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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부코스키의 <야망 없이 살자는 야망>

阿Q의 시 읽기 〈9〉나는 늘 아리송했고 아버지와 나나 똑같은 존재였다

⊙ 독일계 미국 시인 부코스키, ‘빈민가의 계관시인’ ‘언더그라운드의 전설’
⊙ 최근 국내 출간 붐… 그의 글엔 ‘친밀함’과 통속소설 주인공 같은 ‘늠름함’ 담겨
⊙ 부코스키, ‘애쓰지 마라. 기다려라. 기회가 올 때까지’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My non-ambitious ambition
  Charles Bukowski
 
  my father had little sayings which he mostly shared
  during dinner sessions; food made him think of
  survival:
  “succeed or suck eggs. . .”
  “the early bird gets the worm. . .”
  “early to bed and early to rise makes a man (etc.). . .”
  “anybody who wants to can make it in America. . .”
  “God takes care of those who (etc.). . .”
 
  I had no particular idea who he was talking
  to, and personally I thought him a
  crazed and stupid brute
  but my mother always interspersed these
  sessions with: “Henry, listen to your
  father.”
 
  at that age I didn't have any other
  choice
  but as the food went down with the
  sayings
  the appetite and the digestion went
  along with them.
 
  it seemed to me that I had never met
  another person on earth
  as discouraging to my happiness
  as my father.
 
  and it appeared that I had
  the same effect upon
  him.
 
  “You are a bum,” he told me, “and you'll
  always be a bum!”
 
  and I thought, if being a bum is to be the
  opposite of what this son-of-a-bitch
  is, then that's what I'm going to
  be.
 
  and it's too bad he's been dead
  so long
  for now he can't see
  how beautifully I've succeeded
  at
  that.
 
 
  야망 없이 살자는 야망
  찰스 부코스키(번역 황소연)
 
  아버지는 저녁을 먹다가 자꾸 소소한 격언을
  늘어놓았다. 아버지가 음식 앞에서 떠올리는 건
  생존이었다.
  “성공하지 못하면 달걀 껍데기를 핥게 된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사람은 (어쩌고저쩌고)….”
  “미국에서는 하고자 하면 누구나 성공한다….”
  “하늘이 돕는 자는 (어쩌고저쩌고)….”
 
  대체 누구한테 말하는 걸까
  나는 늘 아리송했고
  아버지를 정신 나간 머저리라고 생각했지만
  어머니는 항상 그 설교 시간에
  추임새를 넣었다. “헨리,
  아버지 말씀 새겨듣거라.
 
  그 나이의 내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음식이 설교와 함께
  배 속으로 내려갈 때면
  식욕은 가시고
  속은 더부룩했다.
 
  내 생각에
  아버지만큼
  내 행복에 초를 치는 사람은
  세상에 둘도 없었다.
 
  그런데 보아하니 나 역시
  아버지에게 똑같은
  존재인 듯싶었다.
 
  “게을러터진 녀석.” 아버지는 내게 말했다.
  “평생 게으름뱅이로 살 녀석!”
 
  그러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게으름뱅이로 산다는 게
  이 개새끼와 정반대로 사는 거라면,
  앞으로 꼭 그렇게 살아야겠구나.
 
  아버지가 오래전에
  죽는 바람에
  내가 그것만큼은
  성공했다는 걸
  못 보여주는 게
  안타까울 따름.
 
 

  찰스 부코스키(Charles Bukowski·1920~1994)가 ‘열정이 가득한 미치광이’ 시인이라면 한국의 시인 박남철(朴南喆·1953~2014)도 해체와 비틀기의 대표시인이다. 박남철이 쓴 〈시인의 집·앞〉의 일부분이다.
 
 
 
  스승 조병화께서 악수로써 껄껄껄 세배를 받으신 다음, 구라파적인 술잔에서 꼬냑을 한 잔 따라 주시면서, 스승의 연구실은 무척 따뜻했습니다.
 
  얘, 남철아, 시인에게는 집이 없지 여기 정영자씨도 계시지만, 평론가에게는 집이 있지 소설가에게도 집은 있고, 극작가에게도 집은 있고, 심지어는 수필가에게도 높은 집은 있는 법이지 그러나 얘야, 남철아, 시인에게는 집이 없지 그냥 사람 ‘人’짜, ‘詩人’이지 뭐, 헐헐헐…
 
  스승의 농담은 듣고 보니 시였습니다.
 
  나는 속으로, 꼬냑이란 술도 참 쓴 것이구나 생각하면서, 나는 또 속으로 스승께서는 참 오래간만에 한 번 하시는구나 감탄하면서, 그러면서 나는 또 속으로 스승께서야 그림도 잘 그리시니까, 하늘이며 구름, 지평선이며 길, 까치집 등을 소재로 한 그림도 심심찮게 그리시니까, 그러니까 우리 스승께도 화가로서의 고상한 집 한 채는 있는 셈이니, 결국 집도 절도 없는 사람은 바로 나로구나… 하고
 
  꼬냑처럼 씁쓸하게 생각해 봤습니다.
 
