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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일 대표, “편견 벗겨 춘원 이광수 · 육당 최남선의 본심을 이해해야”

⊙ 1회 ‘육당학술상’ 전성곤, ‘춘원문학상’ 박순녀 수상
⊙ 춘원과 육당은 한국인의 치부를 숨김없이 보여주는 또 다른 자아
⊙ 춘원은 절개를 굽혀 현실정치와 타협한 ‘불구소절(不拘小節)’ 유형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 육당.춘원 상을 제정한 고정일 동서문화사 대표.
육당(崔南善·1890~1957)과 춘원(李光洙·1892~1950)은 한국문학의 근대적 맹아(萌芽)다. 새싹이다. 둘에게서 한국어로 쓴 우리 문학이 발아됐고 둘로부터 ‘근대적 시민’이 문학 담당층으로 등장했다. 중세적 세계관에서 벗어난 새로운 시대의식이 두 사람의 시·소설로 꽃을 피웠다. 춘원·육당이 없었다면 어쩌면 한국문학도 지금의 자리를 잃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전(全)문단적 현상’이었던 친일문학 행위로 둘은 금기어가 됐다. 문단 내 비중이 절대적이었다는 의미다. 이후 수많은 문인의 이름을 내건 문학상과 문학(기념)관이 생겨났지만 육당·춘원의 이름은 없었다. 한국문학사의 커다란 두 지점이 공란으로 비워졌던 것이다. 춘원·육당은 문단 갈등의 살아 있는 뇌관이었다.(《월간조선》 2016년 11월호 〈문단 갈등의 뇌관, ‘춘원·육당 상(賞)’ 추진하는 고정일 대표〉 참조)
 
  그간 뜻있는 인사들이 둘의 이름을 내건 문학상을 추진했으나 친일·부역 논란 탓에 포기하고 말았다. 그러나 고정일(高正一) 동서문화사 대표는 문단의 만류에도 육당학술상과 춘원문학상을 제정, 1회 수상자를 발표했다. 올해는 춘원의 소설 《무정》이 세상에 등장한 지 꼭 100년이 되는 해다.
 
  고정일 대표가 밝힌 ‘춘원·육당 상’ 제정 이유는 이렇다. “육당·춘원을 빼 놓고 한국의 역사와 문학, 문단을 논할 수 없다. 그들 모두 도쿄 2·28 독립선언, 3·1 독립선언을 하고 옥살이도 했는데 ‘내재적 독립운동’을 이해 못하고 선구적 업적을 폄하했다”는 것이다.
 
  육당최남선학술상 1회 수상자는 전성곤(全成坤) 교수, 춘원이광수문학상은 박순녀(朴順女)씨에게 돌아갔다. 일본 오사카대에서 〈최남선론-식민지기(植民地期) 조선의 단군론과 내셔널리즘의 창출〉로 박사학위를 받은 전 교수는 현재 중국 지린성의 베이화(北華)대 동아연구원 일본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 《근대 조선의 아이덴티티와 최남선》 등이 있고, 최남선이 쓴 〈단군론〉과 〈만몽문화〉 등을 번역했다.
 
동서문화사가 제정한 1회 육당학술상, 춘원문학상 시상식 장면. 소설가 박순녀씨가 춘원문학상을 받고 있다.
함경남도 함흥 태생인 박순녀는 1960년 소설 〈케이스워카〉로 등단했고, 한국소설문학상과 펜문학상을 받은 원로 소설가다. 현재 장편대작 《인간의 운명》 1부를 완성하고 2부 창작에 혼신을 다하고 있다.
 
  전 교수는 수상소감에서 “식민지적 상황에서 한민족을 위해 단군을 제시한 육당의 조선정신 연구의 의미를 담고자 노력해 왔다”며 “앞으로 육당의 뒤를 따라 우리 민족의 시원을 찾는 일에 진력을 하겠다”고 밝혔다.
 
