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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세스 안나의 파란 여름

배우 윤공주가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의 캐스팅 보드에 뒤늦게 이름을 올리며 대문호 톨스토이의 메시지를 되새기게 하고 있다. 브론스키를 사랑하는 것이 최상의 행복이라 믿었던 안나처럼 무대에 서는 것만이 자신을 지키는 일이라 여기는 건강한 여배우, 윤공주의 오늘을 들여다본다.

글 | 이일섭 조선뉴스프레스 기자   사진 | 양수열 C영상미디어 2019-06-26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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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안나’라는 여신으로 강림하다
 
반짝이는 눈빛과 살짝 팬 보조개가 인상적인 윤공주는 작품마다 ‘걸크러시’ 열풍을 일으키는 매혹적인 배우다. 청아함에 이은 파워풀한 음색과 우아함 속에 깃든 다이내믹한 동선을 만들어내며 무대의 균형을 부수곤 한다. 그러나 그녀의 가장 큰 매력은 진솔함과 편안함에 있다. 이브닝드레스 차림으로 레드카펫을 걷는 것보다 운동화를 신고 도시의 성곽 길을 오르는 걸 더 좋아하는 그녀는 자신의 이름과는
다분히 다른 성향을 갖고 있다.

<그리스>의 싱그러운 소녀 ‘샌디’와 <사랑은 비를 타고>의 어여쁜 이벤트걸 ‘유미리’ 등을 연기하며 신인 시절을 보낸 이후 그녀는 <아이다>와 <마리 앙투아네트> 등의 타이트 롤을 차례로 거머쥐며 한국 뮤지컬 시장의 대표 배우로 성장했다. 더욱이 올여름 최고의 대작인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의 주역으로 캐스팅되며 배우 인생 20주년을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게 아무런 갈등 없이 저절로 이뤄진 건 아니다.

그녀의 이번 여름 계획은 종로에 있는 영어학원에 등록해 자막 없이 오리지널 공연을 감상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는 것이었다. 늘 집과 극장을 오가는 단조로운 궤도에서 벗어나 도심의 수많은 길목을 걷고 동료 배우들이 열연하는 모습을 객석에서 지켜보고 싶었지만 그 계획은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막 연습에 돌입한 차지연이 갑상선암으로 하차를 하게 되면서 뒤늦게 ‘안나’가 되는 일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 여유로운 휴지기 대신 처음 맞는 배역에 도전하는 일이 피곤하기도 하지만 누굴 대신한다는 생각보다는 주어진 기회를 감사해하며 베테랑다운 노련함으로 ‘안나’의 사랑과 선택을 열연해 내고 있다.

윤공주는 좋은 배우가 되는 덕목으로 ‘아픈 경험’을 꼽는다. 지난겨울부터 최근까지 이어진 <지킬 앤 하이드>의 ‘루시’ 역에서도 삶의 고뇌를 경험했지만 현실 속에서 맞닥뜨리는 좌절은 그녀를 더욱 겸허하고 강인하게 만들곤 했다. 자신의 이름처럼 그늘이 없고 환하기만 한 날들이 이어졌을 듯싶지만 잠에서 깨면 모든 것이 꿈이기를 바랄 만큼 현실은 늘 고달픈 무대였다고.
 
‘아픈 경험’ ‘건강한 심신’이 있어야 한다
 
유독 오디션에 취약해 경쟁 체제의 캐스팅에선 번번이 고배를 마셨고 그것이 강력한 성격을 창조하지 못하는 밋밋한 내면 탓이라는 점을 받아들이는 것은 더 참혹했다. 하지만 그 절망 속에서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한 갈망을 더 키웠고 동료들의 혀를 내두르게 하는 연습량을 기본으로 삼으며 가장 안정감 있는 배우로 거듭나게 됐다. 부족한 유연성에서 비롯되는 미숙함을 많은 연습을 통한 자신감으로 극복해 낸 것이다. 그녀는 배우라는 일에 몰두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으로 자신의 건강함을 꼽곤 한다.
 
보컬‧ 허슬‧ 댄스‧ 런 스루(Run-through) 등 흥겹지만 많은 노력과 오랜 무명 시절을 동반해야 하는 배우생활에서 지쳐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무한한 열정이 필요하며 그 뜨거운 동경은 건강한 몸과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오늘도 그녀는 압구정동에서 한남동까지, 약수역에서 종로까지 무작정 걷는다. 좀 더 강건한 심신을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1m도 안 되는 보폭으로 10km, 15km를 이동하는 것은 큰 인내를 필요로 하지만 걸음만으로 목적지에 닿는 순간 느끼는 희열과 만족감은 너무도 크다. 걷는 동안에 얻어지는 구체적인 생각과 평정심, 높아진 체온은 갈등과 외로움, 스트레스와 좌절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곤 한다. 그녀에게 신약神藥이나 다름없는 걷기, 분명 우리에게도 좋은 묘약妙藥이자 건강한 삶을 위한 최상의 방식이 돼줄 것이다.

