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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근의 잃어버린 문화재를 찾아서

서산부석사 금동관세음보살좌상 환수는 역사 정의의 실현이다

서산부석사금동관세음보살좌상 인도청구 선고심을 앞두고
재판부에 보낸 탄원서 소개

글 | 이상근 문화재환수국제연대 상임대표
필자의 다른 기사 2017-01-26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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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타마마치(豐玉町) 향토지에 소개된 금동관음상

존경하는 재판장님 
 
2017년 1월 26일, 부석사금동관세음보살좌상 인도청구소송 선고가 내려진다하니 그동안의 시간과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갑니다. 돌이켜보면 참, 무모하게 역사의 진실을 찾아 뛰어 다닌 기간입니다. 
 
2013년 1월 30일, 이른 아침에 수덕사에 있는 법우로부터 부석사 관음상이 한국인 절도단에 의해 국내에 반입되었는데, 이를 어찌하면 좋겠냐는 전화를 받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시도 잊고 않고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였습니다만 무엇인가 부족한 점이 없는지, 정성은 다했는지 돌이켜보다 이렇게 탄원서를 쓰게 되었습니다. 
 
기구한 운명을 타고난 부석사관세음보살은 출생부터가 남달랐습니다. 불교를 숭상하던 고려국은 사찰이나 불상의 조성은 왕실이나 귀족이 주도함에도 부석사관음상은 32명의 민초들이 간절한 염원을 담아 ‘영원히 부석사에 봉양’하기를 갈구하였습니다. 이들 민초 중에는 노비도 함께하였으니 이는 당시로서는 기적과도 같은 불사(佛事)입니다. 
 
또 하나의 기적은 부석사관세음보살은 출생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지금 <대마의 미술> 등에 소개하고 있는 대다수의 한반도에서 유입된 불상들은 <복장물>이 사라진 상태이며, 심하게 훼손되어 조성 연대와 나라만 겨우 알아볼 정도입니다. 반면에 유일무이하게 부석사관음상은 복장물 속에 기원내력을 밝힘으로 스스로 환지본처(還之本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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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장물 모습, 2004년 서산지역만 방문 당시 촬영

지금 국제사회는 자국의 문화유산을 보호하는 일에 총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는 피탈(被奪)국가만의 노력이 아니고 약탈(掠奪)국가의 경우도 점차 그러한 방향으로 진전되고 있습니다.  
 
「UNESCO 및 최근 들어서는 유럽평의회(Council of Europe)의 틀 내에 문화재의 반환에 대한 법적 의무의 성립 여부에 관계없이 이를 자발적으로 기원국으로 반환하는 경향이 증대하고 있다」는 John Henry Merryman의 보고는 시사하는 점이 많다하겠습니다. 
 
<기원국으로 반환> 즉 문화재는 제자리에 있을 때 빛을 발한다는 명제는 국제사회에 통용되는 윤리이자 규범입니다. 2015년 1월 호주정부는 100만 달러에 구입한 인도불상을 도난 사실을 인지하는 즉시, 기원 국가인 인도로 조건 없이 반환하였습니다. 프랑스는 중국의 원명원 청동상과 캄보디아 힌두석상을 반환하였고, 미국은 과거 불법성이 드러난 유물의 반환에 정부가 나서고 있습니다.  
 
이는 문화재가 지니고 있는 특별한 가치 즉 사물로서의 관점이 아니라 <얼과 혼이 담긴 정신격 인격체>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문화재 반환의 문제는 <정의(justice)의 실현>이라는 입장에서 진일보하고 있고 이를 주도하는 곳은 사법부입니다. 
 
국제박물관협의회는 문화재 취득과정에서의 도덕성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특히 출처 및 소유권 내력(Provenance)의 공표를 강화함으로 문화재 소장기관의 입증 책임을 분명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2013년 2월 대전지방법원 가처분 결정에서 밝힌 <대마도 관음사가 정당하게 취득하였다는 사실을 밝히라>는 판결은 국제사회의 흐름에 부합하고 이를 선도하는 판결입니다.
 
