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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장애 아이들의 남다른 이야기

너를 위한 거짓말

쇠심줄보다 질긴 고집을 이기기 위한 어설픈 거짓말쟁이의 허술한 변명

나는 거짓말을 해서라도 너를 도와주고 싶은 착한 선생님이라고.
그래도 자꾸 거짓말해서 미안.

글 | 박소풍 미국 초등학교 특수학급 보조교사 / 작가
필자의 다른 기사 2019-07-23 09:49

3번 방의 4살짜리 TK(Transitional kindergarten) 소삐는 다운증후군 장애를 가진, 우리나라 콩순이 인형과 정말 똑 닮은 귀여운 멕시칸 여자 아이다.
아직까지 대소변을 못 가려서 무거운 기저귀를 차고 다니는 소삐는 쇠심줄보다 질긴 무서운 고집도 달고 다닌다.
무난하게 잘 지내다가 갑자기 고집을 부리기 시작하면 보조 교사들이 애교를 부리며 달래거나 협박해도 꼼짝을 하지 않는다.
언어장애로 의사전달을 할 수 없는 소삐의 고집부리기 정점은 레슬링에서 금메달을 딸 정도로 울며 버티기에 들어가 교사들의 진을 빼고 애를 먹이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심통 내며 고집부리는 소삐를 움직이는 법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 비결이란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기도 쑥스러운 “거짓말 하기”이다.
 
< 첫 번 째 거짓말 >
놀이시간 후 소삐가 교실에 안 가겠다고 나무를 부둥켜안고 버텼다.
Ms. C가 데리러 갔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돌아왔다.
선수 교체.
내가 다가가서 보니 소삐가 붙들고 있는 나무 둥치에 새똥이 있었다.
“소삐, 여기 새똥이 있네. 에이, 더러워.”
그러자 소삐는 나무둥치에서 손을 떼어 자기 손바닥을 펴보였다. 거기에 정말 새똥이 묻어있었다.
“소삐, 새똥이 묻었네. 씻으러 가자.”
그러자 소삐는 새똥이 안 묻은 손으로 내 손을 잡더니 똥이 묻은 손바닥을 멀찌감치 뻗은 채 나를 따라 걸으면서 중얼거렸다.
“똥, 똥, 똥.”
그 사건으로 소삐가 싫어하는 것이 새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 놀이터에서 소삐가 고집쟁이 콩순이로 변신할 때마다 나는 새똥 거짓말을 했다. 
소삐를 교실로 데려가기 위해 흙이나 모래, 혹은 죽은 개미가 붙은 소삐 손바닥을 가리키며 새똥이 묻었으니 손 씻으러 가자고 거짓말로 꼬시면 망설이다가 거짓말처럼 내 손에 이끌려 세면대로 따라오곤 했다.
여기저기 똥을 흘리는 새들이 정말  싫었는데 콩순이 소삐 덕분에 그런 새들에게도 감사하게 되었다.
 
 < 두 번째 거짓말 >
언어장애를 가진 소삐가 고집부릴 때 내뱉는 단어는 “마미”와 “대디”이다.
밑도 끝도 없이 그냥 “마미 마미”하거나 “대디 대디”하며 꼼짝을 안 한다.
하루는 놀이시간이 끝나서 교실로 가야 하는데 불러도 모래밭에서 꼼짝을 안 하던 소삐를 데리러 오는 나를 보더니 갑자기 미끄럼틀로 달려가서 계단을 올라가서는 주저앉아버렸다.
가자고 해도 고개만 흔들며 “마미 마미”만 하는 소삐에게 혹시나 싶어 물었다.
“소삐, 마미에게 전화하고 싶어?”
그랬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징징거리던 것을 멈췄다.
당연히 나는 소삐 엄마에게 전화하지 않았다.
그냥 전화기를 귀에 대고 이야기하는 시늉을 했다.
“소삐 엄마세요? 소삐가 미끄럼틀에서 안 내려간대요. 교실에 가야 하죠? 네네. 소삐 바꿔줄게요.”
전화기를 소삐 귀에 대자 소삐가 엄마를 불렀다.
“마미 마미”
내가 금방 전화기를 다시 내 귀에 대고 이야기하는 척했다.
“네, 알겠어요. 교실에 갈게요. 곧 봐요.”
내가 손을 잡으며 교실에 가서 공부하면 엄마가 데리러 온다고 하자 소삐는 웃으며 미끄럼틀에서 내려왔다.
 
그 날 이후, 교실에서 알파벳 시간에 학습지에 색을 칠하다가 뭐가 심통이 났는지 뻗대기 시작할 때도, 꾸미기 시간에 안 하겠다고 교실 구석으로 가버릴 때도, 놀이시간 후 교실 반대편으로 도망을 갈 때도 나는 수시로 소삐 엄마와 아빠에게 가짜 전화를 걸었다.
그때마다 거짓 전화통화는 소삐의 마음을 움직이며 소삐가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가끔 네 살짜리 콩순이 소삐 때문에 거짓말을 술술 하고 있는 내 모습이 한숨이 나오도록 웃기곤 하다.
이제 막 세상을 배우고 있는 남다른 꼬마 아이들에게 거짓말하면 안 된다고 가르치면서 나의 거짓말은 나날이 진화하고 있다니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그렇지만 남다른 아이들에게는 남다른 교육방법도 필요한 것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하는 거짓말은 소삐를 위한 교육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하는 하얀 거짓말이라고 믿어보기로 했다.
교육의 이상이라면 너무 거창한 걸까?
소삐만 속아 넘어가는 나의 허술한 거짓말을 소삐가 다른 3번 방 꼬마들과 함께 알파벳과 숫자를 배우도록 돕기 위한 선의의 거짓말이라고 부르면 되겠다. 
 
소삐야, 거짓말쟁이여서 미안해.
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
네가 또 고집을 부리면 나는 어쩔 수 없이 계속 거짓말을 하게 될 거야.
그러니까 거짓말하지 않도록 도와줘. 제발!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칼럼니스트 사진

박소풍 미국 초등학교 특수학급 보조교사 / 작가

미국학교에서 특수학급 보조교사로 일하고 있는 한국 아줌마가 들려주는, 가슴 아프지만 소풍같이 두근두근한 "남들과 다른 아이들"의 이야기

등록일 : 2019-07-23 09:49   |  수정일 : 2019-07-23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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