Q. 요즘도 다이어트 중이라고 들었다. 무얼 즐겨 먹나.
A. 미식가라기보단 잡식가에 가깝다. 갈비, 그라탕, 냉면, 초밥 모든 음식을 다 잘 먹지만 쉽게 살이 찌는 체질이라 먹는 일에 절제를 하지 않으면 곤란한 일이 생기곤 한다. 그렇다고 매일 닭 가슴살만 먹으면서 욕구 불만으로 지내는 건 아니다. 칼로리가 많거나 몸을 무겁게 하는 메뉴는 피하고 가급적 소식을 하는 편이며 이젠 조금 부족하게 먹는 게 익숙하고 편하다. 김치를 주재료로 하는 음식이 내게 잘 맞는 것 같다. 두부김치와 백김치, 오이소박이를 즐겨 먹는다.
 
Q. 늘 건강의 중요성을 강조하곤 한다. 특별히 아팠던 경험이 있었나.
A. 배우란 몸을 기반으로 하는 직업이지 않나. 모든 직업이 다 그렇지만 무대에서 춤추고 노래해야 하는 배우에게 건강한 심신은 공연의 원료에 해당한다. 크고 작은 부상, 감기 기운, 불안정한 정신상태 등 약간은 망가져 있는 상황에서 공연에 임하다 보니 건강을 유지하는 일에 더 집착하게 되는 것 같다. 또 연로하신 아버지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으셔서 더 그런 생각을 갖게 된 것 같다. 돈이 없으면 안 사면 그만이지만 건강하지 못하면 정말 그 무엇도 할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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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건강상의 이유로 하차한 차지연을 대신해 <안나 카레니나>에 합류했다. 처음 제안이 왔을 때 망설이지는 않았나.
A.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갑작스런 시작이었지만 작품에 대한 소중함과 기회에 대한 감사함으로 한 발 늦었다는 부담을 지울 수 있었다. 톨스토이의 원작 소설을 제대로 읽어보지도 못한 상태에서 무대에 서야 했다. 인물에 대해 작품에 대해 충분한 분석 없이 연기를 하는 게 두렵기도 했지만 완전한 단계란 이론상에나 있는 이야기이므로 내 느낌과 경험치에 기대서 밀고 나갔다. 그런 결단과 과정이 멋지다고 생각했다. 남이 지운 짐도 아니고 내가 원해서 메고 가는 일인 만큼 어렵고 힘들다 해도 완수해야 하는 게 프로 배우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Q. 한때는 이도저도 아닌 밋밋한 이미지를 극복해 내느라 나름 힘든 시기가 있었다고 들었다.
A.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은 빈 도화지 같은 내 느낌이 캐스팅 과정에서 늘 약점이 되곤 했다. 섹시하다, 강렬하다는 말은 고사하고 특별한 느낌을 갖고 있다는 얘기조차 들어보지 못했으니까. 오디션의 결과는 늘 엉망이었고 급기야 ‘울기만 하는 연습벌레’ 라는 별명까지 생겨났다. 우는 게 약이 됐는지 그 후로 내 여릿한 느낌을 다양한 도전으로 메워가겠다는 비전을 두게 됐다. 빈 도화지이기 때문에 더 많은 걸 그려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표출하며 적역 대신 예측불허의 배역이 더 폭발력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 주력했다.
 
Q.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언제인가?
A. 집을 나서서 극장을 향해 걸어갈 때. 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온종일 걷고 싶지만 마냥 길 위에 있을 수는 없고 시간을 쪼개서 걷는 시간을 마련한다. 황사가 걸림돌이 되고 힘에 부칠 때도 있지만 걷고 나면 늘 기분이 좋아진다. 공연 기간 중엔 조금만 몸이 아파도 크게 느껴지는 편인데 그런 부담감을 지우는 데 걷기가 그만이다. 몸을 적당하게 데울 수가 있어서 공연을 위한 워밍업으로도 최상이다. 길을 걷다 보면 걱정도 근심도 미움도 감미롭고 상쾌한 감정 상태로 바뀌어버린다.
 
Q. 슬럼프 증상은 어떻게 극복하나.
A. 사실은 매일매일이 슬럼프다. 그러나 슬럼프가 꼭 나쁜 것만도 아니다. 자신감으로 몸을 채우기보단 긴장감이나 주변의 조언으로 자만을 비워내야 공연이 좀 더 꽉 차진다는 걸 경험했기 때문이다. 또 잘 안 되는 걸 잘 되게 하려는 고투가 있어야만 작품의 완성도가 높아지는 게 무대의 룰이다. 내 뜻대로 안 되는 연기와 노래, 연출가와의 견해 차이에 대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난 좀 더 아름답고 우아한 안나가 되기 위해 집중했는데 러시아 연출가는 좀 더 강하게 밀고 가야 한다고 지적한다. 망치로 벽을 부술 듯한 강도가 노래에 담겨야 한다고 거듭 조언하는 데 러시아 여자들이 좀 드센가 하며 그 상황을 툭 쳐서 정리한다. 스스로 자유로워져야만 난코스와 슬럼프를 지나갈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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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안나 카레니나>의 실황 장면. 오는 7월 14일까지 한남동 블루스퀘어 인타파크홀에서 공연된다.
등록일 : 2019-06-26 09:19   |  수정일 : 2019-06-26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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