  박씨는 “우리나라의 대문호 이광수 선생을 기리는 문학상의 첫 수상자라는, 분에 넘치는 영광을 안게 됐다”며 “춘원의 문학정신을 늘 가슴에 새기며 지금 쓰고 있는 전3부작 《인간의 운명》을 완성하는 데 열과 성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친일’이라는 흙탕물
 
고정일 대표가 춘원문학상을 기념해 출간한 《춘원 이광수, 민족정신 찾아서》.
고정일 대표는 ‘춘원·육당 상’ 제정을 기념해 쓴 《춘원 이광수, 민족정신을 찾아서》(동서문화사 刊)에서 “춘원과 육당은 한국인의 치부를 숨김없이 보여주는 또 다른 자아”라며 “그 자체로서 우리의 조국, 우리의 얼굴, 우리의 삶”이라고 했다. 그의 말이다.
 
  “우리는 춘원의 근대문학의 선구적 위치를 인정하면서도 독립운동가로서 인정하는 데는 매우 인색합니다. 그가 절개를 지키지 못했다는 겁니다. 하지만 그 같은 비판에도 조선의 지성으로 민족을 이끌어 갔던 사실조차 감출 순 없어요.”
 
  고 대표는 육당과 춘원에 대한 “전 문단적 인색함과 조급함, 또한 쉽게 잃어버리는 평정심은 누구를 위함인가”라고 반문한다.
 
  “춘원의 글을 읽으면 조국과 민족에의 헌신을 게을리하지 않은 애국자이자 선각자라는 사실을 알 수 있어요. 상해 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 주필로 절절히 펼쳤던 춘원의 나라사랑, 그 사상의 포괄성에 비롯되는 지성적 결기는 지금도 우리를 감동케 만듭니다.”
 
  춘원은 임시정부 기관지 등사판 《우리소식》에 이어 1919년 8월 21일부터 《독립》이란 이름으로 활판신문 발행을 이끌었다. 《독립》은 창간호부터 21호까지 이어졌는데 1919년 10월 15일 자 제22호부터 제호를 《독립신문》으로 바꾸고 1924년 1월부터 춘원이 《독립신문》 발행인 겸 주필을 맡았다. 당시 편집은 주요한. 이때 주요 사설과 논평은 모두 춘원이 썼다.
 
  “당시 독립과 동포애, 그 울부짖는 슬픔, 분노와 열정, 지성과 이상, 오로지 조선 민족의 독립을 위해 외치는 한 인간의 호소와 조국에 대한 절규, 냉엄한 꾸짖음은 오늘날 우리들 가슴에 메아리쳐 울립니다.”
 
  — 춘원과 육당에 대한 인색한 평가는 자업자득 아닌가요.
 
  “춘원에 대한 비판은 ‘자격 없는’ 우리의 요구 때문입니다. 한국문학이 낳은 세상에 드문 천재이며 빛나는 감성적 언어와 더없는 깊은 철학적 통찰을 지닌 이광수가 있고, 다른 한편으론 마음이 여려 좀처럼 거절할 줄 모르며 벽촌의 독자가 보내 온 편지에 호롱불 밑에서 정성스레 답장을 써 주던 정 많은 한 인간이 있어요.
 
  그 시대 지성이라면 누구나 한 번씩은 버선발을 적실 수밖에 없었던 ‘친일’이라는 흙탕물이 유독 춘원에게만 선명한 얼룩으로 남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그가 보여준 빛이 너무도 밝고 넓은 탓 아니던가요?”
 
  소설가 복거일 선생은 저서 《죽은 자들을 위한 변호》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 왜 친일파로 분류된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들이 조선사회를 위해 한 일은 모조리 무시하고 그들의 친일 행위만을 고려하는가. 춘원이 도쿄 2·28 독립선언을 비롯한 3·1운동에서 선도적 역할을 했고, 상해 임시정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다. 그런 활약은 무척 큰 업적이다. 3·1운동과 상해 임정이 없었다면 20세기 전반의 우리 역사는 얼마나 초라했을까? …〉
 
 
  일제에 맞선 두 유형, ‘독선기신(獨善其身)’과 ‘불구소절(不拘小節)’
 
전성곤 중국 베이화대 동아연구원 교수.
— 춘원·육당을 ‘친일 민족반역자’로 봐선 안 되는 또 다른 이유는 뭔가요.
 
