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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낚는 어부 김상수의 바다방랑

산 첩첩 물 겹겹의 雪國, 겨울 울릉도

동쪽 바다 끝에서 우리 땅, 우리 바다의 자존심을 곧추세운 채 거센 파도를 이겨내며 떠있는 섬 울릉도. 지금도 여행객들이 가고 싶은 섬 중 첫손에 꼽는 '청정 섬마을'이다. 동쪽 끝에 한껏 나앉은 먼 섬임에도 울릉도 여행은 계절을 타지 않는다. 특히 울릉도 겨울 여행 백미는 雪國인 듯 돌변하는 섬 풍경이라 하겠다.

글 | 김상수 해양다큐멘터리 사진가
필자의 다른 기사 2013-12-10 오전 9: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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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평균 강설일수가 40일이나 되는 울릉도. 어업전진기지 저동항에도 눈이 쌓였다.
 
강설일수 40일, 바람따라 달라지는 섬 생활
포항여객선터미널에서 출항한 이후 선창(船窓)에 따라붙는 것은 무지개였다. 선속 48노트로 내처 달리는 쾌속선의 선체가 동해 거친 파도와 부딪치면서 생기는 물보라와 쨍쨍한 햇살 덕이다. 세 시간 뒤, 선속이 줄어드는 듯 하더니 무지개 대신 선창을 가로막는 것은 두 개의 거대한 벽이었다. 높이 100미터는 되겠다싶은 두개의 벼랑. 그 사이에 억지로 껴 들어앉은 듯한 도동도 눈 앞에 보인다. 눈까지 내려있어 '정교하게 만든 소인국 도시'란 느낌이 겨울 울릉도의 첫인상이었다.
섬 최고봉인 성인봉 정상에서 내려다보면 섬 전체가 쪽빛 바다 위에서 불규칙한 오각형의 모습을 하고 있음을 한 눈에 알 수 있는데, 그 생성환경에서 견줄만한 제주도와는 달리 나리분지를 제외하고는 평지가 없는, 말 그대로 '산 첩첩, 물 겹겹'의 섬마을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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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동항 정박 중, 밤새 내린 폭설을 뒤집어 쓴 오징어 채낚기 어선과 울릉도의 상징 촛대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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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운기를 개조한 운반용 트럭에도 눈이 쌓였다. 추억 속 풍경 같은 모습이 정겹다.
 
