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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근의 잃어버린 문화재를 찾아서

불상(佛像)이 성보(聖寶) 되기 위한 종교적 의식...불복장(佛腹藏)과 점안(點眼)

복장물, 역사의 진실을 밝힐 수 있을까

복장과 점안의식은 생명력을 불어 넣은 일
조성 뿐만 아니라 개금, 중수, 이운할 때도 기록 남겨
대마도 소재 불상들 대부분 복장물 유실되어 정상적인 취득여부 확인할 길 없어

글 | 이상근 문화재환수국제연대 상임대표
필자의 다른 기사 2017-01-12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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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세기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 금동여래입상, 대마도에 있을 당시부터 복장 공간이 텅 비어 있다

조형물인 불상(佛像)이 성보(聖寶) 되기 위기 위해서는 종교적 의식를 거쳐야 한다. 일종의 생명을 불어 넣은 의식이다. 의식은 크게 불복장(佛腹藏)의식과 점안(點眼)의식이다.
 
불복장물에는 복장물은 사리, 오곡, 오색실, 경전, 종이, 직물, 의복, 다라니, 만다라, 후령통, 황초폭자 등과 발원문이 봉안된다. 발원문에는 조성 장소, 시기, 조성 사유, 발원자, 시주자 등이 기록된다. 따라서 복장물은 일종의 타임 캡술이다. 이와 같은 복장의식이 끝나면 점안의식을 통해 진정 살아있는 인격체로 부처님이 탄생하는 것이다.
 
이는 오랜 된 전통이다. 복장물은 중국과 일본에서도 발견되지만, 그 형식이나 수량을 볼 때 단연 한국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조상경(造像經)』읕 통해 기록으로 전해지고 있다. 
 
복장물이 단순한 당시 물품이나 기록에 그치지 않고, 전통과 기록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면 그 의미가 다르다.
 
《복장은 세상을 구성하는 다섯 가지 원리와 물목으로 이뤄진다. 부처님 진신사리를 중심으로 동서남북 중앙 등 다섯 방위가 존재하며, 각 방향을 상징하는 다섯 빛깔의 오방색에 따라 다섯 종류의 보석, 약초, 곡물, 향 등을 모아 오보병이 만들어 진다. 오약은 번뇌를 다스리고 오향은 법계에 충만한 계향 정향 혜향 혜탈향 혜탈지견향을 의미한다. 이어 불상에 오보병이 담긴 후령통 등이 들어가고, 지혜를 깨우는 점안의식을 봉행한 뒤에야 비로소 불단 위에 부처님으로 모셔진다. 불교신문 2014.07.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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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복장 의식 중 경전을 봉안하는 모습, 사진 : 불교신문

그렇다면 1330년 조성된 서산 부석사 금동관세음보살좌상의 경우는 어떨까 
 
1951년 대마도 관음사 안도 료순 주지에 의해 처음 발견된 불상의 복장물에 대해 당시 상황을 1974년 출간한 <불교미술>에서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불상의 맨 밑바닥에는 묵서된 다라니가 쌓여 있었고, 복부에는 세로로 길게 접은 결연문이 있었으며, 그 위에 다시 묵서 다라니가 쌓여 있었다 한다.
 
불상의 목 부분에서는 삼베에 싸인 목합(木盒, 지금 12cm)이 안치되어 있었었는데, 그 안에 호박(琥珀)으로 된 꽃 모양의 장식, 유리구슬, 수정 등의 파편과 오방색의 지물 쪼가리, 오색의 실, 의복 관련 16점과 함께 대마 씨등 곡물 몇 개가 있었다 한다. 이 밖에도 직경 5cm 정도의 후령통이 나왔다 하는데, 후령통이란 금,은,칠보 등 보물을 넣는 금속제 통을 말한다. - 김경임 저 「서산 부석사 관음상의 눈물」곰시 2015》 
 
이렇게 보았을 때, 부석사 금동관세음보살좌상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복장물이 봉안되었음을 알 수 있다. 결연문 등을 통해 불상이 고려 1330년 서산 부석사에서 조성되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점으로 이는 일본 정부도 인정하는 바이다.  
 
 
이운 기록의 존재 여부가 취득과정의 정당성 밝혀줘
 
지금 대마도 관음사와 서산 부석사간의 분쟁의 핵심은 취득이 정상적이었나 하는 점이다. 즉 대마도 관음사가 서산 부석사로부터 정상적으로 취득하였다면 이에 대한 증거가 있을 것이고 그 중 하나가 불상 이운에 대한 기록이나 증거이다. 
 
그러나 1951년 처음 복장물이 발견될 당시에도 불상을 옮겼다는 기록 즉 이운기(移運記)는 없었다. 다만 조선시대 숭유억불 시대에 훼불을 피해 구해왔을 가능성을 주장하지만, 이 또한 조선왕조실록 등을 볼 때 사실과 다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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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마도 관음사 다나카 전 주지 인터뷰 모습. 사진 SBS 캡처

심지어 한국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불상이 알아서 바다를 건너 왔다고 주장하는 등 취득 경위에 대해 근거를 밝히지 못하고 있다.  
 
 
불상은 옮길 때 반드시 기록을 남겨 
 
불복장 의식 등은 조성 당시에만 하는 것인 아니고 불상을 개금(改金, 색을 다시 칠함), 중수(重修, 낡은 부분을 수리하여 고침) 혹은 이운(移運, 불상을 옮겨 모심)할 때에도 불상의 내부에 원문을 적어 그 내용을 밝히며, 때로는 전각 내부에 사찰의 이력을 기록하는 현판 등에 그 기록을 남고 있다.   
 
일례로 공주 청련암 목조관음보살좌상 발원문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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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조 관음보살좌상과 발원문

《發願文
康熙四十年辛巳五月日敬造大衣觀音一位於忠淸道公州牧地西面華山麻谷寺
蓮臺庵移安于上院菴稽首... 
 
발원문
강희40년(1701) 신사 5월에 관세음보살상 1구를 충청남도 공주 지서면 화산 마곡사 연대암에서 조성하여 상원암에 이운하였다. 삼가 엎드려 아뢰건데... 대한불교조계종 문화부 자료참조》 
 
따라서 불상은 일반적인 조형물이 아니라 의식과 기록 등을 통해 조성 당시의 기록은 물론 장소를 이전할 때도 반드시 기록을 남기고 종교 의식을 진행함으로 생명력이 지속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대마도와 인근 큐슈지역 등에 있는  한반도에서 유입된 대부분의 불상은 복장이 비워져 있고, 이운기록이나 복장물이 없는 것으로 보아 “왜구에 의한 일방적 청구” 즉 강탈하였음을 반증한다. 
 
이에 대한 일본 소장자의 책임 있는 연구와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칼럼니스트 사진

이상근 재단법인 문화유산회복재단 이사장

대한불교조계종중앙신도회 사무총장
사단법인 날마다좋은날 상임이사
조선왕실의궤환수위 실행위원장
서울시문화재찾기시민위원 등 역임

(현)문화재환수국제연대 상임대표
(현)명원문화재단 이사
(현)재단법인 문화유산회복재단 이사장

등록일 : 2017-01-12 09:05   |  수정일 : 2017-01-12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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