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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노의 통쾌한 경제 이야기

하이에크가 살아서 지금 대한민국을 보면 뭐라고 했을까?

“소련이 무너졌는데도 정신 못 차렸네? 시장을 통제하려들면 다 죽는다고!”

글 | 최승노 자유경제원 부원장
필자의 다른 기사 2015-07-21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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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에게 자유에 대한 중요성을 깨닫게 해준 프리드리히 어거스트 폰 하이에크(Friedrich A. von Hayek, 1899~1992)는 ‘위대한 자유의 대변인’이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다. 그는 자유주의 사회철학을 확립함으로써 인류 문명에 큰 유산을 남겼다.
 
하이에크 사상이 주는 역사적 의의
 
민경국 교수의 『하이에크, 자유의 길(민경국著, 한울)』에 따르면 자생적 질서이론과 지식의 한계이론을 기반으로 하여 정치적 유토피아를 비판하고 자유사회의 존재해야할 이유를 설명했다.
 
하이에크는 법치주의 이론을 통해 법과 자유의 상호의존성을 강조하면서 자유를 확립하고 이를 보호하기 위해 법의 지배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역설했다. 문화적 진화론을 통해 자유주의는 문화 진화의 산물로서 자유주의는 인간을 문명화된 사회로 이끌어간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며 스승인 루트비히 폰 미제스(Ludwig von mises)에 이어 자유주의의 법·정치철학 인식을 확립시킨 것이 자유주의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의의로 보아야 할 것이다.
 
시대를 앞선 사상가
 
오스트리아 빈에서 출생한 프리드리히 A. 하이에크는 빈대학교에서 법학과 정치경제학 두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루트비히 폰 미제스의 지도하에 연구를 수행했으며, 1929~1931년까지 빈대학교에서 경제학을 강의했다. 1931년 영국으로 옮겨 런던대학교 교수로 지내며 1938년 영국 시민권을 취득하였다.
 
그는 독일의 전체주의에 환멸을 느껴 영국으로 왔지만, 영국에서도 사회주의가 점차 확산되자 충격을 받는다. 영국에서 벌어지던 사회보장 논쟁이나 공기업화 추진은 이미 독일의 나치당이 정치를 장악하는 과정에서 이용했던 수단이었다. 전체주의의 뿌리가 사회주의이며, 사회주의 정책을 받아들이다보면 그 사회는 점차 전체주의로 빠져들 수 있음을 간파했던 하이에크는 영국과 서방세계가 독일처럼 타락해가는 것을 염려해 『노예의 길』을 집필하게 된다.
 
하이에크는 이 책의 서문(1943년 12월)을 통해 이 책이 정치서적임을 밝히면서, “다른 속뜻이 있는 아마추어와 가짜 만병통치약을 팔려는 돌팔이들이 이 문제에 대한 논의를 주도하고 있고, 이에 따른 위험수위가 너무 높아져 여론에 경고음을 울리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며 사회주의자에 대한 포문을 열었다.
 
뉴욕타임스의 경제편집장이었던 헨리 해즐릿은 “하이에크가 우리 세대의 가장 중요한 책 가운데 하나를 썼다.”고 격찬했고, 전 세계 지식인들이 그를 주목했다. 하지만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기에는 이미 세계의 흐름은 사회주의로 기울어 있었다. 독일과 일본의 패배로 전쟁은 막을 내렸지만, 자유진영 국가에서는 오히려 사회주의가 점차 확산되었다. 패전국을 민주국가로 관리하는 것만으로도 힘에 겨웠던 서방국가들은 오히려 자신들의 내부에 일어나는 사회주의를 저지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자율적 시장치유보다는 장기적 부작용을 동반하더라도 당장의 정부개입과 혜택을 원했고, 이러한 추세는 1930년 대공황 이후 1970년대까지 지속되었다.
 
