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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흔의 재(嶺) 너머 이야기

사도세자는 조선 왕조 최악의 연쇄살인마였다 - 모두 1백여명 살해, 하루에 6명도 살인

아들 정조가 관련 기록 대부분 삭제

글 | 이상흔 조선pub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2015-09-23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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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에 대한 강박증을 가지고 있던 사도세자. /이미지= 영화 <사도>

사도세자가 죽인 무고한 사람만 100여 명
 
영화 <사도>는 근래 개봉한 우리나라 사극 사상 보기 드물게 역사적 사실과 고증을 비교적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 하지만, 영화 <사도>에서는 사실을 충실하게 따르지 않은 부분도 있다. 바로 사도세자의 살인 문제다. 영화에서는 사도세자가 한 차례 살인을 하는 것으로 그렸다.
 
하지만, 실제로 사도세자는 죽기 전까지 10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연쇄 살인자’다. 영화 <사도>는 시나리오와 내용의 상당 부분을 정병설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가 2010년 쓴 《권력과 인간》이란 책을 참조하고 있다.
 
정병설 교수는 책에서 “사도세자가 죽인 무고한 사람 100여 명 정도 된다”고 분석했다. 정교수는 이를 영조가 사도세자를 세자의 지위에서 끌어내리면서 쓴 ‘폐세자반교’에 근거한 것이라고 밝혔다. 영화에서 세자의 살인 행각을 모두 그렸다가는, 현재 관객들로부터 애틋한 동정심을 얻고 있는 세자의 캐릭터가 졸지에 사이코패스로 비춰질 수도 있을 것이다.
 
영화에서 사도세자는 옷을 입으려다 옷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내관(김한채)을 베고는 그의 머리를 들고 궁궐을 다니는 장면이 나온다. 1757년 6월 어느 날 벌어진 일인데, 사실 이날 사도세자는 김한채를 포함 6명의 내인을 죽였다.
 
이것은 혜경궁 홍씨가 쓴 《한중록》에 기록된 사도세자의 첫 살인 행각이지만, 정병설 교수는 “그 잔혹함과 살상 규모가 커서 이 사건이 첫 살인일까 의심하게 한다”는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실제 사도세자 관련 일을 기록한 현고기(玄皐記)에는 세자가 사람을 많이 죽인다는 소문을 전하면서, 칼 만드는 장인이 세자에게 칼을 바치러 갔다가 목이 잘렸다는 이야기가 기술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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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온 것도 네 탓이다." 영조는 세자에게 지나치게 엄격해 엄청난 스트레스를 안겼고, 부왕에 대한 두려움과 스트레스가 쌓여 정신병으로 발전했을 것이다. /이미지= 영화 <사도>
 
옷에 대한 강박증
 
사도세자가 사람을 죽인 직접적인 동기는 아무 옷이나 입지 못하는 ‘의대증’이라고 하는 일종의 강박증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도세자는 옷에 대한 강박증을 가졌는데, 옷을 한번 입으려면 옷이 열 벌, 스무 벌이 필요했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분노를 통제하지 못해 시중을 드는 사람들을 때리거나 죽이곤 했다. 현대의 심리학자들은 사도세자의 병을 일종의 ‘충동조절장애’라고 진단하기도 한다.
 
사도세자가 죽기 전해인 1761년 1월에는 자기가 아끼는 후궁인 빙애를 때려죽이기에 이르렀다. 빙애에게는 돌 지난 아들인 은전군이 있었는데, 이 은전군도 당시 사도세자의 칼에 맞았고 우물에 던져졌으나 요행으로 살아났다고 한다. 
 
내관 중에 서경달이라는 이는 내수사의 물건을 늦게 가져왔다고 해서 죽임을 당했으며, 생모인 선희궁 영빈 이씨의 내인도 죽였다. 1760년 7월에는 혜경궁 홍씨가 사도세자가 던진 바둑판에 맞아 왼쪽 눈을 다쳤다.
 
1758년 2월, 사도세자가 내관 김한채를 죽인 사건이 영조에게 보고되었다. 영조가 세자에게 “한 일을 바로 아뢰라”고 하자 세자는 “심화가 나면 견디지 못하여 사람을 죽이거나, 닭 짐승이라도 죽이거나 해야 마음이 낫나이다”하고 대답했다. 이날 대화는 다음과 같이 이어졌다.
 
“어찌 그러하니?”
“마음이 상하여 그러하나이다.”
“어찌하여 상하였니?”
“사랑치 않으시니 서럽고 꾸중하시기에 무서워 화가 되어 그러하오이다.”
“내 이제는 그리 않으리라.”(《권력과 인간》에서 인용)
 
한마디로 울화병이 심하다는 소리인데, 한중록에는 사도세자가 분을 이기지 못해 우물에 투신하여 자살하려 한 이야기가 여러 번 기록되어 있다. 세자가 숙종의 둘째 계비인 인원왕후 침방 내인인 빙애를 자기 처소로 데려온 것이 발각되어 심하게 꾸지람을 듣고는 화를 참지 못하고 우물에 몸을 던진 사건이 대표적이다. 시종들이 급하게 구해서 살아났지만, 이런 일은 여러 차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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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에게 뒤주에 들어가라고 했을 때 영조는 이미 세자를 살려둘 마음이 없었다. /이미지= 영화 <사도>

“변란이 호흡 사이에 있다”
 
세자에게는 불안장애, 강박장애, 충동조절장애와 더불어 1760년부터는 헛것을 보는 정신분열증까지 생겼다. 아버지를 욕하거나, 급기야 아버지를 죽이겠다고 하는 등 세자는 몸과 마음이 전혀 제어되지 않은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다.
 
정병설 교수는 자신의 책에서 사도세자가 자신의 여동생인 화완옹주와 근친상간을 벌였을 것으로 추측하는 김용숙 교수의 견해를 소개했다. 그는 “사도세자는 화완옹주도 협박했는데, 정신을 잃은 세자가 옹주에게 어떤 일을 벌였는지 알 수 없다”고 부연했다. 김용숙 교수는 “가학증이 살인으로까지 이어지면 그것이 사디즘 및 근친상간으로 이어진다는 심리학적 견해를 바탕으로 사도세자가 화완옹주와의 근친상간을 추측하는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사도세자는 나인들을 폭력으로 제압하고 성폭행을 한다거나, 여승과 기생을 궁에 불러들여 음란한 행위를 하는 등 그 기행이 점점 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장차 왕이 될 세자였으며, 대리청정을 하고 있는 사실상의 또 다른 임금이었기에 누구 감히 세자의 일탈과 기행, 살인 행각을 영조에게 보고하지 못하고 속앓이를 하고 있었다.
 