섬이나 해안치고 바람 심하지 않은 곳이 어디 있을까마는, 울릉도를 일러 '3無 5多의 섬'이라 부를 때 그 5다(多) 중 하나가 바로 바람이 많다는 것. 그런 만큼 특히 바람 많은 동절기에 섬사람들의 겨울나기를 좌우하는 것 역시 바람이다. '속에 뼈가 들어있다'는 울릉도의 겨울파도도 오징어잡이 어부들 사이에서 악명을 떨치는 울릉북풍이 불러일으키는데 그 파장이 작지않다. 풍속이 초속 10미터를 넘어서면 으레 강풍주의보가 발효되고, 본토(뭍을 일컫는 울릉군 주민들의 표현)를 오가는 객선의 뱃길이 막히면서 사람은 물론 생필품의 유입이 두절된다. 어부들에게 가장 큰일은 30톤 이하의 오징어 채낚기 어선 출어가 금지된다는 것. 출어금지는 곧 울릉도 경제를 뿌리 채 뒤흔들어 놓기 예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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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주변 바다에서 한밤중에 이뤄지는 울릉도 어부들의 채낚기 오징어잡이 모습. 승선 어부들의 자리를 자동어획기가 대신하고 있는 오늘이다.
어획에서 상품화되기까지 오징어 한 마리 당 거쳐야 하는 손길은 할복, 세척, 건조 등등 10번 정도라 했다. 도시 같으면 손자의 재롱이나 받고 있을 할머니부터 새댁에 이르기까지 섬 주민 수의 반이 훨씬 넘는 그 많은 일손이 할 일이 따로 없어지는 것이다. 몇몇 손 빠른 아낙네들은 한때의 대량생산으로 할복만 겨우 끝내고 냉동 비축해두었던 오징어를 해동시켜 건조준비를 하는 일을 따내기도 하지만, 거개의 섬 아낙네들은 그동안 밀어두었던 집안일을 한몫에 몰아서 하고는 한다. 섬 생활을 주도하는 이런 강풍주의보가 발효되지 않는 한 울릉도 오징어잡이 어부들은 사철 거친 바다로 나간다. 눈이 내려도 바람만 심하지 않은 날이면 오후 서너 시쯤 홋줄을 걷고 어선시동을 거는 것이다.
오전의 저동항, 오징어 채낚기 어선들이 이른 아침에 퍼붓듯 내린 폭설을 흠뻑 뒤집어 쓴 채 출어대기 중이다. 운만 좋으면 제대로 된 울릉도의 일출과 오징어잡이 어부들의 귀항과 출항 모습을 만날 수 있는 울릉도 최대의 어항이 바로 이 저동항이다.
그 옛날, 조정에서 울릉도 개척령이 내려지고, 그 이듬해에 태하동에 발을 디딘 울릉도 개척민들은 화전을 일구는 등 이 섬에서의 주업을 농사로 삼으려 했다. 바닷일을 천히 여긴 까닭이었음인데, 겨울이 닥쳐와 추위와 굶주림이 생명을 위협해도 물고기 따위는 잡지 않았다던가. 오히려 몰래 숨어든 일본 어부들이 전복․오징어 등 해산물을 훑어가는 게 예사였단다. 그러나 이제는 섬사람들의 반 이상이 오징어와 관련되는 일로 생계를 꾸려가는 만큼 오징어는 울릉도 사람들의 가장 큰 소득원이 되었다.
과장하기를 좋아하는 이들은 ‘울릉도의 밤바다는 오히려 낮보다 환하다’는 말로 오징어잡이를 표현한다.
수십 척의 어선에서 밝힌 집어등 야경이 그렇다는 얘기다. 오징어는 낮에는 수심 100미터 이하의 깊은 바다에서 노닐다가 밤이 되면 해면 가까이로 떠오르는 습성을 지니고 있으며, 불빛을 따라 모여드는 추광성 어족이다. 어부들은 오징어의 이런 버릇을 이용하여 집어등을 환하게 밝혀놓고 오징어 떼를 유인한 뒤, 물속에서 이 빛을 되받아 내는 모형 야광미끼를 단 낚시 바늘로 오징어를 끌어올리는 것이다.
밤바다에서 이 집어등 불빛과 야광미끼에 홀려 몰려들었다가, 몸의 적당한 부분이 민들레꽃처럼 수십 개의 침이 꽂혀있는 낚시 바늘에 꿰어져 올라오면서 오징어는 바다와의 인연이 끝난다. 곧바로 아낙네들에게 넘겨진 오징어는 할복 등 갈무리를 거쳐 울릉도의 각 포구는 물론 옥상이며 골목길까지 손바닥만한 틈만 있으면 설치해놓은 덕장에서 해풍에 말려졌다가 뭍으로 실려 나와 으뜸가는 군것질감으로 팔려나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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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라도 날씨가 좋으면 영롱한 옥색 바다 빛을 보여준다.
한편, 평균기울기가 25도나 되니 논․밭이 넉넉할 리가 없는 울릉도는 주식의 자급자족이란 꿈도 꾸기 어렵단다. 여전히 대부분의 주식거리를 뭍에서 실어다 먹는다는 얘기다. 그 대신이랄까 온갖 산나물이며 약초재배에는 더 없는 조건이어서 이런 땅의 먹을거리가 울릉도 농업의 체면을 세워주고 있다.
그 중에서도 '명이장아찌'는 겨울 입맛을 한결 돋워주기 예사고, 울릉도의 대명사 중 하나인 호박엿은 오징어와 함께 성인봉 산행 길에 심심풀이 먹을거리로 그만이다. 죽도를 비롯해 울릉도 어느 구석이고 호박을 심기만 하면 아름드리로 달린다는데, 당도가 유달리 높아 호박엿 단맛내기에 적당하다 했다. 그로 만든 호박엿의 지금도 여전해 관광객에게 인기상품으로 팔려나간단다.
'물' 역시 눈 여겨 봐두어야 할 울릉도의 자연이다. 지금은 필수 관광코스가 된 봉래폭포 말고라도 어느 계곡에서나 넉넉히 흐르는 물이면 그냥 약수라 해도 좋을 무공해 물이니. 물길의 길이가 3.3킬로미터로 이 섬에서 가장 크다는 태하천을 비롯해, 식수가 되어주는 저동천에 지하에서 솟구쳐 올라와 수력발전의 원동력이 되어주는 추산천 들 해서 열 댓 개의 하천들 전부가 더없이 소중한 울릉도 물이요, 보아 두어야 할 자연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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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의 서울이라 불리는 도동항 주변 전경. 겨울 울릉도 여행길에 잊지말고 가슴에 담아두어야 할 풍경이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칼럼니스트 사진

김상수 해양다큐멘터리 사진가

어촌과 어부들을 주제로 하는 해양수산 전문월간지에서 기자로 출발해 편집장까지 지내며 30여 년간 바다를 다녔다. 사진 낚는 어부라는 닉네임은 월간GEO에 해양다큐멘터리를 연재할 무렵 송수정 편집장이 붙여줬다. 아시아 어부들의 바닷살이와 특유의 민속을 지속적으로 기록해오고 있다.

등록일 : 2013-12-10 오전 9:25:00   |  수정일 : 2013-12-10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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