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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노의 통쾌한 경제 이야기

김우중의 성공신화는 왜 실패로 끝났을까?

글 | 최승노 자유경제원 부원장
필자의 다른 기사 2015-01-26 17:28

▲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지난해 10월 초 연세대학교 상경대 각당헌에서 ‘자신만만하게 세계를 품자’라는 주제로 강연을 마친 뒤 자리로 돌아와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을 사람들은 ‘킴기즈칸’이라 불렀다. 무엇이 그를 칭기즈칸처럼 느끼게 만들었을까. 바람처럼 나타나 속전속결로 세계를 휩쓰는 무서운 속도감. 실제로 그랬다. 김우중은 칭기즈칸처럼 세계를 누비며 비즈니스 세상을 바꿔나갔다.
 
칭기즈칸을 연상시킬 정도로 세계 시장을 점령해 가는 새로운 방식의 성공 신화는 경영학 교과서에 담아야 하는 새로운 경영 성공 사례가 될 정도였다. 김우중의 세계경영은 이후 국내 기업들이 해외에 진출할 때마다 연구하는 최고의 경영지침서가 됐다. 경영학의 교과서를 새로 써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들려왔다.
 
하지만 아시아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상황은 급반전한다. 일순간에 대우는 붕괴하고 만다. 김우중 회장도 종적을 감췄다. 화려했던 신화와 찬사도 함께 사라져갔다. 돌풍처럼 일어나 세계를 뒤흔들던 글로벌 기업가 김우중은 이미 역사 속으로 묻혔다.
 
그가 만든 기업들이 아직 건재하지만, 그의 명성은 바람처럼 사라진 지 오래다. 오랜 침묵을 깨고 김우중이 입을 열었다. “정부의 기획 해체, 대우는 타살 당했다”는 그의 외마디 외침에, 그러나 그 메아리는 작았다. 왜일까? 지금 그의 존재는 환영받지 못한다.
 
정치권, 정부관료, 언론, 학자들 모두 외면하고 싶어 하고 마땅치 않아 한다. 그의 경영방식에서 더는 배울 것이 없다고 느끼는 것일까. 이제는 구시대의 전형이라 치부하고 싶은 것일까.
 
우리 기업사의 한 획을 그은 김우중은 분명 ‘세계경영의 징기즈칸’다운 영웅이었지만 지금 그의 뒷모습은 초라하다. 하지만 역사적 평가까지 초라할 이유는 없다.
 
비록 그의 세계경영이 완성을 목전에 두고 멈춰야 했지만 그의 선구자적 시도의 의미는 이대로 사장시키기 아까운 게 사실이다. 김우중 회장은 시대를 앞서간 리더였기에 지금도 그의 스토리에는 배울 점이 많다. 다시 그가 창조해 냈던 업적들을 되돌아보는 것은 마치 우리의 역사 유산을 찾는 것처럼 새롭고 신비스런 일이다.
  
시대적 환경이 요구하는 영웅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시대마다 해야 할 일이 있고 그 시대에 걸맞은 영웅이 태어난다. 시대적 환경이 요구하는 영웅이 있다. 우리나라는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대기업이 태어날 수 있었다.
 
자연히 그룹 총수도 여러 명 나왔다. 먼저 제조업 분야에서 이병철, 정주영, 구인회 등 뛰어난 기업가들의 활력이 컸다. 삼성, 현대, LG는 세계로 뻗어 나가는 대한민국의 상징적 기업이었다. 그 뒤를 김우중이 이끄는 대우가 뒤따랐다. 처음에는 뒤쫓았지만 점차 추월해 나갔다.
 
무역을 통한 경제성장은 개발시대의 시대정신이자 국가적 합의였다. 그 시대를 이끌던 지도자인 박정희와 기업 총수 사이의 공감대가 있었다. 사업보국이었다. 그 큰 그림 속에 정치와 경제는 하나가 돼 힘을 발휘했다.
 
