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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자서전 <김창주와 네 딸들>...평범한 사람들이 아내와 어머니를 기억하는 방법

사진제공 : 김창주씨 가족

글 | 김성동 톱클래스 편집장

김창주씨 가족. 지금은 어머니 노선자씨(사진 맨 오른쪽)의 자리가 비어 있다.
2017년 2월 18일, 평범한 우리의 이웃인 김창주씨의 팔순 생일잔치가 열렸다. 이날 김창주씨는 자신의 생일잔치에 참석한 가족과 친지들에게 이런 인사말을 했다.

“아침 안개 같은 인생의 부귀영화에 매달려 헐떡이다 보니 어언 팔십 성상이 겁 없이 흘러가 버렸습니다. 다시 돌이켜 살 수 없을까 하는 아쉬움과 후회가 교차되는 순간인 것 같습니다. 한편 당황스럽기도 합니다.

오늘 발간된 책은 성공담이나 어떤 지식, 정보를 실은 것이 아니고 오직 우리 가족이 가신 임을 그리며 사랑과 아픔, 그리움과 아쉬움을 회상하는 마음의 노래일 뿐입니다. 저와 더불어 네 딸, 사위, 손주들의 합동 작품입니다. 졸품을 감히 발간하게 되어 부끄럽기도 합니다.”

김창주씨의 인사말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팔순맞이 생일잔치는 출판기념회를 겸한 자리이기도 했다. 그가 말한 ‘가신 임’은 그의 아내 노선자(2009년 작고)씨를 가리킨 것이다. 김창주씨가 인사말에서 언급한 대로 이 책을 만드는 일에는 김창주씨 본인과 아내 노선자씨, 네 명의 딸, 손주 6명 등 가족 모두가 참여했다. 그래서 ‘가족 자서전’이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고도원의 아침 편지’의 기획으로 세상에 얼굴을 내민 ‘가족 자서전’이라는 보기 드문 형식의 이 책은 발간된 지 한 달이 지나 입소문을 타고 화제다. 가족의 의미를 다시 한번 곱씹어보게 한다는 반응들이다.

“책 읽는 내내 우리 가족 한 명 한 명을 떠올렸습니다. 우리네 삶보다 더 좋은 스토리가 있을까요? 제 아버지 팔순에 책을 만들지는 못 해도 스토리는 정리해야겠단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제 나이 80에는 꼭 책을 만들자…. 그 책에 들어갈 스토리를 위해 인생을 더 진지하고 재밌게 살아야겠습니다. 삶의 큰 자극이 되는 좋은 책 감사합니다.” (신원일·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어제 새벽 1시까지 단숨에 읽어버렸다. 남의 일기를 몰래 읽다가 그 이야기 속에 빠져 함께 울고 웃었다. 때론 가슴이 먹먹해지는 애잔한 이야기들 속에서 내 마음속 깊이 묻혀 있던 나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끄집어내게 하는, 그래서 눈시울이 붉어지게 만드는 이야기들로 빽빽하게 감추어진 사랑의 이야기들 그런 마법의 보따리를 풀어본 느낌이랄까. 혼자 느끼기에는 아까운 힐링의 보따리를 나의 지인들에게도 풀어 놓아서 한 가족의 역사 속에서 펼쳐진 아픔과 사랑과 애잔함의 감정을 공유토록 해야 하겠다.” (목영만·건국대학교 교수, (사)공공나눔 공동대표)


책으로 다시 탄생한 가족


이 책의 편집자 역할을 맡은 막내딸 윤경씨는 프롤로그에서 책을 만든 소회를 이렇게 적어놓았다.

“그리워하는 것도 이젠 힘들어 그만 잊어버리고 싶은 기억을 글로 토해낼 수 있다면 아버지 마음도 훨씬 편안해지시리라.

부모님 연애 시절 주고받았던 편지, 수첩 속에 써놓은 성경구절, 딸들에게 보냈던 카드 같은 어머니의 흔적들도 이 기회에 함께 모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아버지는 어머니와의 사랑 이야기를 손가락에 물집이 잡히도록 열심히 써 내려갔다.