세자의 살인과 기행은 1762년 일명 ‘나경언의 고변(告變)’으로 세상에 알려진다. 세자가 죽기 한 달 전에 일어난 일이다. 나경언은 대궐의 별감인 나상언의 형으로, 별감은 궁궐에서 호위나 수송 등 각종 심부름을 담당하는 직업이다.
 
나경언은 열 가지에 이르는 세자의 죄상을 영조에게 직접 일러바쳤다. 영조는 세자의 비행을 일러바친 나경언을 무엄하고 망측하다 하여 다음날 죽여버리고, 고변서는 태워버렸다. 정병설 교수는 이 고변서에 분명히 세자가 영조를 해치려 했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을 것으로 분석했다.
 
영조는 세자를 꾸짖을 때 “네가 왕손의 어미를 때려죽이고, 여승을 궁으로 들였으며, 서로에 행역하고, 북성으로 나가 유람했으니 이것이 어찌 세자로서 할 일이냐?”하며 네 가지를 들었다. 절반이 넘는 고변서의 나머지 조항이 전해지지 않지만, 나경언이 처음 형조에 고변서를 바칠 때 “변란이 호흡 사이에 있다”는 말을 했기 때문에 세자의 반역 혐의도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이 일로 세자는 부왕의 처분을 기다려야 했고, 영조와 세자 사이의 긴장이 극에 달했다. 결국 세자의 친어머니인 선희궁이 영조에게 나아가 '대처분' 즉, 자신의 친아들을 “죽여달라”고 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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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영화 <사도>

사도세자의 어머니, "제 아들을 죽여서 나라를 보전하소서"
 
사실 이때 세자는 뒤주에 갇히기 전 두 번이나 칼을 들고 영조를 죽이겠다며 창경궁 수구(水口)를 통해 청계천을 따라 영조가 머무는 경희궁으로 가려고 하는 등 한마디로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세자는 이 무렵 툭하면 “칼로 결판을 내겠다. 어떻게 해버리겠다”는 말을 하곤 했다.
 
일이 이렇게 되자,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던 세자의 친어머니가 “차라리 세자의 몸을 없애 나라를 보전해 달라”고 영조에게 세자의 죄상을 낱낱이 이른 것이다. 이때 선희궁이 아들의 일을 고하며 한 말이 한중록에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다.
 
“병이 점점 깊어 바랄 것이 없사오니 소인이 차마 이 말씀을 정리(情理)의 못 하올 일이오되, 성궁을 보호하옵고 세손을 건지와 종사를 평안이 하옵는 일이 옳사오니 대처분(大處分)을 하오소서.”
 
당시 선희궁이 영조에게 고한 말은 영조가 세자를 죽이며 반포한 ‘폐세자반교’에 전한다. 이를 통해 세자가 죽인 사람이 100여명에 이른다는 것이 드러난다. 《권력과 인간》에서 인용한 폐세자반교의 일부다.
 
“세자가 내관, 내인, 하인을 죽인 것이 거의 백여 명에 이오며, 그들에게 불로 지지는 형벌을 가하는 등 차마 볼 수 없는 일을 행한 것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그 형구(刑具)는 모두 내수사 등에 있는 것으로 한도 없이 가져다 썼습니다. 또 장번내관을 내쫓고, 다만 어린 내관, 별감들과 밤낮으로 함께 있으면서, 가져온 재화를 그놈들에게 나누어주고, 또 기생, 비구니와 주야로 음란한 일을 벌였습니다.
 
그리고 제 하인을 불러 가두기까지 했습니다. 근일은 잘못이 더욱 심하여 한번 아뢰고자 하나, 모자의 은정 때문에 차마 아뢰지 못했습니다. 근일 궁궐 후원에다가 무덤을 만들어 감히 말할 수 없는 곳(영조)을 묻고자 했으며, 하인에게 머리를 풀게 하고 날카로운 칼을 곁에 두고 불측한 일을 하고자 했습니다. 지난번 제가 창덕궁에 갔을 때 몇 번이나 저를 죽이려고 했는데 겨우 제 몸의 화는 면했습니다만 지금 비록 제 몸이야 돌아보지 않더라도 우러러 임금의 몸을 생각하면 어찌 이 사실을 아뢰지 않겠습니까.”
 
정조에 의한 아버지 미화작업

이 무렵 세자는 정신병이 도져 도저히 세자라고 할 수 없는 짓을 벌이고 있었다. 궁밖에서 데리고 온 여승, 기생과 잔치를 벌이며 한곳에서 뒹굴고 자고, 자기 거처를 무덤처럼 꾸며놓고 관을 짜서 그 안에 들어가기도 했다.
 
1762년 윤 5월 13일, 양력으로는 7월 4일, 영조는 드디어 세자를 불러내 창덕궁 휘령전에 대령시켰다. 영조는 이 자리에서 “그대들 역시 신령의 말을 들었는가? 돌아가신 정성왕후가 지금 나에게 ‘변란이 호흡 사이에 있다’고 하였다”며 세자가 반역을 꾀했다는 사실을 혼령의 말을 빌어 대신들에게 공표했다.
 
분노한 영조는 칼을 바닥에 두드리며 세자에게 자결을 명했고, 세자는 머리를 땅에 찧어 이마에서 피가 흘렀다. 이 장면은 영화에서도 가감 없이 그대로 표현되었다. 영조는 “내가 죽으면 300년 종묘사직이 망한다. 네가 죽으면 종사는 보존할 수 있으니 네가 죽어야 한다. 내가 너 하나를 베지 않고 종묘사직을 망하게 해야 하느냐?”며 계속해서 자결할 것을 거듭 명령했다.
 
이때 갑자기 뒤주가 등장했고, 영조는 세자에게 안으로 들어가라고 명했다. 뒤주에 들어간 세자는 “부주(父主: 아바마마) 살려주소서”하며 소리쳤지만, 소용없었다. 다음날에는 세자를 모셨던 환관 박필수와 여승 가선, 평양 기생 5명이 참형을 당했다. 뒤주에 갇힌 세자는 결국 8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이상이 조선 왕실 사상 가족 간에 벌어진 최고의 비극적인 사건의 전말이다. 아버지가 아들을, 그것도 일국의 왕세자를 뒤주에 가둬 굶겨 죽인 워낙 충격적인 사건이라, 당대부터 사도세자의 죽음을 둘러싸고 온갖 추측과 억측, 소문이 난무했을 것이다.
 