우리나라가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요인 가운데 하나는 정경유착이 올바른 방향으로 전개됐기 때문이다. 정경유착이 자신들의 이권을 얻기 위해 다른 경쟁자를 억압하는 것으로 이뤄진다면 이는 실패의 길이다.
 
하지만 정치와 경제가 경쟁의 폭을 넓히고 더 치열한 경쟁이 이뤄지도록 함께 노력하는 정경유착은 바람직하고 좋은 것으로 모두를 이롭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온다.
 
지금 우리나라는 정경유착을 무조건 나쁜 것으로만 생각해 정치인들은 기업인들을 무조건 멀리하려고 하고 심지어 적대시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하지만 선진국 정치인들은 기업가들과 함께 자국 기업의 사업 기회를 넓히기 위한 외교전을 함께 펼치는 성숙한 정치를 펴고 있다.
 
김우중은 국가의 부름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모든 것을 껴안았다. 부실기업을 인수하라고 하면 인수했다. 국가가 필요로 하는 일을 거절하지 않았다. 정부가 맡긴 부실기업들이 그의 손을 거쳐 우량기업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는 ‘부실기업 해결 청부사’라는 별명도 얻게 된다. 김우중의 말이다.
 
“우리가 정부와 가까웠던 건 맞는 얘기예요. 그런데 그게 정부가 골치아파하는 일들을 해줬으니까 그런 거지 우리가 로비해서 그런 게 아닙니다. 내가 중화학산업을 했으면 좋겠다고 얘기해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정부에서 나한테 떠맡기다 보니까 수의계약이 된 거지요. 그리고 경제발전을 하려면 정부와 기업이 합심해서 잘해야 돼요. 합심해서 노력하는 걸 놓고 정경유착이라고 매도하면 안 됩니다.”
  
글로벌 시장에서 기업가 정신 빛나다
 
그는 최고 지도자와의 독대에 강했다. 박정희와도 수없이 독대했다. “우중아!”라고 부를 정도로 가까웠다. 물론 김우중이 대구사범학교 스승(김용하)의 아들이라는 요인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김우중의 탁월한 추진력과 경영능력 그리고 국가에 대한 헌신적인 태도가 박정희와 김우중을 끈끈하게 연결한 공감대였다. 최고 지도자와 바로 독대하면서 문제를 단 시간에 해결하는 경영 방식은 세계경영에서도 빛이 났다.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고 했다. 고도성장을 꿈꿨던 우리 사회는 김우중이라는 뛰어난 기업가를 원했다. 그는 화려한 시기를 보냈다. 거칠 것 없이 시장을 개척해 나가는 김우중의 리더십은 우리 사회가 가장 필요로 했던 경제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에너지였다.
 
대우는 해외 건설 사업의 후발주자였다. 김우중 회장은 리비아 남단 국경지대의 사막 한복판에 비행장을 건설하기로 계약했다. 이탈리아 건설업체도 시공을 포기한 이 공사는 무모한 계약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하지만 김우중은 밀어붙였다.
 
1979년 12월 22일 대우 선발대 50여 명이 리비아의 황량한 사막에 도착했다. 이들의 눈에 보이는 것은 물 한 방울 나지 않는 죽음의 땅인 황량한 사막뿐이었다.
 
그러나 선발대는, 후퇴라는 것은 생각할 수 없었다. 심야에도 대낮같이 불을 밝히고 불철주야 작업에 몰두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리비아의 우조비행장은 불퇴전의 용기와 개척정신으로 최단 기일 내에 건설한 리비아 최대의 자랑거리가 됐다. 첫날부터 모래바람과 싸워야 했던 그들은 말 그대로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각오로 도전했다.
 
