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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박사 백승훈의 ‘이것저것의 역사’

밀레니엄 세대와 할리 데이비슨

글 | 백승훈 공학박사
필자의 다른 기사 2019-07-30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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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면 가끔 아파트 주차장에 할리 데이비슨 (Harley Davidson) 오토바이가 한 대가 놓여있다.오다 가다 오토바이를 보면서 주인이 누구인지 궁금했다. 겨울이 긴 미시간에서는 오토바이가 별로 인기가 없을뿐더러 할리 데이비슨을 타는 사람은 거의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 주차장에서 드디어 그 주인을 마주쳤다. 나이가 60은 되어 보이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할아버지였다.

백발이 된 머리와는 상반되게 햇볕에 그을린 얼굴과 여차하면 발사 될 것 같은 그의 우람한 팔뚝 때문에 건강미가 넘쳐 보였다. 검은색 가죽 조끼를 입고 선글라스를 낀 채 오토바이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서 무엇인가를 보고 있었는데, 오토바이에서 장총 한 자루쯤은 나올 것 같은 분위기였다. 
지나가면서 오토바이가 멋있다고 인사를 건네자 기다렸다는 듯 자신의 오토바이를 자랑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이 오토바이를 잘 알지 못하면 알아듣기 힘든 용어들이었지만 그 와중에 자신을 계속 호그(HOG)라고 칭했다. 그러면서 이 아파트에 사는 여자친구를 만나러 왔는데 그 여자친구도 호그라고 했다. 호그가 무엇인지 그리고 어째서 여자친구가 있는지 둘다 궁금했지만 대화가 길어질 것 같아서 인사를 하고 자리를 벗어났다. 나중에 검색해 보니 HOG는 ‘Harley Owners Group’의 약자였다. 그리고 그 안에는 한때 미국을 상징했던 한 세대의 오래된 문화가 자리잡고 있었다.
 
할리 데이비슨의 시작

할리 데이비슨은 1903년 위스콘신의 밀워키(Milwaukee)에서 할리(William S. Harley)와 그의 유년시절 친구 데이비슨(Arthur Davidson)이 설립한 회사이다. 이때 이들의 나이가 겨우 22살이었다. 이들의 시작은 허름한 창고에서 자전거 프레임에 405cc 소형 엔진을 단 것에 불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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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 데이비슨의 1907년 시제품

그들의 오토바이는 1917년 세계 1차 대전 당시 전쟁물자로 수요가 늘어나게 되고 1920년이 되어서는 세계에서 가장 큰 오토바이 제작 회사로 성장하게 되었다. 45도 협각 V트윈 엔진을 고수하며 투박하고 남성적인 디자인으로 1930년대 경제 대공황도 견디며 무려 100년동안 꾸준히 미국 시장을 주도해왔다.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사회에 진출 할 무렵인 1960년대에는 주류 사회의 반항하는 그들의 문화와 함께하며 시대의 아이콘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한 편 동시대에 저렴한 일본 혼다 오토바이가 반항아들이 아닌 ‘좋은 사람들이 타는 오토바이’라는 이미지를 내세우며 미국 시장을 공략하기 시작했고, 실제로 할리 데이비슨은 미국 시장 점유율에 큰 위기를 겪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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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혼다 오토바이의 미국내 광고
 
레저 용품 회사인 AMF에 매각되기까지 하며 위기에 처한 할리 데이비슨은 브랜드 정체성을 강화하면서 위기 극복을 모색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할리 데이비슨 오너그룹 ‘HOG’가 탄생하게 된다. ‘To ride and have fun’이라는 모토 아래 할리 데이비슨 소유주들이 각지역의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결속을 강화하고 할리 데이비슨을 상품이 아닌 문화로서 소비하는 일종의 문화 마케팅이었다. 할리 데이비슨의 호그는 성공한 마케팅의 한 사례로 자주 언급이 된다. 그리고 할리 데이비슨은 간단한 작업으로도 차체의 커스텀이 가능하기 때문에 커스텀 문화가 뿌리 깊게 자리잡았으며, 실제로 할리 데이비슨 커스텀 시장도 규모가 대단하다.
 
