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기사목록 
  2. 글자 작게 하기글자 크게 하기

김승열 변호사의 문화예술과 법

[발칸 일기 11]중세의 몰락과 명품의 탄생

중세의 몰락에 관한 이야기다. 주된 원인은 3가지다. 신권의 몰락, 왕권의 몰락 및 인권의 신장. 중세에 들어 신권은 점차 관료화되었다. 교황이 2인이 아니라 3인까지 될 정도였다. 이에 야누스가 종교개혁을 추진하였다.

글 | 김승열 법률큐레이터, 한송온라인리걸센터(HS OLLC) 대표 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 2019-07-22 11:14

본문이미지
중세 흔적이 남아있는 발칸 지역 성당 모습이다.

발칸지역을 방문하면서 들은 2개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소개한다. 중세의 몰락과 명품 이야기다. 물론 잘 아는 이야기일지만 구성이 흥미롭다.
 
먼저 중세의 몰락에 관한 이야기다. 주된 원인은 3가지다. 신권의 몰락, 왕권의 몰락 및 인권의 신장. 중세에 들어 신권은 점차 관료화되었다. 교황이 2인이 아니라 3인까지 될 정도였다. 이에 야누스가 종교개혁을 추진하였다. 그렇지만 이들은 기존 세력의 반발을 사서 콘스탄틴에서 화형에 처해진다. 이후 그의 정신을 기념하기 위하여 여신상이 건립된다. 나신의 여신의 양팔에는 2명의 꼬마 난장이를 들고 있다. 꼬마 난장이는 교황을 의미한다. 야누스는 죽으면서 예언을 한다. 지금 교황이 나를 죽이지만 100년에 돌아와서 심판할 것이다. 그의 예언이 맞은 걸까? 그가 죽고 100년 이후에 마틴 루터가 등장한다. 이때에는 활자 인쇄술이 발전하였다. 이에 힘입어 성공하게 된 것이다. 즉 일반인들도 신권의 부패와 그 실체를 알게 된 것이다.
 
이후 흑사병의 발발하였다. 그러자 급격히 인구가 줄었다. 이후 인부들의 몸값이 올랐다. 상대적으로 영주들의 권력과 입지를 줄게 만들었다. 인력의 감소로 영주 중심의 봉건사회가 몰락하게 된 것이다.
 
본문이미지

중세 초기에는 나라를 지키는 성이나 기사가 절대적이었다. 시민들은 이들의 보호에 의존하였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이 이루어졌다. 견고한 성도 더 이상 완벽한 방어의 수단이 되지 못하였다. 이후 발명된 대포에 의하여 견고한 성도 쉽게 무너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곧 기사들의 위상을 저하시켰다. 이런 상황에 이르자 점차 귀족과 시민의 지위가 점차 대등하게 된 것이다.
명품의 탄생 이야기도 재미있다. 귀부인과 평민의 구분은 피부가 하얀지 여부에 달려 있었다. 평민들도 산업화가 됨에 따라 공장으로 가게 되었다. 그러자 평민들도 실내에서 일하게 되어 피부만으로는 신분의 구분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자 귀족들은 건강함을 상징하기 위하여 선텐을 하게 되었다. 새까맙게 탄 모습이 건강하고 멋진 사람으로 여기게 되었다. 즉 고귀한 신분을 드러내는 징표로 여기게 된 것이다.
 
본문이미지

 
본문이미지
명품의 대명사인 루이비똥과 샤넬을 살펴보자. 먼저 루이비똥은 목수의 아들이었다. 그의 처음 직업이 귀족의 시종이었다. 마차에 짐을 실고 이를 내리는 일을 했다. 불편한 점이 발생되었다. 당시 기차는 귀족들의 여행트랜드였다. 이에 따라 짐이 뒤섞이게 되었다. 구분과 편의성을 도모하여 네모난 박스의 가방을 만들었다. 이후 그는 가방회사에 취직하여 나무로 만든 가방을 만들기 시작했다. 구조는 간단했다. 캠퍼스 천을 밑에 깔고 풀칠을 하였다. 그러자 귀족도 이제 시종이 없어 혼자 짐을 실을 수 있게 되었다. 귀족이 평민들과의 구분을 위하여 그에게 제안을 하게 된다. 그 가방을 귀족이외는 판매를 하지 말 것을 요구한다. 대신의 그 가방을 모두 귀족들이 사겠다는 것이다. 이에 그는 흔쾌히 승낙한다. 따라서 그는 귀족만을 위한 가방을 만들었다. 이에 후속 상인들이 이와 유사한 가방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귀족들은 그에게 후속주자들의 가방과는 좀더 차별화되는 가방을 만들어달라는 요구를 하게 된다. 이에 그는 이러한 제안을 받아 고민을 하게 된다. 가방에 일련 번호 등을 기재하여 차별화를 도모하였다. 또한 이후 자물쇠 장인과 합작하여 누구도 함부로 열 수 없는 자물쇠가 장착된 루이비똥 가방을 출시하게 되었다.
 
본문이미지
샤넬은 주정뱅이 딸이다. 의외로 손재주가 있었다고 한다. 그 덕일까. 모자 가게에서 일하게 된다. 유명한 연극배우가 그녀가 만든 모자를 사게 되고, 샤넬의 모자는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즉, 그 모자는 귀족들만이 쓰는 명품이 된 것이다.
이후 여성의 편리함을 도모한 의복을 시도하였다. 최초로 여성 투피스 정장을 만들었다. 사회활동을 하는 자킷과 바지를 입고 무도회에 참석을 하게 되었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칼럼니스트 사진

김승열 법률큐레이터, 한송온라인리걸센터(HS OLLC) 대표 변호사

⊙ 법무법인 양헌 대표변호사, KAIST 겸직 교수
⊙ 55세, 서울대 법학과 졸업. 美 보스턴대 국제금융법 석사, 미국 노스웨스턴 법과대학 LL.M.
⊙ 사법시험 합격(24회), 환경부·보건복지부 고문변호사, 금융위 자금세탁방지정책위원, 미국 뉴욕주 Paul, Weiss 변호사, 대통령 직속 국가지식재산위 산하 지식재산활용전문위원장 역임. 現 한송온라인리걸센터(HS OLLC) 대표 변호사, 대한중재인협회 수석 부협회장(PRESIDENT ELEC)

등록일 : 2019-07-22 11:14   |  수정일 : 2019-07-22 11:14
  1. 프린트하기 
  2. 기사목록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SNS 로그인
  • 페이스북 로그인
  • 카톡 로그인
  • 조선미디어 통합회원 로그인
  • pub 로그인
댓글을 입력해주세요.

마음챙김 명상 클래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