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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노의 통쾌한 경제 이야기

시대를 바꾼 밀턴 프리드먼의 사상과 후세에 남긴 유산

방만한 재정·정부실패 타파...개인자유·시장기능 보장 ‘작은 정부’ 주목

글 | 최승노 자유경제원 부원장
필자의 다른 기사 2015-10-02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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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간섭주의 시대를 넘어 자유주의 시대의 화려한 부활을 실천해낸 학자가 있다. 바로 밀턴 프리드먼이다. 한 사람의 위대한 사상가는 시대의 흐름을 바꾸어 놓는다고 했다. 한 나라의 흥망이 바뀌기도 하고, 세계의 판도가 뒤바뀌기도 한다. 그는 자유주의 사상가로서 다시 경제가 꽃 피울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큰 역할을 해냈으며, 그로 인해 세상은 새로운 시대로 진일보하는 변화를 경험했다.
 
1912년 미국 뉴욕의 가난한 이민 가정에서 태어난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 1912~2006년)은 1932년 러트거스대학을 졸업한 후 시카고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1946년에는 컬럼비아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프리드먼은 유년시절과 대부분의 학창시절을 경제적으로 어렵게 보냈지만, 경제학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당대의 석학들을 두루 만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러트거스대학에서는 나중에 미국 연방준비 이사회장을 지낸 번즈를 만났고, 시카고대학에서는 존스를 만나 수준 높은 경제 이론과 연구를 접할 수 있었다.
 
그 뿐만 아니라, 1937년에는 국립경제연구원에서 쿠즈네츠(Simon Kuznets)를 도와 전문가 집단의 소득 연구에 접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이때의 연구와 1935년 국립자원위원회에서 수행한 소비자 예산에 관한 연구는 그의 소비함수 이론의 기초가 됐다. 특히 시카고 대학에서는 그의 평생 반려자이자 학문적 동반자인 로스 디렉터를 만나 결혼하는 행운을 얻기도 하였다.
 
학위 취득 후, 프리드먼은 1946년부터 30년간 시카고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스티글러와 함께 시카고학파의 쌍벽을 이루며 1930년대 대공황을 계기로 온 세계가 케인스 혁명에 휩싸였을 때, 이에 맞서 싸우면서 시장경제를 옹호하고 주창하여 1980년대 시카고혁명을 일으킨다. 그는 재직기간 초 마샬 플랜을 집행하는 미국 정부기관의 자문역으로 프랑스 파리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이 때 공동시장의 전조가 된 슈먼 플랜을 연구하면서, 후에 유명한 논문이 된 ‘변동환율의 경우(The Case for the Flexible Exchange Rates)’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였다.
 
 
프리드먼, 자유주의로 세상을 움직이다.
1960년대 전반기부터 프리드먼은 공공정책 분야에 깊숙이 개입하기 시작했고 1964년에는 공화당 상원의원으로서 대통령에 출마한 골드워터(Goldwater)의 경제 자문역, 1968년에도 역시 공화당 대통령 후보인 닉슨(Nixon)의 경제 자문역을 맡았으며, 1980년에는 레이건(Reagan) 공화당 대통령 후보의 경제 자문역과 그의 대통령 당선 후에는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의 일원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그가 도왔던 정당이 모두 공화당이라는 사실은 그의 경제 사상과 철학을 알 수 있는 하나의 실마리가 되기도 한다.
 
프리드먼은 미국의 통화 역사 100년을 면밀히 분석한 <미국의 통화사, 1867-1960>를 통해 통화주의 가설을 검증하였고, 책 내용 중 1929~1933년 대공황을 다룬 부분은 대공황을 통해 통화요인의 중요성을 밝혔다는 점에서 주목받으며 <대공황, 1929-1933>이라는 책으로 분리되어 출간되었다. 그 밖에도 자본주의 사회에 있어 정부의 역할 수행 범위 등에 대해 기술한 <자본주의와 자유>, <선택할 자유(Free To Choose)> 등의 저서가 있다.
 
1976년에는 소비분석, 통화의 역사 및 이론에서의 업적과 경기안정화 정책의 복잡성을 명쾌하게 설명한 공로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였고, 1988년 레이건은 그의 공적을 기려 민간인에게 수여되는 최고훈장인 대통령 자유 메달을 수여하였다. 1977년, 그의 나이 65세에 시카고 대학에서 은퇴한 이후에도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에서 연구 활동을 이어나갔으며, 2006년 11월 16일 94세를 일기로 서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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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턴 프리드먼 / 출처 : youtube 영상 캡쳐

 
세기를 거듭난 자유주의의 상징
20세기의 경제정책은 두 학자를 양 축으로 해서 설명할 수 있다. 바로 케인스와 프리드먼이다. 케인스는 완전고용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소비와 투자, 즉 유효수요를 확대하기 위한 정부의 지출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반면, 프리드먼은 자유시장을 지지하며 정부가 맡는 역할이 축소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여 두 학자는 정부의 개입과 조정에 대해 상반된 의견을 제시하였다.
 