호그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위기를 극복한 할리 데이비슨은 성장을 거듭해 2006년까지 연간 세계 판매량이 35만대까지 증가 하면서 전성기를 누렸다. 하지만 판매량이 2007년을 기점으로 감소하기 시작하여 2018년 기준으로 23만대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할리 데이비슨의 판매량의 감소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주 소비층의 변화가 큰 몫을 차지한다.
 
할리 데이비슨의 쇠락

할리 데이비슨이 성장을 유지해 오던 1980년도에는 할리 데이비슨을 소비하는 연령층이 대략 35세 정도로 젊었고 성장하고 있는 고가 브랜드인 할리 데이비슨은 매력적인 소비였다. 하지만 오토바이에 대한 젊은이들의 흥미가 줄고 주 소비층이었던 연령대가 이제는 50대를 넘기게 되어 브랜드 이미지가 활력을 잃게 되었다. 무엇보다 할리 데이비슨의 젊은 층의 유입이 줄어든 것에는 도시의 팽창과 더불어 밀레니엄 세대로 오면서 상대적으로 가처분 소득이 줄면서 경제적 여유가 줄어듦에 따라 라이딩이 여가로써 매력을 잃게 된 구조적 문제가 크다고 본다.
 
그리고 시대상을 반영하지 못하고 스스로 고립되어버린 할리 문화에도 그 이유를 찾아 볼 수 있다. 한때 미국 문화의 상징으로 불리면서 할리 데이비슨의 부활의 주역이었던 호그 문화는 주류 사회에 대한 반항과 동시에 애국주의가 묘하게 깔려 있는데, 외국 기업에 대한 배타주의 그리고 애국주의를 표방한 백인 중심의 국수주의 이념들이 지배하게 되면서 대중으로부터 괴리감을 부축이는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한때 세대를 대표하고 그들의 시대 언어를 표출했던 문화가 현대에 이르러 백인 우월주의, 인종차별주의, 동성애 혐오와 같은 이미지로 쇠락하며 할리 데이비슨의 브랜드에 타격을 입히게 된다. 
 
할리 데이비슨의 미래

주차장에서 할아버지의 할리 데이비슨을 감상하면서 너무나도 미국적인 오토바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가의 오토바이 치고는 그 구조가 너무나도 단순하고 고전적인 설계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철판과 쇠파이프를 용접했고 그 흔한 전자식 계기판 하나 없었다. 미국은 새로운 문화와 기술을 그 어느 나라보다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지만 동시에 이렇게 고집스럽게 전통에 집착하는 면모도 있다. 실제로 할리 데이비슨도 유럽과 일본의 슈퍼바이크에 대항하기 위해 뷰엘이라는 브랜드를 내세워 스포츠 바이크를 출시한 적도 있는데 이는 할리 데이비슨의 이용자에게 많은 외면을 받았다. 이제껏 아날로그 감성을 유지했던 할리 데이비슨은 과거의 경험에 기인한 것인지도 모른다. 사용자의 노후화는 곧 브랜드의 노후화로 직결된다. 할리 데이비슨은 회사의 부흥을 뒷받침 했던 이용자들을 만족시키면서 동시에 디지털 문화를 선호하고 전기차 시장의 성장과 함께하는 밀레니엄 세대를 유입해야 하는 기로에 섰다. 할리 데이비슨이 다시 부활 하기 위한 그들의 전략이 주목 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칼럼니스트 사진

백승훈 공학박사


미시간 대학에서 박사과정 후 미국 Dearborn 소재 포드 자동차 회사에서 연구원(Research Engineer at Ford Motor Company)으로 일하고 있다. University of Michigan에서 진동 및 동역학으로 박사를 받았지만 사회과학과 예술, 음악에도 관심이 많고 틈틈이 글쓰기에도 주력하고 있다.

등록일 : 2019-07-30 13:33   |  수정일 : 2019-07-30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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