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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열 변호사의 문화예술과 법

Field of Play Doctrine

최근 일련의 사회현상은 위태로워 보인다. 정치, 경제 및 사회 모든 분야가 혼란스럽다. 이에 따른 가치관 역시 방향성을 잃고 있다. 최근 법원판결역시 상식과 괴리된 면이 없지 않다. 사법불신 역시 심각하다. 민주사회의 최후의 보루가 바로 세워져야 할 시점이다. 그렇지만 긍정적인 시각의 유지는 중요하다. 이를 성장통으로 바라보고 싶다. 한단계 업그레이드를 위한 과정으로 승화시키는 범사회적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글 | 김승열 법률큐레이터, 한송온라인리걸센터(HS OLLC) 대표 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 2019-08-05 10:11

▲ 스포츠 경기에서 심판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그렇지 않으면 경기 진행 자체가 엉망이 된다. 그런 차원에서 경기 현장의 심판의 결정은 존중된다. 이를 표현하는 말이 바로 “Field of Play Doctrine”이다. 그 현장의 심판관의 판정이 우선된다는 취지다. 물론 심판의 판정에 오류가 있을 수 있다. 객관적으로 명백한 오심은 배제되어야 한다. 악의에 의한 편파적 판정도 구제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심판의 판정은 존중되는 것이 중요하다.

스포츠 경기에서 심판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그렇지 아니하면 경기 진행 자체가 엉망이 된다. 그런 차원에서 경기 현장의 심판의 결정은 존중된다. 이를 표현하는 말이 바로 “Field of Play Doctrine”이다. 그 현장의 심판관의 판정이 우선된다는 취지다. 물론 심판의 판정에 오류가 있을 수 있다. 객관적으로 명백한 오심은 배제되어야 한다. 악의에 의한 편파적 판정도 구제되어야 한다. 그렇지 아니하다면 심판의 판정은 존중되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 일어나는 여러 사건을 보면 혼란스럽다. 먼저 가치판단이 어렵다. 바름과 그름의 구분이 어렵다. 이에 대한 논평도 상호 극단적이다. 어쩌면 모두 일리있는 주장이다. 그렇지만 명확하지 않다. 누군가 제대로 분석하고 방향을 제시해주었으면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러하지 못하다. 신뢰받는 정신적인 지도자가 없어서일까? 아니면 사회가 너무 다변화되어 발생하는 필연일까?

과거에도 이와 같은 문제가 없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를 어떻게 해결하였을까? 이에 대한 현실적 해답이 생각났다. 바로 ‘Field of Play Doctrine’이다. 개별 현장의 일은 그 현장의 판정책임자에게 일임해야 한다. 비근한 예를 들어 보자. 아파트의 경비원도 그 분야에서는 책임자이며 또한 판정관이다. 해당 현장에서는 절대적인 권한을 가진다. 모두 그의 지시에 따라야 한다. 아무리 고위관직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의 말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이와 같이 모든 분야에서 그 책임자의 판정은 존중되어야 한다. 그와 같은 사회문화가 제대로 조성되어야 한다. 물론 악의적이거나 명백한 오류가 있다면 사후적인 구제로 해결하여야 한다. 다만 사전적 개입은 원칙적으로 배제되어야 한다. 이와 같이 현장 책임관의 판정을 존중하는 것만이 해결책이다. 이는 곧 상호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다. 과거에도 이런 원칙이 존중되어왔다. 이를 통하여 나름대로 질서를 유지한 것이다. 이를 현재에도 그대로 적용해야 한다.

그리고 현장 판정관이 자신의 역할에만 충실하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비록 약간의 잘못이나 오류가 있더라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서 각 분야의 판정관의 자세를 한번 살펴보자. 현재는 판정관이 너무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 자신의 현재 지위에 만족하지 않고 욕심을 낸다. 좋은 것은 다 해보고자 한다. 판정이라는 권한이 특정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셈이다. 이는 심각한 문제이다. 먼저 과욕이 화를 부르는 셈이다

안분 자족할 필요가 있다. 주어진 권력을 정당한 범위내에서 사용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과욕에 사로잡히는 것은 곤란하다. 복잡한 것보다는 단순한 것이 좋다. 투명해야 한다. 그냥 해당 사건 자체에만 원칙에 충실한 판정을 하면 된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판정관의 미래 등 사적인 이해관계가 많이 개입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판정이나 결정에 대한 신뢰가 미흡하다. 이는 필연적인 부작용을 양산한다.

