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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윤송아의 만렙 도전기

욕심을 버리면 행복이 찾아올까요?

글 | 윤송아 배우·화가
필자의 다른 기사 2019-08-07 09:43

시간이 어느 새 이렇게 흘러간걸까? 내 나이를 잊고 살다가 숫자를 세어보고는 놀란다.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러가 버린 걸까? 시간을 돌이키고 싶고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들이 아쉽다. 이런 게 나이가 들어가는 느낌인 건가? 느리게 흘러가던 시간들이 마구마구 빠르게 흘러가기 시작한다. 어떡하지?

“나의 전성기는 아직 오지 않았는데…. 내가 올라갈 길은 더 멀리 있는데.....배우로서 이제 시작인 것 같은데.”

나이가 들었다 생각하니 내 인생이 끝난 듯 하고, 허무함이 마구마구 밀려들어왔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여자를 흔히 ‘꽃’에 비유하는데, 나라는 꽃은 이제 질 시간인 걸까? 아니면 피나는 노력으로 꽃이 지는 시기를 억지로 연장시켜야 하는 걸까? 그나마 아직은 티가 나지는 않는 걸까? 아니, 티가 안 날 수는 없겠지. 그래서인지 요즘 들어 옷에 더 신경 쓰기 시작했다. 트렌디하게 입어야 조금이라도 어려 보일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다가 또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나는 아직 괜찮아. 나는 아직 예뻐. 나는 그래도 동안이야.”

이렇게 자기최면을 걸고 걸다가 어느 순간 자신감이 무너지고 자신을 포기하게 되면 살이 찐다. 그렇게 잠시만 주저앉아도 세월의 폭탄이 다가오는 것 같다. 이제 더 진한 나만의 향기를 만들 시기인 것 같다. 싱싱한 포도를 따서 숙성시켜 와인을 만들듯 더 인내하고 단련시켜서 숙성된 무엇을 보여줘야겠단 생각이 든다.

여성을 상징하는 꽃. 오늘 소개할 그림은 백합이다. ‘백합’의 꽃말은 ‘순결’, ‘변함없는 사랑’이다. 하지만 백합은 자살에 쓰이는 꽃이기도 하다. 바로 향기에 독이 있기 때문이다. 방문과 창문을 닫고 방안을 밀폐한 후, 백합으로 방을 가득 채우고 자면 사망할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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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꽃, 백합의 유혹, 비밀의 화원, 푸른 백합과 넝쿨.

나의 백합 시리즈는 욕망이 과했을 때 초래하는 위험함을 그린다. 그래서 나의 백합은 연약하지 않다. 쉽사리 꺾어 버릴 수 있을 것 같음은 눈을 씻고 찾아 볼 수 없다. 도자기 꽃처럼 플라스틱 꽃처럼 견고하다. 원색들의 복잡한 배합이 마치 꽃들이 서로를 밀어내는 듯 보이지만, 서로 얽히고 설켜 있다. 백합들은 춤을 추는 듯 보이기도 하고, 불꽃처럼 보이기도 하고, 서로 싸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백합 시리즈는 마티에르가 강해서 많은 분들이 물감에 보조재를 섞지 않았냐는 질문을 많이 한다. 아니다. 100% 아크릴 물감이다. 보통 붓으로 그리는 방식으로는 물감만으로 캔버스 위에 부조 조각 같은 부피감을 내기 힘들다. 그래서 백합 시리즈는 바닥에 캔버스를 깔고 물감을 부어내리듯 그렸다.

아크릴 물감은 얼핏 보면 유화 물감과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색감이 조금 더 경쾌하고 톡톡 튀는 듯한 자극적인 느낌이 특징이다. 그에 비하면 유화는 조금 더 오묘한 색감과 은은한 광택 그리고 깊이감이 있다. 아크릴 물감을 바닥에 한 방울씩 살살 떨어뜨리듯 그리고, 순간적으로 빨리 말라버리는 아크릴의 특성을 이용해서 살짝 굳은 물감 위에 또 붙는다. 중력의 힘으로 물감이 떨어질 때 동시에 허공에서 물감을 부어가면서 그려나간다. 쉽게 비유하면 팬케이크 믹스를 만들면 걸쭉한 느낌이랑 비슷하게 캔버스에 그 걸쭉함을 부어가면서 그려 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백합은 실제로 보면 부조조각처럼 보이기도 한다. 발색력이 좋은 아크릴 원색을 그대로 부어가면서 다른 원색들과 즉흥적으로 캔버스 위에서 섞어가면서 역동적으로 표현해내는 게 특징이다. 베토벤의 격정적인 음악과 함께 감상한다면 느낌이 배가 될 수도 있겠다.