정조는 자신의 아버지가 억울하게 죽었다며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애를 썼고, 이 과정에서 사도세자에 대한 나쁜 기록은 대부분 지우고, 아버지가 어질고 똑똑했다는 좋은 기록을 행장 등에 남겼다. 더구나 정조는 영조에게 부탁해 아버지와 관련된 기록을 모두 삭제해 달라고 요청했고, 영조는 이를 받아들였다.
 
이후 정조의 아버지에 대한 효심과 미화작업, 정치적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사도세자의 기행은 상당 부분 덮어지거나 희석되었고, 오늘날까지 사도세자를 대할 때 일반인들이 느끼는 정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렇게 하고도 나라가 망하지 않겠는가?"

사도세자 사건을 철저히 영조의 시각에서만 본다면 아들을 죽이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이 없었을 것이다. 당시 영조는 70세가 다 되었는데 조선시대 기준으로는 그야말로 내일 죽어도 아무 이상할 것이 없는 고령이었다.
 
세자의 반역 시도나 의지의 진실성 여부를 떠나 영조는 자기가 갑자기 죽은 후에 정신병에 사람을 마구잡이로 죽이는 세자가 왕이 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영조는 나경언 고변이 있자 세자를 불러놓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모를 쓴 자들은 모두 나를 속였으니, 나경언이 없었더라면 내가 어찌 알았겠는가? 왕손의 어미를 네가 처음에 매우 사랑하여 우물에 빠진 듯한 지경에 이르렀는데, 어찌하여 마침내는 죽였느냐? 그 사람이 아주 강직하였으니 반드시 네 행실과 일을 간하다가 이로 말미암아서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 또 장래에 여승이 아들을 반드시 왕손이라고 일컬어 데리고 들어와 문안할 것이다. 이렇게 하고도 나라가 망하지 않겠는가?”
 
