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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장애 아이들의 남다른 이야기

어쩐지 슬픈 너의 그 말

3번 방 책벌레의 말에 담긴 서글픔에 대하여

3번 방 레시가 아빠와 엄마를 행복하게 하겠다는 말을 할 때마다 왠지 그 말이 슬프게 느껴진다.

글 | 박소풍 미국 초등학교 특수학급 보조교사 / 작가
필자의 다른 기사 2019-09-02 18:20

자폐가 심한 우리 반 레시는 책을 상으로 받고 싶어 하는 아이다. 책 읽는 자녀를 두고 싶은 게 부모들의 소망 중 하나라면 그런 면에서 레시는 부모들이 바라는 아이일 수 있다. 그러나 레시의 책 읽기는 다른 부모들이 바라는 독서와는 거리가 있다. 아직 혼자 책을 읽지 못하는 네 살짜리 레시는 책장을 넘기며 자기만의 상상에 빠져 두 손을 흔들며 그림을 즐기다 뜬금없이 괴성을 지르곤 한다.
 
다른 아이들과 함께 논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는 레시는 같이 놀고 싶어서 다가오는 아이들이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이라 오해하여 깨물거나 때린다. 학기 초,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하라고 하면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할퀴거나 물건을 던지면서 폭력적으로 변하는 레시를 학급 활동에 참여시키는 것이 3 번 방 교사들에게 큰 도전이었다.

교사가 요청할 일을 할 때마다 스티커를 붙여서 5개를 모으면 책을 읽을 수 있게 있게 하거나 레시가 좋아하는 고무인형을 갖고 놀게 하는 방법을 사용하면서 레시는 점차 학급에 적응하고 규칙을 따르기 시작했다.
 
레시와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레시에게 다가가는 또 한 가지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레시가 하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거나 화를 내려고 할 때 조용히 레시에게 말하는 것이다.
“레시, Make mommy happy.”
“레시, Make daddy happy”
그러면 레시는 교사를 물끄러미 보다가
“Make mommy happy.” 또는 “Make daddy happy”라고 따라 하면서 억지로 하는 척을 하였다.
항상 위력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읽던 책을 치우고 수업에 참여하도록 할 때, 그 말은 공격적으로 변하려는 레시의 마음을 마법과 같이 움직였다.
 
레시의 엄마는 아이스크림처럼 달콤하고 영화배우처럼 우아한, 조용하고 아름다운 사람이다. 조폭 영화에 나올 법한 외모의 레시 아빠도 커피 라테같이 부드럽고 따뜻한 사람이다. 반면에 레시는 선인장 가시처럼 뾰족하고 빵빵한 고무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이다.

다른 사람의 감정이나 마음을 헤아리기 어려운 레시지만 아빠와 엄마의 끝없는 인내와 그 깊은 사랑은 느끼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여느 아이들처럼 아빠와 엄마를 기쁘게 해주고 싶다는 소망을 가진 모양이다.
 
어느 날,  집에 갈 준비를 하는데 레시가 갑자기 화를 내면서 교사들을 발로 차고 의자를 집어던졌다. 이런저런 방법을 써도 레시는 점점 폭력적으로 변할 뿐이었다. 할 수 없이 레시 엄마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교실로 와서 레시를 데리고 가도록 부탁했다. 엄마가 들어오자 멈칫하는 레시를 꼭 안고 진정시킨 후, 레시 엄마는 미안해하는 교사들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It’s Ok. Everybody can have a bad day.”
 
레시를 안고 교정을 나서는 레시 엄마의 뒷모습을 보면서, 좋은 날보다 나쁜 날이 더 많은 자폐가 심한 딸을 키우면서도 수시로 찾아오는 나쁜 날을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나쁜 날들 중 하루로 생각할 줄 아는 레시 엄마의 긍정적인 마음이 존경스러웠다. 
 
레시는 다른 TK들과 함께 하루에 한 시간씩 일반 TK반에 가서 통합 수업을 받는다. 어느 날, 하교 시간에 레시가 수업하러 가는 일반 TK 반의 한 아이가 자기 생일이라고 Goody Bag을 친구들에게 하나씩 나누어주었다. (미국에서는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날에 조그마한 봉지에 작은 장난감이나 캔디, 학용품 등을 넣어 친구들에게 나누어주기도 하는데 그것을 Goody Bag이라고 부른다.)

그 아이는 환하게 웃으면서 레시에게도 Goody Bag을 내밀었다. 그 아이와 Goody Bag을 힐끗 쳐다본 레시는 다른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모두 깜짝 놀랄 만큼 큰 소리로
"NO~!!!!"
라고 소리를 질렀다. 레시 엄마가 그 아이에게 Goody Bag를 달라고 했지만 이미 마음이 상한 아이는 빨개진 눈으로 고개를 저었다.
 
친절을 베풀려다가 레시에게 거부당한 그 아이의 속상한 마음과 친구의 Good Bag을 바퀴벌레 인양 소름 끼치게 싫다고 외칠 수밖에 없는 레시가 안쓰러웠고, 그런 레시의 삶을 지켜주기 위해 남보다 더 많이 아플 레시 엄마 마음이 가늠이 되어 아이들이 아빠, 엄마들과 함께 사라지는 뒷모습을 보는 내내 마음이 짠했다.
 
레시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레시, Make mommy happy.” 나 “레시, Make daddy happy”란 말을 사용하고 있지만 내가 한 말을 따라 중얼거리며 억지로 학습지에 뭔가를 끄적이는 레시를 바라보고 있으면 어쩐지 마음이 슬퍼진다.
 
“레시, Make mommy happy.”
“레시, Make daddy happy”
아마도 아빠나 엄마에게서 또는 다른 누군가에게서 반복적으로 들어왔을 그 말을 레시가 화를 참아가며 따라 하는 것이 왠지 서글프게 들린다.
 
레시의 아빠나 엄마를 가장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레시가 행복한 것일 텐데, 다른 아이들처럼 친구들과 어울리며 함께 웃는 것일 텐데, 그 당연한 것이 레시가 닿기에는 너무도 아득해 보여서 레시의 아빠, 엄마가 바라는 그 평범한 행복이 안타깝다.
 
레시가 지금은 그 평범한 행복에 닿기 힘든 먼 곳에 있을 지라도 선인장같이 뾰족한 레시의 마음을 하나하나 어루만지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레시를 꼭 안아주는 따뜻한 아빠와 엄마가 있어서 참 다행이다.
 
오늘도 몇 번의 크고 작은 전쟁 속에서 “Make mommy happy.” ,“Make daddy happy”라고 주문처럼 외우는 레시의 말은 나에게 여전히 슬프게 다가왔지만 언젠가는 레시가 깨닫게 되는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레시가 다른 사람들과 어우러지는 삶을 행복하게 여기는 날이 오면 어떤 거창한 노력을 하지 않아도 레시의 아빠와 엄마는 행복해질 것임을.
 
책 속의 그림에 빠져 손을 흔들고 있는 레시를 바라보며 레시가 다른 친구들에게 손을 흔들며 다가갈 수 있는 날이 속히 오기를 꿈꿔 본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칼럼니스트 사진

박소풍 미국 초등학교 특수학급 보조교사 / 작가

미국학교에서 특수학급 보조교사로 일하고 있는 한국 아줌마가 들려주는, 가슴 아프지만 소풍같이 두근두근한 "남들과 다른 아이들"의 이야기

등록일 : 2019-09-02 18:20   |  수정일 : 2019-09-02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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