대우는 그 이후 20년 동안 리비아 도로의 1/3을 건설한다. 주택 1만5000세대를 짓는다. 학교도 270개 지었다. 대우에는 김우중과 함께 역사를 만들었던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에게는 역사를 이룬 성취감과 자부심, 그리고 뿌듯함이 있었다. 대우가 해체된 지도 한참 지났지만 지금도 그들은 모여 과거를 이야기하고 그 영광의 순간을 나눈다.
  
정치 리스크를 외면한 대가는 컸다
 
지금도 김우중의 유산이 살아 숨 쉬는 우즈베키스탄에선 전설 같은 얘기가 많다. 1990년대 중반 대우의 한 임원이 우즈베키스탄의 고위 공무원을 만나 얘기를 나눴다.
 
임원의 비행기 출국 시간이 됐다. 그 임원이 “비행기 출국 때문에 일어서야 한다”고 하니, 고위 공무원은 공항에 전화를 걸어 “비행기 이륙 시간을 늦추라”고 했다.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어서 놀랐지만 대우의 위상이 그 정도로 높다는 생각에 뿌듯해 했다.
 
1997년 외환위기 때 대우가 직격탄을 맞은 건 역설적으로 그의 세계경영이 너무 성공적이었기 때문이다. 환율이 폭등하자 국내 대기업 중 외화 자산이 유난히 많았던 대우는 1997년 한 해 동안에만 무려 8조5000억 원의 환차손을 입었다.
 
국가신용등급이 여섯 단계나 떨어지면서 세계 곳곳에 가장 많은 사업장을 갖고 있던 대우는 해외 채권자로부터 상환 압력도 가장 심하게 받았다.
 
아시아 국가들 상당수가 외환위기를 겪었다. 우리나라도 정부의 외환금융정책의 실패로 국가부도위기에 몰린다. 또 정권교체가 이뤄진다. 이 험난한 파도를 넘어야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김우중은 내부보다는 외부 리스크에 몰입해 있었다. 그의 해법은 더 올바른 선택이었고 뛰어났다. 하지만 정부는 그의 의견을 외면했다.
 
대우를 붕괴시키겠다는 정부의 속내가 1998년 7월 22일 발표된 회사채 발행 제한조치로 드러났다. 정부의 의중을 간파한 노무라 증권은 ‘대우그룹에 비상벨이 울리고 있다’는 보고서를 발표한다.
 
노무라 보고서는 필자의 책에 들어 있는 자금사용 내용에 관련한 표를 인용하며 대우 부실의 증거로 삼았다. 하지만 그 표를 그렇게 해석하는 것은 지나친 추측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금융시장의 압박은 대우의 자금난을 불렀고, 결국 김우중은 1999년 봄에 백기를 듣다. 전 재산을 담보로 내놓고 유동성 자금을 요청한다. 하지만 대우는 결국 1999년 10월 워크아웃에 들어가 그룹 해체를 맞았다.
 
IMF 외환위기 최대 희생양은 대우였다. 왜 정부는 대우를 해체했을까. 김우중은 자신의 장기였던 국가 지도자와의 교류에 문제가 없었다. 김대중과 여러 차례 독대할 정도로 친분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김대중 정부를 뒷받침하는 세력은 생각이 달랐다. 김우중의 독대도 그들에게는 화나는 일이었다. 해체해도 시원치 않을 재벌의 오너가 자신들을 제치고 대통령과 독대하는 것에 못마땅해 했다.
  
