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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편지] 혁명(革命)이 지나가고 나면…

글 | 조성관 주간조선 편집장 2016-12-08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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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레미제라블 스틸컷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 우리는 대체로 ‘레미제라블’을 영화, 뮤지컬, 소설 순으로 접했다. 뮤지컬 ‘레미제라블’에 나오는 노래들, 예컨대 ‘원 데이 모어(One day more)’ 등은 여전히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다. 그런데 아주 의외인 것이 ‘레미제라블’의 시대배경을 프랑스대혁명으로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다. 식자층에서도 그렇다. 작품의 클라이막스에 해당하는 골목길 바리케이드 전투 장면을 프랑스대혁명의 한 장면으로 알기도 한다.
   
   ‘레미제라블’의 시대배경은 1830년의 봉기다. 불과 이틀 만에 진압된 1830년 봉기는 프랑스 역사에서 크게 주목받지도 못 하는 사건이었다. 위고는 자칫 잊혀질 수도 있는 이 사건을 주목했고, 여기에 휴머니즘과 청춘의 사랑을 끼워 넣어 ‘레미제라블’이라는 불멸의 작품으로 탄생시켰다.
   
   자유·평등·박애, 프랑스대혁명의 정신이다. 알려진 대로 프랑스대혁명의 정신은 루소의 ‘사회계약론’에서 배양되었다. 프랑스사(史)를 모르는 사람들은 자유·평등·박애가 프랑스대혁명의 성공과 함께 프랑스에 구현된 것으로 아는 경향이 있다.
   
   1789년 7월 14일, 배고픔에 성난 시민들이 파리 한복판에 있는 바스티유감옥을 공격해 함락했다. 프랑스대혁명은 이렇게 방아쇠가 당겨졌다. 한번 피를 본 시민들과 일부 군인들은 내친김에 20여㎞ 떨어진 베르사유궁전까지 쳐들어가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를 체포해 파리로 압송해서 튈르리궁전에 연금시켰다.
   
   혁명의 주체 세력은 시민군이었다. 학생, 군인, 상인, 노동자, 심지어 범죄자들까지 시민군에 합류했다. 이들은 혁명 이후에 대해 전혀 준비가 안 된 그룹이었다. 귀족, 성직자, 부르주아 등에 대한 무차별 테러와 암살과 학살이 전개됐다. 매일 수백 명씩 살해되었다.
   
   1793년 1월, 급기야 루이 16세가 콩코르드광장에서 기요틴으로 처형되었다. 국왕이 혁명군에 처형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프랑스를 제외한 유럽 왕정국가들은 충격과 공포에 빠졌다. 1793년 8월, 로베스피에르가 혁명정부의 실권을 잡았다. 그는 혁명 당시 베르사유궁전에 있었던 인물로 혁명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는 공포정치로 수많은 반대파들을 살상했다. 심지어 로베스피에르는 삼두체제를 형성하며 한솥밥을 먹던 당통까지도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단두대에 세웠다. 하지만 혁명 동지를 처형한 로베스피에르도 얼마 못 가 단두대에 서야 했다.
   
   마녀사냥의 집단광기가 파리의 광장과 거리를 휩쓸었다. 프랑스 국민은 혁명 후 계속되는 혼란과 살육에 진절머리를 쳤다. 그들은 혼란을 잠재울 강력한 리더십을 갈망했다. 이런 상황에서 1799년 전쟁의 천재 나폴레옹이 혜성처럼 등장했다. 프랑스대혁명 후 꼭 10년 만이었다. 하지만 나폴레옹이 물러나자 왕정 복고와 공화정이 반복되면서 또다시 피바람이 불었다. 그 도정에 크고 작은 봉기가 일어났다. 1830년 봉기도 그중 하나였다.
   
   1917년 10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일어난 볼셰비키혁명 이후도 비슷했다.
   
   광장의 군중은 피가 용솟음친다. 뜨거운 피는 언제나 혁명을 원한다. 혁명은 비(非)정치적인 사람의 몫이다. 단숨에 권력이 고꾸라지는 혁명이 이뤄지고 나면 언제나 혼돈과 무질서가 판을 친다. 그때부터는 질서 회복, 즉 뒷수습이 중요해진다. 혁명가가 아닌 정치가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주간조선 2435호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6-12-08 09:05   |  수정일 : 2016-12-08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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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진  ( 2016-12-08 )  답글보이기 찬성 : 6 반대 : 8
로스와 함께 탄핵에 반대했다 박해 받은 윌리엄 피트 페슨던 의원의 발언입니다.
민중은 감정과 편견으로 자극받게 되자 사나운 맹수와 다를 바 없었다. 나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나 자신의 자존심과 깨끗한 양심을 유지할 것이며, 적어도 시간은 내 행동의 동기를 정당하게 평가해 줄 것이다.” 명예롭게 살라! 한낮 시골의 촌부였던 저의 아버님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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