편집자가 된 나는 이 소중한 조각들을 어떻게 다듬고 묶어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낼 것인가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이 책을 계기로 다른 많은 가족들도 각자의 이야기로 역사를 만들어가길 바란다.”

노선자씨가 연애 시절 남편 김창주씨에게 보낸 엽서.
윤경씨는 프롤로그에서 이런 말도 덧붙여 놓고 있다.

“이 책은 김창주, 노선자 두 남녀가 만나 가족이라는 열매를 일군 러브 스토리이다. 먼저 떠난 아내, 그리고 어머니 노선자에 대한 그리움의 노래이다. 가족의 울타리를 떠나 또 다른 가족으로 의미를 확장해가는 우리 모두의 역사다.”

가족으로 사는 이들에게 가장 큰 고통은 어떤 일일까. 이별일 것이다. 그것도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를 영원히 볼 수 없는 이별, 산 자와 죽은 자의 이별, 그것은 고통을 넘어서는 고통일 것이다.

1967년에서 1974년 사이에 차례로 태어난 네 딸과 팔순의 남편은 암 투병 중이던 어머니와 아내가 세상을 떠나던 날, 즉 2009년 3월 2일 밤 전후를 이렇게 기억(기록)하고 있다.

1967년 12월 24일 김창주씨와 노선자씨의 결혼식.
토요일 오후엔 엄마랑 저랑 병실에 둘이 있게 됐어요. 엄마는 통증이 심해 많이 힘들어 하셨어요. 저녁때쯤 다들 보고 싶다면서 “애들 다 오라고 해라” 하셨어요. 그러곤 의사선생님에게 진통제를 부탁하셨죠. 선생님은 이미 많이 맞은 상태라 더 이상 안 된다 하셨어요. 엄마는 사정했어요.

“선생님, 우리 애들 다 오라 했는데 내가 아파서 그렇게 있으면 되겠어요?”

선생님은 진통제를 놓아주셨고, 엄마 상태가 좋아졌을 때 가족들이 도착했죠. 특별한 이야기가 있으신가 보다 했는데, 엄마는 손자들에게 맛있는 거 사먹으라고 용돈도 주시고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셨어요. 얼굴이 밝고 좋았어요. 그렇게 한 10여 분? 길지 않은 시간이었어요. 엄마는 “이제 집에들 가라”고, 남겠다는 가족들에게 모두 쉬라고 집으로 돌려보내셨어요.

엄마랑 다시 둘이 남았을 때, 약 기운이 다 되었는지 거짓말같이 다시 아파하셨어요. 방금 전까지도 생생했는데, 정신도 흐릿해지시더라고요. 그래도 돌아가신다는 생각은 못 했어요. 생각보다 상태가 위중해 내일 (집이 있는) 부산 내려갔다가 다시 와야겠다 생각했지, 엄마가 우리 곁을 떠나실 거라는 것은 상상도 못 했어요.

다음 날 부산 내려가면서 인사하는데, 엄마를 안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꼭 안아드리면서 “엄마, 사랑해” 했어요. 그게 엄마와의 마지막이었어요. 부산에 도착하자마자 급한 일 정리하고 회사에 휴가 내고 다시 올라갈 생각에 세탁기부터 돌렸어요. 할 일 해놓고 다시 와야지 했는데, 그 사이 엄마는 떠나셨어요. 엄마 곁을 계속 지켰어야 했는데, 빨래가 뭐 그리 급하다고….



아, 엄마, 엄마!

김창주씨의 네 딸. 왼쪽부터 상희, 상아, 은경, 윤경.
역시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큰딸 상희씨의 회한도 깊고 깊다. 임종을 지키지 못한 원망을 직업군인인 남편 탓으로 돌리기도 한다. 남편에 대한 미움이 아니라 어머니와의 이별을 제대로 못한 아픔 때문이리라.