백합은 ‘나의 욕심’이 나에게 ‘독’이 되었고, 나를 말라죽게 한다는 생각에서 시작되었다. 그때 당시, 또 하나의 나의 자화상일수도 있겠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욕심을 버리면 더 행복할까? 행복지수가 높은 사람들의 특징은 자기가 가진 것의 소중함과 만족감을 갖고 있다. 불행한 사람의 특징은 끊임없이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안간힘을 쓴다. 목표는 높이 있기에 현실에 만족할 줄 모르고, 미래를 위해 현실을 희생하기에 현실은 만족스럽지 않다.

어릴 때부터 나는 유난히 욕심이 많았다. 최고가 되고 싶은 갈망은 날 채찍질하면서 더 빨리 달리게 했지만, 현실의 나는 늘 아팠고, 굶주려 있었고, 스스로에게 관대하지 못했다. 욕심은 날 초조하게 만들었다. 갈 길이 늘 너무 멀리 있다 생각하기에 잠시 앉아 쉴 때도 마음 편히 쉬지를 못했다. 그러다 최근 백합 작품들로부터 탈출했다. 더 이상 나는 백합의 넝쿨과 독에 갇혀 살지 않는다. 하지만 내 특성상 다시 넝쿨속으로 언제든 빨려 들어갈 수도 있겠다는 경각심은 늘 갖는다. 30대의 나는 욕심이 긍정적인 영향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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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의 재미있는 연구결과를 읽은 적이 있어 잠시 소개하고자 한다. 우리는 스트레칭을 통해 몸의 근육들을 이완시킨다. 정신의 이완운동은 ‘멍 때리기’다. 현대 생명과학자들은 뇌가 쉴 때 백색질의 활동이 증가하고, 창의력 발휘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일명, ‘멍때리기’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2001년, 미국의 뇌과학자 마커스 라이클 박사는 뇌영상 장비를 통해 사람이 아무런 인지 활동을 하지 않을 때 활성화되는 뇌의 특정 부위를 알아낸 후 논문으로 발표했다. 라이클 박사는 뇌가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을 때 작동하는 이 특정 부위를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 ; DMN)’라고 명명했다. 마치 컴퓨터를 리셋하게 되면 초기 설정(default)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아무 생각을 하지 않고 휴식을 취할 때 바로 뇌의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가 활성화된다는 의미다. (참조 http://www.kisti.re.kr/) 심지어 기계도 리셋이 필요한데, 사람이라면 더욱 당연한 일이거늘,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리셋을 할 줄 모른다.

한때는 다이어트를 위한 유산소운동으로 런닝머신을 뛰었다. 그 결과 발만 움직인 채 여전히 대본을 외우거나 전화 통화를 하거나 일 생각에 빠져있는 나와 마주했다. 그래서 요즘은 등산을 시작했다. 공격하는 모기들을 따돌리고 바위에 걸려 넘어질까 조심스레 지형을 살피며 걷다보면 어느새 생각을 없애는 데 도움이 됐다. 녹색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푸르름과 변화무쌍한 하늘, 바람을 느끼다보면 머릿속이 조금은 비워지는 것 같다.

욕심쟁이 나는 예술가라는 직업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벌써 죽었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배우라는 직업은 혼자 잘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본인이 말(대사)을 하는 순간보다 듣는 순간이 더 중요하다. 리액션 연기가 상대 배우와의 호흡을 만들고, 극전개의 긴장감과 활력을 세워준다.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때는 남의 이야기가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연기하기 전에는 억지로라도 마음의 여유를 찾아야만 한다.

억지로라도 마음의 여유를 찾기 위한 노력, 그 노력이 나를 건강하게 살리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일을 위해 노력하듯, 몸의 건강과 마음의 여유를 찾기 위한 노력도 투자해야 할 시기가 아닌가 싶다.

멍때리기의 숨은 힘! 기억하자!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칼럼니스트 사진

윤송아 배우·화가

배우 겸 화가라는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SBS 드라마‘미스마’, 영화‘언니’ 등에서 필모그래피를 쌓아가고 있다. 동시에 홍익대 서양화과 출신의 화가로 국내 주요전시는 물론 미국, 홍콩, 독일, 프랑스 등을 오가며 미술계의 젊은 작가로 주목받고 있다.

등록일 : 2019-08-07 09:43   |  수정일 : 2019-08-07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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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yeon  ( 2019-08-07 )  답글보이기 찬성 : 0 반대 : 0
완전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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