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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열 변호사의 문화예술과 법

[발칸 일기 17]불가리아의 벨리코투르노보를 방문하다

글 | 김승열 법률큐레이터, 한송온라인리걸센터(HS OLLC) 대표 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 2019-07-24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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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아의 옛 수도인 벨리코투르노보를 방문했다. 2차 불가리아 왕국의 수도였다. 아센 2세 시대에는 슬라브 문화의 중심지가 되어 불가리아의 아테네로 불린다.
 
이 지역은 불가리아의 영광이기도 하고 아픔이기도 한 장소이다. 1393년 오스만 투르크제국의 침략으로 멸망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후 오스만투르크의 지배시대인 500년 동안 문화교육의 중심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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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아 음식.  빵 안에 닭도리탕같은 것을 넣었다.
성은 해자가 잘 발달되었으며 높은 곳에 견고하게 자리잡고 있다. 과거에 그 요새의 견고함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주변에 대학교, 태양광 발전소가 들어서 있었다.
유럽에서 보기 어려운 견고한 요새였다. 주변경관도 아름다웠다. 점심은 근처의 야외식당에서 갖기로 했다. 주 요리는 빵 안에 닭도리탕같은 것을 넣었는데 맛이 한국음식과 비슷하였다. 조그마한 식당이었는데 야외에 식탁도 있고 목가적으로 보였다.
 
마침 결혼식 행렬이 지나갔다. 불가리아인들은 결혼식을 하기 위하여 돈을 모은다고 한다. 신랑과 신부 등의 친구들은 밤늦게까지 같이 보낸다고 한다. 이들에게 집은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이 다 집이 있어서 집에 대한 욕심은 그리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의료서비스는 거의 무료에 가까울 정도로 제공된다. 58세가 되면 정부에서 월 3만원 정도의 연금을 지급한다. 그 금액은 적지만 그 정도로 생활하는 데에 큰 어려움이 없다고 한다.
불가리아인들이 장수하는 비결은 달리 없었다. 모두가 달리 욕심이 없기 때문이다. 공기도 좋고 나아가 물도 좋고 토지는 비옥하였다. 따라서 먹고사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다. 여기에 유산균 등을 통하여 건강식을 즐겨 자연스럽게 장수마을로 자리매김한 것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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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비옥한 토지와 자연을 가지고 있어서 수많은 국가들이 발칸반도를 상대로 끝없는 전쟁과 투쟁이 지속된 아픈 역사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동서양의 문물이 만나고 수많은 인종 그리고 여러 종교가 혼재되어 이곳이 지금까지 유럽의 화약고로 불리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제 점차 안정화되어 가고 있어 보였다. 무한한 잠재력을 느낄 수 있었고 기회의 땅으로 변하고 있었다. 한국 젊은이들에게도 기회와 도전의 터전이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아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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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칼럼니스트 사진

김승열 법률큐레이터, 한송온라인리걸센터(HS OLLC) 대표 변호사

⊙ 법무법인 양헌 대표변호사, KAIST 겸직 교수
⊙ 55세, 서울대 법학과 졸업. 美 보스턴대 국제금융법 석사, 미국 노스웨스턴 법과대학 LL.M.
⊙ 사법시험 합격(24회), 환경부·보건복지부 고문변호사, 금융위 자금세탁방지정책위원, 미국 뉴욕주 Paul, Weiss 변호사, 대통령 직속 국가지식재산위 산하 지식재산활용전문위원장 역임. 現 한송온라인리걸센터(HS OLLC) 대표 변호사, 대한중재인협회 수석 부협회장(PRESIDENT ELEC)

등록일 : 2019-07-24 10:14   |  수정일 : 2019-07-22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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