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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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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라는 감옥의 문은 밖에서만 열린다.

글 | 도희윤 행복한 통일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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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이라는 곳은 평범한 일반인과는 거리가 먼 게 사실이다. 하지만 세상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면 딱히 그렇지도 않다.  감옥 안에 있어보면 너무나 평범하고 수감생활과는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사람도 부지기수로 그 안에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미국이나 유럽 같은 선진국에서는 겨울철만 되면 사소한 범죄를 일부러 저질러 감옥 안에서 겨울나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니, 참으로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그 안에 존재하는 것만은 사실이라고 하겠다.
 
감옥에서 제일 중요하고 관심의 대상이 있다면 그것은 문일 것이다.  왜냐하면 처음 교도소에 도착하는 죄수들은 오로지 문을 통해서만 자신이 생활할 수감장소로 이동할 수가 있다. 그것도 인상적인 것은 거의 모든 문들이 철창문이라는 사실이다.
저녁에라도 도착할 즈음이면 모두가 각자의 수감장소로 이동한 이후 쥐죽은 듯 조용한 분위기에서, 철창문 소리만 ‘철컹, 철컹’ 요란하게 들리는 가운데 간단한 자신의 생활용품만 소지한 채 그 문 사이로 들어가는 기분은, 아마도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모를 참으로 묘한 경험임에 틀림없다.
 
그렇게 중요한 감옥문이 일반 아파트나 주택처럼 안에서도 밖에서도 모두 열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죄수들을 가둬놓는 감옥은 감옥이 아닐 테고, 흉악범이 득실거리는 감옥안도 힘센 자들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약육강식의 기가 막힌 상황이 벌어질게 자명할 것이다. 그래서 감옥문은 죄수가 들어가 있는 안쪽에서는 절대 열 수 없도록 시건장치가 오직 바깥에서만 존재하도록 만들어져있다. 결국 밖에서만 열도록 되어있는 게 모든 교도소의 감옥문인 샘이다.
 
좋은 경험은 아니지만, 각종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간접 경험이라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감옥 안에서 문을 열 수 있는 사람은 그자체가 권력이자 힘이요, 선망의 대상이다.  그래서 당연히 이 권력은 교정당국이 가지고 있고 현장에서는 교도관이 이를 행사한다.
상식적으로 감옥은 대부분의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권리가 박탈되거나 잠시 유보되는 특수지역이다. 여기에서 권리라 함은, 마음대로 이동할 수 있는 자유와 자유의지에 입각한 표현의 자유, 정당한 노동의 대가나 시민의 권리를 요구하는 집회, 결사의 자유 등등 일 것이다.
 
이제 북한이라는 사회에 이같은 일반사회의 감옥을 한번 비교해보자. 무엇이 다를까. 아니 무엇이 같을까를 찾는 것이 훨씬 빠르고 많을 것이다. 왜냐하면 규모의 차이 외에 별반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없는 것이 대부분 나라의 교도소와 북한사회일 것이고, 오히려 선진국이나 대한민국과 같은 교도소와는 비교 자체가 의미없을테니 말이다.
 
한정된 공간이라는 것 외에 먹여주고 재워주는데 아무런 불편함이 없다면, 굶어죽고 얼어죽고 맞아서 죽는 북한사회가 더하면 더했지 조금도 모자람이 없는 나라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감옥이기 때문일 것이다. 더욱 기가 막힌 공통점은 일반감옥과 마찬가지로 안에서 열 수 있는 열쇠마저 없다는 점인데, 김정은을 제외한 그 누구도 당국의 허락 없이는 밖으로 나갈 수조차 없다.  그래서 몰래 빠져나오고 도망쳐오는 것이 바로 탈북이다.
 
흔히들 북한주민들에 대해 저토록 처참한 노예의 삶을 살면서도 제대로 한번 저항해보지 못하느냐고 의문점을 갖는다. 분명한 사실은 파리보다 파리 잡는 파리채가 많은 게 북한이고, 굶주림과 공포를 동시에 지속하는 사회는 지구상 북한밖에 없다. 그것도 1세기 가까운 세월동안 거의 한결같이 그렇게 해온 나라는 북한이 유일무이하다. 그래서 북한내부의 저항세력들이 깊이 뿌리내리기가 어렵고 그들의 좌절감이 너무나 클진대, 우리는 부끄럽게도 이런 노예사회를 지척에 두고서도 제대로 그 감옥문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밖에서만 열 수 있는 북한이라는 노예감옥의 문을 그대로 두고서 어떻게 한민족이니 우리민족끼리를 입에 담을 수가 있겠는가.
 
북한의 저항 작가 반디선생은 자신의 시집 맨 마지막 작품제목을 ‘꿈’이라고 썼다.  이 시를 보면 그래도 그들이 꿈을 포기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감옥문이 열리기를 바라고 또 이루려는 절규의 꿈 말이다.
 
‘어둡고 괴로워라 밤이 길더니, 새 세상 밝았다 새날이 왔다.                                              자유의 종소리 뎅뎅 울리고, 저 하늘의 새들도 훨훨 춤춘다.                                              아, 만세 만세 만만세 자유 만만세!
사슬소리 채찍소리 소름 치더니, 철창문 열렸다 활짝 열렸다.                                             벗들아 자리차고 일어나거라, 자유의 저 종소리 못 들었느냐.                                            아, 만세 만세 만만세 자유 만만세!
자갈을 물었던 입 맘껏 벌리고, 부르고 싶던 노래 맘껏 부르자.                                           빼앗겼던 눈과 귀도 마음껏 열고, 이 세상 넓은 세상 맘껏 맛보자.                                       아, 만세 만세 만만세 자유 만만세!’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7-10-10 11:50   |  수정일 : 2017-10-10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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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사진

도희윤 행복한 통일로 대표

북한인권증진자문위원
(사)행복한통일로 대표
을지대 중독재활복지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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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의 문은  ( 2017-10-24 )  답글보이기 찬성 : 0 반대 : 0
안에서 주로 열리고 있는데, 그 기술을 무료로 전수해줄 방법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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