  고 대표의 주장이다.
 
  “춘원의 풍모는 왜곡된 고정관념의 틀 속에 정형화돼 있어요. 이런 틀은 정치적 색채로 얼룩진 거짓된 모습입니다. 흔히 최남선·이광수·홍명희를 ‘한국 개화기의 3천재’라 불러요. 세 사람 모두 한국 민족주의 운동의 지도자라는 공통점이 있지요.
 
  일제 강점기 40년, 민족주의 독립운동가 유형을 두 가지로 분류해 볼 수 있는데, 현실정치와 타협을 모두 거부한 채 절개를 지킨 ‘독선기신(獨善其身)’ 유형 , 절개를 굽혀 현실정치와 타협해 합법적 독립운동으로 실천궁행을 한 ‘불구소절(不拘小節)’ 유형으로 나눌 수 있어요.
 
  전자가 벽초(洪命憙·1888~?)라면, 후자는 육당·춘원입니다. 해방이 되자 일제 강점기 민족운동에 소극적으로 초연하게 지조를 지킨 홍명희는 절개 높은 애국자로 드높여진 반면, 2·8 선언서(이광수) 3·1 선언서(최남선)를 기초하고 항일 독립운동을 펼쳤음에도 세상은 육당·춘원을 ‘친일 민족반역자’로 깎아내렸던 겁니다.”
 
  — ‘독선기신’보다 ‘불구소절’을 가치 있게 보는 까닭은 무언가요.
 
  “‘독선기신’은 분명히 지사적 명예임에 틀림없어요. 그러나 행동하지 않는 지식인이라면 우리 민중의 희생을 그저 손 놓고 바라보아선 안 됩니다. 위장 친일로 내재적 민족보존운동, 즉 독립준비론을 실천하고 힘써 행함으로써 실력을 확실히 갖추고 조국독립을 이루겠다는 신념이 필요했어요. 바로 춘원의 신념을 가리킵니다.”
 
  고 대표는 “춘원의 이런 생각은 그 무렵 지식인 사이에 퍼져 있었던 ‘용일론(用日論)’과 일맥상통한다”고 했다. 홍일식은 《나의 조국 대한민국》에서 ‘일제 강점기 조선 지식인은 고육지계(苦肉之計)로서 친일을 위장한 경우가 많았다’는 주장이 그 근거다.
 
 
  이제 새롭게 춘원·육당을 만나야 할 때!
 
1937년 일경에 체포된 이광수. 그해 춘원은 《문장독본》을 펴냈다.
“춘원은 우리가 귀중히 받드는 최초요, 최대의 작가입니다. 여기서 ‘최초’라 말하는 것은 우리의 신문학이 춘원으로부터 시작된 까닭이요, ‘최대’라 말하는 것은 신문학 발전 50년 동안 지금까지 춘원만큼 커다란 존재가 나타나지 못하고 있는 까닭입니다.” (김팔봉)
 
  “춘원은 한국 현대문학의 개척자이며 선구자” (백철)
 
  “한국 현대문학의 어두움의 새벽을 여는 첫닭 울음소리, 춘원 이광수” (이어령)
 
  여러 문학평론가들은 공통적으로 춘원을 한국 근대문학사에 ‘최초·최대’의 작가로 바라본다. 그런 평가의 근거는 무엇일까. 고 대표의 말이다.
 