‘세계경영’의 리더 김우중을 위한 변명
 
김대중 정부에는 재벌 해체를 획책했던 세력이 득세했다. 그들은 재벌 해체에 열을 올렸다. 치열한 삶에 충실했던 사람들을 업신여기고 산업화를 깔봤다. 민주화만이 모든 것이라는 환상 속에서 살았다. 산업화 없는 민주화는 불가능하고 모래성임을 그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기업은 지식의 유기적 복합체다. 역사가 있고 노하우가 녹아 있다. 대우라는 한국이 낳은 세계적 유산을 파괴하는 일은 인류의 문명을 파괴하는 것처럼 무지한 일이었다. 자학이 지나쳐 스스로 날개를 꺾어 버리는 우를 다시는 반복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김우중은 1999년 10월 중국의 대우자동차 공장 준공식에 참석하기 위해 해외로 나간 지 5년8개월 만인 2005년 6월 유랑생활을 끝내고 귀국한다. 그의 명성은 땅에 떨어진 채 7개월의 옥고를 치른다.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2014년 9월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얼마나 억울했으면 그의 입에서 “대우, 정부 기획 해체”라는 말이 나왔을까. 회한이 컸을 것이다. 기업이 성공했는가 실패했는가의 최종 기준점은 살아남았는가에서 갈린다.
 
1998년 여름 그 위험한 순간에 정주영 회장은 소 1001마리를 직접 몰고 북한을 방문한다. 장사꾼의 상징적 존재인 김우중보다 한발 앞선 유연한 태도로 현대를 살렸다. 장기적으로 현대그룹을 어렵게 만들고 그룹을 계승한 아들의 죽음까지 이어진 최악의 투자였지만 말이다.
 
그렇게 현대는 위기를 넘겼고 대우는 해체됐다. 현대와 대우가 달라서라기보다 정부는 현대와 대우를 다르게 처리했다. 기업에게 생존(survival)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성공의 필요조건이다. 김우중에게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소나기는 피해야 했고 기업을 일단 살려 놨어야 했다.
 
기업은 살아남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려면 사업도 잘 해야 하고 정치리스크도 잘 관리해야 한다. 김우중은 왜 정치리스크를 보지 못했을까.
 
일에 파묻히다 보면 보지 못하는 것이 많다. “나는 일을 벌이기를 좋아한다. 도대체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편이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그 상태를 ‘휴식’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나는 그런 식의 휴식보다는 차라리 힘든 일을 택하겠다. 움직여야 한다. 무슨 일이든 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자꾸만 일을 만들어 내게 된다.” 김우중은 그랬다.
 
그는 탁월한 일꾼이었지만 일 속에 묻혀 세상을 보는 데 소홀했다. 그의 일 욕심은 끝이 없었지만 그가 펼친 사업이 마무리 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세상은 허락하지 않았다.
 
여전히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아
 
대우를 빼앗기고 엄청난 추징금까지 징벌적으로 부과받은 김우중. 그의 나이 78세, 하지만 그에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여전히 일을 쫓는다. 김우중은 2014년 9월 아주대를 방문해 “저는 30대에 대우를 창업했으나 여러분은 40~50대에 시작해도 늦지 않다. 그러니 서두르지 말고 충실히 실력을 쌓아나가길 바란다”며 “저는 이미 미련이나 욕심을 가지면 안 되는 나이가 됐다. 봉사로 여기고 교육에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에 김우중 같은 불세출의 기업가는 앞으로 나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 경제는 작은 기업이 환영받고 약한 기업 흉내를 내야 지원과 보호를 받는 경영환경으로 굳어 가고 있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김우중이라는 존재가 우리 사회에 어떤 의미인지를 말하고자 했다. 그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여전히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지금도 도전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유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칼럼니스트 사진

최승노 이코노미스트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시스템인 자본주의를 지지하며 자유기업주의에 입각한 경제정책을 연구하고 강의하고 있다. 스토리 시장경제 시리즈 10권의 책 저술을 통해 누구나 시장경제원리를 쉽게 알 수 있도록 하였다.

