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기사목록 
  2. 글자 작게 하기글자 크게 하기

마음장애 아이들의 남다른 이야기

우리들 마음은 비 오는 놀이터에서 놀고 있어요

비 오는 날 나흘 째, 3번 방 이야기

알람 소리에 눈을 뜨니 오늘도 빗소리가 들렸다.
나흘째 내리는 비.
캘리포니아에서 7년이 넘게 살면서 이렇게 며칠에 걸쳐 비가 많이 오는 것은 처음 보았다.
연이여 나흘째 이어지는 비에 평생을 캘리포니아에서 산 학교 동료들도 신기하다고 했다.
비 오는 날 나흘 째, 3번 방 이야기
워낙 가뭄이 심한 곳이지만 반가운 비도 하루 이틀이지 이제 그만 비가 멈춰줬으면 싶다.

글 | 박소풍 미국 초등학교 특수학급 보조교사 / 작가
필자의 다른 기사 2019-09-09 15:59

겨울에 가끔 비가 올 뿐, 비 오는 날이 귀한 탓인지 이곳 사람들은 비가 오는 날 우산을 들고 수선을 피우는 행동을 별로 하지 않는다. 간혹 장화나 비옷을 입은 아이들도 있지만 비 오는 날 우산을 들고 학교에 오는 아이들이 절반도 되지 않는다.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와서 학교 입구 앞에 내려놓고 가니 부모들은 더욱 아이들에게 우산을 챙겨줄 필요를 못 느끼는 모양이다.  혹 걸어서 등교하는 아이들도 잠바에 붙은 모자나 비니 같은 것을 쓰고 비슷한 모습의 부모와 함께 부슬부슬 내리는 빗속을 걸어 학교에 오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는 날이 아니면 우산을 든 사람들보다 우산 없이 다니는 사람들이 더 많다.
 
우리 학교 건물들은 전체적으로 지붕이 확장되어 있어 건물을 따라 걸으면 거의 비를 맞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교실이 본관이 아닌 떨어진 건물에 있는 경우에는 비가 많이 내리면 여러 가지로 불편함이 많다. 아이들이 최대한 비에 젖지 않게 노선을 정해 움직이기는 하지만 지붕이 없는 곳을 지나야 할 때 우산이나 우비가 없는 아이들이 많으면 난감하다. 3번 방은 본관과 떨어져 있어서 화장실이나 보건실에 가려면 빗속을 뚫고 가야 한다. 그래서 순번을 정해서 아이들 두 세 명씩 모아서 교사들의 우산을 나눠 쓰고 화장실에 데리고 다녔다.
 
서태지를 꼭 닮은, 요즘 대세라는 예쁜 소년 말로는 늘 해맑고 명랑한 아이다. 짜증 내는 법이 거의 없는 말로가 오늘 아침 일어나자마자 오늘도 비가 온다며 울상을 지었다고 말로 엄마가 전해주었다. 지난 사흘 동안  3번 방 꼬마들은 비 때문에 교실에 꼼짝없이 갇혀있는 신세였다. 그러니 잠에서 깨었을 때 들려오는 빗소리가 말로는 정말 싫었던 모양이었다.
 
비 때문에 나흘 동안 3번 방 꼬마들은 간식도 점심도 교실에서 먹었다.다들 밖에 나가 놀 수 없으니 간식을 먹으며 TV 속 만화영화에 눈길은 주지만 온몸을 가만히 두지를 못했다. 간식과 점심 후 쉬는 시간에는 교실에서 블록이나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다. 그렇지만 넘치는 에너지를 발산시킬 수 없으니 금방 싫증을 내며 수선을 피우고 투닥거리며 싸우기 일쑤였다. 남다르게 분주하고 산만한 아이들을 방 안에만 가두어 놓으니 아이들이 좀이 쑤실만하다. 3번 방 아이들이 사고 없이 교실 안에서 얌전히 놀도록 지켜야 하는 보조교사들도 한계가 느껴졌다.
 
장마도 아니고 나흘 연달아 비가 주룩주룩 이라니. 올 겨울, 가뜩이나 비 오는 날을 싫어하는 3번 방 꼬마들 장마 없는 캘리포니아에서 연이은 나흘간 비를 통해 지루한 장마의 쓴맛을 쪼끔 맛본 듯하다. 비디오도 보고 장난감을 갖고 놀기도 하고 춤을 추기도 했지만 답답한 교실에 갇혀있는 것에 지쳐가는 3번 방 꼬마들이었다. 오늘 페톤은 놀다말고 뜬금없이 소파에 있는 쿠션으로 집 같은 걸 만들어 들어가 앉아있었다. 그런데 집이냐고 물어보니 화장실이란다. 뭐? 화장실? 그러더니 끙끙거리며 똥 누는 시늉을 했다. 얼마나 답답하면 화장실을 만들어 들어갔을까 싶으면서도 페톤의 독특한 놀이에 웃음이 났다.
 
밖에 나가서 신나게 뛰고 싶은 아이들은 문득 창문에 코를 붙이고 비에 젖은 놀이터를 바라보았다. 돌아가면서 한 두 번씩 창문에 붙어 창 밖을 바라보는 아이들 모습이 귀여우면서도 안쓰러웠다.
 
문득 매일 맑고 화창한 캘리포니아 날씨가 지겹다던 비 오는 날을 좋아하는 어느 지인이 생각났다. 나도 3번 방에서 일하기 전에는 어쩌다 비 오는 날 집 안에서 빗소리를 듣는 것을 좋아했었는데……3번 방 꼬마들과 나흘을 방 안에 갇혀 갑갑한 날들을 보내다 보니 그 지겨운 화창한 날이 너무 그립구나.
 
비 오는 날 나흘째, 누군가에게는 지겨운 그 한결같은 캘리포니아의 화창한 날씨가 너무 보고 싶다. 나도 3번 방 꼬마들 만큼 이제 그만 비가 그치길 바라는 모양이다.

비야 고맙지만 이제 그만. 우리 3번 방 꼬마들 나가 놀게~ 나도 같이 나가 놀게~
비야 고맙지만 이제 그만. 우리 3번 방 꼬마들 나가 놀게.
비야 고맙지만 이제 그만. 우리 3번 방 꼬마들 나가 놀게.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칼럼니스트 사진

박소풍 미국 초등학교 특수학급 보조교사 / 작가

미국학교에서 특수학급 보조교사로 일하고 있는 한국 아줌마가 들려주는, 가슴 아프지만 소풍같이 두근두근한 "남들과 다른 아이들"의 이야기

등록일 : 2019-09-09 15:59   |  수정일 : 2019-09-09 18:00
  1. 프린트하기 
  2. 기사목록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SNS 로그인
  • 페이스북 로그인
  • 카톡 로그인
  • 조선미디어 통합회원 로그인
  • pub 로그인
댓글을 입력해주세요.

마음챙김 명상 클래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