프리드먼은 케인스와 더불어 20세기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경제학자로 평가되고 있다. 경제 잡지 ‘이코노미스트’지, ‘포춘’지에서는 그를 20세기를 대표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학자로 손꼽았다. 미국 경제의 대통령으로 불리는 앨런 그린스펀은 그를 여러 세대에 걸쳐 문명의 향방을 실질적으로 바꿔놓을 정도의 몇 안 되는 독창적인 사상가라고 평가했으며, 그의 경제·사회 철학을 기초로 만든 TV프로그램 ‘선택할 자유(Free To Choose)'는 책으로 집필되어 전 세계 각 국에서 경제학 교재로도 사용되고 있다.
 
그의 경제사상과 철학은 정치사상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 대표적인 정치사상으로는 미국 레이건의 레이거노믹스(Reaganomics), 영국 대처의 대처리즘(Thatcherism)이 있다. 레이건 대통령은 케인스의 유효수요론을 벗어나, 세출의 삭감, 소득세의 대폭감세, 기업에 대한 정부 규제의 완화 등의 과감한 정책을 시행하였다. 대처 수상 또한 국유화와 복지정책 등을 포기하고, 공공지출 삭감과 세금인하, 국영기업의 민영화, 기업의 자유 및 창의 활동 보장하였는데, 두 경제정책 모두 프리드먼이 주장한 정부 개입의 최소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프리드먼은 불우한 가정에서 생의 초기를 시작했다. 그의 부모님은 유태인의 박해를 비해 미국으로 이민 온 유태인 출신이었다. 어머니는 근무환경이 열악한 재봉사로 일하였고, 아버지는 사업이 실패하고 밀턴이 15살이 되던 해 세상을 떠났다. 그렇기 때문에 프리드먼의 대학생활은 여유로울 수 없었다. 끼니는 매번 아르바이트하는 식당에서 나오는 공짜 점심으로 급하게 때울 수밖에 없었지만 그와 그의 어머니는 ‘미국은 모든 가능성 열려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살았다. 이러한 고난의 생활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고 정진하여 65세의 나이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프리드먼은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의 상징이기도 하다.
 
 
통화정책과 준칙주의
프리드먼의 정책은 통화주의와 준칙주의로 대표된다. 통화정책은 1980년대 미국의 프리드먼 등의 시카고학파 출신의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제안한 금융정책으로 중앙은행의 통화량을 조절하여 경제 활동에 영향을 주려는 정책이다. 정책에는 금리정책, 공개시장정책, 지급준비율조작 등이 있다. 이 같은 정책들은 준칙주의에 입각한 것들이다. 준칙주의는 정부의 재량적 통화정책 대신 준칙에 따른 소극적 화폐 공급을 뜻한다.
 
통화주의로 표현되는 통화정책은 프리드먼 경제 정책의 백미이다. 그는 인플레이션과 실업 사이에는 상반관계가 있다는 필립스 곡선의 통설을 반박하였다. 장기 필립스 곡선은 수직이므로 통화의 공급 증가를 통한 총수요의 증가는 실업률은 낮추지 못하고 인플레이션만 유발한다는 것이다. 이는 1970년대의 세계적 인플레이션이 도래하기 전에 당시 케이스 중심의 경제학의 잘못을 지적한 것으로서 그의 학문적 탁월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통화주의 정책의 주요 부분은 준칙에 의거하여 통화신용정책을 실시할 것을 주장하는 부분이다. 한편, 그는 중앙은행의 능력을 불신하고 중앙은행이 물가를 목표로 하여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것보다는 통화량을 통제하는 것이 더 쉽게 인플레이션을 억제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프리드먼은 1969년 런던에서 개최된 윈콧 기념 강연에서 “인플레이션은 언제 어디서나 화폐적 현상이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그는 인플레이션을 상품에 비해 돈이 너무 많은 현상으로 표현했다. 경제 전체의 생산량은 고정되어 있는데 화폐공급이 계속 늘어난다면 물가는 상승한다고 주장했다.
 
프리드먼은 불황 극복책으로 재정정책은 효과가 없다고 주장하였다. 재정지출을 늘리더라도 공채를 발행하여 이자율이 높아지면 민간투자가 감소하고, 세금을 더 거두면 민간소비가 그만큼 감소하는 ‘구축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결국 적자재정지출을 확대하면 실업문제 해결에는 도움이 되지 않고 물가만 오르게 된다. 프리드먼은 통화량의 적절한 조절과 시장기능 활성화로 스태그플레이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케인스 경제학의 한계를 넘어 경제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공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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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턴 프리드먼 / 출처 : youtube 영상 캡쳐(https://www.youtube.com/watch?v=hmAAqiZ_pUE)