  (이하 생략)…
 
  - 〈시인의 집·앞〉 중에서

 
 
작년 국내 번역된 찰스 부코스키의 시집 《위대한 작가가 되는 법》.
  언제부터인가 아버지(스승)는 기능부전의 존재가 됐다. 아버지는 전통적으로 말이 없으며 마치 ‘부재하는’ 사람과 같다. 동화 〈숲속의 잠자는 미녀〉와 〈백설공주〉에서 아버지는 마녀의 파괴적인 행동으로부터 어린 딸을 지켜주지 않는다. 〈헨젤과 그레텔〉에서 아버지는 어린 아이들을 버린다. 〈심청전〉에서 아버지는 무능하기 이를 데 없고 〈흥부전〉에서 놀부는 ‘나쁜 아버지’, 흥부는 ‘실패한 아버지’의 표상이다.
 
  아버지는 위험하거나 쓸모가 없는 상태, 혹은 부재하거나 모순적인 존재다. 문학작품에서 아버지의 자리는 항상 ‘비어 있는 자리’처럼 그려진다.
 
  하지만 자식(제자)은 누구도 아버지(스승)와 동격이 될 수 없다. 넘어설 수 없는 산이다. 자식은 그 산을 보며 자라지만 산을 평생 넘어서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버지가 아무리 빌어먹을 비렁뱅이라 해도 아버지는 아버지니까….
 
  부코스키와 박남철이 그린 ‘아버지’와 ‘스승 조병화’는 절대자다. 범접할 수 없다. 아버지는 강제적인 가족관계를 지탱하는 삶의 양식이다. 스승은 지식의 귀속성을 유지하는 정신유산이다. 자식과 제자는 아버지와 스승을 넘어서기 위해 몸부림친다. 이 과정에서 증오는 불가피하다.
 
  그리고 그 자식(제자)이 성장해 어느새 아버지(스승)가 돼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한다. 그리고 아버지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가를 새삼 깨닫는다. 무엇보다 자신의 말과 행동 양식이 그렇게 저항했던 아버지(스승)와 판박이처럼 닮아간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아버지와 다른 길을 걷는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하다는 사실에 또다시 절망한다. 어쩔 수 없이 그 아버지의 아들(딸)인 것이다.
 
 
  묘비명에 적힌 Don’t Try의 의미
 
국내 번역된 찰스 부코스키의 말년 일기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
  독일계 미국 시인 부코스키는 ‘빈민가의 계관시인’ ‘언더그라운드의 전설’로 불린다.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현대 시인 중 한 명이다.
 
  부코스키는 평생을 잡역부, 철도 노동자, 트럭 운전사, 경마꾼, 주유소 직원을 전전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중충하고 평범한’ 일만 했다. 솔직한 문장과 직설적인 표현이 담긴 그의 소설과 시는 미국 하층 노동자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1994년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30권의 시집과 6편의 장편소설, 10권이 넘는 산문집을 펴냈다.
 
  최근 국내에 ‘부코스키 신드롬’이라 불릴 정도로 시집과 소설집이 대량 번역, 출판되고 있다. 출판계가 장기불황에 허덕이고 있음을 감안하면 놀랍다.
 
  《위대한 작가가 되는 법》 《사랑은 지옥에서 온 개》(이상 민음사 刊), 《고양이에 대하여》 《사랑에 대하여》 《글쓰기에 대하여》(시공사), 《우체국》 《호밀빵 햄 샌드위치》 《여자들》(열린책들),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모멘토) 등이 최근 2년 사이 국내 소개된 부코스키 책들이다.
 
  그의 책이 이처럼 인기가 많은 이유는 뭘까.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를 번역한 설준규씨는 “자신의 이야기를 바닥까지 털어놓음으로써 친밀감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통속소설 주인공처럼 영웅적인 늠름함을 잃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의 묘비엔 ‘Don’t Try’라고 적혀 있다고 한다. 무슨 뜻일까. 생전 부코스키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애쓰지 마라. 이 점이 아주 중요하다. 기다려라. 아무 일도 생기지 않으면 좀 더 기다려라. 그건 벽 높은 데 있는 벌레 같은 거다. 그게 너에게 다가오기를 기다려라. 그러다가 충분히 가까워지면 팔을 쭉 뻗어 탁 쳐서 죽이는 거다.”
 
  어쩌면, ‘애쓰지 마라’는 그의 말이, 혼란스런 이 시대를 건너는 가장 현명한 방법인지 모른다.⊙
 
[월간조선 2017년 3월호 / 글=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등록일 : 2017-03-16 09:58   |  수정일 : 2017-03-21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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