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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진 기자의 잉글리시 문화사

설탕 뺀 미숫가루같은 영화 ‘어떤 만남’

글 | 이범진 조선pub 차장대우
필자의 다른 기사 2014-07-26 15:49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 것 같다. 소피 마르소를 보니 더욱 그렇다. 그녀가 영화 ‘라붐(La Boum)’을 통해 ‘국민 첫 사랑’으로 전세계에 등극한 것이 1980년. 이후 34년이 흘렀지만 이 여배우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34년 전의 헤어스타일, 34년 전의 미소, 34년 전의 표정이 아직도 여전하다. 다만 좀 늙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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뭇 남성의 연인(유 콜 잇 러브, 1988년)이자, 아리따운 공주(브레이브 하트, 1995년)였던 그녀는 격정적인 여인(나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 1990)과 본드 걸(007 언리미티드, 1999년)을 거쳐, 악령의 숙주(벨파고, 2001년)까지 엄청난 보폭의 연기를 보여줬다. 그러나 7월 31일 개봉되는 영화 ‘어떤 만남(Une Rencontre)’에선 34년 전의 그 모습으로 되돌아온 듯하다. ‘관리의 여신’이라고 격찬할 만도 하지만, 스스로 세팅해놓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가련한 인간의 모습을 보는 것도 같기도 하다. 어쩌면 그게 자연스러운 일일지 모른다. 우리 또한 자신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또 다른 소피 마르소일테니까.
 
 
엘자(소피 마르소)는 잘 나가는 소설가다. 남편과 이혼소송을 벌이고 있는 그녀는 올해로 마흔이다(소피 마르소의 실제 나이는 만 48세다). 사실상 ‘돌싱’인 그녀는 스물세살이나 어린 25살의 ‘영계’를 애인으로 두고 있다. 우리 같으면 ‘헉’ 하며 받아들여질 듯한 이런 설정이 프랑스에선 드문 일이 아니라고 한다. 영화에는 엘자의 집에서 밤을 보낸 25세의 젊은 애인이, 다음날 아침 엘자의 아들과 함께 게임하는 장면이 나온다. 늦잠을 잔 엘자는 애인과 놀고 있는 아들을 안아주고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짧은 순간이지만 눈길을 끄는 것은 아들의 반응.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엄마한테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애인’과의 게임에만 몰두하고 있다.
 
 
남편, 아내, 아이…. 한 가족 세 식구 모두 각각의 ‘애인’을 두고 있다는 나라 프랑스. 그리고 그런 상황을 크게 이상하게 여기지도 않는다는 나라 프랑스. 각료급 인사들도 결혼보다 동거를 택하는 나라 프랑스. 영화 ‘어떤 만남’은 이런 프랑스 사회에서 벌어지는 중년 남여의 외도를 사실적으로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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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류작가 엘자는 자신의 책 ‘퀀텀 러브(Quantum Love는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이기도 하다)’의 출판 기념회에서 변호사 피에르(프랑수아 클루제)를 만난다. 이런 류의 영화가 다 그렇듯, 엘자는 피에르를 보는 순간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묘한 감정을 느낀다. 피에르도 마찬가지다. 화목한 가정, 안정적인 직장, 윤택한 경제력 등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여건을 두루 갖춘 피에르이지만, 엘자를 처음 본 순간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드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 다음부터는 뻔한 스토리다. 두 사람은 “아무것도 정하지 말고 운명에 맡기자”며 서로의 전화번호를 묻지도 않는다. 말로는 ‘운명’이라고 했지만, 여기서 운명이란 감정의 또 다른 표현에 불과하다. 감정이란 항상 과장을 향해 치닫는 법. 운명에 맡겨보자는 두 사람은 감정이 이끄는 대로 사랑에 빠져든다. 정해진 수순이다.

스토리는 새로울 게 없다. 연기도 섬세하진 않다. 수입사는 “섬세한 감정 연기”라고 홍보했지만, 유감스럽게도 아련하게 가슴이 아려오는 느낌이 없다. 화면은 아름답다. 색상도 수려하다. 연인들이 사랑의 자물쇠를 걸어놓는 것으로 유명한 퐁데자르 다리(이 다리는 설치된 자물쇠 수만개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지난 6월 7일 무너졌다)에서 엘자가 걷는 장면, 피에르가 공원에 홀로 서있는데 비오듯 꽃잎이 떨어지는 모습 등은 매우 인상적이다. 특히 겹쳐 보이는 건물 유리 사이로 엘자가 사뿐히 다가오는 모습은 아름다우면서도 몽환적이다. 그러나 그뿐이다. 자막이 다 올라갈 때까지 관객을 붙잡아두는 긴 여운이 이 영화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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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사랑이란 그런 것일까? 한순간 격정적인듯 하다 이내 식어버리는, 양은 냄비같은 것일까? 아무것도 넣지 않은 미숫가루처럼, 자극 없고 밋밋한 그런 맛일까? 그런 의미에서 영화를 싱겁게 만들었다면, 감독은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미세하게 갈린 미숫가루 분말처럼, 영화의 감촉은 혀 끝에서 오돌거리다 만다. 딱 거기까지다.

마흔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예쁜 척하는 엘자와, 넋 나간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는 피에르의 표정은 순수하다기 보다 철없어 보여 불편하다. 비오는 파리에서 두 사람이 포옹하며 웃는 모습은 철부지 10대의 얼굴이다.

‘운명에 맡긴’ 중년의 사랑은 자칫 격정적으로 치달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밋밋하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고, 주변 또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상으로 돌아간다. 사랑도 인생도 다 그렇다는 듯, 영화는 뭔가 있을 것처럼 나가다가 심심하게 끝이 난다. 꼭 설탕 뺀 미숫가루같다. 중년의 사랑이란, 원래 그런 것이라는… 싱거운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이라면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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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14-07-26 15:49   |  수정일 : 2014-07-31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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