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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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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송된 미전향장기수 이인모가 "쓸모없는 고깃덩이"로 버려진 이유는?

김정일의 분노..."역시 자유를 맛본자들은 믿을게 못 되"

글 | 김태산 전 조선-체코 신발 합영회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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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송된 이인모를 환대하는 북한의 김일성과 김정일
뉴스를 보니 지난 8일 오후 서울 광화문 정부청사 쪽에서 몇몇 진보적이라는 단체들과 비전향 장기수들이 모여서 비전향 장기수의 조건 없는 2차 송환과 보안법 철폐를 요구하는 기자 회견을 하는 행사가 있었다고 한다.
 
물론 이 행사를 주관한 단체들이야 이런 행사를 벌여서 보안법을 철폐하도록 정부를 압박하느라고 벌인 일이겠지만, 거기에 따라 나가서 북한으로 돌아갈 것을 요구하는 비전향장기수 어르신들의 행동이 참으로 딱하기에 내 생각을 글로 몇 자 써본다
 
1993년3월 교도소에서 34년간을 복역하면서도 끝내 전향을 하지 않았던 유명한 이인모씨가 처음으로 송환되어갔다. 이인모에 대한 북한의 배려는 전무후무할 정도로 대단했다.
 
평 백성들은 상상도 못할 최고급 단독 주택은 물론 북한 최고의 김일성 훈장과 공화국 영웅칭호도 수여하였고 “신념과 의지의 화신” 이라 부르며 당과 수령에 대한 충성의 산 모범으로 “민족과 운명” 이라는 예술영화의 주인공으로까지 내세워 주었다. 뿐만 아니라 그의 고향인 양강도 파발리 소학교를 “이인모 소학교”로 명명해주었고 김씨 가문과 동등하게 봉화진료소에서 치료받는 것은 물론 미국에 까지 보내서 신병치료를 해주었다.
 
이인모 역시 비전향 장기수답게 당과 수령의 배려에 보답하기 위하여 수령에게 충성할 것을 독려하는 글들과 당과 수령을 우상화하는 장문의 글들을 연속 써냈다. 그가 쓰는 글들은 노동신문 1면에 대서특필되곤 했다. 40여 년간을 적들의 감옥에서 꿋꿋하게 지켜왔던 그의 충성심은 참으로 대단했다. 전체 간부들과 국민들은 이인모 따라 배우기에 끌려 다니느라고 적지 않은 땀을 뺐다.
 
수령에 대한 충성심 문제를 놓고는 중앙당의 간부들에게도 서슴없이 일갈을 하는 이인모 앞에 높은 간부들조차 마주서기를 꺼려할 정도였다. 김정일은 이인모가 가보고 싶은 곳은 모두 가보도록 막강한 권한도 주었다.
 
거침없는 충성의 일로를 달려 나가던 이인모가 자기 일생의 반을 빼앗아간 감옥생활이 떠올랐던지 어느날 갑자기 북한의 “교화소”를 한번 보겠다고 하였다. “이인모 동지가 요구하는 것은 다 들어 주라.” 는 김정일의 지시가 있었던지라 간부들은 그를 데리고 사리원시에 있는 “국제교화소”로 갔다.
 
사리원에는 “7호교화소”와 “국제교화소”가 있다. 7호교화소는 일반교화소로서 시설과 대우가 너무 열악하여 절대로 공개를 못한다. 그러나 “국제교화소”는 죄를 지은 외국인들과 항일투사가족들, 그리고 비서국 대상 간부가족들만을 받아들이는 곳이다. 나름대로 시설도 괜찮고 죄수들에 대한 대우도 좋다고 한다. 그래서 국제 인권단체들이 교화소를 보자고 찾아오면 서슴없이 보여주는 곳이다.
 
휠체어에 몸을 맡긴 이인모는 “국제교화소”를 돌아보는 장시간동안 굳은 표정으로 한마디의 말도 없다. “사람 못 살 남조선”에서 오랫동안 감옥살이를 한 이인모가 아마도 너무 감동을 먹은 모양이라고 생각한 북한 간부들은 참관을 끝내고 마당에 나오자 “이인모 동지 돌아보신 소감이 어떻습니까?” 하고 자신에 넘쳐 물었다.
 한참동안 먼 곳을 응시하던 이인모는 드디어 북한을 통째로 뒤흔들어 버리는 핵폭탄 발언을 터뜨렸다.
 
 “나는 이런 곳이었다면 34년은 고사하고 3년도 견디어내지 못 했을거야.” !!! ???
 
그 자리에 있던 간부들은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이인모의 얼굴만 쳐다보았고, 마침내 그는 간다온다 소리도 않고 그곳을 떠났다. 그 순간부터 30분도 채 되기 전에 노동당과 안전보위부, 인민보안성, 3개의 통보선으로 이인모의 교화소 행적과 발언 내용이 김정일에게 직보 되었다. 김정일은 분노하여 말했다.
“역시 자유를 맛본 자들은 믿을게 못 돼” ...
 