영조는 자신이 죽고 세자가 왕이 되는 순간 역성혁명으로 나라(왕조)가 망할 것이라는 걱정을 하고 있다. 다행히 세손이 똑똑했고, 왕재로서 손색이 없었다. 세손이라는 대안이 생긴 이상 정신병에 걸려 살인과 기행을 일삼는 사도세자는 이미 살아날 수 없는 운명이었다. 구제가 불가능해진 세자는 그렇게 생모와 부인, 신하들의 침묵 하에 삶을 마감해야 했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5-09-23 16:39   |  수정일 : 2017-02-02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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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세나  ( 2015-09-23 )  답글보이기 찬성 : 17 반대 : 17
혹... 음해세력이 남긴 기록은 아닐까요? ㅡㅡ^ 흠흠흠
조혜영  ( 2015-09-23 )  답글보이기 찬성 : 18 반대 : 35
글의 편향이 좀 심하시군요.
근거를 든 그 책이 소설이군요.
강학봉  ( 2015-09-23 )  답글보이기 찬성 : 46 반대 : 3
옛날의 이씨조선이나 지금의 김씨조선이나 그게 그거네.
      답글보이기  송기식  ( 2015-09-23 )  찬성 : 18 반대 : 6
댓글의 편향이 좀 심하시군요.
근거가 무근이군요.
최병수  ( 2015-09-23 )  답글보이기 찬성 : 11 반대 : 0
1.그래 사고세자가 죽은 게 지가 잘못했구먼
2.그때 조선은 망해야 하는데 ,너무 사색당쟁으로 오래 싸운 대가가 크구먼
3.조선이라는 나라는 없으면 쓰겠다
고영관  ( 2015-09-24 )  답글보이기 찬성 : 20 반대 : 0
그럴수도 있었겠다는 소견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고세호  ( 2015-09-24 )  답글보이기 찬성 : 18 반대 : 2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당시 조선은 말이 르네상스지... 암흑기의 절정이었습니다. 청나라가 안정화되고 PAX CHINA 가 펼쳐지자 안정된 것이고, 근검을 스스로 내세운 영조의 덕에 내치도 안정화되지만.... 그 방식은 사림에 의한 지배... 암흑기의 최고조에 해당됩니다. 사농공상 신분 질서의 폐해가 극대화되지만 폭발하지 못하고 억제되다가 혼란에 빠진게... 왕조의 멸망이 아니라 조선의 멸망을 불러왔지요. 역성혁명이 일어나지 못한게.... 민족의 비운이라 할 겁니다
고세호  ( 2015-09-24 )  답글보이기 찬성 : 9 반대 : 0
설득력이 매우 큰 이야기 입니다. 안맞는 조작으로 퍼즐을 하다가 제대로 된 조각을 찾은 것 같네요. 영조가 대신들에 밀려서 아들을 죽였다는 이야기는 아무리 보아도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 입니다. 그렇게 약한 왕이었다면 조선의 르네상스를 연 군주라는 이야기를 들을 리가 없지요. 성장과정상, 궁의 내부 알력으로 어미손에 크지 못하고 제대로 크지 못한 것과 군왕의 자질이 없던 것이 결합하여 저리된 것이 아닐까 합니다만... 갑자기 얼마전 타계한 아버지와 아들은 재벌인데 자신은 재벌이 되지 못한 이가 생각나는 건 왜인지...
이승화  ( 2015-09-24 )  답글보이기 찬성 : 16 반대 : 1
역사는 진실 그대로 후세에 전해져야 한다. 사도세자가 정신병적 살인마라는 설은 있었으나 전주이씨종친회 등에서 쉬쉬한 것이기도 하다. 정조가 수원행궁에 행차하여 사도세자묘소를 참배하며 효행으로 미화하여 일반인들이 잘 모르고 있던 사실이었다.
손용상  ( 2015-09-24 )  답글보이기 찬성 : 20 반대 : 3
일리 있다고 본다. 영조가 영병한 임금인데... 항상 의문이었다. 세자가 뭔가 파렴치하게 금도를 깨었다면 할 수없이 없앨 수도 있을 것이다.
이수영  ( 2015-09-24 )  답글보이기 찬성 : 40 반대 : 2
참 재미있는 사실이군요.. 왜 영조가 아들을 죽일 수 밖에 없었는지.. 항상 궁금했고.. 이번에 영화를 볼때에도 그래도 죽이기까지 해야 했었나 했는데.. 정별설 교수님 왜 이제야 저런 진실을 말했는지.. 그 동안 드라마에서도 많이 이야기 되었지만 저 정도로 묘사되지는 않았던거 같던데.. 아니면 그 전에 이미 알려진 사실인데 다들 애써 외면해서 알려지지 않았던건지.. 어쨋거나 이제야 아버지 영조의 맘이 이해가 되는거 같네..
이창호  ( 2015-09-24 )  답글보이기 찬성 : 6 반대 : 6
이 글이 상당한 근거가 있다면 지금 상영하고 있는 영화 사도는 결정적인 사실을 누락해서 왜곡한 측면도 있다고 봐야 하겠습니다. 고증에 의한 사실관계와 균형있는 현실적인 분석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동석  ( 2015-09-24 )  답글보이기 찬성 : 24 반대 : 24
나는 영조가 자기 아들 사도세자를 죽인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으나 위의 나온 사도세자의 기행을 읽고 영조가 사도세자를 죽인 이유는 사도세자가 벌인 그의 악행으로 인한 자업자득으로 영조가 그의 아들 사도세자를 죽인 것은 당연했다.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가 왕이 된 뒤에 자기아버지 사도세자의 악행의 기록을 모두 없앤 것은 역사를 왜곡하는 일본의 극우자들의 짓과 샅은 것으로 역사를 왜곡하고 잉금이 자기의 아들을 죽여야 하는 사태가 일어나는 등 미개하고 엽기적인 쓰레기 왕조였던 조선왕조가 한국역사에 있었다는 것은 한국의 큰 비극이다.
조영상  ( 2015-09-24 )  답글보이기 찬성 : 4 반대 : 1
이게 조선시대 노예의 일생이고 실상이지
이원재  ( 2015-09-24 )  답글보이기 찬성 : 15 반대 : 24