 
작은 정부와 음소득세제
프리드먼은 작은 정부가 개인의 자유와 시장의 효율적 기능을 보장한다고 하였다. 그는 정부의 기능은 법과 질서를 유지하고 민간의 계약을 이행시키고 시장경쟁을 촉진하는 데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하며, 케인스 학파의 큰 정부주의가 결국 실패한 것이 시장의 자생적 질서보다 정부의 개입주의적 능력을 맹신한 결과라 하였다. 복지 부분에 있어서도 약자를 보호하는 역할도 정부가 아니라 자선기관의 주도로 하여야 효율적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음소득세제는 최저 생계비에 미치지 못하는 가구에는 부족액의 일정 부분을 보조해주는 제도이다. 부족액의 100%를 보조해주는 복지정책이 가진 문제점인 ‘일하지 않으려는 유인’을 줄이고, 특정 집단이나 상품 구매자가 아닌 문자 그대로 ‘가난’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프리드먼은 음소득세제를 도입하는 전제 조건으로서 각종 사회보험 성격의 프로그램들이 가진 복지 요소를 제거하여 음소득세제에 통합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래야 이중삼중의 복지 혜택을 줄여 복지정책을 시행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도 한결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명확하게 알 수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
 
 
방만한 재정운영과 케인스적 큰 정부주의 타파
프리드먼의 사상은 지금 어려움에 처한 우리 경제에 큰 시사점을 준다. 한국정부의 방만한 재정운영에 대한 경고다. 한국 정부의 지출 예산은 2014년 355조8천억 원에서 2015년 376조원으로 20조2천억 원이 늘어났다. 5.7%인 총지출 증가율은 2009년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국가채무 규모도 2014년 말 527조원에서 2015년 말 570조1천억 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GDP 대비 국가채무 규모는 35.1%에서 35.7%로 확대될 것이다. 최근 메르스 및 가뭄 등의 이유로 편성된 15조원 규모의 추경은 정부부채를 더욱 늘릴 전망이다.
 
프리드먼의 사상은 케인스의 개입주의 정책을 추종하여 온 큰 정부 정책의 한계를 극복하는 길을 제시하였다. 정부개입주의로 인한 반시장적 정책들과 복지정책들이 가져올 폐해를 극복하는 길은 정부의 역할과 지출을 줄이는 것이다. 프리드먼은 국가가 원칙 없이 시장에 개입 할 경우 생기는 인플레이션을 억제해야 하며 큰 정부가 야기하는 반 시장적 정책을 폐지할 것을 주문한다. 그리고 복지비용으로 증가한 정부의 재정 지출을 줄여 조세와 강제적인 준조세 부담을 줄여야 민간경제가 다시 활력을 보일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정책처방은 우리 경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는 오직 자유주의적 학문의 길을 걸었으며, 대학에서 은퇴한 이후에도 자유주의를 위해 정력적으로 활동했다. 이러한 프리드먼의 생애는 경제학자들이 걸어야 할 신념 있는 학자의 길을 보여주며 한국의 학자들에게도 많은 교훈을 준다. 우리나라의 경제학자들 또한 경제자유주의와 시장에 대한 믿음을 키워야 할 것이며 나이트, 바이너, 프리드먼, 코스, 스티글러, 베커 등의 석학들이 시카고학파를 형성해 나가는 과정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모두 시장에 대해 확실한 믿음을 가졌다. 그 결과, 어느 분야를 연구하든 항상 사람들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시장의 자율’과 ‘작은 정부’의 길을 확대했다. 이론과 실증에 바탕을 둔 학문적 동질성을 강하게 유지할 수 있었고, 자유 시장 경제를 주창하는 사상적 뿌리를 함께 하여 하나의 학파로 성장할 수 있었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칼럼니스트 사진

최승노 이코노미스트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시스템인 자본주의를 지지하며 자유기업주의에 입각한 경제정책을 연구하고 강의하고 있다. 스토리 시장경제 시리즈 10권의 책 저술을 통해 누구나 시장경제원리를 쉽게 알 수 있도록 하였다.

등록일 : 2015-10-02 08:38   |  수정일 : 2015-10-02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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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 2015-10-02 )  답글보이기 찬성 : 6 반대 : 12
곡학아세.
보라매  ( 2015-10-02 )  답글보이기 찬성 : 8 반대 : 5
알고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이야기다
이상국  ( 2015-10-02 )  답글보이기 찬성 : 7 반대 : 8
최승노님 최고 입니다. 최승노님이 지은 [사회주의는 왜 실패하는가] 책을 읽어 보았는데 아주 좋았습니다.
이상효  ( 2015-10-03 )  답글보이기 찬성 : 8 반대 : 4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조선일보가 자신의 색깔을 모르고 방황하고 있다는 표현이다. 진짜 조선이 진취적인 언론이라면 자유경제학적 관점에서 사회를 봐야한다. 바보들의 민속경제학,원시경제학에서 벗어나야 한다.
김준영  ( 2015-10-05 )  답글보이기 찬성 : 14 반대 : 7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가 아니라 부자를 돕는다. 따라서 빈자는 서로 뭉쳐 능력을 공유하고, 부자를 상대할 능력을 쌓았을 때라야 부자가 될 수 있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강국 사이에서 살아남을 의지와 역량을 갖추었을 때라야 생존할 수 있다. 부지런히 핵심역량을 키우고, 인재를 양성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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