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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배의 나무와 숲

돌아온 김영철, 어두운 비핵화의 길

글 | 이인배 협력안보연구원장
필자의 다른 기사 2019-06-04 14:24

지난주 금요일과 이번주 초 북한 관련 가장 핫한 이슈는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과 관련한 것이었다. 5월 31일 보도에 의하면, 김영철이 하노이 미북정상회담 결렬 사태로 인하여 혁명화 조치를 당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김혁철 대미협상대표는 총살당했고, 김성혜 통전부 통일책략실장과 통역을 맡았던 신혜영은 정치범수용소에 갇혔다고 북한소식통을 인용하여 보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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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철 부위원장이 공식 석상에서 모습을 감춘 지 51일 만에 북한 매체에 등장했다. 조선중앙TV는 6월 3일 군인가족예술소조경연을 관람하는 김정은 국무위원장, 김영철 부위원장 등의 모습을 보도했다. 사진=연합.

그런데 6월 3일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에 일제히 김영철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함께 군인가족예술소조 공연을 관람하는 장면을 공개했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행사를 북한 관영매체를 통해 곧바로 공개한 것은 한국 언론보도에 대한 반론의 성격이 강해 보인다. 

사실 북한 정권은 한국 언론보도에 꽤나 신경을 쓴다. 2008년 8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 연일 그의 건강 관련 기사들이 쏟아졌다. 그러자 쓰러진 지 2개월도 지나지 않은 10월 4일 특별한 의미도 없는 대학축구대회를 관람하는 반신불수의 김정일 사진을 <노동신문>에 공개했다.
 
김영철에 대한 보도가 오보로 판명되고 나자, 나머지 김혁철 총살설 등도 신뢰성이 낮아지는 분위기다. 김성혜를 비롯한 미북정상회담 관련 참모들이 공개석상에 나타나지 않는 상황을 두고 만약 신변에 이상이 있다면 그것은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의 책임을 묻는 차원의 숙청이 아니라, 비리나 반당 혐의와 같은 다른 사안으로 징계를 받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분위기가 우세해지고 있다.
 
김영철의 경우 워낙 남북정상회담과 미북정상회담에서 핵심 인물로 활약했던 터라, 하노이 미북정상회담 결렬로 입지가 상당히 위태로워졌을 것이란 분석을 시작으로 4월 통일전선부장이 장금철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평화위) 위원으로 교체되면서 숙청설이 힘을 받기 시작했었다. 지금까지 나온 정보를 종합해보면, 김영철은 건강상의 이유(악성종양치료)로 봉화진료소에 요양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지난해 워싱턴 D.C. 방문 때부터 그가 몸을 가누기 어려울 정도의 컨디션 난조를 보이기도 했다는 정보가 있어 신빙성이 높아 보인다.
 
김영철은 독점적 정보공급자, 왜곡된 정보 보고로 살아남아

김정은이 북한의 명운을 건 초강대국 미국과의 담판에서 실패했음에도 김영철은 어떻게 건재할 수 있는지, 그 배경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향후 북한의 비핵화 전망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첫째, 김영철은 김정은에게 보고하는 대남, 대미 정보를 독점하고 있다. 2009년 정찰총국장을 맡으면서 얻게 된 정보보고 기회를 살려 점차 그 영역을 확대해 나갔다. 처음에는 군에서 획득한 정보만 활용했으나, 점차 대남 정보에 우위를 가진 통전부를 장악해 들어가고, 급기야 외무성의 대외정보까지 장악해 간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정찰총국장이 김정일 시절의 국방위원회(한국의 청와대)의 정책실장을 겸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독점체제는 초기에는 효율성을 갖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독단적이게 된다. 독단적이게 되면 이를 견제할 조직이 없기 때문에 정보를 자의적으로 왜곡하게 된다. 그래서 정보의 독점화는 위험한데, 북한의 현실이 그러하다.
 
둘째, 정보의 독점을 더욱 위험하게 하는 것은 정책 행위자와 정보 당국자 간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상황이다. 정보 제공자가 정책 행위자의 역할을 겸하게 되면, 정보의 객관성에 문제가 생긴다. 당연히 본인의 정책에 대해 긍정적 평가 보고를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독제체제에서는 더욱 더 가능성이 높다. 이것이 정보의 정치화(intelligence politicization) 현상이다. 김영철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김영철은 정보 제공자일 뿐 아니라, 미북정상회담의 실무책임자이기도 했다. 그래서 미북정상회담 실패의 책임을 면하기 위한 정보보고를 했을 가능성이 높다.
 
첫 번째와 두 번째 분석을 종합해 보면, 왜 북한은 하노이 미북정상회담 결렬 이후에도 여전히 경제제재 완화를 요구하고, 트럼프 대통령과 참모들을 분리시키려 하는가를 이해할 수 있다. 김영철은 트럼프 대통령을 잘 설득해서 자신들의 안(案), 즉 영변 핵시설의 일부를 포기하고 유엔제재를 해제 받는 안을 수용하도록 만들었는데, 존 볼턴 안보보좌관이 방해해서 망치게 된 것으로 김정은에게 보고했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간이 지날수록 재선을 위해 북한과의 보여주기식 협상을 원하게 될 테니, 시간은 자신들의 편으로 해석하고 있을 것이다. 그 공모자들이 김영철, 최선희 등이었을 것이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세계관만 김정은에게 주입함으로써 북핵 포기라는 전략적 선택 없이도 북한 체제를 유지할 수 있다고 믿도록 만들고 싶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김영철의 건재 의미는 향후 비핵화 협상에 있어서 북한의 전략적 선택을 어렵게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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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 미북정상회담. 사진=조선DB.

 
김영철은 비핵화 결단의 걸림돌
 
끝으로 한 가지 더 언급할 것은, 우리 정부가 혹여 김영철이 건재한 것에 대해 안도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지난해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될 때부터 긴밀하게 소통해온 남북 정보 라인이 살아있게 되어, 향후 남북정상회담의 희망이 살아 있다고 판단하는 것은 아닐까? 통전부장직을 내놓은 김영철이 어떠한 입장을 취할지는 예측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어떠한 정의로운 가치를 기준으로 선택하기보다 자신의 생존과 안위를 위한 입장을 취할 것이다. 다시금 정찰총국장 시절의 입장으로 돌아가서 남한을 흔드는 것이 본인이 살아남기 유리하다면 그리할 것이다. 우리 정부 당국자들이 방심하지 말아야 할 이유다.
 
결국 김영철의 건재함은 비핵화에 있어서도, 남북관계에 있어서도 적신호다. 그래서 김영철의 귀환이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칼럼니스트 사진

이인배 협력안보연구원장

‘나무와 숲’은 현안 이슈에 대해 문제의 핵심을 세밀하게 살펴보는 동시에 큰 틀에서 솔루션을 제공하고자 한다. 주된 관심사는 남북관계, 외교·안보 문제이며, 그 영역을 정치 현안 등으로 넓혀 나갈 예정이다. 현재 협력안보연구원 원장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청와대 대북전략담당 선임행정관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동아시아 갈등을 넘어 협력으로>, <동북아 평화공동체: ‘협력안보’의 모색> 등이 있다.

등록일 : 2019-06-04 14:24   |  수정일 : 2019-06-04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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