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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근의 잃어버린 문화재를 찾아서

세종 탄신지에 기념관 조성하여 한글 케이문화자산 확산하자

서울에서 태어난 첫 임금인 세종, 15세기 문화융성의 상징이지만
도로 표지석이 생가가 있었다고 알려…탄신지에 기념관을 조성하여 문화강국으로 나아가자

글 | 이상근 재단법인 문화유산회복재단 이사장
필자의 다른 기사 2019-03-18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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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의 탄신지로 알려진 준수방. 사진 박희용 서울시립대 연구원>

요즘 경복궁 주변을 찾는 외국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서울우유, 매일우유입니다. 외국인들은 한국 방문 기념으로 한글로 쓰여 지고 서울에 왔다는 것을 알리는 표시로 우유를 마시고 인증샷을 SNS에 올립니다. 우유 품질도 영향이 있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한글’입니다.  
 
3월 11일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

이원욱 국회의원과 대한황실문화원이 주최하고, 세종대왕후손들 모임인 ‘영릉봉양회’와 문화유산회복재단이 주관한 토론회에는 열기가 가득했다. “세종대왕 탄생지와 한글 케이문화자산을 중심으로 비즈니스 모델 창달에 관한 소고”를 주제로 발표한 이건창 성균관대교수는 세종의 탄신지에 기념관을 건립하자는 것은 단순히 기억하고 기념에 머물자는 것이 아니고, 이를 기반으로 문화자산을 확산하자고 강조했다.   

A prime example is Korea's remarkable hangul alphabet. By the fifteenth century, when this alphabet was invented, Koreans had been struggling for more than 1,000 years with cumbersome adaptations of already cumbersome Chinese writing--a "gift" from their larger, influential neighbor. The unhappy results were described in 1446 by Korea's King Sejong  

대표적인 예가 한국의 주목할 만한 한글이다. 이 알파벳이 발명된 15세기까지 한국인들은 이미 거추장스러운 한문을 그들의 큰 영향력 있는 이웃으로부터의 "선물"이라는 성가신 각색에 시달려 왔다. 이 불행한 결과는 1446년 한국의 세종대왕에 의해 설명되었다.  

"The sounds of our country's language differ from those of the Middle Kingdom [China] and are not confluent with the sounds of our characters. Therefore, among the ignorant people there have been many who, having something they want to put into words, have in the end been unable to express their feelings. I have been distressed because of this, and have newly designed 28 letters, which I wish to have everyone practice at their ease and make convenient for their daily use."

우리나라 언어의 소리는 중국의 소리와 다르며, 우리 캐릭터의 소리와 섞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무지한 사람들 중에는 말로 표현하고 싶은 것을 가지고 있어서, 결국 그들의 감정을 표현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나는 이것 때문에 괴로워했고 28개의 글자를 새로 디자인했다. 모두가 편하게 연습하고 일상생활에 편리하도록 하고 싶다"고 말했다.  

The Egyptians probably learned the idea and some principles of writing from the Sumerians. The other principles and all the specific forms of the letters were then quickly designed by some Egyptian who was clever, but not quite as clever as Korea's King Sejong.

이집트인들은 아마도 수메르인들에게서 글쓰기의 생각과 몇 가지 원리를 배웠을 것이다. 그 후 다른 원칙들과 모든 특정한 형태의 글자들은 똑똑하지만 한국의 세종대왕만큼 영리하지는 않은 몇몇 이집트 사람들에 의해 빠르게 고안되었다.  

이 교수는 Jared Diamond의 글을 인용하면서 한글의 우수성은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고 이 때문에 찾는 외국인에게 “한글 케이문화자산 올레길”을 조성하자고 주장하였다. 이를 위해 시급하게 탄신지에 기념관을 건립, 이를 중심으로 경복궁, 서촌, 북촌 등을 잇는 다양한 올레길을 조성할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한양에서 태어 난 조선의 첫 임금인 세종, 생가는 어디?본문이미지

박희용 서울시립대 서울학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세종 임금님, 준수방에서 탄강하시다” 주제 발표를 통해 “1397년 4월 10일(양력 5월 15일) 한양의 준수방 잠저에서 탄강하였다”고 세종실록 총서에 기록되었다며 그 자리를 놓고 여러 해석이 있지만 사료와 지도, 당시 역사적 상황 등을 종합할 때 현재 종로구 통인동, 옥인동 권역이다“고 발표하였다.   

그러면서 그 규모는 숙종 때 창의궁의 터가 약 6,400여 평으로 조선 초기 개성에서 한양으로 자리 잡은 당시 왕세자 이방원의 위세와 특히 사병을 거느리고 있었다는 점, 잠저 내에 연못 등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보다 2배 이상의 규모였을 것이라고 한다. 
  
이 날 토론회에는 정세균 국회의원이 치사를 통해 ” 세종대왕께서는 음악, 언어학, 철학, 천문학, 농학, 군사학 등 당대 모든 분야의 발전을 이끌고, 백성을 사랑한 성군으로 인류사의 위대한 문화유산인 훈민정음을 창제하신 위인“으로 ”토론회를 계기로 종로가 ‘세종의 도시’로 거듭나길 희망한다“고 하였다.   

이명수 국회의원과 이원욱, 김선동 국회의원도 이구동성으로 ‘탄신 기념관 조성을 통해 문화의 공간으로 이어지길 촉구’하였다.   

문화유산회복재단은 이날 토론회의 결과를 문체부와 서울시, 종로구에 전달하고, 대한황실문화원, 세종대왕영릉봉양회 등이 참여하여 ‘기념관 조성 방안’을 도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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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11일 국회정책토론회 참석자, 사진 문화유산회복재단>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칼럼니스트 사진

이상근 재단법인 문화유산회복재단 이사장

대한불교조계종중앙신도회 사무총장
사단법인 날마다좋은날 상임이사
조선왕실의궤환수위 실행위원장
서울시문화재찾기시민위원 등 역임

(현)문화재환수국제연대 상임대표
(현)명원문화재단 이사
(현)재단법인 문화유산회복재단 이사장

등록일 : 2019-03-18 09:29   |  수정일 : 2019-03-18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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