전화벨이 울렸을 때 빨래를 개고 있었어요. 여자들은 다 어디 간다 하면 빨래가 걱정인가 봐. 대전에 돌아오자마자 다시 서울 갈 생각에 청소하고 빨래부터 돌렸어요. 그 빨래를 다 개기도 전에 전화가 온 거예요. 12시가 막 넘었을 즈음인데, 얼른 남편에게 전화했어요. 그때까지 안 들어오고 있었거든요. 엄마 돌아가셨다고 얼른 들어오라고 전화했죠. 남편은 새벽 2시가 다 되어서야 들어왔어요. 마감 못 해 퇴근 못 했다고…. 장모님이 돌아가셨는데도 마감 못 하면 퇴근 못 하는, 군대가 원망스럽기까지 했죠.

서울로 가는데 눈이 펑펑 내렸죠. 눈 속을 달리면서 남편에게 모두 당신 탓이라고, 당신이 늦게 왔고, 당신이 마감을 못 했고, 당신이 군인이기 때문에, 군인인 당신이랑 결혼한 탓에 우리 엄마 임종도 못 지켰다고 내내 원망했죠.


김창주·노선자 부부의 다정한 뒷모습.
어머니의 임종을 지킨 것은 둘째 딸 상아씨였다.

낮에 외삼촌 내외분과 고모가 다녀 가신 뒤부터 기력이 많이 약해지신 걸 느끼셨어요. 엄마는 강원도에서 요양하실 때 의지했던 안도현 목사님을 계속 기다리셨어요. 밤 11시가 다 되어 목사님이 도착하니 누워만 계시던 엄마가 벌떡 일어나 앉아 찬송가를 부르셨어요. 평소 좋아하시던 찬송가 몇 곡을 계속해서 부르더니 이내 목소리가 작아졌어요.

목사님은 엄마가 잠드신 줄 알고 “곧 또 오겠습니다” 하며 조용히 일어나셨어요. 엄마는 눈을 번쩍 뜨고 일어나 목사님께 공손히 인사하고 보내드리곤 화장실에 가셨어요.

침대 위에 빼놓은 산소호스를 보면서 ‘이렇게 오래 빼놓아도 괜찮을까’ 걱정될 정도로 엄마는 화장실에 오래 계셨어요. 엄마는 그 기운 없는 몸을 깨끗이 씻고 양치질까지 하신 거예요. 다 마치고 침대에 올라가시는데 ‘억!’ 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그 소리는 엄마가 낸 소리가 아니었어요. 엄마 가슴에서 뭔가 ‘퍽!’ 터지는… 신호였어요. 정신없이 엄마를 침대에 누이고 비상벨을 눌렀어요. 간호사가 뛰어 들어와 TV에서 본 것과 똑같이 동공과 맥박을 확인했어요. 동공은 풀렸고 맥박도 잡히지 않았어요. 인위적인 심폐소생술을 하지 않겠다는 사전 임종 서약을 한 터라 그것이 임종이 되었죠.


어머니 노선자씨는 사망 전 장기 기증 약속을 했다. 이어지는 상아씨의 기억이다. 소중한 가족의 죽음을, 그것도 어머니와의 영원한 이별을 인정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보여준다.

장례식장으로 옮긴 뒤 의사선생님이 카메라 필름 통같이 생긴 작은 통을 하나 들고 오시더니 엄마 각막을 적출하셨어요. 몇 분도 채 안 걸린 것 같아요. 엄마가 누워 계신 모습을 한쪽에서 보는데, 금방이라도 다시 일어나실 것 같았어요. 엄마가 다시 일어날 수도 있는데 각막을 적출해도 되나 하는 생각에 두려웠어요.


‘가족사진’ 노래가 떠오른 이유

집을 나서도 이들 여섯 식구는 언제나 하나였다.
막내딸 윤경씨는 어머니가 이 세상을 떠나던 날 해외 출장 비행기 안에 있었다. 위독한 어머니를 두고 해외 출장을 가도 되는가를 고민할 때 어머니는 “네가 있어도 할 일이 없다. 다녀와라”고 했다. 그는 다녀와서도 어머니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해외 출장을 떠났던 것이다. 그의 술회다.

