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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진 기자의 잉글리시 문화사

<명량>의 이순신 장군...너무 뚱뚱한 것 아닌가?

영화 ‘명량’의 허구와 진실

글 | 이범진 조선pub 차장대우
필자의 다른 기사 2014-07-31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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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7년 정유년. 이 해 충무공 이순신(1545~1598)에겐 많은 일이 있었다. 왜군의 간계에 빠진 조정은 그해 1월, 단 한 번도 패한 적 없는 전쟁영웅 이순신의 관직을 삭탈하고 모진 고문을 가했다. 석달 뒤인 그해 4월 13일엔 공의 모친이 세상을 떠났다. 7월에는 칠천량에서 조선 수군이 대패했다. 놀란 조정은 8월 3일 백의종군 하고 있는 충무공을 삼도수군통제사로 다시 임명했다.
 
전쟁영웅을 왜의 간첩으로 몰며 능멸한 정치인들. 전쟁 중에 아군 사령관을 고문해 신체를 만신창이로 만든 어리석은 임금. 이들에게 충성을 맹세하면서 충무공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우성치는 백성을 앞에 놓고도 권력투쟁에 여념이 없는 400년 전 조선의 모습은, 6.25 전쟁이 한창인데도 국방장관과 내무장관을 교체했던 부산 피란국회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1597년 8월, 남원과 전주가 잇달아 함락됐다. 다음달인 9월 16일, 충무공은 12척의 조선 수군을 이끌고 330척에 달하는 일본 대군과 정면으로 부딛쳐 ‘불가능한 승리’를 쟁취한다. 세계 해전사에 길이 남는 명량해전이다.
 
이렇게 위대한 인물이 다시 나타날 수 있을까? 7월 30일 개봉한 영화 ‘명량’은 1597년 9월 16일 있었던 명량해전을 소재로, 이길 수 없었던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낸 성웅 이순신의 고뇌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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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영화는 오락영화가 아니다.
 
전투신은 처절하고 생생하게 묘사됐지만, 이 영화는 절대 ‘볼거리’가 아니다. 감정이 완전히 이입돼, 내가 주인공이 된 것 같은 착각을 이 영화는 제공해주지 못한다(이게 영화를 보는 묘미인데). 이 영화엔 흔해 빠진 유머도, 싸구려 폭력도, 말장난도 없다. 미소 한번 짓게 하지 않는다. 128분 내내 가슴이 먹먹해질 뿐이다. 이순신이란 한 인간은 왜 이렇게 외곬으로 살았을까. 영화를 보고 나면 그 삶에 대한 안쓰러움과 존경심이 길고도 깊게 메아리친다.
 
그러나 배우의 역량은 부족했다. 이 위대한 인간의 내면을 어찌 감히 표현할 수 있으랴. 국민배우로 꼽히는 최민식이 역부족일 정도이니…. 처연하고도 성스러운 위인의 고뇌를 2시간 필름에 담으려는 시도 자체가 무리였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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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명량해전에 동원된 일본 함대의 규모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영화는 동원된 왜선이 330척인 것으로 묘사했다. 그러나 전해지는 기록은 상이하다. 일본 참모본부가 1924년 발간한 ‘일본전사 조선역 본편’ 368쪽에는 명량해전에 동원된 일본함대가 300여척 규모였다고 기록돼 있다. ‘이충무공전서’ 권9, 부록1, 행록에는 “명량해전 때 일본 전선 333척이 이순신 함대를 에워쌌다”고 기록돼 있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 정유년 9월 16일자 기록은 “일본 전선 133척이 조선 함대를 에워쌌다”고 돼 있다.
 
관련 기록이 이처럼 차이를 보이는 이유 역시 명확하지 않다. 학계에는 △왜군이 300여척의 함선을 이끌고 명량으로 왔지만, 입구가 좁아 100여척만 들어오고, 보급선 등 나머지 200여척은 밖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퇴각했다는 견해와 △공포에 절어 도망친 왜군 병사들이 상황을 과장해 보고했을 것이란 두 가지 추론이 존재한다. 충무공이 조정 내부의 견제 세력을 의식해 의도적으로 왜선 함대규모를 축소했을 것이란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같은 주장의 근거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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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명량해전에는 거북선이 등장하지 않았다.
 
‘이충무공전서’ 권9, 부록1, 행록에 따르면 “회령포(전남 장흥군)에 이르니 전선이라곤 다만 10척인데, 공이 전라 우수사 김억추를 불러 병선을 거두어 모으게 하고, 또 장수들에게 분부하여 거북선 모양으로 꾸며서 군사의 위세를 돋구도록 했다”는 기록이 있다. 일부에서는 이를 토대로 ‘명량해전에도 거북선이 활약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거북선 모양으로 ‘꾸몄다’는 기록으로 볼 때, 명량해전에서 거북선이 활약했다고 단정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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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경상우수사 배설은 거북선을 불태우지 않았다.
 