등록일 : 2015-01-26 17:28   |  수정일 : 2015-01-26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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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진  ( 2015-01-26 )  답글보이기 찬성 : 16 반대 : 22
젊었을 때 자서전도 읽고, 존경했었지만, 나중에 외환 위기 후에 사기 꾼들 조차도 대우 사태를 얘기하며 자신들을 합리화 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었습니다. 좋은 점도 많지만, 저는 기술자로서, 이분께서 엔지니어를 그 다지 신뢰하시지는 못했던것 같습니다. 길게 대한 민국을 위해 투자하시는 모습은 부족했던것 같습니다.
김봉주  ( 2015-01-26 )  답글보이기 찬성 : 21 반대 : 9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그 상태를 휴식’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나는 그런 식의 휴식보다는 차라리 힘든 일을 택하겠다. 움직여야 한다. 무슨 일이든 해야 한다..... 좋은 말씀이네요...^^
      답글보이기  박세진  ( 2015-01-26 )  찬성 : 21 반대 : 11
중국에 자동차 진출을 위해 작성했던 백서를 읽거 본적이 있습니다. 방대한 내용에 가슴 뿌듯했지만, 결국 중국 사람들만 이롭게 되었지요. 외국 기업들과 비교를 해보니, 결국 risk management 에서 차이가 있었습니다. 오직 한분만 위대해 보이는 그런 구조 보다는 근무하는 직원들이 대단해 보이는 그런 회사 였었으면 좋지 않았을 까 생각합니다.
김두정  ( 2015-01-26 )  답글보이기 찬성 : 9 반대 : 0
더욱 구체적으로 해체된 과정을 말하기는 시기적으로 너무 빠른가요?
산업화와 민주화---좌빨과 연계된 민주화는 결코---
유정열  ( 2015-01-26 )  답글보이기 찬성 : 68 반대 : 7
김대중정권의 사정에 의해 무너졌습니다. 지금 거의 회생 했잖아요? 그래 놓고 자기는 돈으로 노벨상 받고∼∼∼ 국가의 기업 무너뜨리고 자기는 상타고. 아주 나쁜 인간들!
이옥순  ( 2015-01-26 )  답글보이기 찬성 : 17 반대 : 4
자세한 건 모르겠지만 이런 인물도 쉽게 나타나지 않는데 매우 아쉽습니다. 부디 건강하시고 아직 못다한 꿈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김종환  ( 2015-01-26 )  답글보이기 찬성 : 4 반대 : 0
최승노 부원장 님, 잘 읽었습니다.
정일영  ( 2015-01-26 )  답글보이기 찬성 : 11 반대 : 0
율산도 한번 쓰쇼.
윤종익  ( 2015-01-26 )  답글보이기 찬성 : 6 반대 : 1
맞습니다. 희생과 도전을 생활처럼 달고 살았으니깐요.
강후덕  ( 2015-01-26 )  답글보이기 찬성 : 40 반대 : 2
대한민국 무역 미개척 국 개척 부장 (부총리급) 개척비용 100조원 김우중 이없어다면 중국 러시아 동구권 등등 아직도 미개척 지대다 결과는 유대인 등 이확인 사살 우리 장관들 하수인 으로 영웅 을 죽인 후진 국가 가 대한민국이다
강후덕  ( 2015-01-26 )  답글보이기 찬성 : 5 반대 : 12
대우자동차 완전 똥값 으로 GM 정말 정말 대우
김석현  ( 2015-01-26 )  답글보이기 찬성 : 10 반대 : 10
대우는 기본적으로 캐시 카우가 되는 기업이 없었고 지나치게 단기외화부채를 많이 사용했다. 잘 나갈 때에는 괜찮으나 위기에는 쉽게 무너질 수 밖에 없는 구조이었다.
김형원  ( 2015-01-27 )  답글보이기 찬성 : 36 반대 : 5
살려놔도 될기업이었다 지금쯤이면 아마 삼성과같은 레벨이아닐까...?
아까운 인재였는데..
송경용  ( 2015-01-27 )  답글보이기 찬성 : 5 반대 : 2
97년도 외환위기46468; 대우가 많이 가진 게 외화자산이 아니라 외화부채 였겠지요.그렇니 환율폭등 속에 외화부채 갚기가 힘들었을 거고,만약 당시 오히려 외화자산 많았다면 큰 도움이 되었을 겁니다
