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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연숙의 ‘내겐 너무 그리운 것들’

행주산성에 가봐야겠다

글 | 이연숙 작가
필자의 다른 기사 2019-07-29 16:40

 
개나리도 이렇게 예쁜 꽃이구나, 라는 생각을 처음 했었던 것 같다. 눈이 어지러울 만큼 노란빛이 절정에 이른 개나리 군락 옆에 남편과 남편의 친구 C가 있었다. 백일이나 됐을까 싶은 우리 큰아이를 남편의 친구가 안고 있었고 내가 없는 것으로 봐서 그 사진은 내가 찍었던 것 같다. 그런데 사진 어디에도 표시가 없는데 나는 그 곳이 행주산성이라는 것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삼십 년이 넘은 사진첩은 장을 넘길 때마다 사진이 쏟아져, 어린아이를 다루듯 조심스럽게 다뤄야했다. 디지털 카메라를 사용하면서부터는 공간에 제약을 받지 않고 파일로 저장할 수 있어 좋았지만 꺼내 보지도 않고 잊히는 장면들이 많아 다시 사진 인쇄가 유행이라고 한다. 하지만 오래된 앨범 역시 소파 뒤, 보이지 않는 곳에 쳐 박혀 먼지만 쌓여가고 있기는 파일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추억이란 것도 주인이 꺼내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불 꺼진 기억쓰레기가 되어 영원히 묻혀 버리게 마련 인 것 같다.

일요일 저녁, 켜켜이 쌓인 먼지를 털어내 가며 오래 전,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면 고등학교 시절 사진을 찾느라 소파 뒤에서 어정쩡한 자세로 앉아있었다. 생각보다 사진이 많지 않았다. 언뜻 기억나는, 분명히 있을 것 같았던 사진도 행방이 묘연하다.
 
K는 고등학교 때 짝이었다. 희석되고 왜곡되고 끊어진 기억 중에 삽화처럼 그 친구와 일 분단 네 번째 줄쯤에 앉아있는 내 모습이 기억난다. 그리고 어디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오래 이야기를 한 후였고 이제 헤어지려고 하는 순간 K가 내 손바닥위에 자기 주먹을 올려놓았다. 친구가 주먹을 펼쳤을 때 작고 빨간 구슬이 박힌 십자가 목걸이가 내 손 위에 남아있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K가 내게 했던 전교는 그 것이 전부였다. 그 때 생각했었다. 만약에 내가 신앙을 가지게 된다면 꼭 친구처럼 교회에 다닐 거라고.

K에 대해 기억하는 것은 그 것이 전부였다. 언젠가 얼굴책이 알 수도 있는 친구로 추천을 해 주었고 잠깐 메신저를 통해 근황을 얘기 했던 것도 같은데 그게 다 였다. 그리고 사 오년 쯤 전에 역시나 메신저로 이야기를 하면서 만나게 될 것 같다가 무산되었을 때만 해도 이 친구를 다시 만나게 될 일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는데 지난 토요일, ‘5년 전 K님과 함께한 추억이 있습니다’ 로 시작된 안부가 속전속결로 이어지더니 다음 날 우리 동네 커피숍에 마주 앉게까지 되었다.

K는 오래 전 모습에서 꼭 그 시간만큼 나이든 모습이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라고 그녀가 말했다. 새 학기가 시작되던 날, 둘이 짝이 되어 서로 어색해서 멀뚱하게 앉아있었는데 K가 자기 뒷자리 아이와 이야기 하는 것을 보고 나도 내 뒷자리에 앉은 친구에게 말을 걸었더란다. 그 얘기 인즉, ‘내 짝하고 얘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네 짝한데 물어봐 줄래?’였다고 하는 K의 말에 빵 터져서 조용하던 카페가 잠시 출렁거렸다. K의 그 다음 말은 더 놀라웠다.
“우리 행주산성에도 자주 갔잖아.”
“우리가?”
“그래, 기억 안나? 심지어 커플티를 맞춰 입고 간 적도 있었어. 빨간 바탕에 감색 캡소매였어. 너 그것도 기억 안 나?”

학교와 집 모두 동대문구였던 K와 도봉구에 살던 내가 행주산성까지 왜, 어떻게, 게다가 자주 갔던 걸까? 에 대해서 우리는 한참동안 이야기 했으나 답을 찾아내지는 못했다.

“완전 유치 뽕짝이었지 뭐.”
라고 말을 맺으려다 K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랬던 거 아닐까 싶어. 너도 나도 서로 말을 하지 않아도 불편하지 않은 그런 사이라서 말이야. 그냥 기차를 타고 가는 그 시간이 좋았던 게 아닐까?”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나한테도 그런 친구가 있었네.
차라리 모자라더라도 넘치지는 않던 K는 여전히 신앙을 실천하며 살고 있었다. 그 친구를 잊고 살았다는 미안함보다 다시 만났다는 사실이 좋았다.
 
행주산성 가까운 곳으로 이사한 지 삼 년차가 되어 가는데도 정작 그 곳에 아직 가보지 못했다. 행주산성에 뭐가 있었더라? 끊길 듯 아슬아슬하게 이어지는 필름처럼 희미하게 기억나는 것은 커다란 정자가 있었고 그 아래로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풍경이 있었다. 

K와 나는 왜 그 먼 곳까지 갔는지, 신혼 초, 차도 없던 시절에 남편과 남편 친구와 아이라는 조금 생소한 조합으로 나는 또 왜 그 곳에서 사진을 찍었는지, 그 곳에 가면 알 수 있을까?

행주산성에 가야겠다. 어쩌면 그 곳에서 열일곱 살의 나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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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칼럼니스트 사진

이연숙 작가

63년생 토끼띠 평범한 주부이자 작가. 2009년 문예지 <좋은수필>로 등단하고 2014년 친정엄마와 가족, 그리고 자신의 성장기를 엮은 에세이 <엄마 덕분입니다>를 출간했다. 에세이 작가에 이어 소설가에 도전하고 있다.

등록일 : 2019-07-29 16:40   |  수정일 : 2019-07-29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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