이동석씨 정신차리라 쓰레기 왕조라니 쓸말이 있고 안해야 할말이 있다/방송 잡것들이 요즘 쓰레기/쓰레기하니까 젊은친구들이 그런 용어 쓰는데 정신차리라/어디다 대고 500년 왕조를 쓰레기에 비유하나
이광섭  ( 2015-09-24 )  답글보이기 찬성 : 34 반대 : 2
영조가 아들을 죽인 것이 가장 납득이 가게 설명하는 글이라고 생각된다. 뭐 크게 놀랄 일은 아닐지도... 500년 넘게 지속된 왕조에서 사도세자같은 사이코패스가 하나 정도 있는게 크게 기괴한 일도 아닐 것이고.
김호석  ( 2015-09-24 )  답글보이기 찬성 : 20 반대 : 6
이영화도 돈벌이를 위해서 진실을 은폐하지만 명성황후 영화도 그녀의 행패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없고 그저 일본놈들에게 죽은 사실로만 말한다.
오충윤  ( 2015-09-24 )  답글보이기 찬성 : 31 반대 : 24
조선조는 왕과 양반만을 위한 수탈의 500년 역사뿐이다.
임란으로 왜놈들에게 당하고 호란으로 되놈에게 당하면서 불쌍한 백성들의 고혈만 빨다가 결국 니뽄에게 나라를 빼앗긴 전제왕조이다.
이 글을 보면 사도세자때 조선이 망하고 다른 왕조가 들어섰다면 더 좋았을 것 같기도하다.
김수현  ( 2015-09-24 )  답글보이기 찬성 : 14 반대 : 3
사도세자는 정신병이 있었지만 그 정신병을 안긴게 결국은 집권당인 노론세력이었습니다. 사도세자의 광포한 성격을 본 노론일파들이 정권을 그에게 넘기지 않기 위해 목숨을 건 암투를 벌였고 노론이 주도한 공작에 결국 ㅅ도세자는 죽을 운명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정신병이 있는 건 분명햇고 영조가 세손을 택한건 탁월한 선택이었고 정조가 훌륭한 정치로 이를 입증하였습니다.
세손이 워낙 영민하였기에 영조가 세자를 버리기로 한 것도 맞고 뒤주공작에 노론이 앞장선 것도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래서 정조는 집권 첫날 주요신료들을 소집한 자리에서 본인은 사도제자의 아들이다고 정체성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노론을 싫어 하여 남인을 등용하기도 하였지만 집권당이 노론이기에 그들과 결국 정치를 하였고 통치기간은 조선의 르네상스라고 부를만한 성군이었습니다
김수현  ( 2015-09-24 )  답글보이기 찬성 : 7 반대 : 4
조선시대에 백성을 불쌍히 여겨 평님들을 위한 선정을 베푼 왕은 손에 ㄲㅂ을 정도입니다. 세종, 현종, 영조, 정조 이 정도 밖에 없습니다 나머지 왕들은 정말 자질 함량 미달이 수두룩합니다 대표적인게 인조, 선조, 명종, 철종 헌종 등 두뇌도 딸리고 판단력도 떨어지는 평균보다 더 평균이하인 자질안되는 이들이 왕으로 있었으니 조선의 동력이 떨어지고 일본에 국력이 현격히 뒤진 원인입니다
김수현  ( 2015-09-24 )  답글보이기 찬성 : 4 반대 : 18
한중록은 사도세자를 죽인게 친정아버지인 홍봉한 세력이니 친정을 구하기ㅜ위해 변명하기 위해 쓴게 한중록입니다 남편 편에서 남편을 변호하기 보다는 친정식구들을 살리기 위해 친정가문이 남편 죽인게 어쩔수 없다고 변명을 늘어놓고 남편이 정신병자라고 구구절절이 늘어놓습니다
김봉주  ( 2015-09-24 )  답글보이기 찬성 : 16 반대 : 1
음... 그런 역사적 사실이 !!! .. 처음 듣는 얘기네요... 잘 읽었습니다..
박성호  ( 2015-09-24 )  답글보이기 찬성 : 32 반대 : 3
영조같이 똑똑하고 백성을 사랑한 왕이 아무 이유없이 자신의 아들을 죽게 하지는 않았겠죠. 그리고 영조도 사도세자의 어머니 선희궁의 요청이 있은 후에 사도세자를 죽입니다. 영조도 아버지로써 마음이 많이 아팠을 것입니다.
이기선  ( 2015-09-25 )  답글보이기 찬성 : 6 반대 : 26
필자의 주장대로라면 인류 3대의 살인마는 징기스칸, 나폴레옹, 알렉산더 대왕 이겠네요?? 조선 시대 왕들은 자의 타의로 자신의 권력을 위협하는 모든 사람들을 역모죄란 명으로 9족을 멸합니다. 영도 자신도 자신의 아들을 포함한 수많은 정적들을 죽였죠. 사도 세자는 자신을 따른 추종 세력이 미약하여 자신이 직접 손을 50043;을 뿐이죠. 권력의 역사는 살인의 역사입니다. 말도 안되는 주장 하지 마세요..^^
박삼권  ( 2015-09-25 )  답글보이기 찬성 : 10 반대 : 0
개인의 주장으로 역사적인 사실이 왜곡되어서는 않된다. 이글에서도 역사적 사료를 더 정확히 제시하고 필자의 의견을 기술했으면 좋았을것이다.
이기선  ( 2015-09-25 )  답글보이기 찬성 : 4 반대 : 21
사도 세자의 비극은 아버지와 아들의 왕권을 둔 권력 다툼에서 아직 세력이 미약한 아들이 지고, 역모죄로 죽음을 당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역모죄의 죄인에게는 항상 구실이 붙겠죠?? 역사란 승자의 기록입니다. 역사의 기록처럼 패자가 항상 나쁜 사람은 아닐 때가 있다는 거죠..^^
김승대  ( 2015-09-25 )  답글보이기 찬성 : 10 반대 : 0
현실이나 역사나 재창조되는 것이 문제이며, 대부분의 시민들은 그것을 믿는다. 그러하니 지식인을 비롯한 지도자들의 올바른 가치관과 정의관이 얼마나 중요한가? 사도세자는 희대의 정신병자이며 살인자이지만 그간 알려지는 것이 불가하고, 알린다고 해도 샤회적 배신으로 욕먹는 사회였다. 지금은 어떤가? 오로지 시민의 올바른 판단만이 이 나라 이 사회를 지킬수 있는 것이라고 믿으며, 특히 선거에서 올바른 판단이 필요하다. 잠시의 감정으로 판단하여 대표자를 뽐으면 안될 것이다.^^
장진호  ( 2015-09-25 )  답글보이기 찬성 : 40 반대 : 4
항상 나오는 반론
1. 한중록을 믿을수 없다. 자신들의 가문을 구하기 위해 날조한 기록이다. 실록에는 전혀 살인의 기록이 없다.
2. 역사는 승자의 기록일 뿐이다. 믿을수 없다
3. 다 노론 때문이다. 노론이 나쁜놈이고, 사도세자는 희생양이고. 정조도 너무 고생했다.