비행기가 활주로에 내리자마자 휴대폰 전원을 켰어요. 거짓말같이 전화벨이 울렸어요. 가슴이 철렁했죠. 언니 목소리가 들리는데 불안한 예감이 맞았음을 직감했어요.

“아, 엄마….”

비행기에서 내려 호텔로 이동하는 버스에서 울음이 터졌어요. 평소 엄마를 잘 알던 동료도 덩달아 울기 시작해 영문도 모르는 사람들이 깜짝 놀라 쳐다보았죠.

“어머니가 그렇게 안 좋으신데 왜 출장을 왔어, 이 사람아!”

“이렇게 빨리 가실 줄 몰랐습니다.”

부모가 언제 떠날 줄 아는 자식이 어디 있을까. 상사에게 양해를 구하고 바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탔죠. 10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고 오는 내내 끊임없이 흐르는 눈물과 함께 “아, 엄마…” 오직 이 세 글자만 입안에서 계속 맴돌았어요. 병원에 도착하니 막내딸 얼굴 보고 가셔야 한다고 입관도 못 하고 모두들 기다리고 계셨어요. 엄마 앞에 섰는데 엄마 얼굴이 창백했어요.

“엄마, 이제 안 아픈 거지? 고통 없는 천국으로 간 거지?”

차디찬 엄마 볼에 내 얼굴을 대고 한참 울었어요.



노선자씨와 40년을 함께 산 남편 김창주씨도 아내와의 긴 이별 시간을 놓쳤다.

그날 이상하게 자꾸 집에 가라 했어. 나보다 딸이 시중드는 게 편해 그런가 보다 못 이기는 척 집으로 갔지. 사실 피곤하기도 했어. 딸들이 많아도 다 지방에 있고, 막내는 얼굴 보기 힘들게 바쁜 터라 평일엔 주로 내 담당이었기 때문에, “애들 있을 때 맡기고 좀 쉬자” 하는 생각도 있었지.

집에 와서 깜빡 잠이 들었는데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겠어. 밖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어. 한참을 두드렸던 모양인데, 깜짝 놀라 열어보니 처형 내외가 서 있었어. “아이쿠!” 했지. 병원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같이 가자 하는데 차마 “그 사람 갔습니까” 하고 못 물었어.

사람 참, 가는 날까지 제멋대로야. 뭐 조곤조곤 상의하고 하는 게 없어. 뭐든 저지른 뒤에 알게 되고. 아니 40년을 넘게 산 남편에게 마지막 남긴 말이 “당신 집에 가”라는 게 말이 되나?


물론 이 책이 어머니 노선자씨의 죽음 이야기를 중심으로 꾸며진 것은 아니다. 그 이야기는 아주 작은 부분일 뿐이다. 김창주와 노선자의 만남, 딸들의 부모님에 대한 추억 등과 찬조출연(?)한 사위와 손자들의 글, 이들 가족의 사랑이 담긴 음식 이야기 등 다양한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노선자씨의 죽음과 관련한 가족 이야기를 기사의 중심으로 놓은 이유는 죽음 앞에서 보여주는 가족의 진솔한 가족애 때문이고 그것이 주는 과장되지도 않고 조미료도 가미되지 않은 듯한 잔잔한 감동 때문이다.

막내딸 윤경씨는 “처음에는 가족 소장용과 아버지 팔순잔치에 오시는 분들 선물용으로 책을 만들었는데 처음 발행한 500권이 동이 나면서 2쇄를 찍게 됐고 3쇄부터는 이런 가족 자서전을 만들고 싶어 하는 분들을 위해 대형서점과 인터넷에서 판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책을 읽고 기사를 쓰는 내내 기자의 귓가에는 가수 SG워너비 김진호가 부른 ‘바쁘게 살아온 당신의 젊음에 / 의미를 더해줄 아이가 생기고 / 그날에 찍었던 가족사진 속의 / 설레는 웃음은 빛바래가지만…’으로 시작하는 ‘가족사진’이라는 노래가 맴돌았다. 눈물 몇 방울도 추가했다.
등록일 : 2017-05-10 09:30   |  수정일 : 2017-05-10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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