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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윤송아의 만렙 도전기

드라마 ‘보이스3’ 속 ‘입이 없는 소녀’는 오랫동안 숨겨왔던 내 ‘상처’

글 | 윤송아 배우·화가
필자의 다른 기사 2019-06-22 15:15


영혼이 들어간 그림은 사람을 울린다고 한다. 그래서 예술가에게 있어서 ‘상처’와 ‘아픔’은 좋은 물감, 좋은 재료가 된다. 나는 그 ‘좋은 재료’를 헛되이 쓰기 아까워서 이미 10년도 더 전에 계획해 놓았던 그림을 이제야 그렸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 상처들이 치유되어가고 희미해져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상처는 나의 일부이고 내가 가진 내적 힘의 원동력이기 때문에 그 상처 그 좋은 재료를 잃고 싶지 않아서, 잊지 않으려고 되새김질 했던 기억이 난다.
이번 칼럼은 어떻게 보면 6월 7일 첫 번째 칼럼의 연장편이라 할 수도 있겠다. 갑자기 어느 날 이방인이 되어버린 그 깊은 기억, 생전 처음 보는 낮선 푸른 눈동자들.
 
나는 그때부터 사람들의 눈에 집중했다. 벙어리 냉가슴 앓듯 말로 포장된 외면보다 내면을 보기 위해 눈의 미세한 움직임으로 진실을 알아내려고 했다. 그렇게 입이 없는 나는 눈으로 소통했다.
 
드라마 ‘보이스3’에 나오는 ‘입이 없는 소녀’는 오랫동안 숨겨왔던 내 상처이다. 과거에도 미래에도 절대로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치부와 상처, 저 깊은 곳에 있던 그것을 그림에 쏟아 넣었다. ‘입이 없는 소녀’는 나 자신을 위해 만들어진 나의 자화상이다. 그리고 드라마 속 내가 연기하는 ‘고토 나오미’의 죽음을 흘러가는 죽음이 아닌 빛나는 죽음으로 만들어주기 위해 그려진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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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드라마에서 길게 나오는 주요 역할을 받기란 참 쉽지 않은 일이다. 그 역할을 임팩트 있게 살려내기 또한 쉽지 않다. 아무리 외모가 뛰어난들, 학교에서 제일가는 얼짱이었다 한들 쉽지 않다. 그곳은 동네 챔피언들이 다 모인 곳이다. 연기력도 마찬가지다. 주인공 아니면 클로즈업도 잘 안 잡아주는 미디어 연기에서 클로즈업을 따내는 것, 주인공 위주로 흘러가는 드라마에서 조연에게 시선을 돌리게 하는 것은 길을 가다가 떨어진 돈을 주울 확률보다 어렵다.
 
죽음이란 누구에게나 센세이션하다. 나는 ‘보이스3’의 ‘죽음’에 죽을 것처럼 고민했다. 극중의 악역 ‘카네키’(박병은)라면 어떻게 했을까? 나는 ‘카네키’의 캐릭터도 분석해서 ‘카네키’가 되어 죽음을 그려보기로 했다. 그렇게 아주 영리하고 뛰어난 미학적 기준을 가진 살인마가 그리는 우아한 죽음, 일반적이지 않은 아름다운 죽음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고민했다. 그러다 생각한 것이 신체 중 어떤 한곳의 부재였다. 그리고 그 생각은 자연스럽게 나의 상처와 맞닿았다.
 
하지만 굳이 신체의 절단면이나 흘러내리는 피를 그리고 싶진 않았다. 미학적 기준에서 아름답지 않다고도 생각했지만 그것이 설명조라고 생각해서다. 내 그림이 해부학 자료사진처럼 보이게 하고 싶지 않았다. 적당한 생략과 미학적 포장, 고급스러운 취향은 ‘카네키’와 잘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다. 함축적인 한편의 시처럼. 하지만 그 한 마디 한 마디에 가슴이 미어지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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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보이스3’는 드라마 안에서 그림이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기에 작업과정에서 계속되는 회의를 거쳐 가며 그림을 완성했다. 그렇게 해서 ‘입이 없는 소녀’는 드라마의 완성도를 높이면서도 ‘윤송아’라는 배우를 빛내주기 위해 저 깊은 어둠속에서 꺼내져서 세상 밖으로 내보내진 것이다. 어둠에서 빛으로, 자신의 치부와 가장 아픈 부분을 꺼내놓는 거란 쉽지 않았다. 그리고 ‘보이스3’ 속 나의 치부와 처절함을 꺼내놓은 작품은 이제부터 시작된다. ‘카네키’와 함께.
 
그림은 입이 없다. 들리지도 않고 향기도 없고 오로지 볼 수만 있는 시각예술이다. 나는 그래서 그림이 좋다. 그래서 마음껏 솔직해질 수 있다. 그 마음만 느끼게 하고 그것을 느끼게 한 팩트(fact)·소재는 말을 안 해도 소통할 수 있으니 얼마나 기발한가? 그래서 나는 말이 없는 그림으로 소통하기를 즐긴다.
 
비밀은 지킬 때 아름답다. 그리고 상처는 성스러운 것이다. 나의 화가로서 배우로서의 자신감은 상처로부터 나온다. 내가 ‘상처’를 끝까지 잊지 않는 한 나는 좋은 아티스트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 상처를 어떻게 아름답게 표현해 내는지는 단지 기술적인 문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아물지 않는 상처는 내 심장을 말랑말랑하게 유지시켜준다. 나는 더 이상 상처받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지 않는다. 김연아 선수가 했던 말 중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최고와 최고가 아닌 자의 차이는 죽을 것 같이 힘든 그 마지막 순간에 한 발을 더 내딛느냐, 안 내딛느냐의 차이일 뿐”
 
나는 한 발을 더 내딛는 삶을 살기로 결정했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칼럼니스트 사진

윤송아 배우·화가

배우 겸 화가라는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SBS 드라마‘미스마’, 영화‘언니’ 등에서 필모그래피를 쌓아가고 있다. 동시에 홍익대 서양화과 출신의 화가로 국내 주요전시는 물론 미국, 홍콩, 독일, 프랑스 등을 오가며 미술계의 젊은 작가로 주목받고 있다.

등록일 : 2019-06-22 15:15   |  수정일 : 2019-06-22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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