오용길  ( 2015-01-27 )  답글보이기 찬성 : 6 반대 : 2
김대중의 패착=현대와 대우가 거의 같은(대우가 약간 더 위험) 상황에서 대우만 퇴출시킴
이대희  ( 2015-01-27 )  답글보이기 찬성 : 2 반대 : 0
국제금융그룹의 양털깎기의 희생이 된 것이다. 하수인은 이전의 해당 정권이다.
      답글보이기  장형규  ( 2015-01-27 )  찬성 : 1 반대 : 0
부채가 자산속에 포함되잖아요? 자본 + 부채 = 자산
김만수  ( 2015-01-27 )  답글보이기 찬성 : 7 반대 : 0
동구권으로 세계경영을 시작한 대우가 우리나라 대표 주자였죠, 현재 청년실업 생각하면 대우 퇴출 정치인들의 희생양이라 안타깝네요.
김기스칸  ( 2015-01-27 )  답글보이기 찬성 : 1 반대 : 3
서구인들이 싫어하는 징기스칸이라는 광고가 떳을때 이미 목표를 김우중으로 하는 국내외의 공작이 벌어졌을 것이다. 그런 광고를 생각 한 것은 큰 실수였다. 아직까지는 서구를 자극하면 안된다.
민추식  ( 2015-01-27 )  답글보이기 찬성 : 10 반대 : 1
김대중정권의 주변 인물들이 재벌해체를 주장하다보니 희생양이 된것인데 결국 대우자동차만 헐값으로 gm에 넘긴꼴이 되었다. 그기 공장부지가 30만평이다. 평당 6백만원이면 과연 얼마인가? 산수도 못하는 님들이 헐값에 자동차 공장을 팔아치두다니..쯧쯧
김창수  ( 2015-01-27 )  답글보이기 찬성 : 20 반대 : 2
대우해체하면 생각나는 단어가 김대중,미국입니다. 어리석은 정치인과 야비한 경제관료들의 합작품이죠. 아마 대우의 세계경영이 성공했으면 해외 기지화를 중심으로 많은 사업들이 생겼을텐데...
이동렬  ( 2015-01-27 )  답글보이기 찬성 : 8 반대 : 1
전적으로 동감 합니다 , 요즘 젊은 이들 직장 없다고 정치권 이나 사회 모두 난리입니다 , 요즘같이 젊은 이들이 해외로 나가서 할일이 많고 기회가 많을때가 없는거 같읍니다 , 김 우중 회장 처럼 한국 젊은이들이 많이 많이 나갔어면 좋겠읍니다 무 에서 유 를 창조하는 정신으로
이승재  ( 2015-01-27 )  답글보이기 찬성 : 9 반대 : 31
김용삼 대통령 시절 때 IMF가 터졌지요, 온 국민이 충격을 받았고, 많은 사람들이 망했습니다, 그 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섰고, 김대중 대통령이 망해버린 한국경제를 수습했는데 어느날 갑자기 대우그룹이 무너져버렸습니다, 왜 무너졌겠습니까? 정치적인 공작 이었나요? 아니요 그당시 김우중 회장과 김대중 대통령은 무척 각별한 사이였다고 하네요, 대우가 망한 이유는 첫째는 자금이 부족했고, 둘째는 오너 중심적인 경영 즉 엄청 독선적인 경영 스타일이었다고 이야기 하더군요,
박승아  ( 2015-01-27 )  답글보이기 찬성 : 16 반대 : 2
20여년 전, 힐튼호텔 오크룸 구석자리에 혼자 맥주 한 병 놓고 앉아계시던 자그마한 회장님 모습 떠오르네요. 대우해체는 참 국가적으로 가슴아픈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청년들에게 용기와 긍정의 기를 많이 전파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건강하시길...
비둘기  ( 2015-01-27 )  답글보이기 찬성 : 3 반대 : 0
이병철의 유언이 아들에게만 해당되는 걸로 터부시했기 때문이지. 그것들과 섞이면 결국 망하는 거다.
김익수  ( 2015-01-27 )  답글보이기 찬성 : 8 반대 : 3
본인의 생각도 억울함이 많겠지요. 정치권에서 자기들의 정치적해석 때문에 위대한 기업가를 죽인 결과와 같을 뿐이다.
김영운  ( 2015-01-27 )  답글보이기 찬성 : 12 반대 : 2
대우를 죽인 나쁜놈들 지금도 메스콤에 나와 나불거리는 KNK. KBK 등 자중하시기 바랍니다.
조영구  ( 2015-01-27 )  답글보이기 찬성 : 7 반대 : 16
김우중 회장의 경영은 아주 찬란했고, 선구자적이었지만 대마불사를 너무 믿고 부채로 큰 일들만 벌이면서도 문어발식 기업을 일군 것으로 능력을 벗어난 과잉 팽창책과 기업의 목표인 이익을 내는 구조 즉, 탄탄대로에 올리는데 너무 소홀했다.