다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1. 실록에도 최소 10명 정도 살해된 기록이 나옵니다. 그리고 실록에는 사도 세자 기록 자체가 거의 없습니다.
2. 정조가 왕이 되었는데. 무슨 역사의 패자 ? 위 본문에도 나오지만.. 세손 시절 정조는 사도세자의 사초를 모두 지우자고 울면서 건의합니다. 실록 편찬의 큰 뜻에는 어긋나지만. 워낙 상황이 참담해서. 왕, 세손, 신하들 모두 침묵으로 동의합니다.
3. 정조가 노론의 신하들에게 보낸 한글 편지들이 공개되었죠.. 그거 보면. 아마 말도 안되는 소리라는걸 이해 할겁니다.
      답글보이기  이동석  ( 2015-09-25 )  찬성 : 1 반대 : 2
그런데도 미게하고 한심한 조선왕조를 미화하고 찬양하는 이원재같은 바보들이 있는 것은 매우 어이가 없습니다.
      답글보이기  이동석  ( 2015-09-25 )  찬성 : 13 반대 : 12
한심한 이원재 쓰레기 암덩어리 인간아! 유교에 미쳐 미쳐 날뛰어 백성들의 생활을 피패한 도탄상태에 빠뜨리고 잉금이라는 인간들은 왕권과 왕실을 지키기에만 미쳐 날뛰고 궁녀라는 잉금의 성노리개를 궁궐애 두고 여색질만 하다가 결국은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게 만든 한심한 쓰레기 조선왕조를 미화하고, 쓸데없이 500여년동안 존재하여 나라를 말아먹은 쓰레기 조선왕조를 찬양하는 이원재 너는 조건왕조와 같은 지독한 얼간이다. 우리나라가 20세갸부터 격은 민족의 비극의 원인 제공자가 미개하고 한심한 쓰레기 조선완조인 것을 생각하지는 않고 그저 한심한 쓰레기 조선왕조를 미화하는 이원재 너는 아주 한심한 쓰레기 인간이다.500여년 동안 있었던 쓰레기 조선왕조가 대단하다면 이원제 네놈의 마음에는 소련과 동유럽과 공산국가들이 다 없어졌어도 망하지 않고 70년동안 있는 북한의 김일성 왕조는 매우 훌륭하겠구나! 이원재 이 바보야! 북한의 김일성 왕조의 원형이 조선왕조다.
      답글보이기  이동석  ( 2015-09-25 )  찬성 : 4 반대 : 2
북한의 김씨왕조의 원형이 조선의 이씨왕조이기 때문입니다.
      답글보이기  이동석  ( 2015-09-25 )  찬성 : 17 반대 : 15
미개하고 엽기적이고 한심한 쓰레기 조선왕조가 빨리 망해 없어지지 않고 500여년동안이나 집권한 것은 한국의 비극입니다.
이동석  ( 2015-09-25 )  답글보이기 찬성 : 17 반대 : 28
세종잉금을 제외하고 조선의 잉금이라는 인간들은 모두 술과 여색과 권력욕에만 미쳤었고 왕권을 휘둘러 백성을 억압하는 독재자들이였고 북한의 김씨왕조의 원형이 조선왕조다. 한국이 20세기에 격은 민족비극의 원인은 모두 조선왕조인데도 쓰레기 조선왕조를 미화하고 찬양하는 이원재같은 얼간이들이 있는 것은 매우 어이가 없다.
이기선  ( 2015-09-25 )  답글보이기 찬성 : 34 반대 : 21
1. 정조가 왕이 되자 처음으로 신하들에게 한 말은 바로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였습니다. 만약에 사도세자가 기사의 내용처럼 극악의 연쇄살인마라면 정조가 왕이 되자마자 처음으로 한 말이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란 말일까요??
2. 영조가 노론들의 모략으로 자신의 아들인 사도세자를 죽인 후 정조만 보라고 남겼다는 금등지사에는 어떤 내용이 있었는지 전해지지는 않지만 기사의 내용하고는 전혀 다른 내용이 었을 가능성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정조도 노론에게 결국 암살을 당하죠??
3. 정조의 암살 후 조선의 왕권은 노론들의 놀이개 감이 되고 조선은 결국 멸망의 길로 들어갑니다..^^
      답글보이기  이동석  ( 2015-09-25 )  찬성 : 2 반대 : 5
김수현씨가 쓴 글의 내용은 훌룽하나 보기휸한 한글이모티콘을 쓴 것은 큰 장못입니다. 인데넷댓글란에 못된 한글 이모티콘을 쓰지 마세요.
  ( 2015-09-25 )  답글보이기 찬성 : 9 반대 : 1
아주 흥미롭네요 전혀 듣도보지도 못했어요 자료가 있다면 보고 싶습니다 여태까지 영조가 성군이기는 하지만 자식에게는 잔혹무도한 아비라 생각했었는데 . . . 부모가 어찌 자식을;;;그래서 노론도 나쁘다 정치는 역시 예나 지금이나 씁쓸하다는 생각을 하고있었커든요 모 아주 흥미롭습니다
유진  ( 2015-09-25 )  답글보이기 찬성 : 22 반대 : 6
타임머신타고직접가보지않은이상확신은없죠 역사는결국승자들의기록이니까요... 윗글처럼정조가죽은아버지인사도세자를미화시킨것인지,혜경궁홍씨가권력에못이겨어질고똑똑한남편을정신병자로묘사한건지.. 어쨌든사도세자가제정신이아니었던이유는그의아버지인영조와노론으로인한스트레스가주원인이잖요?
  ( 2015-09-25 )  답글보이기 찬성 : 16 반대 : 10
사도세자가 저렇게 나온건 노론쪽에서 모함,헛소문으로 부풀린거지 실제 저렇진 않을건로 아는데
ㅡㅡ  ( 2015-09-25 )  답글보이기 찬성 : 7 반대 : 5
여기 노론 음모론 믿는 분들 너무 많으시네요ㄷㄷ 아무튼 잘읽었습니다
손창호  ( 2015-09-27 )  답글보이기 찬성 : 5 반대 : 3
아동살인방송놈현 때, 이서진이 사도세자 역할로 인기 많았었지...! 갑자기 테레비연속극에서 자객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다가 방정리하고 나가고... 참 테레비직원들은 기상천외!