정치가의 예를 들어보자. 정치가의 주장은 자신의 특별한 이해관계와 결부된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나 상황에 따라 비상식적인 모순된 주장을 한다. 누가 보기에도 부끄러우나 정작 모순된 주장을 하는 정치가 본인은 오히려 당당하다. 거의 몰염치에 가깝다. 부끄러워하지 않는 모습에 더욱 더 당황하게 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오히려 그런 정치가가 중요 직책을 차지히기도 한다. 신기할 따름이다. 한편 더욱더 혼란스러워진다. 정치에 대한 혐오는 당연한 결과다. 더 심각한 문제는 사회 전반의 가치관을 뒤흔드는 부작용이다. 정치가의 잘못된 태도가 현실적인 전략으로 잘못 정당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법부와 정치 관련 문제도 혼란스럽다. 법원이 현실정치를 완전히 도외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정도가 지나치면 여론 재판 내지 정치 재판으로 나아갈 위험성이 있다. 물론 법 원칙에 충실하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최근의 형사사건에서 하급심의 판결은 극에서 극이다. 이 과정에서 법 원칙의 시선에서 보면 다소 의아한 사건도 적지 않다. 특히 성범죄에서는 문제가 심각하다. 물론 여성이 그간 차별을 받아 왔다. 편견에 의한 부작용도 적지 않았다. 이에 따른 구제의 필요성은 공감한다. 그러나 많은 부작용이 발생한다

일단 비상식적인 판결에 놀라게 된다. 외국인의 시선에도 놀라울 뿐이다. 특히 성범죄에서 많은 문제점을 노정한다. 성범죄사건에서 심리 자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물론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를 것이다. 그렇지만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애매한 개념 때문에 제대로 된 사실심리가 어려운 점은 분명해 보인다. 피해자의 착각, 오인 등에 대한 불측의 피해는 구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위험성은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것으로 보일 정도이다. 여론 등 때문으로 보인다. 이는 곤란하다. 피해자의 인권 못지 않게 형사피의자 내지 피고인의 인권 역시 중요하다.

작금의 사회현실은 비상식이 상식을 지배하는 것으로 보인다. 먼저 상식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하여서는 각자의 역할에 대한 자기 정체성의 확보가 중요하다. 그리고 각자의 역할에 대한 상호 존중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각자가 기본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상호 신뢰가 무너질 것이다

무엇보다 모두 자신의 직무에서 이해관계로 부터 벗어나야 한다. 판정의 기본원칙에 무엇보다 충실해야 한다. 그리고 각자 스스로가 자신의 역할에 만족할 필요가 있다. 이해 관계없이 기본에 충실할 때에 서로에 대한 신뢰가 형성될 것이다. 또한 각자 권한의 남용에 대하여는 예외없는 엄벌이 반드시 뛰따라야 할 것이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칼럼니스트 사진

김승열 법률큐레이터, 한송온라인리걸센터(HS OLLC) 대표 변호사

⊙ 법무법인 양헌 대표변호사, KAIST 겸직 교수
⊙ 55세, 서울대 법학과 졸업. 美 보스턴대 국제금융법 석사, 미국 노스웨스턴 법과대학 LL.M.
⊙ 사법시험 합격(24회), 환경부·보건복지부 고문변호사, 금융위 자금세탁방지정책위원, 미국 뉴욕주 Paul, Weiss 변호사, 대통령 직속 국가지식재산위 산하 지식재산활용전문위원장 역임. 現 한송온라인리걸센터(HS OLLC) 대표 변호사, 대한중재인협회 수석 부협회장(PRESIDENT ELEC)

등록일 : 2019-08-05 10:11   |  수정일 : 2019-08-06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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