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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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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을 북송시킨 죄책감에 옷 벗은 러시아 검사 이야기

글 | 허학명 탈북자   정리 | 박남일 자유북한방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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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조선DB / 일러스트=이철원]

내가 평양에서 살다가 북한의 북부국경도시인 함경북도 온성군으로 추방된 것은 1980년대 중반이었다. 평양에서 나서 자라 대학까지 졸업했지만 핵심계층이 아니라는 이유에 가정의 사소한 문제가 겹쳐져 불순분자로 낙인 받고, 하루아침에 멀리 변방으로 추방된 것이었다.

그때 나는 정권의 배척을 받고 추방되어 가는 사람들의 심리가 어떤 것인지 느꼈다. 정권의 배척을 받으면 나라에 대한 애착이나 헌신적인 감정이 사라지고 반감이 생긴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80년대 말 북한을 탈출했다.

중국을 건너가 얼마동안 살았지만 공안의 단속이 너무 심해 살 수가 없었다. 나는 다시 중국국경을 넘어 러시아로 갔다. 내가 러시아로 간 것은 러시아 말을 조금이라도 할 수 있기에 그곳에서는 사는 것이 조금 편리할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러시아에서 나는 10년 동안 살았다. 처음에는 고생했지만 나중에는 마음고운 러시아 여성을 만나 그와 함께 살았다. 신분이 불법체류자인 까닭에 결혼식은 못하고 살았지만 트랙터까지 장만하고 열심히 농사일을 하며 낯선 이국땅에 정착해 갔다.

후에 아들까지 낳고 살면서 그 곳이 나의 마지막 정착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그런 생각은 헛꿈에 불과했다. 나는 어느 날 불시에 들이닥친 러시아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누군가 내가 불법체류자라는 사실을 러시아 경찰에 고발한 것이었다.

나는 러시아 경찰서의 미결수 감방에 6개월 동안 감금되어 있었다. 나는 러시아 경찰에게 중국인이라고 거짓말을 하였다. 어떻게 해서든지 북한에는 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러시아 경찰은 나에게 중국인이라는 것을 확인할 근거를 내놓으라고 요구하며 6개월을 감방에 잡아두었다.

그러던 어느 날 경찰이 나에게 “오늘은 위에서 간부가 너를 만나러 온다.”고 알려줬다. 경찰이 말한 “위에서 오는 간부”는 주 검찰청 검사였다. 나는 예전처럼 예심실에 나가 검사의 조사를 받았다.

위풍이 있어 보이는 검사는 나에게 “당신의 신분을 말해 달라. 그래야 우리가 해당한 조치를 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검사의 거듭되는 설득에 입을 열었다. 나는 북한 사람이라는 것과 북한을 탈출한 뒤 10년 동안 온갖 고생을 다했다는 사실, 그리고 북한에 잡혀나가면 감옥에 가야 한다는 사실을 솔직히 이야기했다.

검사는 3일 동안 나를 조사했다. 국경을 건너온 날자와 그 동안 거쳐 온 지역, 러시아에서 범죄전과가 없다는 것 까지 알아보고 조사를 끝냈다. 그는 조사를 끝내는 날 나의 손을 잡아주며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북한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 러시아에서 살 수 있도록 내가 노력하겠다.” 그는 아마 파란만장한 나의 과거를 듣고 감동을 받은 것 같았다.

하지만 그 검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 달 후 북송되었다. 북송되기 며칠 전, 나는 경찰을 통해 놀라운 사실을 전해 들었다. 놀라운 사실이라는 것이 나를 조사한 검사가 스스로 옷을 벗었다는 것이었다. 그는 나를 북송하면 안 된다고 해당기관을 설득했지만 끝내 나를 북송하라는 지시가 떨어지자 “나는 불쌍한 조선 사람과 약속을 어겼다.”며 스스로 사직서를 내고 검사 옷을 벗었다고 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었다. “너 때문에 검사가 옷을 벗었다.” 러시아 경찰은 몇 번 씩이나 곱씹어 말했다. 나는 비록 북송을 피할 수는 없었지만 나의 북송을 막으려고 끝까지 노력하다가 나중에는 죄책감으로 스스로 검사직을 내놓은 검사에게 미안했다.

그리고 그의 인간성이 고마웠고 그의 인격에 존경이 갔다. 하지만 나는 그 후 그 검사를 다시 만나지 못했고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북송되었다. 나는 지금도 때때로 나 때문에 스스로 옷을 벗은 그 검사를 생각해본다. 그는 내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고귀한 인격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 후 북송되어 북한 보위부에서 모진 고문과 인간이하의 학대를 받을 때마다 러시아에서 만났던 잊지 못할 검사를 생각해보군 했다. 꼭 같은 공권력이었지만 러시아의 공권력과 북한의 공권력은 너무도 달랐다. 러시아 사람들은 최소한 자신의 인격을 지키고 살았지만 북한의 공권력에 근무하는 인간들은 말 그대로 쓰레기들이었다.

인격이나 타인에 대한 배려나 이해 같은, 인간의 모습은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때리고, 소리 지르고, 뇌물에 환장한 인간들. 그들이 바로 북한사회의 보위기관 보안기관에 근무하는 인간들의 군상이다. 북한사회의 공권력 집단에는 인간의 공간이 없었다.

그 말은 옳고 그름을 스스로 판단하고 자신의 주장을 내세울 자유가 없다는 뜻이다. 인격의 우선 조건은 자유이다. 정당성이나 합리적인 판단에 기초한 개인의 의사가 허용되지 않으니 인격이 생겨날 수도 없다. 그 모든 현상은 세습독재정권의 산물이었다.

평범한 백성들이 불쌍한 노예라면 공권력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덜 불쌍한 노예들일 뿐이었다. 그리고 개인의 인격은 사회의 양상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북한에도 세습독재정권이 사라지고 자유로운 인간의 삶이 보장되면 그때 비로소 인간의 진정한 인격도 생겨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탈북자 허학명 (정리 박남일 기자)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6-12-07 14:09   |  수정일 : 2016-12-07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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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더지수  ( 2016-12-28 )  답글보이기 찬성 : 0 반대 : 0
그럼 러시아여자분과 다시 만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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