기업경영에 집중하지 못하고 정권마다 기회만되면 대통령이 되고 싶은 우중충한 행보(오락가락 갈지자)와 부실대마로 국가와 승부게임을 벌이려다 결국 실패함으로써 그룹해체가 된 것이라 본다.

만년 적자 대우차만 봐도 너무 미국자동차 업체 모방과 기술에 의존해 독자브랜드와 신기술이 전무한 상태가 커다란 재앙이었고, 여기에 프랑스의 자존심을 건드는 톰슨전자 인수 추진 실패가 아마 결정타였으리라. 이것 말고도 파산 직전의 재무구조는 팽개치고 환난으로 풍전등화앞 국가에만 기대서 마지막까지 부실 대기업인수로 외형 키우기에만 치중했을 뿐 내실은 외면했다.

그 욕심은 설마 대마를 죽이기야 하겠느냐는 국가와 국민 전가형 똥 배짱부리다가 파산한 것인데 요즘 책도 그럴싸하게 포장해 기획해체라고 내놨다.

제발 거짓말 좀 그만해라.당시 국정원장과도 아주 막역했고, 대통령과도 돈독했다. 뭣이 어쩌고 저째?환난극복이 명제였던 자도자들이 기획해체를 왜 하노? 나라를, 기업을 살려야 할 다급한 실정이었는데....남의 탓 하지 말라! 기업경영엔 소홀하면서 집권 꿈을 너무 꾸는데 집착하다가 생긴 파산 변명이지 그게 무슨 절체절명의 재정위기 국가에 매달릴 일이 었나?

솔직히 그가 대통령이 되고자 한 강력한 그 심산을 나는 이렇게 추정해 본다.
천문학적 거대 부실재벌 대우를 막대한 국가예산으로 지원하고, 5공 초창기 때처럼 전 발전사업 건설공사를 대우로 강탈하는 방식(당시 현대,동아,대우가 건설을 전담했으나 군소 단계인 대우에 몰수시켜 발전소 건설 등 건설일을 시켰으나 능력부족으로 포기)이나 수의계약 등 형식으로 회생시키려는 무서운 꼼수였다.

국가와 국민은 현명히도 김우중의 잔꾀에 속지않고 대우해체를 자연스레 받아들여 큰 재앙을 막은 것으로 여겨진다.제발 소설같은 변명도 말고, 거짓말도 그만하고 재발방지를 위해서도 솔직히 실패원인을 밝히고 참회해라. 동조도 그만하고.... 현대는 죽어가다 왜 살아났는데 대우는 왜 파산,해체되어 수많은 백성들께 피눈물 흘리게 했는지를 냉정히 복기해 보기 바란다.