그럼에도 일본 정부와 대마도 관음사는 절도 사실만 부각할 뿐, 소유이력에 대해 밝힌 바는 없습니다. 오히려 2014년 한국 조사단이 1973년 나가사키 현 교육위원회가 부석사관세음보살좌상을 문화재로 지정할 당시의 기록물 등을 제공해 줄 것을 요청하였음에도 <외교적 문제>등을 이유로 거절하였다는 점은 역사의 진실을 밝히려는 태도가 아닙니다.  
 
이는 대마도 관음사 앞에 세워져 있는 1973년 간판이나 2000년 세운 표지석 모두 출처를 <경상북도 영주군 부석사>로 표기한 점으로 보아 문화재 지정당시에도 출처와 소유이력에 대해 알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것 입니다.
 
이 같은 일본국의 태도와 입장은 결국 일본 학계에서 연구 발표한 <왜구에 의한 일방적 청구>, <비정상적 방식으로 유입>을 외면한 결과입니다. 또한 일본정부가 지정한 대다수의 한반도 유입 문화재가 출처와 취득경위 불명(不明)이라는 사실이 밝혀질 것을 염려하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부석사관세음보살이 약탈당했음을 증거 하는 자료 등은 이미 제출되었기에 첨언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지난 1월 12일 재판과정에서 부석사관음상의 화상 흔적이 부석사 약탈과정에서만이 아니라 대마도에서 생겼을 수도 있다는 피고 측의 주장에 대해 한 말씀드리겠습니다. 
 
2004년 발행한 마이니치 신문사의 <불교예술>에 소개되어있는 119점의 한반도 유입 불상 중에 54점이 화상 입은 흔적이 있다는 보고와 불상의 대다수가 조선시대 이전 불상이라는 사실은 결국 고려시기 왜구들의 광범위한 침략과정에서 방화로 인한 것임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2000년 프랑스 법원은 독일에서 대여한 그림 중에 과거 약탈 가능성이 있다하여 몰수한 바 있습니다. 바로 인상파 화가 폴 세잔의 그림입니다. 터키 정부는 영국 대영박물관에 소장돼 있던 옛 이슬람 유물 수십 점을 대여해 전시했다가 관람 기간이 끝난 뒤 반환을 거부하기도 했습니다. 이유는 취득경위를 밝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주장하지 않으면 지키지 못하는 것이 문화재입니다. 주요 국가의 문화재보호법은 철저하게 자국의 문화재 반출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실정임에도 한국 정부는 자국의 문화재 보호와 환수에 소홀히 하였습니다. 지금 불법 반출임이 명백히 밝혀진 수많은 문화재에 대해 반환 요청을 하지 못하고 있을 뿐더러 국제도난센터 등에 거래금지 리스트조차 제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는 사이 과거 약탈당한 문화재들이 거래되고 있으며, 거래를 위해 기록 등이 삭제당하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우리 단체는 관세음보살이 부석사로 봉안된다는 것에 머물지 않을 것입니다. 대마도 관음사를 비롯 한일 불교계간의 화해와 협력을 모색하는 일에 더욱 나설 것입니다. 이를 위해 한일불교교류회, 세계불교도우의회 등 불교 국제조직과의 협의를 통해 문화재의 <환지본처(還之本處)>를 실현할 것입니다. ‘한국의 박물관’이라는 대마도에 한국문화원을 개원하여 좀 더 체계적인 조사와 보전 방안 수립, 교류와 협력 등이 이루어 질 수 있도록 노력 할 것입니다. 이 점에 있어서 대마시민(大馬市民)과 인근 지역의 주민들은 역사적 진실에 마주할 용기가 필요할 것입니다. 
 
부석사관세음보살의 제자리 봉안은 한일 양국의 국민들에게 역사적 진실을 마주할 지혜와 용기를 줄 것이라 믿습니다.  
 
두서없는 글,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2017년 1월 18일
문화재환수국제연대
상임대표 이상근 두손모음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칼럼니스트 사진

이상근 재단법인 문화유산회복재단 이사장

대한불교조계종중앙신도회 사무총장
사단법인 날마다좋은날 상임이사
조선왕실의궤환수위 실행위원장
서울시문화재찾기시민위원 등 역임

(현)문화재환수국제연대 상임대표
(현)명원문화재단 이사
(현)재단법인 문화유산회복재단 이사장

등록일 : 2017-01-26 09:05   |  수정일 : 2017-01-26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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