전 세계가 케인스의 정부개입주의에 휩쓸린 상태에서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은 또 다른 싸움의 시작일 뿐이었다. 자유진영은 제2차 세계대전의 동맹국이었던 소련과 중국이라는 또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싸움, 그리고 서방국가 내부에서 자라는 사회주의 세력과의 싸움에 직면하게 된다. 영국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노동당의 집권으로 정부의 경제통제가 강화되었고, 미국에서도 정부개입주의는 확산되고 있었다.
 
하이에크의 주장이 현실정책에 반영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지만, 사회주의가 결국 패망할 수밖에 없다는 하이에크의 예언은 결국 현실화되었다. 국가 내부에서 사회주의를 누르고 자본주의 원칙을 되살리는 데 성공한 서방세계는 사회주의 국가들을 전쟁 없이 몰아내는 데도 성공했다.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을 눈으로 확인한 하이에크는 1992년 독일 프라이부르크에서 9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렇다고 해서 사회주의가 종말을 고한 것은 아니었다. 사회주의가 꽃 피운 전체주의 국가와의 싸움은 끝났을지 모르지만, 자본주의 국가 내에 터를 잡은 사회주의라는 내부의 적과의 싸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제3의 길, 자본주의 4.0에서 보듯이, 전 세계적으로 사회주의를 적당히 가미한 유사 자본주의는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자본주의 이외에 대안이 없다는 점은 분명해졌지만, 자본주의를 위협하는 사회주의의 변화는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하이에크의 시각으로 바라본 대한민국
 
하이에크가 1992년에 사망하지 않고 살아있었다면 현재 한국의 전반적인 상황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할 것이다. 포퓰리즘 천국, 과잉입법행태(법의 목적화), 경제민주화, 정부 만능주의 팽배, 완화된 형태의 사회주의 국가를 지향하고 있는 풍토 등 이러한 것들은 하이에크의 자생적 질서이론과 법치주의 이론에 위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이에크는 법은 탈 목적화가 되어야 진정한 법이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또한 법 자체는 개인의 자유를 위한 질서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지금 행해지고 있는 정책과 입법 그리고 정부의 행태들은 개인의 자유를 위한 질서를 보호하기보다 오히려 무너뜨리는 것들이 상당수다. 프랑스 계몽주의 사상을 이어받은 인간의 이성이 완벽하다고 믿는 ‘구성주의적 합리주의’자들의 전통을 따라 개인의 삶을 계획하고 통제하려 하고 있으며 자생적 질서를 존중하기보다 파괴하고 종국에는 개인의 자유까지 침해하고 있는 것이다.
 
하이에크는 경제민주화와 같이 시장을 파괴하는 정책이나 과잉입법행태를 경계했다. 또한 하이에크는 저서 『법, 입법 그리고 자유』를 통해 우리는 법규범이나 어느 한 분야의 모든 제도를 완전히 바꿀 수 있는 지적인 능력(구조적 무지)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아무리 선의의 의도로 발의한 법이라 해도 결과까지도 좋을 것이라고 보지 않았다. 그래서 입법과 법은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고 했다.
 
지금 우리나라는 하이에크의 생각과는 반대로 가고 있어 점차 활력을 잃고 있다. 다시 하이에크의 외침이 우리 사회에 전파될 때 우리 경제는 다시 활력을 되찾을 것이다. 하이에크가 살아있었다면 이렇게 말했으리라 “저것 봐! 소련이 무너졌는데도 정신 못 차렸네? 시장을 통제하려들면 다 죽는다고!”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칼럼니스트 사진

최승노 이코노미스트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시스템인 자본주의를 지지하며 자유기업주의에 입각한 경제정책을 연구하고 강의하고 있다. 스토리 시장경제 시리즈 10권의 책 저술을 통해 누구나 시장경제원리를 쉽게 알 수 있도록 하였다.

등록일 : 2015-07-21 08:53   |  수정일 : 2015-07-21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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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세택  ( 2015-07-21 )  답글보이기 찬성 : 18 반대 : 13
좋은 글입니다. 인간이 시장을 장악할 수 없는데 맘대로 컨트롤할 수 있다고 믿는 것에서 모든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수영  ( 2015-07-21 )  답글보이기 찬성 : 16 반대 : 20
아직도 사농공상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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