영화에는 전쟁에 반대하는 경상우수사 배설이 1대 남은 마지막 거북선을 불지르고 도망을 치다가, 안휘가 쏜 화살에 맞아 숨지는 것으로 나온다. 그러나 배설이 불태운 것은 거북선이 아니라 한산도의 군진이었다. 1597년 7월 있었던 칠천량 해전에서 전황이 불리해지자, 배설은 12척의 배를 이끌고 도주했다. 도망치기 전 그는 한산도 군진의 군량과 무기, 군자재가 왜군에 넘어가지 않게 하기 위해 불태우고 백성들을 대피시켰다. 이 12척의 배가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끈 12척의 판옥선이다. 한번 도망친 배설은 명량해전을 앞둔 1597년 9월 “12척으로 어떻게 300척이 넘는 왜군과 싸우느냐”며 또 다시 탈영한다. 이는 영화와 같다. 그러나 탈영한 배설을 처형한 것은 권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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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조선 배보다 왜군의 배가 더 빨랐다.
 
영화에는 조선 판옥선이 빠른 속도로 왜선에 부딛쳐 침몰시키는 광경이 나온다. 이는 명량의 빠른 물살을 이용한 이순신의 전술이었다. 조선의 주력 함선은 아래 위, 이층 구조로 된 판옥선이었다. 높이가 높아 왜적이 쉽게 건너올 수 없었으며,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활을 쏠 수 있어 공격에 용이했다. 그러나 속도는 느렸다. 밑바닥이 평평한 평저선의 형태였기 때문이다.
 
조선의 배는 속도는 느렸지만, 바닥이 평평하기 때문에 수심이 낮은 곳에서도 이동이 자유로웠다. 반면 일본의 군함은 오늘날 배처럼 밑바닥이 뾰족하고 날카롭게 튀어나온 형태를 지녔다. 이런 형태의 배는 속도가 빠르지만 수심이 얕은 곳에선 이동이 불편하다는 단점이 있다. 회전하는 속도 또한 평저선보다 느리다. 이순신은 이같은 장단점을 면밀히 파악해, 수심이 얕고 물살이 빠르게 변하는 명량에서 아군 30배 규모의 왜군을 격파했다. (명량해협은 지금의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반도~진도 사이에 있는 길이 2km 정도의 수로다. 평균폭은 약 500m가량 되지만, 가장 좁은 곳은 150m에 불과하다. 최저수심은 1.9m 밖에 안되는 반면, 조류의 속도는 11.5 노트로 대단히 빠르다. 유달리 암초가 많은 이곳은 ‘물 흐르는 소리가 울음소리 같다’ 해서 울돌목이라고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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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거북선은 돌격용으로 고안된 특수전함이었다.
 
거북선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신속하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고안된 특수전함이다. 적함대를 향해 가장 먼저 돌진해 포를 쏘며 적진을 교란시키고, 적군의 대장선으로 빠르게 접근해 집중 공격해 깨뜨리는 역할을 맡았다. 전장의 기선을 제압해 승리로 이끄는 일종의 특수부대였다.(해양문화연구 2010 5월, 송은일 ‘임진왜란기 거북선 층구조에 대한 역사적 고찰’ 참고.) 당시 조선의 배는 소나무로 만들었다. 반면 왜군은 일본산 삼나무인 스기목으로 만들었다. 스기목은 소나무에 비해 강도가 한참 떨어진다. 따라서 조선 배와 일본 배가 부딪치면 당연히 왜군의 피해가 더 크다. 그러나 쌍방이 정면충돌하는 것은 피해가 너무 커서, 충파(배끼리 부딛침)가 실제 작전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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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당 김은호, 충무공 영정. 1962

7. 이순신은 통통하지 않았다
 
명량해전 당시 충무공의 건강상태가 어떠하였는지에 대한 상세한 기록은 없다. 그러나 당시 53세의 고령(조선시대 평균 수명은 46.1세였다)이었다는 점과, 명량해전이 일어난 1597년초 모진 문초를 당하고 감옥생활을 겪은 뒤 백의종군했다는 점으로 미뤄, 건강상태가 좋지 않았음을 유추할 수 있다. 난중일기에는 ‘수시로 두통을 겪고 코피를 쏟았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피를 토했다는 공식 기록은 없다.
 
이순신 역할을 맡은 배우 최민식은 통통한 몸집으로 촬영에 임했다. 충무공은 수시로 두통을 겪고 코피를 흘렸던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1597년 한 해에 삭탈관직, 고문, 백의종군, 모친의 죽음, 아들의 죽음을 모두 겪은 데다, 패전 일로의 전장에 투입돼 지휘관을 맡아 온갖 역경을 극복하고 불가능한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점으로 볼 때, 통통한 몸매를 가졌다고 보긴 어렵다. 
※도움말 송은일 전남대학교 이순신해양문화연구원 연구실장(사학박사)

 
등록일 : 2014-07-31 11:02   |  수정일 : 2014-09-12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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