그의 세계경영 기치는 한 때 찬사를 받을 일이었으나 벙거지를 비운채 외화내빈 경영방식이 결국 대우를 패망으로 이끈 죄과가 대우해체로 나타난 것이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박용식  ( 2015-01-27 )  답글보이기 찬성 : 8 반대 : 4
제갈대중 보다는 이헌재,이놈이 중간에서 분탕질 한걸로 압니다.
강삼석  ( 2015-01-28 )  답글보이기 찬성 : 4 반대 : 9
말되는 이야기를 해라. 그가 나라 지불보증받아 외국은행에서 빌린돈을 어떤사업하다 잃었는지 어디다 감춰 놓았는지 어쩌수 없이 우리 국민이 갚아야 했던 돈 이야기를 해라.
윤영안  ( 2015-01-28 )  답글보이기 찬성 : 5 반대 : 19
아무리 보수 신문이라지만 이건 너무하다. 김영상 정부가 IMF를 초래해 풍전등화 같은 나라를 엄청난 고통을 감내하고 다시 일으킨 김대중 정부가 대우를 무너뜨렸다는 말같지 않는 소리는 하지 마세요. 대우는 김우중의 무능으로 무너졌습니다. IMF란 태풍에 부채가 많았던 대우는 견디지 못한거죠.
김도현  ( 2015-01-28 )  답글보이기 찬성 : 3 반대 : 9
놀고 앉아있다. 외화자산이 많았으면 환율이 오르면 환차익이다..환차손이 아니라..외화부채가 많았겠지. 그리고 당시 노무라의 보고서도 현금흐름을 벌지 못하는 기업이 회사채상환일정만 줄줄이 있으니 그것을 어떻게 감당하겠냐는 내용이었지 대우그룹 없애라는 이야기 아니었다. 막말로 대우그룹 망하니까 이른바 워크아웃이라는 희한한 제도를 만들어서라도 당시 정부를 대우를 살리려 했다. 그럼 대체 당시 정부는 무엇을 해야 했는가? 수십조원의 부채에 대해 나라가 지급보증이라고 서야했다고 이야기 하는 것인가?
유대열  ( 2015-01-28 )  답글보이기 찬성 : 1 반대 : 15
김우중, 그룹이 성장할 시 시간 아낀다고 일요일 오전에 사장단 및 중역회의를 소집한다는 얘기를 듣고는 김우중 및 대우그룹이 망할 것을 예언했다. 김우중 어머니가 정동교회 권사인데 본인은 교회 안나가더라도 교회 크리스챤들을 예배 못드리게 하는데 하나님이 도와 주시겠는가?
김주현  ( 2015-01-28 )  답글보이기 찬성 : 3 반대 : 10
장사꾼으로써 김우중은 뛰어났을지 모르겠지만 기술전략이나 RD를 상당히 도외시 한 점. 기술은 돈주고 사오면 된다는 그 얄박한 자세가 대우를 망친거라고 본다. 특히 자동차를 주력을 삼았으면서 자동차는 미디엄테크라고 오판해서 무슨 대충 만들어 와이셔츠파는것처럼 사고했다는게 지금 봐도 충격적이다. 망한만했다고 본다.
이대희  ( 2015-01-29 )  답글보이기 찬성 : 2 반대 : 3
화폐전쟁을 읽어 보십시요.
김수환  ( 2015-01-29 )  답글보이기 찬성 : 12 반대 : 2
전체를보는칼럼니스트의시각에공감하며김회장이과거수많은위기의순간들을잘극복해왔지만그당시정부내반대세력을과소평가한실수가결과적으로치명적작용을한부분이아쉬움을남긴다
황의훈  ( 2015-02-03 )  답글보이기 찬성 : 11 반대 : 29
최승노 논리면 이세상 어떤것도 미화 시키겠네요
김우중은 남에돈으로 자신의욕구풀이 사업한 인간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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