숲속 생활을 청산하고 그는 다시 콩코드로 돌아갔다. 홀로 숲속 생활을 시도한 그의 행동이 지금도 기이하게 생각되지만 당시 사람들 눈에도 예사롭지 않았던 것 같다. 그가 가는 곳이면 그의 숲속 생활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몰려들었다. 아마도 그는 똑같은 질문을 수많은 사람들에게서 듣고 또 들었던 모양이다. 무엇을 먹고 살았는지, 혼자 있는 밤에는 무엇을 했는지, 숲속에는 어떤 동물이 살고 있는지, 직접 농사는 지었는지, 집은 어떻게 지었는지 등. 이런 질문이 반복되자 마침내 그는 자신의 숲속 생활에 대한 책을 쓰기로 작정한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월든: 숲속의 생활(Walden or, Life in the Woods)’은 그렇게 탄생하였다.
   
   5년 전과 비교하여 달라진 점이라면 주차장 지붕에 태양광발전 설비를 갖춰 놓았다는 것과 아마도 이 발전 설비로 운영되는 듯한 전기차 충전소였다. 자연주의·생태주의의 탄생지라고도 불리는 월든호수에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 정부는 소로 탄생 200주년을 맞아 기념우표를 7월부터 발매하기 시작하였다. 소로 기념우표는 이번이 두 번째다.
등록일 : 2017-08-14 08:39   |  수정일 : 2017-08-14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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