멀쩡한 사람을 사도세자처럼 만드려고 노력하는 자세도 가히 사도세자수준이지! ㅎㅎㅎ.
김규용  ( 2015-09-28 )  답글보이기 찬성 : 8 반대 : 23
사도세자는죽어마땅한인간말종이셔읍니다 ㄱ ㄷ ㅈ 이나 ㄴ ㅁ ㅎ 이처럼 죽어야하엿지요 그나마 영조가바른정신잇어서 잘처리한것입니다
      답글보이기  김규용  ( 2015-09-28 )  찬성 : 5 반대 : 5
혜경궁홍씨는그럴인물이못됩니다 그나마 사도세자를없애서 후환을 제거한것입니다 아니전부가벌갱이들천지인 ㄱ ㄷ ㅈ 시절ㄹ에 ㅂ ㅈ ㅎ 관련된것은전부부시고 망쳐놓앗는데 ㄱㄷ ㅈ 의후손들이
영조같은 모자란임금이그래도 사도세자는잘처리한것이지요
  ( 2015-09-28 )  답글보이기 찬성 : 3 반대 : 1
그냥 방에 가둬놓근 굶겨죽이든...단종처럼 쪄죽이든 하시지 뒤주는 좀 ㅜㅜ 폐소공포증있는 나로선 상상만해도 몸서리쳐짐
이기선  ( 2015-09-28 )  답글보이기 찬성 : 12 반대 : 18
이 모든 비극은 영조가 경종을 독살하고 왕위를 찬탈함으로서 비롯된 일이다. 자기가 뿌린 씨는 결국 자기가 거두게 된다는 것이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이다. 그러나 사도세자가 연쇄살인마라는 누명은 옳지 않다고 생각이 된다. 사도세자의 주위에는 항시 사도세자의 행적을 감시하는 노론의 첩자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심지어는 사도세자에 대한 암살의 시도도 적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이 된다. 사도 세자가 행한 것은 자신에 대한 암살의 시도나 노론의 첩자로 의심되는 측근들에 대하여 무인의 기질이 많은 세자의 일종의 정당 방위로 생각이 된다. 물론 죽음을 당한 측근들 중에는 억울한 죽음도 있었겠지만 당시에 사도세자의 입장을 고려할 때 미치광이 살인마라는 오명은 너무 과한 측면이 있다. 노론 측에서 보면 자신들이 세자를 감시하고 암살을 시도 했다고 하면 역모죄로 9족을 멸하게 되니, 어쩔 수 없이 사도세자를 멀쩡한 사람을 죽인 미친 광인으로 몰고 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기선  ( 2015-09-28 )  답글보이기 찬성 : 14 반대 : 17
또하나 사도세자가 싸이코 패스가 아니라고 하는 결정적인 증가는 자신의 장인인 홍봉완에서 비밀리에 보낸 서신의 내용에 있습니다. - 나는 원래 남모르는 울화의 증세가 있는 데다, 지금 또 더위를 먹은 가운데 임금을 모시고 나오니, 열은 높고 울증은 극도로 달해 답답하기가 미칠 듯합니다. 이런 증세는 의관과 함께 말할 수 없습니다. 경이 우울증을 씻어 내는 약에 대해 익히 알고 있으니 약을 지어 남몰래 보내 주면 어떻겠습니까.(1753?) -세상에 어느 사이코 패스 환자가 장인에게 자기가 정신병 증상이 있으니 고칠 약을 보내달라고 합니까?? 뒤에 다른 서신에서는 장인이 보내준 약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서신도 있습니다. 싸이코 패스 환자는 절대로 자기가 정신병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정신과 환자가 자신이 정신병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치료의 목표이며, 환자가 인정한 순간 정신병 치료의 구할이상 이루어 진거죠. 싸이코 패스라는 어마어마한 이름을 어떤 사람에게 붙이려면 먼서 싸이코패스라는 단어의 정확한 뜻 부터 알고 쓰시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유욱상  ( 2015-09-28 )  답글보이기 찬성 : 20 반대 : 29
사도를 죽인 것은 노론이고, 이 모든 기록들은 노론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진짜 진실을 알고 싶다면 노론일파가 얼마나 사악한 집단이었는지부터 알아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들은 정조도 독살했을 가능성이 높으며, 결국 자신들의 세상을 만들어 정조 사후 나라가 망할 때까지 세도정치를 했습니다. 그들의 말만 듣고 사도가 사이코패스라고 믿는다면 참으로 순진한 분들이라고 밖에는 볼 수가 없습니다.
      답글보이기  유욱상  ( 2015-09-28 )  찬성 : 3 반대 : 8
사도의 고열과 울증 또한 암암리에 먹인 만성지독에 의한 것은 아닌지도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가 외부의 의원으로부터 약을 구한 이유 자체가 어의를 믿을 수 없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임영록  ( 2015-09-29 )  답글보이기 찬성 : 6 반대 : 1
사도세자가 싸이코패스?
이상기  ( 2015-09-29 )  답글보이기 찬성 : 35 반대 : 0
왕조가 사라지고 자유민주국가가된 대한민국에 살고잇다는것이 천만다행올시다 왕조시대 무고한백성들을 이렇게 100명씩이나 살해하고도 잠을잘수있었다니...북조선왕조의백성들은 언제나 자유와풍요를 누릴수있을까...
임성재  ( 2015-09-29 )  답글보이기 찬성 : 21 반대 : 2
우리가,통상 그간 느껴 온 것은 부왕 영조는 아주,냉혹한 군주로만 여겨왓고,사도세자는 그야말로,불운의 아주,착하고,여린 세자로만 인식하고 있었다.사도세자의 정신적 장애와 행각을보니,아비,영조의 처사가 이해된다.역사란 항상 힘 센,승자의 기록이기에 역사적 기술로만 진실을 파악하기엔 상당한 괴리가 있음을 여실히,알려주는 사레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김홍석  ( 2015-09-29 )  답글보이기 찬성 : 26 반대 : 0
했던 짓이 사실이라면 죽을 만하네.. 하기야 오죽하면 애비가 자식에게 자결을 하라고 했겠는가? 그동안 사도세자가 너무 미화되었다.
홍순성  ( 2015-09-29 )  답글보이기 찬성 : 13 반대 : 2
저 정도면 사도세자가 왕위에 올랐을 때 연산군 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한 악행을 저지르지는 않았을것 같다! 실록에 저 51207;도의 살인이 남아있고 악행이 남아 있을 정도면 그 이사의 죄과가 더 있을 것으로 본다! 영조의 판단은 정말 신의 한수였다고 본다!
정영재  ( 2015-09-29 )  답글보이기 찬성 : 47 반대 : 0
영조가 아들을 뒤주에 가두어 죽인 이유를 이제야 충분히 이해하겠네요. 감사합니다 좋은 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비를 공경한 정조의 효심을 보게 됩니다. 물론 정치적인 이유도 있었다고 하지만 효심이 없다면 그리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최흥선  ( 2015-09-29 )  답글보이기 찬성 : 4 반대 : 2
... (떡 돌리고 잔치할 일을 무척 슬프게 만들어야 먹고 사는 배우들 ...)
이기선  ( 2015-09-29 )  답글보이기 찬성 : 6 반대 : 37
하기사 몇 백명의 천주교도들을 역모죄로 누명을 씌워서 죽이는 노론들이니, 한 사람 광인으로 만들어서 죽이는 거야 일도 아니죠..ㅎㅎ
조윤래  ( 2015-09-29 )  답글보이기 찬성 : 0 반대 : 0