그 때부터 이인모는 “당과 수령의 신임을 저버린 쓸모없는 고깃덩이” 취급을 받았고 마침내 2007년 6월 누구도 찾지 않는 속에서 고독한 생을 마쳤다. 이것이 바로 자유를 버리고 충성의 길을 택하였던 공산주의자에게 차려진 쓸쓸한 종말이었다.
 
그 후부터 이인모에 대한 선전은 남한의 언론매체들에서도 사라졌다. 그러나 김정일은 더는 입을 열지 못하는 그의 시신을 애국열사릉에 안치시킴으로서 “광폭정치”의 선전효과를 지금도 톡톡히 보고 있다.
 
물론 그 사건이 있은 후부터 2000년 9월에 송환된 63명의 장기수들은 선발된 선전용 몇 명을 제외하고는 자유란 없고 평양시민들과 같이 600그램의 쌀 배급과 배정되는 몇 가지 생활필수품에 의존해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들이 북한에 들어가서 헤어졌던 가족들에게 해줄 것은 아무것도 없다. 특히나 남한에서 전향을 했던 분들은 아무리 강압에 못 이겨 전향을 했다고 해도 북한 땅에 들어서는 그 순간부터 찬밥 신세가 된다.
 
.........

나는 교도소란 곳을 가보지 못하였다. 도대체 남과 북의 교도소가 얼마나 큰 차이가 있기에 그렇게도 수령에게 충성을 바치던 이인모가 경악을 했는지는 아직도 이해가 안 된다.
아니 그보다도 사실은 북한에서 살 때에는 그 심각성을 느끼지 못했던 김정일의 “판결문”과 같은 말... “역시 자유를 맛본 자들은 믿을게 못돼” 가 이 남한에 와서 자유로운 삶을 살아보니까 더 심금을 울린다.
 
자루 속의 송곳은 숨길 수 없듯이 자유를 한번 맛본 사람들은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전혀 없는 독재사회에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진리를 김정일 자신이 직접 밝혀 주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나는 변절도 하지 않았고 북한에 충성을 했으니 돌아간다면 아마도 특별대우를 해 줄 것이다” 라는 생각은 자유를 버리는 그 순간부터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무서운 후회를 몰아 올 것이다. 북한이란 나라를 국가전복 행위를 한 간첩도 살려준 자유대한민국처럼 생각한다면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다.
 
비전향 장기수 어른들이 부모와 자식들을 그리워하는 마음에 재를 뿌리자고 이글을 쓴 것이 아니다. 두 제도를 살아본 사람으로서 북한의 감춰진 진실을 권해 드리고 싶을 뿐이다.
 
“인간은 자유를 버리면 우리 안에 갇힌 짐승이 된다.”는 것이 내가 찾은 진리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7-09-01 16:02   |  수정일 : 2017-09-01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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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산 전 조선-체코 신발 합영회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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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상경  ( 2017-09-03 )  답글보이기 찬성 : 43 반대 : 1
가겠다면 보내주시고 이제 우리나라에 계셔도 별 쓸모 없잖아요..???
그러니깐 남북에 남아계시는 연세 많으신분들 가족상봉 카드로 제시 해보면 좋을듯 합니다.
최중신  ( 2017-09-03 )  답글보이기 찬성 : 60 반대 : 1
이 글이 청와대 촛불과 그의 공신들 그리고 민노총, 전교조, 주사파, 각종시민 단체들의 책상앞에 놓여 읽고 읽고 또 읽어 동경하는 이북의 망상에서 깨어나 국민들의 걱정을 덜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변재광  ( 2017-09-02 )  답글보이기 찬성 : 85 반대 : 1
이인모가 신념을 지키며 충성했던것이 순수한 사회주의 이념 이었다면 그가 남쪽에서 감옥살이 하는동안 북한에서는 순수 사회주의는 사라지고 김일성 일가 독재를 위한 변질된 수령주의가 지배하고 있는것을 깨달았을때 이인모는 한없는 허탈감에 빠져 여생을 마쳤을것 같다.
      답글보이기  송기식  ( 2017-09-03 )  찬성 : 45 반대 : 1
북한에서는 첨부터도 순수 사회주의라는 것이 존재했던 적도 읍는디요∼∼
남한에서  ( 2017-09-02 )  답글보이기 찬성 : 80 반대 : 0
득세하고 있는, 이름은 달라도 속은 이인모들의 귀속에 이 말씀은 도저히 뚫고 들어가지 못한다. 왜? 뼛속까지 이인모니깐...
윤영노  ( 2017-09-01 )  답글보이기 찬성 : 148 반대 : 1
북한전문가 100사람의 말보다, 종북좌파 1000명의 말보다 귀하의 말에서 진실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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