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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연숙의 ‘내겐 너무 그리운 것들’

하늘에서 떨어졌어

글 | 이연숙 작가
필자의 다른 기사 2019-08-05 10:45

 
어렸을 때 어른들이 넌 누구 딸이야? 라고 물으면 나는 엄마도 아빠도 아닌, 하늘에서 떨어졌어, 라고 대답했었다. 누구 딸이냐는 질문도 우습지만 하늘에서 떨어졌다는 발상은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인지 모르겠다.
 
굳이 유추해보자면 나와 띠동갑인 사촌 언니에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닌가 한다. 토끼띠라는 것과 어느 집에서나 공감 될법한 눈치꾸러기 둘째라는 것 등 언니는 나와 많은 부분이 닮았다며 나를 늘 감싸주었다. 하여 언니가 자신에 대한 나의 애정도를 시험하는 과정에서 물었던 게 아닌가 싶은데 나도 전혀 눈치가 없는 꼬맹이는 아니었던가보다. 엄마 아빠라고도, 언니라고도 말하기 곤란하니 하늘에서 떨어졌다고 임기응변을 한 것이 아닌가 싶다. (어디까지나 내 생각일 뿐)
 
내 할아버지는 목수였다고 한다. 경제관념이 투철하고 부지런했던 할아버지에 비해 할머니는 성품이 유하고 행동이 느리며 특별히 아들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는 얘기는 엄마에게 들었지만 내가 시골에 내려갈 때면 식구들이 모두 나를 예뻐해 서로 안아보겠다며 난리가 났더라는 얘기는 언니가 해주었다.
 
어느 겨울엔가 그 때 겨우 열네 살이었던 언니가 두 살인 나를 업고 있다가 추워서 할아버지가 있는 사랑방에 들어갔다. 할아버지 방에는 참숯을 피운 화로가 있었는데 할아버지는 어린 손녀들 추울 새라 불을 더 키우려고 입김을 불었다. 잠시 후 언니는 나를 업은 채 옆으로 고꾸라졌고 할아버지도 잠시 정신을 잃었다.
 
참숯가스의 위험성을 몰랐던 탓으로 하마터면 둘이 같이 하늘나라 갈 뻔했다는 말을 언니는 나를 볼 때마다 두고두고 했다. 두 살 배기 손녀의 손톱을 깎아 주다가 살점을 잘라 피가 나자 며느리에게 민망해서 입맛만 다셨다는 얘기, 두 살 터울 동생 때문에 일찍 젖을 떼느라 배고파서 우는 손녀딸이 안타까워 ‘에휴, 죽어라, 에미가 젖도 안 주는데 살아 뭐하냐.’라며 마음 아파했다는 얘기를 할 때마다 언니의 눈에도 물기가 맺혔다.
 
아이 둘이 모두 디자인 전공을 한다고 말했을 때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로 두 가지로 나뉘었다. 나와 남편을 아는 사람의 경우는 “으응, 엄마 닮았나보네.”라고 말한다. 남편을 모르는 경우에는 “누굴 닮은 거야?”라며 고개를 갸우뚱 하고는 했다
.
둘 중 하나 닮았겠지 아무려면 옆집 아저씨 닮았겠니? 라고 속으로 말했지만 나도 궁금할 때가 있기는 했다. 이런 상황은 그나마 낫다. 작은 아이가 어렸을 때에는 가는 곳마다 예쁘게 생겼다는 소리를 한 번씩 듣고는 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고는 추임새를 붙이는 사람이 있었다.

“어머나! 진짜 예쁘게 생겼다.”
“이쁘긴요 뭘.”
“근데, 누굴 닮은 거야? 아빠가 잘 생기셨나?”
내 얼굴 한 번 쳐다보고 아이 얼굴 한 번 더 쳐다본다.
‘아, 나 뭐 이런....’(그 친구와 연락 끊긴 지 오래다.)

하긴 뭐 그리 낯선 상황도 아니다.
외모며 성격, 순도 백퍼센트 아버지만 빼다 박은 나와는 달리 오빠와 동생은 서늘하고 진한 눈매가 치명적인 외탁을 했다. 하여 어머니와 삼 남매가 나란히 외출을 하면 사내아이들한테 잘생겼다는 말보다 예쁘다는 말이 쏟아졌으나 정작 고명딸이었던 내게는 아무런 의견이 없었다.
 
중학교 때 미술 성적이 좋았던 것은 피부가 하얀, 조각상을 닮은 미술 선생님을 좋아했었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친정 두 올케가 입을 모아 이 씨네 피가 예술적 재능이 있나보다, 라고 하는 건 남자들에게 해당하는 얘기인가 보다하고 흘려 들었었다.
 
디자이너가 된 아이들과 중학교 때 최고였던 미술 성적까지, 궁색한 근거를 엮어 더 늦기 전에 한 번은 배워보겠다며 일러스트 강좌에 등록한 것이 지난 봄이었다.
‘내가 무슨...’ 하던 것을 ‘일단 해보는 거지 뭐.’라고 마음을 고쳐먹었지만 민망하고 쑥스럽고 게다가 뭔가를 새로 시작하는 데에는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었다. 이왕 시작했으니 8주만 채운다는 마음으로 그림을 그린 것이 조그만 수첩에 쌓여갔다. 딸에게 ‘스앵님’이라고 부르며 그림을 찍어서 보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우와! 잘 그리네, 그러게 내가 뭐랬냐며, 오빠랑 내가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라며, 엄마 진짜 소질 있다며.
“아이 뭘...”
문자를 찍어 보내며 아마도 나는 입을 헤 벌리고 웃고 있었을 것 같다.
 
나는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목수였던 할아버지든, 공대생이었던 아버지든, 아니면 일흔의 나이에도 노래방에서 두 시간은 너무 짧다던 어머니든, 그들이 내게 물려준 유전자 어디쯤에 예술적 기운이 달려 온 것이 분명하다. 그게 어디 나 뿐이랴, 젊은 시절 동네에서 맥가이버로 불리었다는 시부님과 “이리 줘봐.” 라며 일단 손에 들어가면 마술처럼 뭔가 만들어내는 시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남편은 어쩌면 상상도 못할 재능을 숨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설거지를 하면서 꼭 뭐 하나씩은 깨거나(그것도 내가 제일 아끼는 그릇만) 욕실 타일이 깨졌거나 문틀이 벌어졌을 때 손수 하기보다 바로 인테리어업자에게 전화를 거는 남편에게서 아직 깨어나지 않은 재능은 무엇일까? 갑자기 그것이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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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칼럼니스트 사진

이연숙 작가

63년생 토끼띠 평범한 주부이자 작가. 2009년 문예지 <좋은수필>로 등단하고 2014년 친정엄마와 가족, 그리고 자신의 성장기를 엮은 에세이 <엄마 덕분입니다>를 출간했다. 에세이 작가에 이어 소설가에 도전하고 있다.

등록일 : 2019-08-05 10:45   |  수정일 : 2019-08-05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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