  “춘원은 서구적 개념의 근대소설을 국내에 처음 썼으며, 쉬운 우리말로 당대 한국인의 이념을 문학적으로 표현했어요. 더욱이 서구의 개인주의를 조선인에게 불어넣은 작가이기도 하고요. 또 하나, 춘원의 문학사상이 한국 신문학에서 높이 평가되는 까닭은 당대 춘원보다 사상가다운 지적 교양인을 찾기 어렵다는 사실에 있어요. 또 평론가 조연현(趙演鉉·1920~1981) 선생은 ‘춘원의 문학사상에는 육당에게서 볼 수 없는 혁명적 기질이 담겨 있다’고도 했어요. 청년시절 대륙 방랑에서 겪은 커다란 인생 경험, 그 경험에 따른 해박한 지식의 무게가 그의 문학 속에 담겨 있습니다.”
 
  고 대표는 또 광복회 김우전(金祐銓) 전 회장과 불문학자 김붕구(金鵬九·1922~1990)의 춘원 평가를 예로 들었다.
 
  “‘학병 지원 권유가 한창이던 때, 일본 교토에서 춘원의 강연을 들었다’는 김우전 광복회장의 신문기사(《조선일보》 2014년 10월 19일 자)는 참으로 놀랍습니다. 김 회장은 ‘당시 춘원의 민족의식, 민족의 장래를 고민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어요.
 
3·1 운동으로 옥고를 치르던 무렵의 육당 최남선.
사진=나남 제공
  서울대 김붕구 교수는 자신의 논문 〈신문학 초기의 계몽사상과 근대적 자아〉(1964)에서 ‘춘원의 애국과 민족주의 사상에 티끌만큼도 위선은 없었다. 평생 민족의식이라는 병을 앓았다’고 진단했습니다.”
 
  고정일 대표는 “춘원 연구를 가로막는 장애는 친일·반일의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다”며 이렇게 말했다.
 
  “일제 강점기 친일은 이 땅의 숱한 지식인의 생존방식이었습니다. 항일의 절개를 지키고도 살아남은 지식인은 거의 없었어요. 그러나 춘원은 죽음에 이르기까지 한순간도 민족정신을 잃지 않았습니다.”
 
  한국문학사에 춘원·육당을 바라보는 흐름은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비판적 시선’, 둘째는 ‘우호적 받아들임’, 셋째는 ‘평가 유보’다. 저마다의 관점에서 각종 연구서가 300편 넘게 나왔다. 요즘 북한에서도 ‘친일 반동 작가’로 규정했던 춘원을 재평가하는 분위기가 감지될 정도로 시각이 바뀌고 있다.
 
  “고정관념의 테두리 안에서 인간 춘원의 풍모는 언제나 왜곡된 단편만을 보이도록 운명지어져 왔어요. 이제 춘원에게 덧씌운 얼룩진 정치적 색채부터 벗겨야 합니다. 그런 편견을 털어내 춘원의 민족 본심을 이해해야 해요.”
 
  고 대표는 최근 펴낸 《춘원 이광수, 민족정신 찾아서》에 춘원사상이 잘 드러난 《독립신문》 주필 시절 쓴 춘원의 글과 조국해방을 맞이할 당시에 쓴 글, 수필집 《돌베개》의 글을 실었다. 고 대표의 말이다.
 
  “친일을 하자니 민족반역자 소리를 들어야 하고 항일을 하자니 지식인들이 혹독한 탄압을 받아야만 하는 극한(極限)상황에서 춘원은 자기 한 몸을 친일제단에 희생물로 바치고 적극적으로 친일에 뛰어들어 황민화 운동에 앞장설 수밖에 없었다고 봅니다. 춘원은 도산의 ‘일본패망론’을 확신하고 있었어요. 그러기에, 태평양전쟁이 일어나면 조선독립의 기회가 반드시 오리라 헤아리고 민족보존을 위한 독립군 군사지도자 양성을 위해 학병을 권유하는 등 친일 행태를 ‘내재적 독립운동’으로 실천한 것입니다.”⊙
 
[월간조선 2017년 4월호 / 글=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등록일 : 2017-04-21 09:14   |  수정일 : 2017-04-2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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