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메뉴

FUN | 책
  1.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기사목록 
  2. 글자 작게 하기글자 크게 하기

화제의 웹툰 - 롭플롭

글 | 임지희 만화 칼럼니스트

이 만화, 기묘하다. 두 남자가 검은 슈트를 차려입고 계단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 한 회의 대부분이 흘러간다. 해리 벨머가 양친을 잃은 지 닷새째 되는 날이다. 해리는 범인의 머리로는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내놓을 수 없는 질문들을 펠릭스에게 던진다. 상대의 동의도 얻지 않고 녹음기를 켜고, 기억이란 것은 시간이 지나며 빠르게 퇴색되어 믿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것은 타인에 대한 나의 기억도, 스스로에 대한 오래된 기억도 매한가지라고.

펠릭스는 해리가 평범한 이는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부모님의 장례식이 끝나면 일가친척 하나 없이 혼자가 될 그의 처지를 생각하면 이해 못 할 것도 없다는 듯 잠자코 해리의 장광설을 경청한 뒤 그에게 묻는다. “우리, 초면이지만… 괜찮다면, 널 그려봐도 될까?”


이야기는 여기서 한꺼번에 7년을 건너뛴다. 독자가 취할 수 있는 태도는 그 긴 공백을 잠자코 받아들이는 것이다. 초면인 사람의 기괴한 이야기를 들어주다가, 초면인 상대에게 당신을 그려도 되겠느냐고 했던 펠릭스, 그리고 그때 모든 것을 잃은 듯 보였던 해리는 함께 사는 친구가 되어 있다. 벌써 2년 가까이 제대로 된 작업을 하지 않은 화가, 펠릭스. 여전히 녹음기를 켜고(21세기도 벌써 10년은 더 지났는데!) 뭔가를 중얼거리는 연구자, 해리. 〈롭플롭〉은 이 두 남자의 관점을 유연하게 오가며 아주 조금씩 이야기의 실마리를 흘린다.

사전을 뒤져도 나오지 않는 이 단어 ‘롭플롭(Loplop)’은 1930년대 초현실주의 예술가, 막스 에른스트(Max Ernst, 1891~1976)의 주요 작품에 자주 등장한 새의 이름이다. 그는 롭플롭을 자신의 예술적 자아의 분신으로 여겼다고 한다. CTK의 〈롭플롭〉은 여기서 차용한 것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그림을 그리지 않던 펠릭스가 다시 붓을 쥐게 되는 계기는 ‘새’다. 해리와 함께 탄 지하철에서 우연히 새 머리 탈을 뒤집어쓴 사람을 본 뒤 그 강렬한 이미지를 자신의 작품에 녹이고 싶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본인 외의 누구도 새 머리의 사람을 신경 쓰지 않았고, ‘내가 목격한 것이 환상이 아니었나’ 착각이 들 정도로 순식간에 놓쳐버렸다.

펠릭스는 새 머리의 사람에게서 영감을 받은 작품을 그리고, 그룹전에 참여해 주목받는다. 펠릭스는 순수하게 자신의 작품이 좋은 평가를 받아 이제부터 자기 인생이 풀리기 시작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건 착각이다. 너무 거대해서 아직 그림의 전체를 볼 수 없지만, 해리의 의도와 짜놓은 각본에 맞게 착착 일들이 진행되기 시작한다는 걸 독자는 알 수 있다. 해리는 마치 〈트루먼 쇼〉의 설계자처럼 펠릭스의 삶을 배후에서 조종하기 시작한다.


CTK 작가의 전작 〈잭슨의 관〉이 극의 초반부터 총격과 죽음, 장의사 등 강렬한 이미지로 단숨에 독자를 몰입하게 만들었다면, 〈롭플롭〉은 작가 특유의 관능적이고 세련된 인물들이 시선을 사로잡되 서사는 의도적으로 대부분 가려놓고 있다. 전개가 느린 게 아니라, 완벽한 의도가 느껴지는 숨김이다. 아직 연재 초반이라 이야기의 전말을 파악할 순 없지만, ‘해리가 구축하는 펠릭스의 세계’를 느긋하게 감상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으므로 그냥 즐기자. ‘왜’는 결국 드러날 것이고, 큰 그림은 그 전에 볼 수 있을 것이다. 충분히 시간을 들여서 감상한다면 웬만한 반전 영화 뺨치는 충격과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글·그림 : CTK / 코미코 금요일 연재작
등록일 : 2017-04-28 13:07   |  수정일 : 2017-04-28 14:44
  1. 프린트하기 
  2. 기사목록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독자 리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맨위로

하단메뉴

개인정보 취급방침독자센터취재제보광고문의조선뉴스프레스인스타그램페이스북트위터카카오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