몇일전 영화 사도 관람햇었는데....
신재원  ( 2015-09-30 )  답글보이기 찬성 : 28 반대 : 2
영화를 아직 안봐서 어디까지 나왓는지는 모르겠지만 삭제되고 기록에 남아있는 사도세자의 살인행각만 봐도 100명까지는 몰라도 부인과 내관을 포함해 꽤되고 주색잡기하다 돈 떨어지니까 민간의 상인들 돈 뜯은 기록도 나오고 왕이 되면 틀림없이 조선이 망했을거라는 판단은 맞았지요. 정조가 임금으로서의 위신과 정통성을 확보하려 기록을 모두 삭제해 남은 정도가 저 정도인데 이걸 노론의 조작이라하면 아들인 정조가 허수아비 왕이었단 얘기인 셈인데 상상력이 과한게 아닌가?
홍진혁  ( 2015-09-30 )  답글보이기 찬성 : 16 반대 : 3
경계성 인격장애의 특징 이네요,이것으로 발전해서 정신분열로 발전한것 같습니다.
이증상의 원인은 부모의영향도 크게 작용하죠.
이기선  ( 2015-09-30 )  답글보이기 찬성 : 8 반대 : 30
자기 형을 독살하고 아들을 뒤주에 가둬 죽이는 영조가 더 미친것일 까요?? 수백명의 천주교도를 역모죄로 몰아 죽이는 노론이 더 미친 것일까요?? 아니면 자기를 죽이려는 영조와 노론 틈에서 살아볼려고 발버둥 친 사도세자가 미친 것일까요??
이대식  ( 2015-09-30 )  답글보이기 찬성 : 16 반대 : 22
왕으로서 짐승만도 못한 세자에게 자결을 명했음에도 명령이 시행되지 않으면 마땅히 수하들을 시켜 세자의 목을 베게 했어야 함에도 뒤주에 가둬 장기간 굶겨 죽였다는 사실은 영조 역시 정상적인 정신상태가 아님을 말해준다. 그리고 100여명을 살해한 살인마가 역모를? 반역을 혼자 하나? 곁에 있다가는 무슨 일로 언제 죽임을 당할지 모르는 미치광이를 누가 받들어 반역을 도모한단 말인가?
김선율  ( 2015-09-30 )  답글보이기 찬성 : 5 반대 : 2
이건 거의 체게바라 급이다. ㄷㄷ
조순희  ( 2015-09-30 )  답글보이기 찬성 : 9 반대 : 28
조선시대 태종의 세자 양평대군 역시 글공부를 싫어하고 태종과의 갈등 및 광기에 가까운 기행을 벌였습니다. 이에 태종은 잘아시다시피 양평대군을 폐서인으로 하고 궁에서 51922;아냈지만 죽이지는 않지요.
영조가 자신의 하나뿐인 외아들이 광기가 있다고 하면 폐서인으로 하면 되지 뒤주에 가두어 굶겨 죽여버린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일설에는 그렇게 죽인 후에 일말에 후회도 하지 않았다고 하는군요. 한갖 동물들도 제 새끼는 위할 줄 압니다. 어떻게 보면 자식을 뒤주에 가두어 굶겨 죽이고 일말의 후회도 하지 않은 영조가 오히려 더 싸이코 패스에 가깝다고 할 수 있군요.
      답글보이기  이영호  ( 2015-09-30 )  찬성 : 10 반대 : 16
아들 이쁘다고 어릴 때부터 출신 미천한 엄마한테 떼어놓고 반에서 이등하는 아들 전교 일등 못한다고 매일 때리고, 열살 된 아들 집안 가장이라고 내세웠다가 못한다고 옆에 사람들 목자르고.. 이런 아들이 스트레스 쌓이면 죄 없는 동물들한테 풀고.. 그러다가 스무 살 넘으면..술마시면 아빠 죽이겠다고...머 그런 이야기죠. 이게 누구 책임일까요?
이영호  ( 2015-09-30 )  답글보이기 찬성 : 6 반대 : 23
글쎄요.... 사도세자의 아버지 영조는 궁궐 노비의 자식 아닌가요? 무수리였던 최씨..숙종의 정부인과 사약 받고 죽은 애첩(장희빈) 및 특별한 이유 없이 일찍 죽은 그 아들 (경종, 엄마가 죽고 없는 왕이 왕 되자마자 죽었지요)..사이를 뚫고 왕이 되었던 영조. 뿌리없는 왕에 대한 컴플렉스와 언제 독살당할지 모르는 두려움? 당파싸움에서 주류가 아니었던 서인 노론파가 어떻게 영조를 내세워 정권을 잡았는가. 그리고 잡은 다음에도 어떻게 하면 정권을 유지할지 전전긍긍했는지..그 아비를 둘러싼 정치적 배경에 대한 분석 없이 죽은 아들만 사이코패스라..
이영호  ( 2015-09-30 )  답글보이기 찬성 : 7 반대 : 17
역사책을 조금만 관심 있게 보면 (후대 수정 불가하다고 알려진 것들) 영조가 자신과 비슷하게 미천한 출신인 아들 지극히 이뻐했고 열성적인 교육에 지나쳐 결국 아들 정신 망가뜨리고, 수시로 양위하겠다고 (물론 가짜로) 하고 분위기 파악하고..그 아들을 기반으로 주류나 비줄류나 결국 아들+손자(정조)가 다 망하느냐 (역모겠죠..) 아들은 희생시키고 손자라도 살려 후일을 도모하느냐.. 거기에 손자의 엄마이자 사도세자의 부인까지 가세 (혜경궁 홍씨)..결국 그 가문이 손자를 쥐고 흔들죠.. 영조까지도 손자까지 죽게 해서 왕조 씨가 끊기느니 아들만 죽이자. (이건 사이코패스가 아니라 냉정한 승부사적 결정이겠네요). 불쌍한 사도세자만 출신 미천하다는 친엄마와 어릴 때부터 생이별..과격한 성격 아빠 때문에 정신병자 되고, 정치 때문에 아빠하고 심지어 부인에게도 버림받고. 아들 때문에 그나마 간신히 명예회복.. 이런 이야기 없이 사이코패스......허..
오해인  ( 2015-09-30 )  답글보이기 찬성 : 22 반대 : 4
사도세자가 싸이코패스였다는 사실을 오늘에야 알았습니다. . / 명성황후 민비오 사실과 달리 너무 미화되어 우리가 대한제국말을 제대로 이해 못하고있지요
김창원  ( 2015-09-30 )  답글보이기 찬성 : 31 반대 : 0
이글이 사실이라면 영조에게 다른 대안은 없었으리라 생각된다. 사도세자가 스스로 자결을 못하니 뒤주에 가둔것이 아닌가. 왕세자를 누가 죽일 수 있겠는가? 나는 지금까지 영조를 오해한 듯하다. 사도세자가 죽은 것이 조선의 백성을 위해서는 좋은 일이었을 것이다. 아니면 조선이 이일로 없어지고 다른 나라가 세워졌다면 또 다른 좋은 역사가 쓰여졌을 수도...
신창성  ( 2015-10-01 )  답글보이기 찬성 : 45 반대 : 6
영특하신 영조임금님이 자식인 사도제자를 왜 죽여야만 했을까? 하는 사도세자의 죽음이 항상 마음속 과제로 남아 있었는데 이 글을 읽고 나니 이해가 갑니다. 아비로서 자식을 죽여야만했던 쓰라린 심정을...
조순희  ( 2015-10-02 )  답글보이기 찬성 : 19 반대 : 63
신문 기사를 쓰려면 사실을 바탕으로 써야지 허구를 바탕으로 한 소설을 기초로 기사를 쓰면 되겠는가?? 아무리 개인적인 견해라고 하지만 소위 정론지의 기사 치고는 격이 몹시도 떨어지는 내용입니다.
      답글보이기  전호진  ( 2015-10-02 )  찬성 : 35 반대 : 5
혹시 사도세자 모시는 무당이오?
다들 보지 못한 역사이거들...당신이 어떻게 사실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지 모르겠군요.
격 떨어지는 댓글 달지 말고...
  ( 2016-02-13 )  답글보이기 찬성 : 10 반대 : 37
사실이던 아니던 볼 필요도없는 쓰레기같은 글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똑똑해서 이런 한국역사 비하하는 쪽바리글 봐도 똑바로 생각하고 행동할줄압니다.
왜놈들은 정말 부끄러운줄 알아야 합니다. 기사에서 이야기하는 사도보다 더 지독히 잔인하고 극악무도한 자신들의 조상들이 땅을치고 후회할겁니다.
진실  ( 2016-02-14 )  답글보이기 찬성 : 14 반대 : 26
진실을 모르는자는 댓글을 쓰지말아라 .
역사를 왜곡하여 사실을 가리니 후대에 그대의 안위가 사도와 다르지 않을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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